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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의 장면
 수도원의 장면
 
 5월16일 김종필은 미리 준비해두었던 포고령 문안들을 하나씩 뽑아 내 KBS를 통해서 잇따라 발표하고 있었다. 군사혁명위원회 겸 계엄사령 관 장도영 중장 이름으로 된 것들이었다. 포고령 4호는 그 내용이 무시 무시했다.
 
 <(1)군사혁명위원회는 5월16일 상오 7시 장면 정부로부터 모든 정권 을 인수했다.
 (2)민의원, 참의원 및 지방의회를 16일 하오 8시를 기하 여 해산한다. 단, 사무처 직원은 존속한다.
 (3)일체의 정당 및 사회단체의 정치활동을 엄금한다.
 (4)현 국무위원과 정무위원을 전원 체포한다.
 (5)국가기구의 일체 기능은 군사혁명위원회에 의해 이를 정상적으 로 집행한다.
 (6)모든 기관과 시설의 운영은 정상화하고 여하한 폭력행 위도 이를 엄금한다.>
 
 16일 밤 윤보선 대통령은 장도영 총장의 권유를 받아들여 대민방송을 녹음한다. 그 요지는 이러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나라는 지금 중대한 시국에 놓여 있습 니다. 오늘의 사태를 우리가 어떻게 수습하느냐 하는 것에 우리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태를 무사히 수습해야 하고 공산주 의를 막는 힘에 약화를 초래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중략). 장 총리 이하 전 국무위원은 한시 바삐 나와서 이 중대한 사태를 성의있게, 합 법적으로 처리하여 주기를 바랍니다. 군사혁명위원회의 말에 의하면 국 무회의에 출석하는 국무위원의 신변은 보장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방송이 KBS를 통해서 나가자 은신중이던 주요한 부흥부장관이 윤보선 대통령에게 맨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고 한다.
 
 '사태 수습을 위하여 청와대로 오라면 가겠으나 신변의 안전을 무 엇으로 보장하시겠습니까.' '장도영 계엄사령관을 통해서 직접 확약을 받았으니 그리 알고 협 력해 주시오.' '우리는 그 정도로는 믿을 수 없습니다.'.
 
 윤보선 대통령은 장도영에게 직접 신변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방송 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당시 야당인 신민당의 당수는 장면과 총리 경합을 벌였다가 떨어지 자 분당했던 민주당 구파 출신 김도연이었다. 그의 회고록 '나의 인생 백서'에는 이런 요지의 기록이 있다.
 
 <그날(5월16일) 밤 10시 반경 윤보선 대통령의 방송을 듣고 나는 우리 신민당의 태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로 부심하다가 17일 오후 당의 주요 간부회의를 열고 이 문제를 숙의하였다. 이 회의에서 내린 결론은 장면 정권은 하루 바삐 사태수습을 위하여 국민 앞에 나와서 사과하고 물러날 것이며 군사혁명위원회에 대하여 거국내각을 조직하자고 제의하 자는 것이었다.>.
 
 그린 대리대사가 5월16일 오전 윤보선과 요담한 내용을 미 국무부 에 보고한 전문에도 '윤 대통령은 국회의 내외를 망라한 거국내각을 조 직함으로써 이 쿠데타를 수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했다. 윤 대통 령은 자신의 회고록에서는 그런 기록을 남기고 있지 않다. 김도연-윤보 선은 같은 구파 출신인데 이들이 박정희의 쿠데타에 대해서 묵인하는 태도를 취한 이면엔 거국내각에 대한 기대심리도 작용하지 않았나 추리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든 야당은 군사혁명을 반대하지 않고 사실상 인정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장면 정부의 비극은 쿠데타를 허용했다는 무능성에 덧붙여 민주 합헌정권이란 이 정부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려는 지지세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대통령도, 야당도, 군인들도, 그리고 학 생-시민들도 이 '국민의 정부'를 위해서 나서지 않았다. 법적인 정통성 은 있었지만 도덕적인 정통성을 상실한 것이 장면 정부였던 것이다.
 
 이 때 청와대나 육본과는 지척의 거리에 있던 혜화동 로터리 부근 카르멜수녀원 부속건물 방에서 장면 총리 내외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 내고 있었다. 가장 큰 수수께끼는 왜 장면 총리가 수도원에서 이한림 1군사령관이나 매그루더 미8군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진압을 명령하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때 장면 총리의 시중을 들었던 심 마리아 수 녀의 증언에 따르면 장면 총리가 바깥과 통화하는 데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고 한다.
 
 '그 분은 쿠데타군과 자신의 명령으로 출동한 부대가 충돌하면 유 혈 사태는 물론이고 북한괴뢰의 남침까지도 야기시킬 지도 모른다고 우 려하신 것 같았습니다. 곁에서 안타깝게 지켜보던 저희들이 좁은 소견 으로'어서 군 부대에 연락을 하시라'고 말씀드렸지만 그분은 고개를 저 으면서 괴로워하시더군요. 그분은 얼굴을 감싸며 여러 번 나직하게 천 주님을 불러보곤 했습니다. 곁에서 계속해서 연락을 취하는 게 어떠냐 고 권유하면 결연한 표정으로'안돼. 그렇게 해서는 안돼요. 절대로 서 로 피를 흘리게 해서는 안돼요'하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장면 총리는 장도영 총장을 지칭하면서 '그 사람이 그럴 수가…'라 고 중얼거리고는 벽에 걸린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기도 했다. 수도원으로는 여러 군데서 장 총리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카 르멜수녀원에선 '여기는 아무도 들어올 수가 없는 곳이다'면서 부인했 다. 17일 아침 심 마리아 수녀가 조반상을 받쳐들고 방으로 들어갔더니 장면 총리는 부석부석한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서 있더라고 한다. 장 총 리는 '괜히 저희들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군요'라고 인사를 했다. 식탁 위에는 전날 저녁 음식이 그대로 있었다. 물 주전자만이 비워져 있었 다. 심 마리아 수녀의 눈에는 하룻밤 사이에 총리가 10년은 늙은 것 같 았다.
 
 5월17일은 박정희에게 혼돈과 불안의 날이었다. 미군이 이한림의 1군 병력을 동원하여 서울을 포위하는 작전을 곧 실시할 것이라는 첩보 가 들어왔다. 미1군단장 라이언 중장-강영훈 육사교장-그의 처남인 김 웅수 6군단장의 잦은 접촉, 8사단장 정강의 출동준비, 양평에 주둔하여 서울로 쉽게 들어올 수 있는 9사단장 박영준 준장에 대한 의심이 소수 병력으로 일대 모험을 감행하여 신경과민일 수밖에 없는 혁명군을 자극 하였다.
 
 박정희는 서울시경에 본부를 둔 서울지구방어군사령부에 대하 여 방어진지를 구축할 것을 명령했다. 이와 함께 서울에 가장 가깝게 포진해 있던 1군 산하의 친혁명군인 채명신의 5사단을 포천에서 서울로 불러들이기로 하는 한편, 춘천 근교의 12사단장 박춘식 준장에게는 춘 천을 점령할 것을 명령했다. 아울러 윤태일 준장을 9사단장으로 임명하 여 박영준을 교체하기로 했다.
 (조갑제출판국부국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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