문재인이 존경하고 김일성이 그토록 데려가고 싶어했던 신영복

趙甲濟-李知映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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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이 존경하고, 김일성이 그토록 데려가고 싶어했던 신영복
 
  
1978년 12월 인도 뉴델리, 북한 측 대표단이 입을 열었다.
“이 회담은 남선(南鮮)* 혁명가와 월남에 억류되어 있는 남선 인원과의 교환을 위한 것으로서… 피고인의 입장에 있는 남선 측은 재판관인 북선(北鮮)*의 요구에 따라 본인의 출생지와 거주지에 관계없이 당연히 이들을 넘겨주어야 할 것이다. …남선 측은 남선 출신 ‘혁명가’들을 연고자 때문에 못주겠다고 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그 가족을 함께 받을 용의가 있다.” (注: 남선은 남한을, 북선은 북한을 지칭)

북한이 이토록 애타게 데려가고 싶어 했던 ‘남선 혁명가’는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올림픽 리셉션 환영사에서 “존경하는 한국의 사상가”라고 밝힌 신영복(1941~2016) 성공회대 교수다. 이 사실은 2016년 외교부가 ‘베트남 억류공관원 석방교섭 회담(뉴델리 3자회담)’ 외교문서철을 비밀해제하면서 밝혀졌다.

남(南)베트남이 패망한 1975년 4월30일, 공산화된 베트남에서 미처 탈출하지 못한 우리 외교관은 9명이었다. 북(北)베트남 공산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북한은 이들 한국 외교관 9명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고 나선다. 9명의 외교관 중 6명은 자력으로 탈출하거나 북베트남 공산정부의 퇴거조치에 따라 한국으로 돌아왔다. 나머지 3명은 북한의 방해공작으로 사이공에서 계속 억류되어 치화형무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한국 정부는 朴正熙 대통령의 特命에 따라 이들 억류 공관원을 석방하기 위해 프랑스, 미국, 스웨덴, 유엔 등 가능한 모든 채널을 동원하고 있었다. 마침내 프랑스의 중개로 한국에 억류 중인 북한간첩들과 우리 공관원들의 교환 교섭을 위한 회담이 시작되었다. 1978년 극비리에 진행된 ‘베트남 억류 공관원 석방 교섭을 위한 뉴델리 3자회담’이다.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한국과 북한, 북베트남 공산정부의 3자 비밀협상은 사실상 한국과 북한의 양자(兩者) 대화로 진행됐다. ‘남한에 복역 중인 북한간첩’들과 베트남에 억류된 공관원들의 교환으로 이해하고 회담에 나섰던 우리 측에 북한이 ‘체포 구금된 남조선 혁명가들’로 교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 실랑이가 시작됐다. 교환 비율에 있어서도 우리 정부는 1대1을, 북한은 1대70을 요구하고 나섰다. 무려 4개월여의 논쟁 끝에야 비로소 억류 외교관 1명 당 7명, 총 21명을 북한에 인도하기로 합의했다.

한국 측 수석대표였던 李範錫 대사가 서울에 보낸 긴급 전보에는 중대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교환 비율의 타결이 임박했던 1978년 11월17일, 조남일 북측 수석의 요청으로 李 대사가 개별접촉을 갖는다. 조 수석은 북한이 제시한 1대7 타결안을 우리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을까 안달하는 모양새로 이런 말을 덧붙인다.
“1대7이 사실은 김일성 수령의 명령이다. 우리들 체제 상 ‘수령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은 남측도 잘 알지 않는가?”
이 3자회담에 김일성이 직접 관여하고 있다는 고백이었다.

