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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회 李明博 후보의 실용주의 비판
2007년 10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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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월 20일 현대사 토요강좌 : 이명박 후보의 실용주의 비판 ●
 
  9월20일 오후 서울 금호아시아나빌딩 3층 문호아트홀에서 열린 ‘趙甲濟 기자의 한국현대사 토요강좌’엔 300여명의 청중이 모였다. 이날 주제는 ‘한나라당 李明博 후보의 실용주의 비판’이었다. 강사는 조갑제닷컴의 趙甲濟 대표였다. 趙대표는 이날 경제만 앞세운 李후보의 실용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대안, 더 나아가 실용적 사고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이 일류국가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좌파와의 이념전쟁을 피하기 위해 경제만을 내세운 이명박 후보의 경제제일주의 전략은 3분의 1 실용주의에 불과하다. 안보, 경제, 자유가 삼위일체 되는 것이 제대로 된 실용주의요, 부국강병(富國强兵)이다. 그러나 김영삼 시절부터 시작해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15년 간의 명분론 정치 분위기 속에서 이 후보의 실용주의 문제제기는 시의적절했다.
 
 또한 명분론에 젖어있는 한국 사람들에게 실용주의를 생각하게 만들고 나아가 도덕주의에 대해 비판적 사고를 하도록 화두를 던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역할이 있었다. 이런 문제제기를 사회적 공론으로 발전시켜, 의식과 가치관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를 바탕으로 자유통일을 이루고 일류국가로 가는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강연 全文(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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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날씨가 굉장히 갑자기 추워진 것 같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에 있었던 제일 큰 사건은 뭐냐? 일주일이 흘러갔다는 게 제일 큰 사건이죠. 12월 19일까지 일주일을 잡아먹어서 이제 두 달이 안 남았어요. 두 달 전으로 시간을 돌려보면, 그 때가 뭐하는 날이었습니까? 8월20일이면 이명박 씨가 체육관에서 당선 연설을 할 때가 아닙니까? 지난 두 달이 얼마나 빨리 흘러갔습니까? 앞으로 두 달은 이것보다 더 빨리 흘러갈 테니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시간을 이기는 장수는 아무도 없습니다.
 
 노무현, 김대중, 김정일이 무슨 수를 쓰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상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 BBK라고 하는 이상한 글자로 대표되고 있는 김 모란 사람이 들어오면 어떻게 되느냐, 검찰에서 소환 발동 했으니 또 어떻게 되느냐, 심지어 이명박을 구속하는 거 아니냐.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걱정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명박 씨 본인보다 여기 계신 분들이 훨씬 더 이명박 씨를 걱정하는 것 같아요. 농담이 아니고, 진짜입니다. 가만 보면 한나라당보다는 애국단체 사람들이 훨씬 더 한나라당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어제 애국단체에 계신 분들이 ‘야, 이거 우리 두 달 동안에 뭐 할거냐. 만나서 이야기해보자’ 해서 한나라당 선거 캠프에 들어가 있는 사람을 불러서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제일 게을러 보이는 사람이 한나라당 선거 캠프에 있는 사람들이었고, 걱정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은 한나라당과 아무런 관계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요새 지방을 많이 돌아다니는 데 지난 주에는 거제와 경북 상주를 갔다 왔습니다. 요새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뚫린 것 아시죠? 중부내륙고속도로는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여주에서 우회전을 해서 죽 내려가면 장호원, 충주가 나오고, 문경새재를 터널로 통과하면 문경, 상주, 김천에서 끝이 납니다. 김천에서 경부고속도로가 연결되는 내륙고속도로가 뚫렸는데 여기가 교통량이 아주 많습니다. 중앙고속도로는 별로 교통량이 없는데, 이 중부내륙고속도로는 거의 準 경부고속도로 수준이라서 트럭들이 참 많이 다닙니다. 서울에서 경북 상주까지 2시간 반밖에 안 걸립니다. 그래서 제가 여기로 다니면서 요새 여러 곳을 많이 구경하고 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되는 데가 우리나라에 있어요. 바로 거제입니다. 우리나라가 지금 1인당 1만8000달러인데, 거기는 1인당 3만 달러에요. 왜냐? 조선소가 두 개가 있죠. 대우조선과 삼성조선. 이 두 조선소에 직접 고용되어 있는 사람이 약 2만 명, 계열회사에 2만 명 정도 해서 4만 명이 근무하고 있으니, 10만 명이 조선소 때문에 먹고 살고 있습니다. 그 이외의 인구가 10만 명쯤이 있어서 거제시의 총 인구는 20만 명입니다.
 
 거제에서 올해 수출을 얼마나 하느냐? 200억 달러를 수출하게 되어 있습니다. 20만 명이 200억 달러를 수출하는 겁니다. 북한과 비교를 해서 안됐지만, 북한은 작년에 10억 달러를 수출했었죠. 무역액수를 다 합치면 30억 달러입니다.
 
  거제로 가는 길에 한 바퀴 죽 돌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바다와 닿아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지금 거제시가 잘 사는 이유도 바다가 있기 때문에 조선소가 있고, 항만이 있고, 관광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거제가 구경할 곳이 굉장히 많아요. 또 만이 많습니다. 해안선이 그냥 둥그렇게 되어있으면 쓸모가 없죠.
 
 해안선이 들쭉날쭉 해서, 타원형으로 나온 부분의 앞만 딱 막아버리면 안은 안전하니까 항구가 됩니다. 또 수심이 깊어요. 거제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큰 섬이죠. 400㎢. 서울의 한 60% 되는데, 해안선은 얼마나 긴지 해안선을 한 바퀴 도는데 4시간, 700리가 더 됩니다. 해안선이 이렇게 들쭉날쭉 복잡하면 한 바퀴 도는데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립니다. 우리가 여행할 때 해안 쪽으로 차를 타고 가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또한 제가 거제시에서 생각한 것은‘돈이 거의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는구나’하는 부분입니다. 공연장이 있는데 건물이 완전히 서울 예술의 전당 같아요. 거기 와서 공연하는 사람도 조수미라든지 아주 일류 음악가들이 와서 노래를 부르고, 또 거기에 있는 커피숍이라든지, 펜션이라든지, 작은 호텔이라든지 이런 게 꼭 유럽 나폴리 등지에서 볼 수 있는 수준 정도로 아주 잘 만들었습니다.
 
 가만 보니까 이게 돈의 힘이에요. 대우조선에서 대학을 하나 인수해서 산꼭대기에 거제 대학을 만들어 놨는데, 취업이 잘 된답니다. 졸업하면 전부 다 조선소에 취업을 하니까. 기업이 대학교를 운영하기도 하니까 기업이 복지기관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행정기관인 것 같기도 하고, 문화예술기관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면 박 대통령이 경제개발을 하면 거의 모든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는 정책을 쓴 것이 얼마나 탁견(卓見)이었습니까? 그때 한국 사람들은 경제이야기를 하면 돈벌이를 이야기하는 거라고 보면서 사람 수준이 좀 낮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박 대통령 때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 있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들었을 땐 그랬습니다. 먹물 좀 먹었다고 ‘잘 살아보세’에 대해서, 국가 목표로서는 낮은 수준의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을 했는데, '잘 살아보세’라는 단순 명쾌한 목표를 가지고 국가를 발전시키니까 문화예술도 즐길 수 있고 해서 사람의 품격이 높아졌다는 겁니다.
 
 오늘 이야기에 나오겠습니다만, 명분론을 중시하는 주자학자들이라든지, 공산주의자들처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만들겠다’라고 들고 나오면 결국 정의도 이뤄지지 않고 안보와 경제, 복지를 파괴하게 됩니다. '잘 살아보세’는 실용주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만들겠습니다’하는 것은 명분주의죠. 한국 정치는 명분주의와 실용주의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데, 거제는 실용주의가 성공을 해가지고 다 잘 살더라 이런 말씀입니다.
 
  경상도(慶尙道)라는 이 이름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아시죠? ‘慶’자는 경주, ‘尙’자는 상주에서 나왔답니다. 경상도란 말이 만들어진 것은 고려시대 때입니다. 충숙왕 때인가 그래요. 경상도에서 벌판이 제일 넓은 곳이 경주 부근과 상주 부근입니다. 그러니까 쌀이 많이 나죠. 상주는 문화재 같은 것은 없는데, 맛있는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감이 맛있고, 포도, 쌀이 맛있습니다. 제가 거기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는데 쌀밥을 세 그릇 먹었어요. 가장 좋은 반찬이 밥이다 하는 게 아주 실감이 갔습니다.
 
