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  조선일보  |  독립신문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라이트뉴스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기사 확대  기사 축소  

체포되다
 체포되다
 
 군내의 남로당 조직에 깊숙이 빠져 있던 박정희 소령은 북한 공산주 의를 체험하고 월남한 만주군관학교 선배 최창윤의 말을 듣고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최창윤은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을 품고 월북했다가 김일성 일당의 행태를 가까이서 본 뒤 절망한 과정을 설명했다. 최창윤, 박창암, 박임항, 방원철 등 만군출신장교들은 해방 직후 박승환을 중심 으로 서울에 모였다가 여운형의 지시를 받고 김일성의 인민군 창설에 참여하기 위하여 1946년 초에 월북했었다. 해방 전 박승환은 만군조종 사로 있으면서 여운형의 밀명을 받아 민족의식이 강한 조선인 만군장교 들 수십 명을 포섭하여 항일조직을 만든 사람이다.
 
 봉천에서 해방을 맞 았던 그는 이틀 뒤 군용기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여 여운형의 건국준비 위원회를 돕고 있었다. 박승환은 공산주의자들이 많이 끼인 사병집단 조선국군준비대를 만들어 학병출신인 이혁기 총사령 아래서 부사령이 되었다. 만군출신동지들을 모아놓고 박승환은 '우리가 김일성이 만들고 있는 인민군에 기간요원으로 참여하여 나중에 남북이 합작할 때 남북한 군대 양쪽에 포진하고 있는 우리가 통일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설 득했다. 당시 만군출신들은 남한에 상륙한 미군의 행태와 이에 영합한 일부 한국인들의 작태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들은 소련군에 대해서는 '가난하긴 하지만 미군보다는 나을 것이다'라는 환상을 지니게 되었다. 박승환과 만군동지들은 월북하여 김일성을 만났다. 김일성은 이들을 창 군작업에 참여시키지 않고 각급 학교에 배치하여 반공학생들을 선무하 는 데 이용했다. 여운형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박승환은 북한의 지도층 을 만나본 소감을 물었다고 한다. 여운형은 한동안 말이 없더니 이윽 고 입을 뗐다. '글쎄, 북조선에 새로운 노동귀족이 생겼다는 것이 정확 한 표현이 아닐까.'.
 
 박창암, 방원철도 똑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방원철은 김일성과 측 근들의 호화판 생활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굶주리는 인민들과 사병들 을 코앞에 두고 김일성 일당이 거리낌 없이 벌이는 주지육림의 향연과 교양 없는 행동거지를 목격한 방원철은 '이놈들이 공산주의의 탈을 쓴 마적단이로구나. 정치집단이 아니라 깡패집단이다'라는 결론 에 도달했 다. 최창윤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거기서 읽고서 또 다른 충격 을 받았다.
 
 방원철도 최창윤으로부터 그 책을 빌려서 읽어보고는 눈이 새롭게 뜨이는 체험을 했다. 공산주의 이론을 공부하면서 싸였던 의문 들이 '국부론'을 통해서 해소되는 것이었다. 박승환과 동지들은 북한에 와서 비로소 공산주의의 악마성을 직시하게 되었다. 1947년 박승환과 동지들은 몽땅 숙청되어 감옥에 들어갔다가 박승환은 옥사하고 최창윤 등 다른 사람들은 1948년 9월에 출소하자마자 남한으로 탈출했다. 최창 윤과 박창암은 남쪽에 남아 있던 몇몇 동지들이 남로당에 들어가버린 것을 발견하고는 그들을 찾아다니면서 손을 떼도록 설득하고 있었다.
 
 최창윤은 자신의 이런 '공산주의 절망체험'을 만주군관학교 후배 박 정희 소령에게 들려주었다. 공산주의를 체험한 사람이 공산주의를 이론 으로써만 아는 사람을 설득하는 이런 풍경은 지금껏 한국에서 되풀이되 고 있는 풍경이다. 박정희 또한 공산주의에 중독된 골수분자는 아니었 다. 박상희형의 피살과 이재복-최남근 인맥이 인정을 앞세워 접근하여 박정희의 반골적 기질을 자극하자 자연스럽게 공산당 조직에 휩쓸려 든 것이었다. 박정희 소령은 며칠 뒤 숙군수사기관에 체포되자마자 과감하 게 공산주의와 절연하고 자신을 고백한다.
 