북한이 제시한 21명 중 살아서 복역 중인 8명은 모두 남한 출신이었다. 복역 중인 8명 중 3명이 김일성에게 충성한 남한내 지하당 통일혁명당(이하 통혁당) 사건 관련자들이었다. 우리 대표는 교환 대상에 남한 출신은 포함될 수 없으며 남한에 가족이 있는 사람도 넘겨줄 수 없다는 기본 입장을 유지했다. 우리 측 대표가 북한 측에 북한 출신 남파간첩 및 재일교포 출신 중형자들의 명단 제시를 권하자 “필요치 않다”며 남한 출신 복역자의 인도를 끈질기게 고집했다. 이는 북한 정권이 남파간첩이나 재일동포 간첩보다도 남한 내의 김일성추종자들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북한 대표들이 집요하게 ‘남한 출신 혁명가’를 인도해달라고 주장하는 강도(强度)로 미뤄 교환비율 합의에서와 마찬가지로 김일성의 직접 관심사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이산가족 발생이 우려된다면 “가족과 함께 넘겨주면 어떤가”라고까지 물고 늘어진다. 심지어 “이 회담을 통해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 동 사실을 월남에 통보해주면 월남은 억류하고 있는 남한 외교관 3명을 월남법에 따라 재판해 사형을 집행하고 그 사실을 신문에 공포할 것”이라고 협박한다.

회담은 교착상태에 빠지고 북측은 우리가 제시하는 북한 출신 10명, 북한이 제시하는 남한 출신 11명으로 명단을 확정하자고 제안한다. 여기서 북한이 제시한 남한출신 11명이 진정으로 데려가고 싶어 했던 사람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이 최후의 최후까지 간절하게 원하던 사람들 중에 바로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살고 있던 신영복이 있다. 북측은 “신영복은 독신자로 이산가족이 생기는 ‘비인도적 결과’가 초래하지 않는다”며 끈질기게 인도를 요구했다.

당시 신영복은 통혁당 사건 관련자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었다. 한국 정부가 ‘자국민 북송은 안 된다’는 원칙을 고수하였기에 신영복 씨는 한국에서 여생(餘生)을 보낼 수 있었고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며 ‘대통령이 존경하는 사상가’가 될 수 있었다. 북한의 강력한 희망을 한국 측이 받아들였다면 여생을 북한에서 보낼 수도 있었던 신영복은 복역한 지 20년만인 1988년 8월14일 광복절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초 북한의 김영남, 김여정이 청와대에 방문했을 때 신영복의 서화(書畵)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고, 각 비서관실에 신영복 교수가 쓴 액자를 선물해 걸도록 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사람이 먼저다’ 슬로건은 신영복 글씨체다. 문재인 대통령(당시 민주당 전 대표)은 2017년 1월 신영복 1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신 선생은 더불어민주당의 ‘더불어’라는 당명(黨名)을 주고 가셨다. 선생의 ‘더불어숲’에서 온 말이다. 여럿이 더불어 함께하면 강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많은 촛불이 모이니 세상을 바꾸는 도도한 힘이 됐다. 촛불과 함께 더불어 정권을 교체하고 내년 2주기 추도식 때는 선생이 강조하신 더불어숲이 이뤄지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보고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신영복을 사상가로 존경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사상은 이처럼 구체적 행동이나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영복의 사상이 김일성주의라는 점은 확정된 재판으로, 그리고 그를 이대용 공사와 맞바꿔 데려가려고 그토록 집착하였던 김일성 정권의 행태로 뒷받침된다. 좌파정권 시절에도 신영복은 재심신청을 하지 않았고 과거사 조사 항목에서도 통혁당 사건은 빠졌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신영복을, 김일성주의 사상가로서 존경한다고 봄이 합리적일 것이다. 평양엔 통일혁명당의 주범으로 사형된 김종태의 이름을 딴 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이 있다. 남북한 정권의 수뇌부가 통일혁명당의 핵심인물들을 같이 존경하고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이런 감정이 이념으로, 정책으로 구현되고 있다. 憲政질서 붕괴는 감정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 2018-11-27, 12:1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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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ve     2018-11-30 오전 9:46
문재인식 '사람이 우선이다" 슬로건에서 '사람'은 '김일성 민족의 사람' 이상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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