 랭킹을 내니까 지금 상주 쌀이 여주나 이천보다도 위랍니다. 1등이라고요. 요새 촌에 가면 감이 많이 열려있습니다. 주렁주렁 열려서 경치가 참 좋아요. 감이 제일 좋다고 해서, ‘감나무 하나에 감이 몇 개 달립니까?’ 하고 물어봤습니다. 한 감나무에 몇 개 달릴 것 같습니까? 큰 나무에는 만 개가 달린답니다, 만 개. 그러니까 100접이죠. 감 한 개가 300원이라고 치면, 나무 하나가 300만원 어치를 만들어 내는 거죠. 그걸 곶감으로 하면 개당 1000원입니다. 곶감으로 환산하면 나무 하나가 1000만 원인 것이죠. 그래서 이 농촌도 아주 풍요롭습니다.
 
  또 거기 가니까 운하 이야기를 많이 하더군요. 운하가 뚫리게 되면, 조령에서 지하로 뚫려서 상주로 나오게 됩니다. 문경을 거쳐서 상주로 나오면 낙동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낙동강의 낙동이 상주에 있습니다. 물길이 몇 개가 만나는, 양수리와 똑같은 곳입니다. 그 위가 바로 상주여서 상주에서 김해까지 배를 타고 가면 바로 일본도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쪽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니까 옛날 일제시대의 전반기만 해도 김해에서 상주까지 소금배가 들어왔다고 해요. 그 때는 댐이 없어서 수량이 풍부하니까 배가 김해에서 상주까지 올라왔다고 합니다. 저는 이명박 씨의 대운하를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대운하를 새로 파는 것이 아니고, 남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것이기 때문에 40km만 연결을 하면 두 강의 물길이 하나가 돼서 500km의 수로가 새로 생깁니다. 경제성이 아주 뛰어나죠. 이런 점에서 찬성을 합니다.
 
  두 번째로, 강은 물이 흘러야 됩니다. 강에 물을 담는다. 특히 이 낙동강 상류의 강은 물을 담아야 됩니다. 청계천 복원과 같은 개념이죠. 청계천 복원의 본질은 흐르지 않는 하수구에 물을 흐르게 했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낙동강에 물을 흐르게 하는 것이 대운하의 근본이죠. 앞으로 물 부족 사태가 올 텐데, 반대가 많아서 댐을 만들 수는 없답니다. 그런데 운하를 만들어 놓으면 한 15억t 정도 물을 담아놓을 수 있으니까, 물을 담아놓으면 됩니다. 물이 흐르지 않는 강에 물을 흐르게 하는 것이니까 이건 환경파괴가 아니고 환경복원입니다.
 
  세상에서 공기 다음으로 소중한 게 물 아닙니까? 물이 부족하면-중국이 지금 그런 위기에 있는데-공장을 제대로 돌릴 수가 없고, 사람도 제대로 살 수가 없고, 그러다 보면 질병이 많이 생깁니다. 물이 부족하면 몸이 아프듯이 나라가 제대로 안 돌아갑니다. 사람 몸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사람 몸에 물이 부족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요.
 
 저는 약도 잘 안 먹고, 운동하는 것도 굉장히 싫어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하는 게 있어요. 의사들이나 건강관리에 대해서 유명한 사람들도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제일 좋은 약은 뭐냐, 물이다. 특히 잠자고 일어나서 맨 처음 생수 한 잔 마시는 게 최고의 약이다. 제발 물 많이 먹어라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제가 한 2년 동안 실천해 보니까, 감기 기운이 조금 있을 때, 몸이 조금 으슬으슬하고 할 때 물을 옆에 두고 계속 물만 마시면 거의 틀림없이 나아요.
 
 물이 제일 좋은 약입니다. 피로할 때도 물을 많이 잡수어 보세요. 생수 안 마셔도 됩니다. 수돗물 잡수셔도 되요. 수돗물에 아무 문제 없어요. 정수기 안달아도 됩니다. 물을 양적으로 많이 마시라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물을 적게 마신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이야기가 아니고 불란서에서 건강 관리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있어요. 007영화에도 나온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한국 사람한테 딱 하나 해줄 말이 있다면, 한국 사람은 물을 많이 마셔야 된다. 사람 몸이 그런 것처럼 우리나라 국토에도 물이 많아야 됩니다.
 
  세 번째는 돈이 별로 안 든다고 합니다. 모래채취해서 팔고 하면 한 7조를 벌 수 있고 나머지 7조는 공채 발행하면 국민 세금이 안 든다고 합니다. 저는 이 대운하를 선거공약 차원에서 지지하는 것이 아니고 누가 되었든 반드시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운하가 이뤄지면 경북 내륙지방이 혜택을 많이 보게 되고, 또 우리나라 강이 아주 재밌게 되어버려요. 남한강-낙동강을 남북으로 연결하면 동서로 흐르는 강과도 서로 연결할 수가 있습니다. 금강과 연결이 되고, 또 위로 올라가면 예성강, 대동강, 청천강까지 연결이 되기 때문에 한반도를 종단하는 교통체계를 하나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제가 상주를 여행하면서 느꼈습니다.
 
  지난 주에 정동영(鄭東永)씨가 경선에서 당선이 되었는데, 대충 예상했던 겁니다. 이재호라는, 국회의원 출신 변호사 한 사람이 저한테 글을 써 왔어요. 지금 한나라당 경선이나 여당의 경선, 다시 말해 여론 조사를 참작하는 경선과 국민경선이라고 해서 핸드폰으로 투표하는 이런 경선은 헌법 위반이다, 사실 이런 경선은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세워서 썼는데 제가 글을 읽어보니까 그 분이 생각했던 것이 상당히 법률적으로 뒷받침이 됩니다. 이런 경선은 사실 무효화가 돼야 된다는 겁니다.
 
 경선이란 것은 뭐냐. 정당법에도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만, 정당의 후보는 정당원이 결정하는 겁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닙니까? 회사 사장을 회사 주주들이 뽑지, 아무 주식을 갖지 않은 바깥에서 뽑습니까? 그래서 여론조사를 반영하고 국민경선을 참조했다는 것은 비당원이, 그러니까 한나라당원이 아닌 사람이 한나라당 후보를 결정하는 것이니까 정당법에 맞지 않고, 한국 선거법에 맞지 않고 헌법 위반이다 하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왜 이렇게 되었느냐? 언론에서 국민경선이란 말이 나오니까, 또 노무현을 뽑을 때 2002년에 여당에서 그런 쇼를 해서 인기를 얻었거든요? 성공하니까 한나라당이 그걸 따라하면서 이제 일반화가 되어버렸어요. 다음에는 이 문제를 가지고 헌법소원을 하든지 재판을 걸어서 무효화하는 운동이라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대한 법률은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론이란 것은 항상 변하는데 그것을 표로 환산해서 결정한다, 아무런 권리가 없는 사람이, 당원도 아닌 사람이 그 당의 후보를 뽑는다. 이렇게 되면 정당의 존재 목적이 없어져 버려요. 그렇더라도 여야가 똑같이 이 짓을 했기 때문에 서로 할 말이 없죠. 이게 바로 포퓰리즘(populism)입니다. 포퓰리즘이라는 게 박수치는 데로 무조건 따라가는 건데 이렇게 되었어요.
 
  정동영이란 사람이 연설을 하는데 "80%의 못사는 사람과 20%의 잘사는 사람이" 이런 표현을 아주 많이 쓰면서 오늘날의 한국 상황을 굉장히 비관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그걸 가만 보다가 제가 착각을 했어요. ‘아니, 이 사람이 야당 후보가 아니냐?’ 그 사람이 한국 경제가 엉망이고, 교육이 엉망이고 막 흥분해가지고 이야기하는데, 이걸 도대체 누구보고 욕을 하는 건지.
 
 그 욕을 누가 받아야 돼요? 열심히 욕을 했는데 그 욕을 자기한테 한 꼴이에요. 아니, 여당 대표의장을 두 번이나 하고 장관을 한 사람이 지난 10년 동안에 만들어놓은 세상을 욕하는데 한국 사람들이 이상하게 그런 식으로 따져보질 않아요. ‘그 사람 말 잘하더라, 선동 잘하더라.’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거 참 희한하지 않습니까? 10년을 집권했으면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는 집권세력이 책임져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걸 손님처럼 와가지고 이야기를 하는데, 하고 나면 ‘저게 누구한테 하는 욕이지?’ 헷갈리게 되고 여야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어요. 이런 코미디가 없어요. 그런데 더 큰 코미디는 여기에 사람들이 넘어간다는 것, 집단적으로 넘어간다는 데 있습니다.
 