 최창윤의 설득이 그런 결단 의 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는 게 박창암의 짐작이다. 최창윤과 박창암 은 그에 앞서 여순14연대 반란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만군 선배인 최남 근 연대장을 좌익에서 손떼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었다. 월남한 지 2주 가 지난 10월 초순 박창암은 파고다 공원 옆에 있던 한 호텔로 최남근 을 찾아갔다. 박창암은 만군시절에 간도특설대의 하사관으로서 최남근 을 상관으로 모셨고 그의 인격에 감복했었다.
 
 '왜 내려 왔나.' '북한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 다릅디다. 형님도 이제 손을 떼시오.'.
 
 박창암의 공산주의 체험기를 듣고난 최남근은 동요하는 빛을 보였다. '내가 발을 빼면 죽는다'고 약한 말을 하기도 했다. 박창암이 비겁하다 고 몰아붙이자 최중령은 말했다.
 
 '내가 자네 말을 못믿는 것은 아니지만 워낙 내 생각과 다르니 최창 윤이를 데리고 와. 다음날 박창암과 최창윤은 최남근을 찾아가 밤이 새 도록 이야기했다. 새벽이 밝아오는데 이윽고 최남근이 결단을 내렸다.
 
 '알았어. 발을 빼지. 그러면 나는 죽는데….'.
 
 여순14연대 반란사건이 터지자 최남근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체포되었다. 최창윤에 의한 설득 때문에 마 음이 흔들린 상태에서 반란사건을 맞아놓으니 진압군도 아니고 반란군 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추정된다. 박정희 소령의 체포에 대해서는 용산관사에서 동거하던 이현란의 증언이 실감난다.
 
 '밥을 해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이효대위(편집자 주-- 박정희를 이현 란에게 소개시켜 준 사람)가 찾아왔어요. 술을 마신 모양인데 저에게 돈을 얼마 주면서 당분간 기다리라고 해요. 미스터 박이 출장갔다는 겁니다. 그랬다면 아래 채로 전화를 했거나 메모라도 전해왔을텐데 밤새 생각해도 이상했습니다.
 
 다음날 강문봉 대령 부인에게 찾아가서 물었더니 부인이 '아직도 몰랐느냐'면서 남편을 불러서 (체포사실을)알려주는 거예요. 너무나 기가 막혔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떨릴 정도로 쇼크를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사에 왔다갔다 했습니다. 나이는 어리고 의지할 데가 없는 저로서는… 이북에서 그게 싫어 왔는 데 빨갱이 마누라라니. 얼마 후 (수사담당자) 김창룡이가 찾아와서 경위를 설명해주었습니다. 미스터 박의 메모도 전해주었습니다.
 
 '미안해 어쩔 줄 모르겠다. 이것 하나만 믿어주라. 육사7기생 졸업식에 간다고 면도를 하고 아침에 국방부로 출근하니 어떤 사람이 귀띔해주더라. 내가 얼마든지 차타고 달아날 수 있었는데 현란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안 갔다. 이것이 나에게 얼마나 불리한 것인지아는가.' 그러나 난 괘씸했 습니다'. (계속).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기사목록  프린트하기 

조선일보 | 스포츠조선 | 주간조선 | 소년조선 | 여성조선 | NK조선 | IT조선 | 잡지DB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1가 163 광화문 오피시아 1729호  |  대표자 : 조갑제  |  사업자등록번호 : 101-09-63091
상호 : 조갑제닷컴  |  개인정보관리 책임자 : 김동현  |  전화번호 : 02-722-9411~3  |  팩시밀리 : 02-722-9414 |
    개인정보취급방침

발행인 : 조갑제 | 편집인 : 조갑제 | 등록번호 : 서울아00945 | 등록일 : 2009/08/24 | 국민은행 360101-04-065553(예금주: 조갑제닷컴)
webmaster@chogabj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