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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옥 공수단장
 박치옥 공수단장
 
 합법을 위장한 혁명군 출동계획이 될 폭동진압 '비둘기 작전계획' 을 짜면서 6관구 작전참모 박원빈은 자신을 신임하는 6관구 사령관 서종철 소장을 속이는 일이 괴롭기도 했다. 참모장 김재춘 대령은 같은 혁명파니까 이 작전계획의 숨은 뜻을 알고 결재를 해주는데 서 사령관은 박 중령이 올리는 작전계획서를 검토하고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1961년 3월 6일부터 11일까지 이 작전계획에 따른 훈련이 서울에 서 실시되었다. 한강 백사장에 지휘소(CP)를 설치하고 도상연습을 했다. 7일 영등포 6관구사령부로 박정희 2군 부사령관이 시찰을 나 왔다. 서종철은 박원빈으로 하여금 비둘기 작전에 따른 상황보고를 올리게 했다. 이 계획에 담긴 비밀에 대해서 알고 있는 두 박씨는 의미있는 문답을 주고 받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 진정한 의미를 알 턱이 없는 문답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원빈은 직접 박정희로부 터 군사혁명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박정희는 보고회가 끝나 자 서종철 사령관실로 들어갔다. 박원빈이 따라 들어가서 '그동안 바빠서 찾아뵙지 못했습니다'고 인사했다. 박정희는 '곧 연락하겠으니 봅시다'라고 했다. 옆에 앉은 서종철 사령관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비둘기작전계획에 의하여 서울로 들어올 30, 33사단과 김포 해병 여단, 공수단, 5사단, 그리고 이 계획에는 없었던 6군단 포병사령부 의 지휘부를 포섭하기 위한 공작이 거사준비의 핵심이었다. 수백명 이나 되는 육사 8기생들은 수도권과 야전군 부대마다 작전참모 등 요직에 박혀 있었다. 6관구 사령부 작전참모 박원빈, 30사단 작전참 모 이백일 중령, 33사단 작전참모 오학진 중령, 6군단 포병단 대대 장 신윤창 중령이 모두 8기생이었다. 박치옥 공수단장, 문재준 6군 단 포병사령관은 육사 5기 출신이었다. 5·16은 대령급인 육사 5기 와 중령급인 8기의 합작품이란 이야기를 들을 정도이다.
 
 그때 국군엔 공수단이 하나밖에 없었다. 공수단장 박치옥 대령은 예비사단의 연대장으로 있을 때 장도영 육군참모총장 비서실장이던 안용학 대령을 통해 인사부탁을 했다. 안 대령은 박 대령과 장도영 의 친구인 장익삼 사장을 데리고 총장공관으로 갔다. 박치옥은 총장 에게 말했다.
 
 '저는 1사단, 9사단, 논산훈련소, 전주 예비사단만 돌면서 연대 장만 하고 있습니다. 이제 보병병과로서 갈 수 있는 곳은 공수단장 뿐인데 꼭 좀 보내주십시오.'.
 
 장 사장이 나서서 '야, 하고 싶다는데 한번 하게 해줘라'고 장 도영에게 말했다.
 
 '공수단장엔 강원채 대령을 보낼 생각이오.'.
 
 장 사장이 또 거들었다.
 
 '야, 강원채나 박치옥이나 똑 같다. 강원채는 몸이 너무 커서 낙하산 못탄다.'.
 
 장도영은 마음을 바꾸었다.
 
 '좋소. 한번 나가보시오. 그 대신 당신은 나에게 충성을 다해야 하오.'.
 
 박치옥은 그 은덕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수도권부대로서 쿠데타에 써먹기 좋은 공수단장에게 박정희쪽에 서 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 1대대장 김제민 중령이 찾 아오더니 '길재호, 강상욱 중령이 찾아 와서 박정희 장군 이야기를 하면서 집적거린다'고 보고했다. 박치옥은 '별명이 있을 때까지는 그들과 만나지 말라'고 지시했다. 박치옥은 육사 5기 생도시절의 박정희 중대장을 기억하고 있었다. 박정희 중대장의 과묵함이 무언가 사람을 끄는 멋이 있었다. 육사에선 기합과 구타가 횡행했다.
 
 박정희는 그런 짓을 하지않는 유일한 장교였다고 한다. 그가 주는 기합이란 것은 주말에 외출을 나갈 때 경례 연습을 하고 나가게 하는 정도였다. 한편으로 박치옥은 고향인 황해도에서 공산당에 붙잡혀 한달간 고생한 적이 있었다. 공산당이 싫어서 월남한 그로서는 박정희의 좌익전력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오치성 대령과 옥창호 중령이 박치옥을 찾아왔다. 두 사람은 '박정희 장군이 한번 만났으면 한다'고 전했다.
 
 '왜 나를 만나자고 하는지 한번 말해 봐.' '단장님이 생각하고 있는 그런 문제로 이야기하자는 것이겠지요.'.
 
 박치옥은 쿠데타 문제로 이야기하자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도 시큰둥해 있는데 김제민 대대장이 다시 오더니 '제 입장이 곤란합 니다. 박장군을 꼭 만나주십시오'라고 간청했다. 그 며칠 후 무교 동에 있는 작은 술집에서 박정희를 만나러 갔는데 뜻밖에 육사 5기 동기생인 문재준 6군단 포병사령관이 와 있었다. 김제민과 문재준 은 그때 이미 박정희에게 포섭되어 있었다. 세 사람이 둘러 앉아 술을 마시면서 오고간 대화는 대강 이러했다고 박치옥은 기억한다.
 
 '동생, 안 할라나.' '뭘 말입니까.'.
 
 '숙군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해야지요.'.
 
 '우리 같이 해.' '각하가 중심입니까.'.
 
 '장도영 장군을 받들고 한다.' '장 장군과는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되어 있습니까.'.
 
 '그분이 2군 사령관으로 있을 때 이야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야기가 잘 되어 술판이 벌어졌는데 박치옥이 이런 건의를 했다.
 
 '장도영 총장과의 연락은 제가 맡겠습니다.'.
 
 박치옥은 이때 박정희와는 동상이몽이었다. 그는 장도영 총장을 추대한 쿠데타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는 '장 장군과의 연락은 가급적 내가 하겠다'고 했다. 박치옥은 장도영을 추대하여 쿠데타를 하겠다는 의논을 장도영과는 한 적이 없었지만 박정희가 '장 장군을 받들고 한다'는 말을 하니까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박치옥은 장도영이 군사혁명을 지원하고 있는 줄 알고 모의과정에 참여한 경우이다. 박치옥은 옆자리에 있는 문재준에게 맞은 편에 앉아 있는 박정희를 바라보면서 '박 소장은 남로당인데…'라고 귀엣말을 했다. 문재준은 '지금은 아니야' 라고 속삭이듯 말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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