  대통령이 김정일을 만나러 가서 합의한 게 뭡니까? 요약하면, ‘핵무기는 그냥 가지고 있어도 좋다, 우리가 무조건 퍼주고, 하루에 10대도 차가 안다니는 개성-평양 간 고속도로도 우리가 다 개보수 해주고, 해주 항만도 만들어 주고, 6·25에 대해서 사과 안 해도 좋다, 그리고 국군 포로 납북자 그거 신경 쓰지 마라, 앞으로 개혁·개방이란 말 안할게.’ 이렇게 다 해주고 왔잖아요? 줄 거 다주고, 얻어오는 건 하나도 없고.
 
 그런데도 일부 인기 조사에 의하면 지지율이 20%하던 사람이 50%가 됐어요. KBS, MBC가 집중적으로 선동을 하니까 20%가 50%로 됐습니다. 그것도 불과 3,4일 사이에. 이런 국민을 어느 정도까지 믿을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생기죠. 근데 일주일쯤 지나니까 이 인기가 다시 또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여론조사를 가지고 경선에 반영한다는 게 ‘과연…’ 하는 생각이 들죠. 그러니까 여론조사를 믿고 국가전략을 추진하면 어떤 결과가 생기겠습니까?
 
 역시 여론에 좌우되지 않고 국가 이익에 입각해서 장기적인 전략과 정책을 세우는 국가 엘리트가 있어야 됩니다. 이 국가 엘리트는 관료층일 수도 있고, 정치인일 수도 있고, 언론인일 수도 있는데, 이 그룹이 지난 10년 동안 거의 와해되어 버려서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어요. 이 나라가 독재국가였으면 망했을 텐데 자유민주주의 국가니까 민간부문에 그런 정책에 결코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 사람들은 또 자기 생업에 충실하게 일을 하니까 이 정도로 유지되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 좋은 국가 엘리트로 교환이 되면 얼마나 더 발전을 할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통계를 보니까 올해에 중국 수출액이 한 1조2000억 달러가 됩니다. 지금 세계에서 수출 1등인 나라는 어디냐? 많은 사람들이 수출하면 일본이 1등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일본이 아니고 독일입니다. 자동차, 기계, 화학 이런 분야가 강하기 때문에 항상 수출 1등은 독일입니다. 2등은 지금 현재 미국인데 올해 안으로 중국이 세계 수출 2위국이 됩니다. 3등은 이제 미국이 되고, 4등이 일본이 됩니다.
 
 내년이 되면 중국이 세계 수출 1위가 되고, 2010년에 가면 어떻게 되느냐? 수출, 수입을 합쳐서 세계 최대 무역국가가 중국이 됩니다. 세계 최대 무역국가입니다. 수입은 무조건 일본이 1위라고 우리가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2010년이 되면, 수출, 수입을 합쳐서 중국이 세계 1위가 됩니다. 그러니까 중국의 내수시장이 드디어 미국을 능가하게 된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 거대한 13억 인구가 연간 10% 성장하고 있습니다. 세계에 없었던 일이죠.
 
  농담으로 중국 사람들이 전부 다 책상위에 올라갔다가 호각을 불어서 뛰어 내리면 지진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이런 대폭발 옆에 한국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중국의 자력에 끌려가서 그 블랙홀 같은 곳으로 들어가 버리면, 인구로 비교했을 때 우리는 덩치가 30분의 1밖에 안되니까 형체도 없어질 텐데 우리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어떻게 유지하면서 자유와 번영을 누릴 것이냐 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물론 옆집에 잘 되는 집이 있으면 좋죠. 잘 되는 집이 옆에 있으면 득보는 게 많습니다.
 
 두 번째로 걱정해야 할 것은 우리가 중국에 예속화 되어서 조선(造船) 같은 분야도 잘못하면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중국의 발전이 우리한테 결코 재앙은 아닙니다.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좋은 일에는 꼭 거기에 대한 대가가 있듯이 이 점을 우리가 주의해야 합니다. 중국에 우리가 예속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그것은 한미(韓美)동맹, 한·미·일 이 세 나라간의 우호관계가 잘 이뤄져야 됩니다.
 
 왜냐하면 한국과 미국과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 즉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좀 점잖은 나라라는 얘기죠. 중국은 발전하더라도 그 행태가 아직도 문제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같은 수준에서 놀 수 있는 사람들과 친해져서 무섭게 발전하고 있는 중국으로부터 피해를 당하지 않는 것, 이것을 국가 진로에서 굉장히 중시해야 될 부분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간담회를 하면서 앞으로 두 달 사이에 일어날 대선과 관련된 변수가 뭐가 있겠느냐, 이렇게 토론을 2시간쯤 하다보니까 결론이 세 가지로 집약됐습니다. 제일 큰 변수는, 검찰이 수사해서 이명박 씨를 사퇴시킨다든지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 검찰이 권력이 민감하기 때문에 떠오르는 권력을 수사하는 것은 힘들죠. 아마 형식상 하는 정도에 그칠 것입니다. 예컨대 1997년에 한나라당이 김대중 씨의 비자금에 대한 완벽한 자료를 검찰에 제출해서 고발을 했더니, 그 때 김태정 검찰총장이 이 수사는 선거기간 후로 미루겠다고 해서 수사를 안 한 적이 있습니다.
 
  당선되니까 형식상 적당히 합리화시켜주는 쪽으로 수사 결론을 내리고 그 사람은 나중에 법무장관이 되었습니다. 그런 전례가 있기 때문에 이 선거기간 중에 BBK인지 뭔지 이런 것에 대한 공격적인 수사는 불가능합니다. 끝까지 수사를 하면 그게 오히려 선거 쟁점이 되어서 이명박 씨를 도와주면 도와줬지, 결정타를 먹일만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는 ‘그러다가 이명박 씨를 구속하면 어떻게 되느냐?’하는데 우리나라 검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할 정도의 용기가 있다면 아마 저렇게는 안됐을 거예요. 구속되면 옥중 당선이 되지 않습니까? 재판하려면 2년, 3년 걸리니까, 확정판결 전에는 무죄이니까 선거 무효가 될 일도 없고. 그런 것은 걱정할 거리가 아닌 것 같아요.
 
 제일 걱정은 KBS, MBC입니다. KBS, MBC가 단기간에 이명박 씨의 의혹에 대해, 과거 김대업의 사기를 보도했던 식으로 집중적으로 보도를 하는 이런 허위 방송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이냐, KBS, MBC가 흉기가 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을 건데, 한나라당은 여기에 대해 별 대책이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막느냐? 공중파를 끊을 수도 없고. 막는 방법은 몇 가지 있겠죠. 그 쪽으로 몰려가서 KBS를 포위하고 철야농성을 하든지, 아니면 사장 집 앞에 가서 시위를 해서 사장이 그 아파트 단지에서 부끄러워 살지 못하게 만들든지, 엉터리 보도를 한 기자들에게 전화를 해서 위협이 아니라 좀 불안하게 만들든지, 고소·고발을 하든지 등등 이렇게 기동성이 있는, 몸으로 때우는 이런 방법이 있는데 지금 이명박, 한나라당 이쪽에서는 그런 기동성 있는 투쟁조직이 없습니다. 투쟁조직이 없고 편한 선거운동만 하려고 하죠.
 
 어떻게 보면 쓸 데 없는 선거운동이죠. 자기들끼리 하는 선거운동이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선거운동을 해야 되는데, 선거운동 하라고 해놓으니까 만날 회의만 하고 이명박을 향해서 선거운동을 하고, 자기들 편끼리 선거운동하고, 걱정만 많이 하다가, 나중에 별 효과 없는 선거운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이명박, 한나라당이 아직 그런 데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하여튼 이게 문제다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변수는 뭐냐? 종교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명박 씨가 장로이고, 또 종교적인 색채를 과거에 많이 드러냈기 때문에. 불교도들은 지금 신정아 사건, 동국대학 등이 집중 공격을 받으니까 이걸 계기로 누가 옆에서 불을 지르면 불교도와 기독교의 대결 구도로 만들 만한 소지가 지금 조금 있고, 그런 움직임이 눈에 보입니다. 여기에는 이명박 쪽에서 조심을 해서 기독교 행사에 가지 말고, 기독교인들도 말조심을 해서 빌미를 주지 않아야 됩니다.
 
