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老年)의 삶
모 대학 교수가 서울시에 사는 대학생을 상대로 ‘아버지에게 원하는 것이 뭔가’ 설문 조사했더니 약 40%가 ‘돈을 원한다고’ 답했다.
또 서울대생을 대상으로 부모가 언제쯤 돌아가시면 가장 적절한가 하는 질문에 ‘63세’라고 답한 학생이 가장 많았다는 이야기는 그냥 돌아다니는 sns 괴담으로 믿고 싶다.
퇴직 후 단절된 노년의 삶이란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알 수가 없다. 젊은이의 시간은 하루는 짧고, 1년이 길고 노년의 시간은 하루가 길고 1년의 시간은 눈 깜빡하는 사이에 지나간다.
내 몸이 아프면 짜증이 난다. 그냥 그러려니 말을 안 하고 살 뿐이다. 이런 중소 도시에는 길에 사람이 없다. 병원은 로비부터 사람으로 가득찼다. 물리 치료실에 가면 할배 할매가 쎄 빌랐다.
의료보험이 잘된 관계로 노인들은 1.500원이면 치료를 받는다. 의사는 이런 환자를 1분만 보면 약 15.000원 정도 의료 수가를 받는다. 농촌의 노인들은 새벽 밥 먹고 첫차 타고 와서 병원 투어하고 있다. 어제도 오늘도 이런 날은 계속된다.
할머니 집에 가본다. TV 밑에는 물파스 진통제 고혈압 당뇨 소화제 먹다 남은 홍삼탕도 있고 고장난 보청기에 빼놓은 틀니도 어지럽게 바구니에 한가득하다. 저녁마다 할배 할매는 여보 등어리 옷 좀 올려봐 서로 파스 발라 주는 게 저녁 일과다. 허리랑 다리에는 온통 파스로 도배를 한다. 9시 뉴스도 다 보지 못하고 아픈 허리를 구부려 잠을 청한다.
문 앞에 내다보니 중고 전동 휠체어가 놓여 있고 작년에 맏딸이 사준 지팡이 2개가 놓여 있다. 그래도 요양원이 아닌 경우라서 위안이 될 것이다.
누가 묻습니다.
“자네 모친 어디에 계시냐?”
자식은 말합니다. “어머니는 지금 요양원에 모시고 계십니다.” 말이 좋아 모시는 거지, 그냥 맡겨 놓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면회를 다녀왔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면회를 마치고 요양원 정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어머니는 다음 면회 언제 올까 학수고대하며 마음을 추스르고 계십니다. 하기야 자식은 직장 때문에 도시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습니다.
“고향 오셔서 부모님 손 한번 만져 보셨나요?” 휘어지고 구부러진 등과 발을 벗겨 보셨나요? 어릴 때 매일 같이 목욕시켜 주시던 어머니, 오늘은 당신이 그분의 발을 세숫대야 따뜻한 물을 가져와서 한번 씻겨 주세요.
못난 소나무가 마을을 지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을 판검사 의사 만들어도 다 필요 없다고 합니다. 그저 고향에서 사과 농사 소 키우며 할아버지 할머니 병원 모시고 가는 게 제일이라는데 “그건 할매 할배 생각 이시지요?”
“오죽하면 그러실까?”
노인은 한번 삐그덕 하면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다리가 삐거득 해도 발목을 접혀도 이빨을 다쳐도 계단을 잘못 내려와도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남깁니다.
우리 친구 이야기 한번 할게요.
두 부부가 삽니다.
남편은 몸이 성치 않아 부인 혼자 감당할 수 없어 낮에만 하는 주간 요양 보호 시설에 아침에 갔다 저녁에 옵니다. 다녀와서가 문제입니다. 자다가 혼자 밖에 나가려고 하지 않나 말썽을 피울 때는 부인도 어쩔 수 없이 감당이 안 됩니다.
딸이 찾아옵니다.
딸은 엄마와 한편이지만 같은 마음은 아닙니다. 부인은 남편과 평생를 살아왔는데 딸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딸은 매몰차게 이야기합니다.
“엄마 힘들어하지 말고 그만 요양원에 맡겨.”
딸의 입장도 맞습니다. 그것이 당면한 현실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서울 있는 자식은 명절이라고 손자 데리고 먹을 걸 바리바리 싸가지고 옵니다.
봉투에 30만원도 넣어 건냅니다. 지네들은 놀러 한번 가면 50만원, 해외여행 가면 몇백만 원 쓰면서 말입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평생 농사일로 손가락 발가락이 닳고 굽어 힘은 들지만 손자만 보면 즐겁습니다.