 우리나라는 종교 갈등이 없는 나라로 세계의 모범사례입니다. 좌익들은 불리하면 자기가 오른 배에도 불을 지르고 자기 혼자 도망갈 사람들인데,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종교 갈등을 조심해야 합니다. 종교 분포는 또 어떻게 되어 있느냐. 우리나라에서 인구 비례로 기독교가 제일 많은 데는 기호(畿湖)지방입니다. 경기도, 충청도, 호남에 기독교가 많고, 경상도는 또 불교도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특히 불교도가 이명박 지지 세력 안에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독교 신자들이 자꾸 그런 이야기를 하면 대통령을 뽑는 거지 무슨 종교 지도자를 뽑는 거냐고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들끼리 선거운동을 하기 위해서, 아무 득도 안 되는 선거운동을 하면서 생색내려다가 무리를 하는 수가 참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 번째는 뭐냐? 한나라당과 이명박 씨의 자충수입니다, 자충수. 잘 나갈 때 조심해야 된다. 사람은 항상 잘 나갈 때 실수를 하기 때문이죠. 특히 말의 실수죠. 이명박 씨는 메모 없이 이야기를 하는 아주 나쁜 습관이 있어요. 그렇게 되면 실수를 합니다. 희한한 실수가 선거판에서는 치명타가 될 수가 있습니다. 선거판에서 제일 빨리 망하려면 이 말을 하면 되죠. ‘연세 드신 분들은 이번 선거에서는 집안에 계십시오’ 하면 제일 빨리 망할 겁니다.
 
 옛날에 정동영 씨가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50세 이상이 지금 유권자의 34%가 되는데,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망할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류의 말실수, 이게 지금 정보화 시대이기 때문에 말실수 한 마디만 하면, 아무리 좋은 정책 100개를 내놔도 그 말실수로 다 날아가 버립니다. 선거판은 사람 감성에 호소하기 때문에 말 한 마디를 가지고 결정이 나니까 말실수를 하면 안돼요. 이렇게 KBS, MBC. 자충수 그리고 종교 갈등이 3대 변수입니다.
 
 지금 현재 ‘이회창 출마설’이 나도는데, 제가 이회창 씨에게 확인을 해 보니까 자기는 전혀 그런 생각이 없답니다. 없는데 주변에서 자기 지지 세력들이 그런 걸 많이 만들어낸답니다. 루머라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경우가 많지만 그 루머가 나온 것을 추적해 보면, ‘아- 이러니까 이런 말이 나오겠구나’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이회창 씨는 이명박, 한나라당에 대해 무엇이 가장 불만이냐. 왜 김정일 정권에 대해서 유화적으로 나가느냐, 왜 10월 4일 선언에 대해서 전면 반박을 하지 않느냐 하는데서 굉장히 불만이 많아요.
 
 그래서 그 불만을 이명박 씨 만났을 때도 전달하고 했습니다. 저도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만 스페어 후보라도 하나 있어서 선거기간 중에 이명박 씨가 유고(有故) 상태가 될 때 정동영이가 자동 당선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이 지금 검토되고 있느냐고 한나라당에 물어보기도 하고, 또 이회창씨 주변에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경우에 누가 대타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이야기 등등이 합쳐져서 무소속 출마설이 나오고 있어요.
 
 또 그런 역할을 자임하면서 나온 후보가 몇 사람 있어요.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냈던 정근모 씨란 분이, 기독교인인데, 그 분도 그런 소명을 가지고 나왔다고 이야기한다고 그래요. 그러나 이회창 씨는 1000만 표를 두 번이나 받은 분입니다. 아마 무소속으로 나와서 이름을 걸면 5% 정도는 자동적으로 먹고 들어갈 것 같은데, 이 분이 그런 스페어 역할을 하는 게 좋을지 나쁠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현재 본인은 그런 역할을 하지 않겠다, 다만 지금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대북(對北)정책에 대해서는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10월 24일 날 서울 시청 앞에서 ‘대한민국 사수 국민대회’가 있는데 거기에서 이회창 씨가 연사로 나올 겁니다. 오후 2시로 알고 있는데 이 분이 바깥으로 나오는 건 처음입니다. 대충 이게 지난 일주일 동안의 개관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오늘 본론으로 들어가서, 실용주의 비판이라는 제목인데, 비난은 욕하는 거고, 비판은 잘하는 것은 잘했다, 못한 건 못했다고 하는 비평에 해당하는 겁니다. 제가 이명박 후보의 실용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정치인의 입을 통해서 실용주의라는 아주 중요한 말이 인구(人口)에 회자가 되고, ‘실용주의가 뭐냐?’ 하고 토론을 하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해서 사람들이 ‘실용주의의 반대가 되는 말은 뭐냐?’ 그럼 ‘명분론 아니냐. 도덕주의 그건 뭐가 잘못 됐지?’ 이렇게 연상 작용을 할 수 있도록 화두를 던져주는 점에서 이명박 후보의 아주 긍정적인 역할이 있었어요. 실용주의를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정치라는 것은, 정치인은 그 사회의 화제를 만들어 내는 사람입니다. 국민들의 관심사를 만들어 내는 사람입니다. 거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서 국민들의 목표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정치인입니다. 그러려면 우선 화제 거리를 만들어야 되는데, 이명박 후보가 실용주의, 경제제일주의 이런 말을 하니까 실용주의가 한국 사회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주 성공한 거예요. 좋은 문제제기를 한 겁니다. 그것이 지금 민심에 반영이 되고 있습니다. 청·장년층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실용주의'라고 해서 지지를 하는 거지 저 사람이 반공주의라고 해서 지지하는 것도 아니고, 저 사람이 깨끗하다고 해서 지지하는 것도 아닙니다.
 
  실용주의의 반대말은 명분주의, 즉 명분론이니까 실용주의가 뭐냐는 걸 설명하려면 명분론이 뭐냐는 걸 설명하면 되고, 실용주의와 명분론을 잘 비교하면 서로 입체적으로 잘 이해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용주의를 딱 한 마디로 설명할 수는 있습니다. '실사구시(實事求是)'입니다. 실사구시를 한자로 쓰면, 實은 현실이라는 말입니다. 일 事자, 事는 사실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실사구시의 뜻은 현실과 사실에 기초해서 방향을 정한다, 현실과 사실에 기초해서 이론을 만든다, 현실과 사실에 기초해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한다는 거죠. 모든 판단의 근거를 우리가 딛고 있는 이 현실과 사실에 기초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실용주의가 뭔지 그 핵심이 이해가 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물을 판단할 때 현실을 떠나서 이야기하지 말자는 겁니다.
 
 박대통령이 항상 이야기했던 대로 '1960년대 초의 대한민국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그냥 직수입하는 것은 반대다' 이게 실사구시 정신입니다. 현실에 맞느냐 아니냐는 말입니다. 오렌지 나무를 가지고 와서 한국에 심어보라, 탱자가 된다. 현실에 안 맞는다. 이것이 실사구시입니다. 현실을 아주 중시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 윤보선(尹潽善) 씨라든지, 정치인들, 야당 정치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느냐. 미국에서 만들어낸 민주주의, 우리 헌법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해야 된다, 이겁니다. 간단하죠.
 
 첫째로 민주주의는 좋은 것이라는 겁니다. 우리 헌법에 민주주의가 반영이 되어 있다. 해야 된다. 당위론입니다, 당위론. 그래서 명분론은 당위론입니다. 해야 된다는 겁니다. 영어로 말하면 must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글 같은 거 읽어 보면 문장에 ‘~해야 한다’ 라는 게 참 많습니다. 미국에서는 must란 말, ‘~해야 한다’라는 말은 잘 안 씁니다. ‘~해야 한다’는 것은 설교거든요. 해야 한다는 말을 제일 많이 쓰는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목사님들입니다. 죄 짓지 말아야 된다, 좋은 일 해야 한다. 목사님, 성직자들, 교사들 이런 사람들이 당위론을 많이 내세웁니다.
 
 그러면 실용주의는 뭐냐? 현실이 이렇다는 것을 제시를 하는 거죠. 일종의 존재론입니다. 존재론과 당위론의 차이인데, 1960년대 초에 우리 야당이 들고 나왔던 것이 바로 명분론입니다. 민주주의는 좋은 것이기 때문에 해야 된다 이겁니다. 현실은 무시하고 좋은 것이기 때문에 해야 된다. 좋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따라 해야 된다. 좋은 것은 맞는데 그것을 하려면 현실의 뒷받침이 있어야 됩니다.
 
 현실의 뒷받침이 안 된 데서 좋은 것을 밀고 나가면 어떻게 되느냐? 안 된다, 실패한단 말이죠. 실패한 사례가 어디 있습니까. 장면(張勉) 정부입니다. 장면 정부 때는 민주주의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하려고 하니까 현실이 따라가지 않는다. 정권은 분열이 되고,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데모의 자유로 알고, 공산당들은 혁명의 자유로 알고 하니까 안 되더라. 명분론대로 하니까 나라가 망하겠더라 라고 생각을 한 것이 박대통령입니다.
 
  실사구시. 현실과 사실을 중시하는 것. 그러나 명분론은 도덕 중시죠. 명분론은 아주 간단해요. 좋으니까 해야 된다. 이런 겁니다. 처음부터 우리 역사 속에서 실용주의란 말이 발생된 것은 아니고 서양에서 특히 미국에서 있었던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이라는 철학 사조를 번역할 때 실용주의라고 번역을 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동양에도 우리 나름대로의 실용주의가 있으니까, 그것을 설명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울 것 같습니다.
 
 동양에서 실용주의의 원조는 누구냐? 제나라의 관중(管仲)입니다. 기원전 7세기, 약 2600년 전 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가 산동(山東)지방에 있었습니다. 공자님도 이쪽 출신인데, 산동에 인구가 참 많았어요. 그래서 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가 패권국가가 되었는데 통일은 못해요. 진나라가 결국 진시황이 나와서 통일을 하지만 그 전에 한 때 이 제나라가 패권국가가 됩니다. 다른 여러 나라 중에서 으뜸인 나라가 됩니다. 이 제나라를 패권국가로 만든 사람이 제나라 환공입니다. 왕이 아니죠. 제나라 환공인데 환공을 모시고 패권국가가 되도록 정치를 잘 했던 사람이 관중이죠.
 
 관중 하면 생각나는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포숙(鮑叔)이죠. 관중과 포숙의 관포지교. 이 두 사람이 동양에서 가장 유명한 친구 아닙니까. 관중은 처음부터 사람이 활달하고 상당히 정치적이고, 포숙은 아주 가슴이 넓고 느긋한 사람이죠. 그러니까 주로 관중이 돈을 떼먹길 많이 했죠. 포숙으로부터 돈을 빌려서 장사하다가 다 날리기도 하고, 그러면 포숙은 받을 생각도 안하고 ‘뭐 언젠가는 갚겠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되느냐 하면, 제나라의 왕이 폭정을 하니까 두 동생을 쫓아내버렸어요. 이 두 동생이 한 사람은 규란 사람이고, 한 사람은 소백이란 사람인데 포숙은 소백 편에 들었습니다. 관중은 규라는 사람 편에 들어갔는데, 둘이 나중에 서로 싸웁니다. 양공이 죽고 나서 누가 정권을 잡느냐를 가지고 싸우는데 관중이 모시는 규라는 사람이 이끄는 군대가 처음에는 이겨요. 환공을 쏘아 환공이 허리띠에 화살을 맞습니다. 환공의 이름이 소백입니다만, 이 포숙은 소백을 지지했어요.
 
 마지막에 가서는 소백, 즉 나중에 환공으로 되는 사람이 이깁니다. 관중이 포로가 돼 왔어요. 죽이려고 하니까 포숙이 자기의 친구이고 라이벌이기도 한 관중을 환공한테 이렇게 변호합니다. 「만약 공께서 제나라만 다스리시려면 저 포숙의 보좌만 받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공께서 이 천하의 패왕이 되시려면 제 실력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고 관중의 보필을 받으셔야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포숙이 적장인 관중을 추천을 해요. 그래서 환공이 그 사람을 재상으로 씁니다. 역사에서 참 위대한 변화죠.
 
 그래서 관중이 환공을 모시고 제갈량처럼 아주 멋진 정치를 하는데, 그 멋진 정치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실용주의 정치의 판단 근거는 실사구시고, 그것의 정치로서의 표현은 부국강병입니다. 실용정치의 표현은 간단합니다. ‘부국강병(富國强兵)’ 경제를 탄탄하게 하면 강병이 생긴다. 그러면 나라가 안정된다. 그러면 사람이 배불리 먹고 산다. 그러면 사람이 자유롭게 된다. 그 다음에 예의를 지키게 되고 법이 서게 된다, 이런 거죠. 이 실용주의는 의외로 간단해요. 실천론입니다. 나중에 명분론을 설명하겠습니다만, 명분론은 좀 복잡합니다.
 
  이렇게 해서 관중의 실용주의, 우리 동양 역사에서의 최초의 실용주의가 전개가 되었는데 이런 관중의 이야기를 모은 관자(管子)라는 책이 있습니다. 관중이 직접 쓴 게 아니고 관중이 한 말을 모아서 논어처럼 후대에 편집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잘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걸 한 번 사 보시면 아주 재밌는 점을 느끼실 것 같은데, 제가 읽어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2600년 전에 쓰여진 글이 이럴 수가 있느냐?’ 바로 오늘날 한국에서 누가 쓴 것 같은 그런 책입니다.
 
 마치 오늘 한국에서 누가 쓴 것 같은 아주 모던한, 거기에 담겨져 있는 생각은 바로 지금 현실에 적용해도 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선진된 생각, 과학적인 생각, 헛소리가 없는 내용입니다. 그걸 읽어보면 깜짝깜짝 놀랍니다. 이거 혹시 요새 누가 위작을 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여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관자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나라는 원래 재화(財貨)가 많으면 먼 데서도 사람들이 몰려오게 되어 있다. 땅을 개간하고 개발하면 몰려온 사람들은 머문다. 곡식 창고가 차 있으면 사람들은 예절을 안다. 입고 먹는 것이 충족되면 사람들은 영욕(榮辱)을 안다. 법을 지키면 육친(六親)이 화합한다. 예의염치(禮儀廉恥), 즉 예절과 의리와 조심함과 부끄러움이 있는 나라에서는 임금의 명령이 통한다.」
 
 여기서 제일 유명한 말이 이 말입니다. ‘곳간이 차면 예절을 알고, 입고 먹는 것이 충족되면 영욕을 알게 된다.’ 즉, 사람이 의식주 문제가 해결이 되면 예절을 갖추게 되고 무엇이 영광되고 무엇이 욕된 것인가를 알게 된다는 말이죠. 관자 중에서 제일 유명한 말입니다. ‘곳간이 차면 예의를 알고, 의식이 족하면 영욕을 안다.’
 
  관중을 소재로 해서 일본 사람이 쓴 소설이 있는데, 이 소설가가 이 문자를 쓰면서 이렇게 주장을 했어요. ‘고대 동양에서 이 말이 최고의 말이다. 곳간이 차면 예의를 알게 되고, 의식이 족하면 영욕을 알게 된다.’ 지금 정치의 목표도 이거 아닙니까, 결국 등 따뜻하고 배부르게 해주는 것이 정치의 목표다. 이명박 씨의 실용주의가 바로 그것 같아요.
 
 그러나 노무현(盧武鉉), 김대중(金大中), 김영삼(金泳三) 이 세 사람의 취임사를 한 번 읽어보시면 거기에는 이런 말이 별로 없습니다. 주로 뭐냐 개혁, 통일, 정의, 민주, 평등 이런 말이 나옵니다. 김영삼 대통령 취임 연설할 때 유명한 말 있잖습니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들고, 어떤 이념보다도 민족이 우선이다. 어떤 사상보다도 민족이 우선이다.’
 
 이런 말과 관중의 말을 비교해보세요. 실용주의와 명분론의 차이가 뭐냐. 한쪽은 거대합니다. 정의, 뭐 이렇게 나가는 건 굉장히 관념적이고 거대한데, 관중은 농사를 잘 지어서 곡식창고를 꽉 채우면 그 다음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는 거 아닙니까? 경제 제일주의죠. 그런 점에서는 이명박 씨 실용주의의 경제 제일주의가 맞는 것 같습니다. 그 문제는 나중에 또 이야기하기로 하죠.
 