그렇게 한 이틀 있다가 떠나면 어머니는 손자가 떠나는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동구 밖 우물가에서 손을 흔듭니다. 수 없는 세월을 그렇게 고독과 외로움을 달래며 기약 없는 다음 명절을 기다립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고향에 전답 팔고 서울 와서 잘 모실 테니 따라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누구나 피할수 없는 가난, 질병, 외로움의 3苦를 개인적인 차가 있지만 대부분의 노인들은 겪고 있습니다.
장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지금은 매장에서 화장 비율이 90% 넘었다고 합니다. 요즘 영안실에 가면 곡소리가 안 납니다.
옛날에는 곡하고 울지 않으면 쌍놈 소리 듣고 흉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사서 곡을 하기도 했습니다. 슬피 우는 것은 부모 돌아가시면, 남편 돌아가시면 어떻게 사느냐고 자기 신세타령을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잘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죽으면 그 순간 영육(靈肉)이 분리되어 육신은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20~30년 전 부모를 화장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동네에서 쫓겨나고 평생 불효자가 되는데 시대에 따라 어쩔 수 없습니다. 영안실을 떠나 화장장에 도착하면 사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인 환경입니다.
장례식장을 떠나 화장장으로 갑니다. 40분 있으면 화부가 삽으로 뼈를 추스려서 하얀 천으로 싼 도자기를 유족에게 전합니다. 물론 망자의 시신을 수습한 것이지만 생각해 봅시다. 요즘 화장장 시설이 부족해 예약해도 3일 이상 기다립니다. 어떤 사람은 화장장 찾아 몇 백리 찾아 다니기도 합니다.
화장장에는 먼저 한 분들의 유해가 나옵니다. 성(性)도 이름도 알지도 못하는 분들의 유해가 40분 간격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유족들은 그 유해를 소중하게 받아 이번에는 납골당으로 향합니다. 화려하고 멋진 곳에 에어컨도 잘된 곳에 모시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겠지요.
그런데 그 항아리에 들어 있는 것이 당신의 망자 것만 있었을까요?
아무리 깨끗하게 쓸어 담았다고 해도 그 항아리에는 김씨 박씨 등 먼저 화장한 알지 못하는 분들의 유해도 섞여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런 일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셨습니까?
알지 못하는 분들의 유해도 함께 납골당에 모시겠습니까? 그건 그러려니 한다고 칩시다. 당신의 아들 당신의 손자가 오래오래 보관하고 기억하고 있을까요?
여러분은 유해를 정성스럽게 납골당에 모셨지만, 납골당 측에서는 그날부터 관리 번호를 A-175 라는 번호를 매겨 물건으로 취급됩니다. 처음 보관할 때 시설 나름이지만 한 분이 5백만원에서 시설 좋은 곳엔 3천만원하는 곳도 있고 5년마다 보관료를 지불해야 합니다.
어른들은 자식에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이렇게 했으니 다음부턴 니네들이 알아서 해라. 그 알아서 해라가 언제까지 가겠습니까? 저 같은 경우 조상님들 산소가 가까워 자주 들리고 깨끗하게 관리 한 것을 자부해 왔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벌초도 참가하여 정성스럽게 돌봐왔는데 지금은 그냥 구경꾼으로 자격이 바뀌더니 올해는 벌초하는 사람에게 부탁하고 온라인 번호 불러 달라고 했습니다.
몸이 따라 주지 않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나라마다 시신 처리 방법이 다르지만 더운 나라는 조장(鳥葬) 해양장(海洋葬) 이번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거름장이라고 뼈를 거름에 섞어서 처리하는 법을 상정했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감이 상상도 못 할 일들을 우리는 하고 있습니다. 아니 할 수밖에 없는 죄송한 현실입니다.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그냥 나무 상자나 하이얀 천으로 잘 가져오셔서 수목장이나 되도록 빨리 육신이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시게 하는 게 마땅합니다. 그것이 망자(亡者)에 대한 예의이고 그분의 마지막을 잘 보내 드리는 겁니다.
이 이야기로 인하여 저는 사회적인 지탄을 받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그런 걸 그렇다는 겁니다. 갑자기 고려장이 생각납니다. 그저 살아 계실 때 전화 자주 하세요. 그 전화로 인하여 어머니는 경로당에 가서 자랑합니다 .우리 아들 우리 손주 자랑 입이 마르고 닳도록 하실 겁니다.
노년(老年)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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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9-02, 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