  실용주의는 항상 개혁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실용주의가 가장 위대한 개혁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도덕주의자라든지, 명분론자라든지, 민주투사가 개혁을 많이 해야 됩니다. 또 개혁을 많이 한다고 약속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실제로 시간이 지나고 보면 말을 조심하고 별로 떠벌리지 않았던 박정희(朴正熙), 이승만(李承晩) 같은 사람들이-전두환(全斗煥)도 그런 사람입니다-소리 없이 크게 다 해놨어요.
 
 왜 이렇느냐? 이런 사람들은 수단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실천력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실천력이 있기 때문에 말은 작게 하고 행동은 크게 합니다. 명분론자는 뭐냐? 실천력이 없어요. 실천력이 없으면서 정치는 해야 되니까 말의 힘으로 하는 거죠. 그래서 말을 크게 벌립니다. 그러나 실천이 못 따라요. 머리만 크고 손발은 자그마한 사람, 화성인이 되는 거죠.
 
 관중이 이런 개혁을 했습니다. 당시의 토지제도 공전법(公田法)이라고 해서, 나라에서 땅을 평민들한테 빌려 주고 이 중에서 8등분을 해요. 8등분을 해서 여러 집에 나눠 주는데 마지막에 8분의 1은 국가의 것으로 남겨 놓습니다. 그러니까 당신들이 농사지을 때 이 땅도 같이 농사지어서 8분의 1의 땅에서 나오는 것을 세금으로 우리에게 가져다 바쳐라, 이런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느냐. 자기 것은 열심히 만드는 데 국가에 세금내기 위해 경작해야 될 그 땅은 소홀히 하는 거예요. 그러니 자꾸 세금이 줄어드는 거죠. 지금 북한의 협동농장제도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관중이 그걸 개혁을 해서 징세제로, 세금 내는 식으로 바꿔버렸어요. 다 나눠주면서 당신들이 열심히 소출한 것 중에서 8분의 1만 우리한테 주고 나머지는 다 가지라는 거예요.
 
 이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열심히 하는 거 아닙니까. 열심히 소출을 늘려가지고 하니까 세금도 많아지고, 자기 몫도 많아졌죠. 세금제로, 징세제로 바뀝니다. 또 많은 개혁을 하는데 요새 본받아야 될 정도의 개혁이 많아요. 21개 행정구역을 나눠서 그 중에서 8개 지역을 상공업 지대라고, 즉 요새 특구 비슷하게 장사하는 사람과 물건 만드는 사람이 사는 지역을 딱 지정해서, 이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한테는 병역을 면제해 줬습니다. 군대 안가도 좋다. 너희들은 무조건 뭘 만들어라 하는 상공업을 우대해주는 정책을 썼어요. 그리고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을 다 받아들였습니다. 일종의 자유무역지대 비슷하게 말이죠.
 
 이런 정치를 했어요. 그러니까 제나라가 발전이 돼 경제력이 받침이 되니까 군사력이 또 커지고 해서, 결국은 당대에 제나라가 여러 국가 중에서 패권국가가 되었습니다.
 
  사마천이란 사람이 유명한 사기(史記)를 썼습니다. 사기 맨 앞에는 의리를 지킨 사람으로 유명한 백이숙제, 이 사람을 쓰고 두 번째로 관중을 썼습니다. 그것은 의리를 제일 앞세우면서도 관중처럼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우리 중국에서 본받아야 될 두 사람이다 하는 역사의식을 깔고 그렇게 인물 배치를 한겁니다.
 
 역사를 쓰는 사람이 어떤 인물을 중시하느냐는 것을 보려면, 열전 부분의 순서를 어떻게 놓느냐 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보면 열전의 제일 앞에 나오는 사람이 김유신입니다. 김유신은 상·중·하로 나뉘어져 있어요. 김부식이 보기에는 삼국의 여러 인물들 중에서 김유신이 최고 인물이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사람이 김유신이다 해서 넣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김유신은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사대주의자, 민족반역자 정도로 되어있죠.
 
 며칠 전에 참 반가운 소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동국대학교 신라연구소에서 김유신을 재조명하는 세미나를 했습니다. 단재 신채호라는 사람이 삼국통일은 외세를 받아들여서 동족을 쳤다 해서 그 우두머리인 김유신을 민족반역자로 몰았는데 그것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 소설가들이 김유신에 대해서는 소설 하나 안 쓰고, 제대로 된 논문 하나 안 썼다. 김유신을 우리가 재발견해야 된다는 세미나를 했습니다.
 
 김유신은 실용주의자죠. 김유신은 삼국통일을 만들어낸 위대한 실용주의자입니다. 김유신을 죽인 신채호 같은 사람이 전형적인 명분론자죠. 그래서 명분론에 희생이 되어서 우리 역사의 제일(第一) 인물이 완전히 역적이 되어있습니다. 그건 뭐냐, 한국에서 명분론이 세다. 명분론이 현재도 실용주의를 이기고 있다는 겁니다.
 
  한국 역사에서 실용주의가 명분론을 이겼던 것처럼 보이는 시대가 박정희 시대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스스로 나와서 기자회견을 통해서라든지, 연설을 통해서 학생, 야당, 지식인들을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그거 기억 안 나십니까? 박정희 대통령 연설 중에서 ‘일부 몰지각한’ 이런 게 나옵니다. 그 말 아주 잘 만든 말이에요-지식인, 언론인, 교수들 막 이렇게 욕을 하는데 그게 바로 실용주의 입장에서 명분론자들을 욕을 하는 겁니다.
 
 그때도 그 연설을 듣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람은 별로 없었어요. 외롭죠. 박정희 혼자서 거대한 명분론과 싸웠으니까. 그때의 명분론은 민주주의라는 굉장한 후견세력을 믿고 또 미국의 도움을 받아서 박정희에 상대를 했는데, 어쨌든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때 실용주의가 한국에서 명분론을 타고 눌렀던 시대였습니다. 그 정신이 들어있는 글이 국민교육헌장이죠. 국민교육헌장은 한국적 실용주의의 정수가 들어있는 문장입니다. 국민교육헌장도 언제 없어졌는지 아시죠? 김영삼 시절에 와서 교과서에서 빼버렸습니다.
 
  김유신이 우리 역사 속에서 파묻혀 버렸다. 김유신만 파묻혔습니까? 석굴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끼는 최고의 문화재라고 하는 석굴암도 조선시대에는 땅 속에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폐허가 되어서 아무도 보살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파묻은 것은 뭐냐? 명분론으로 파묻은 것이죠. 유교, 주자 이런 명분론으로서 그걸 다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관중은 환공을 도와 제나라를 패권국가로 만들었는데, 관중이 죽고 나서 환공이 나중에 죽었습니다. 관중이 먼저 죽었어요. 관중이 죽을 때 환공한테 여러 가지 유언을 합니다. 어느 사람은 쓰지 마십시오, 어느 사람은 쓰십시오, 이렇게 하는데 그 말을 환공이 듣지 않았습니다. 듣지 않아서 결국 환공은 후에 아주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비참하게 죽어서 이 관중의 꿈이 당대로서 끝납니다.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동양에서 실용주의는 잘 이어지지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실용주의자는 항상 드문 예입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후계자를 잘못 만나서, 또 자기의 사상을 이어갈 사람이 없어서 그 사상이 잘 연결되지 않고 그래서 본류를 형성하지 못한 것이죠.
 
  저는 동양이 유럽에 떨어진 이유, 과학이 발전하지 않은 이유, 경제가 제대로 발전하지 않게 되는 이유는 동양에서는 실용주의가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데서 찾습니다. 실용주의자는 가끔씩 나타납니다. 100년 만에 한 번씩 나타났다, 200년 만에 한 번씩 나타났다 해서, 욕먹어 가며 열심히 일해서 국가의 부를 만들어 놓으면 그 다음에 다 까먹어 버립니다. 까먹다가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또 위대한 실용주의자가 나타나요.
 
 한국 역사를 이야기한다면,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룩한 사람들은 다 위대한 실용주의자였어요. 세종대왕 같은 사람이 또 위대한 실용주의자죠. 어디서 나타나느냐, 바로 한글 창제죠. 한글 창제에서 또 실용주의자와 명분론자가 대결을 합니다. 세종대왕은 우리가 쓰는 말과 중국이 쓰는 말이 다르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한자 가지고는 안 된다. 우리말을 다 한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바람이라고 표현해야 되는데 바람 풍(風)자를 쓴다. 이렇게 되니까 안 되겠다. 우리나라 말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자를 만들어야 되겠다 해서 가만히 주변을 보니까 우리 문자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몽고, 티베트 같은 데죠. 특히 몽고 문자가 우리하고 비슷하고, 또 말이 비슷하니까 몽고에 사람을 많이 보냅니다.
 
 그래서 몽고말도 배우고 오고 이렇게 되니까 최만리 같은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어요. 요지는 이겁니다. 왜 우리가 부모님 같은 중국이 있는데, 한자가 있는데 오랑캐 말을 배우려고 합니까? 왜 우리가 오랑캐 말처럼 말을 하나 새로 만들려고 합니까? 이렇게 막 달려드는 겁니다. 그 논지가 간단해요. 왜 우리가 한자라는 위대한 부모나라에서 만든 글자가 있는데… 그래서 세종대왕이 설득을 해요. 그 대화록이 왕조실록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최만리와 주고받은 대화록이 있습니다.
 
 '한자는 어렵다. 평민들도 알아먹어야 될 것 아니냐? 그렇게 해야 교화가 될 것 아니냐? 교화가 되려면 글도 알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이야기했는데 최만리는 답답한 주장만 계속 하니까 나중에 화가 나서 세종대왕이 최만리라는 그 학자를 영창에 집어넣어버려요. 며칠 있다가 빼내서 또 간곡하게 설득하는 이야기가 왕조실록에 나옵니다. 그걸 읽어보면 어른이 어린애 철부지를 설득하는 것 같아요. 참 세종대왕도 답답했겠구나. 이것이 바로 명분주의자와 실용주의자의 얘기입니다.
 
  세종대왕은 평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겠다고 했습니다. 실용주의자들은 다 국민 중심입니다. 실용주의자들 생각은 뭐냐, 지식인들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습니다. 실용주의자들은 일반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를 합니다. 그러니까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하면 그 정치는 귀족을 향한 정치가 아니고 -귀족은 이미 잘 먹고 잘 사니까- 뭘 모르고 사는 가난한 사람, 그러니까 무식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치가 실용정치예요.
 
 그런데 명분론자들은 뭐냐, 도덕이다. 도덕과 정의다. 평등이다. 이런 주장을 하니까 이 사람들은 사실 서민 대중에 대한 관심이 없어요. 세종대왕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사람이에요. 무슨 제도를 만들 때, 왕조실록을 보면 각 지방 수령들한테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오라 해가지고 16만 명의 여론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죄수들이 들어가 있는 감방에 물을 많이 줘서 죄수들이 좀 씻고 살 수 있도록 그걸 한번 연구해 보라고 한 적도 있고.
 
 세종대왕이 한글만 만든 분이 아닙니다. 한글을 만들었다는 그 생각이 바로 일반 백성들의 복지를 편안하도록 한거죠. 애정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정책도 다 그렇게 갔어요. 그게 이제 실용주의 정치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조광조 같은 사람이 나오는 바람에 선비의 시대로 가버렸습니다. 조광조가 우리나라 명분론 정치의 거두죠. 조광조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러나 조광조는 너무 일찍 도전을 하다가 숙청이 되죠. 그러나 50년 뒤에 조광조의 제자들이 결국 정권을 차지해서 조선조가 망할 때까지 한국의 정치는 명분론의 정치로 가게 됩니다.
 
  이런 배경 하에서 실용주의를 조금 더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실용주의는 현실을 딛고 항상 과학적으로 생각을 한다. 실용적 자세는 굉장히 근대적이다. 낡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실과 현실, 그리고 과학을 근거로 논지를 세우기 때문에 항상 근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낡았다는 것은 미신을 근거로 하는 겁니다. 미신이라든지, 도덕국가를 만들어야 된다, 요순 같은 나라를 만들어야 된다.
 
 조선조의 선비들이 무슨 말을 할 때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요순시절. 말하자면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유토피아를 만들어야 된다. 하는 것을 깔고 논리를 전개를 합니다. 북한과 똑같아요. 조선시대의 상소문을 읽어 보면, 요새 북한 「노동신문」, 북한의 「근로자」라는 잡지에 나온 논문과 똑같습니다. 항상 근로자나 노동신문의 제일 앞에는 ‘김일성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김정일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걸 딱 세워놓고 하는 겁니다. 읽어보면 만날 관념론이고 총론이고 왔다갔다 해서 머리가 아픈데, 왜냐? 지금 북한 공산주의가 바로 명분론이기 때문에 거기서 쓰는 용어가 조선시대하고 딱 똑같아요.
 
  또 하나, 실용주의는 근대적이다. 실용주의는 실력을 기르는 거다. 그것이 경제력이든 군사력이든, 실력을 기르자는 실력제일주의입니다. 힘을 믿습니다. 힘을 믿기 때문에 실용주의는 자주하는 자세입니다. 사대주의가 아니에요. 실용주의자는 항상,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자주적인 사람입니다.
 
 세종대왕이 얼마나 자주적인 사람입니까?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지 않았으면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굉장히 지장이 많았을 것 같아요. 중국화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글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이다. 나는 중국과 다른 사람이다 하는 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실용주의자는 자주주의입니다. 김유신은 자주의 화신이죠. 왜냐, 실용주의자는 실력을 믿습니다. 그러나 명분론자는 말을 믿습니다. 도덕을 믿습니다. 정의를 믿습니다. 믿는 게 다르죠. 실용주의자는 실리주의자입니다. 득이 있느냐 없느냐를 많이 따지죠. 그러니까 실용주의자는 항상 자기를 개혁해 갑니다. 실리를 얻기 위해서는 자기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용주의자는 개혁주의자입니다.
 
 또 실용주의자는 실리를 추구하고 국민들이 잘 먹고 잘 사는 이런 문제를 추구하기 때문에 개방적입니다. 자기한테 도움을 주는 사람은 적국에 있는 사람이라도 도움을 받는다. 외국에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 땅에 와가지고 장사를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자기도 부자가 되고 옆의 이웃도 도와주고 세금 많이 내면 되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외부 사람들 많이 받아들인다. 개방주의자입니다. 한국 역사 속에서 개방적인 정책을 쓴 사람은 전부 다 실용주의자였어요. 이승만, 박정희 두 사람 다 위대한 개혁가, 위대한 실용주의자 또한 위대한 개방주의자죠.
 
  이승만, 박정희가 위대한 개방주의자고 노무현씨가 가장 치졸한 폐쇄주의자 아닙니까. 폐쇄주의자의 표현이 뭡니까? ‘우리 민족끼리’ 아닙니까. ‘우리 민족끼리’라는 이 문장은 세계에서 가장 부끄러운 문장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 다른 사람끼리도 더불어 친하게 지내야 되는 시대 아닙니까, 지금. 세계화 시대이니까. ‘우리 민족끼리’라고 하면 안 되고 ‘다른 민족과 더불어’죠. 다른 민족과 더불어 친하게 살아야 할 시대에 ‘우리 민족끼리’라뇨.
 
 ‘우리 민족끼리’ 다음에 무슨 문장이 나옵니까?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통일하자, ‘우리 민족끼리’ 정신에 따라서 상호간 내정에 간섭하지 말자, 사상과 이념과 제도를 뛰어넘자. 그 말이 뭡니까? ‘우리 민족끼리’니까 북한에는 강제수용소가 있어도 우리 민족끼리 다 덮고 넘어가자, 이 이야기입니다. ‘우리 민족끼리’ 정신에 따라서 해외 동포의 민족적 이익을 남북한이 함께 도모하기로 했다. 말 좋죠.
 
 그런데 해외 동포 중에서 보호해야 될 사람이 누구냐? 조총련 아닙니까. 조총련을 ‘우리 민족끼리’ 정신에 따라서 보호해 주자. 우리한테 맨날 반국가 단체로서 간첩을 보내고 암살자 문세광을 보내는 간첩기지 조총련을 우리가 왜 보호해 줍니까? 그런데 그것도 ‘우리 민족끼리’ 정신에 따라서 민족 공조차원에서 하자고 합니다. 이게 명분론의 극치죠. ‘우리 민족끼리’가 명분론의 극치, 이승만·박정희 노선이 실용주의의 전형적인 예이다. 그래서 실용주의자는 개방적이다 이겁니다.
 
  또 실용주의자는 균형 감각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균형 감각이라는 게 뭐냐, 우리나라에서 가장 균형 감각이 없는 사람이 노무현입니다. 제가 만나본 사람 중에서 저렇게 균형 감각이 없는 사람이 없어요.
 
 균형 감각이란 뭐냐? 전두환한테 명패를 던졌다는 거죠. 1989년 12월 31일 날, 난데없이 저 쪽에 있던 사람이, 그것도 전두환에게 던진 게 아니고, 전두환이 나가고 난 후입니다. 전두환이 나가고 나서 그 자리를 향해서 명패를 던졌어요. 제가 그걸 2층에서 내려다 봤습니다. 왜 던졌습니까? 광주학살자라고 해서 던진 것 아닙니까. 전두환은 광주사태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만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어서 100명을 죽였다고 합시다.
 
 그럼 300만명을 죽인 김정일은 몇 배를 죽인 겁니까? 몇 배 악질이죠? 백하고, 300만이면 3만 배. 3만 배나 더 악질인 김정일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면 안 되죠. 그렇지 않습니까? 이게 균형 감각이죠. 인간이란 균형 감각을 상실하면 미친 놈이 되거든요? 정신병자가 바로 그 균형을 상실한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 아닙니까. 전두환을 독재자, 학살자라면서 명패를 던질 정도의 용기가 있으면, 김정일이한테는 최소한 ‘우리 같이 통일합시다’ 정도의 이야기를 해야지 ‘건강하게 오래 사십시오’ 라고 이야기 하면 안 되죠.
 
 한국 사람에게는 이런 민족성이 있답니다. 미국 학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대요. 한국 사람의 민족성 중 하나 이상한 게 과도할 정도로 반항적이고 과도할 정도로 굴욕적이다. 딱 노무현 아닙니까? 전두환에게는 과할 정도로 반항적이고, 김정일한테는 과할 정도로 굴종적이다. 이게 거꾸로 돼야 됩니다. 전두환한테는 과할 정도로 굴종적이고, 김정일한테는 과할 정도로 반항적이면 되는데 이게 균형 감각이 무너지니까 저런 사람이 되어버린 거예요.
 
  제가 전기를 쓰면서 보니까 박정희란 사람은 참 반듯한 사람이에요. 균형 감각이 있는 사람이에요. 딱 이렇게 맞춰져 있는 사람 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균형 감각이 있느냐. 엄격해야 될 때는 엄격하고, 술자리나 이런 데서는 사람이 풀어져서 농담도 하고 이런 사람이 균형 감각 있는 것 아닙니까? 항상 딱딱하면 안 되죠. 사람이 딱딱하면 부러지지 않습니까? 딱딱할 때도 있고 부러질 때도 있고 유머 감각도 있고, 두루두루 원만한 것. 그걸 균형 감각 있다고 하죠.
 
 에밀레종, 봉덕사종의 명문에 원공신체(圓空神體)란 말이 있습니다. 둥글고 비어있는 것이 신(神)이다, 신의 몸이다. 종이 둥글고 비어있죠? 그것이 바로 신이에요. 신이란 것은 인격적으로 가장 완성된 존재. 인간이 원만하면서도 속이 좀 텅 비어있는 사람 있잖습니까? 속이 꽉 차가지고 남 들어갈 틈도 없고 남 이야기 할 필요 없이 속이 꽉 차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좀 어수룩해 보이면서도 원만한 사람도 있죠. 그게 최고의 인간이다. 원숙한 인간이다. 그게 바로 균형 잡힌 인간이다. 안에 지식이 많기도 하고 아집도 많기도 해서 꽉 차가지고 남 말할 것도 없고 내가 말 안 해도 저 사람 아는 건 알 거 같고 또 헛소리하면 욕만 하니까 옆에서 말을 붙이기 어려운 사람. 이런 사람이 균형 감각 없는 사람입니다.
 
  실용주의자가 균형 감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실용주의는 여러 수단을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한 수단만 가지고는 안 되죠, 법(法)이라는 수단이 있으면 자유라는 또 다른 수단이 있어야 이게 균형이 맞는다. 그래서 실용주의는 균형이 있고, 명분론은 외골수다. 이것이 글로 나타날 때는 어떠냐? 명분론으로 쓴 글, 그리고 실용주의자가 쓴 글이 다릅니다.
 
 정동영의 연설 같은 게 바로 전형적인 명분론적 연설입니다. 신채호의 역사론, 노동신문에 나오는 사설, ‘친일파를 청산해서 역사를 바로 세웁시다’ 하는 김영삼 식 역사 바로 세우기 이게 다 명분론적 연설이죠.
 
 명분론은 선명합니다. 일도양단(一刀兩斷)합니다. 조선총독부를 철거하면 민족정기가 살아난다. 얼마나 선명합니까? 건물을 때려 부수면 민족정기가 살아난다는 데 그거 반대할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리 좋은 건물이라도 때려 부수면 민족정기가 살아난다는 데. 말이 선명하고 크다 이거죠.
 
 그런데 실용주의자가 쓴 문장은 좀 애매합니다. 어떻게 보면 좀 복잡해요. 결론이 확실하지가 않습니다. 보는 입장에 따라서 의미가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렇습니다. 이런 글이 실용주의 문장인데 사실 이런 글이 좋은 글이죠.
 
  문학이 주로 이런 글인데, 「백경(白鯨·모비딕)」이란 소설이 있습니다. 멜빌이라는 포경 선원이 있었는데, 백경이란 흰 고래를 추적하는 에이하브라는 선장, 그러니까 흰 고래와 에이하브라는 선장의 대결로 그린 소설이 모비딕이라고 미국 소설가 중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의 소설이에요. 왜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그레고리 펙이 에이하브 선장으로 나오는 영화가 옛날에 있었습니다. 그 영화에 제 기억으로는 여자가 한 사람도 안 나옵니다.
 
 그런데 문학자들이 이 소설을 비평을 하면서 이것은 상징이다, 에이하브는 악의 존재인 백경을 추적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선과 악의 대결을 그린 소설이다, 이렇게 평을 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이 소설에 대한 평이 달라집니다. 1960년대에 보면 환경론자들이 완전히 반대로, 백경은 바다를 유유하게 떠돌아다니는 자연 그 자체를 상징하고 에이하브는 그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을 상징한다. 그래서 선이 고래가 되고, 악이 선장이 되었어요.
 
 똑같은 소설을 두고 몇 십 년 사이에 비평의 각도가 달라져버렸습니다. 소설은 그냥 있었어요. 이런 소설을 위대한 소설이라고 부르죠. 위대한 소설은 시대에 따라서 새로운 얼굴로 나타나서 새로운 이미지를 던지는, 해석하기에 따라서 달라지는 겁니다.
 
 실용주의자의 글이 대충 이런 글이에요. 논어 같은 것이 왜 지금도 읽히느냐, 채근담 같은 것이 왜 지금도 읽히느냐 하면 그것이 과거에 읽었던 것과 오늘 읽었던 것이 다른 의미로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삼국지도 그래서 세 번 읽는 거죠. 어렸을 때의 삼국지와 나이 많았을 때에 읽은 삼국지의 관점이 달라집니다. 왜 달라지느냐? 선명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여유를 남겨놓은 글이에요. 이렇게 해야 된다, 저렇게 해야 된다, 이놈이 나쁜 놈이다, 저놈이 좋은 사람이라는 평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평을 독자들이 하도록 여유를 만들어 놓는 것이죠. 이게 실용주의자입니다.
 
  즉 실용주의는 지적으로 겸손한 자세입니다. 난 모르는 게 많다. 좀 빈 구석도 있어야 된다. 항상 배울 게 있다. 그런데 명분론은 뭐냐? 지적(知的)오만이죠. 왜 지적 오만이냐. 명분론은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겁니다. 당위론이죠. 이렇게 해야 된다,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야 된다, 민주주의는 무조건 해야 된다. 해야 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자기가 제일 똑똑하니까 이렇게 해야 된다, 저렇게 해야 된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실용주의자는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실정이 이렇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한국의 실정이 민주주의를 하기에는 참 어렵습니다’ 라고 이야기하지 ‘민주주의를 해서는 안 됩니다’는 이야기는 안 해요. 한 쪽은 해야 된다고 하는데 실제로 알아보면 그 사람이 제일 무식해요. 왜냐, 지적 오만입니다. 명분론은 지적 오만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무식한 사람이 누굽니까? 노무현 아닙니까? 노무현이 겸손하게 이야기하는 것 봤습니까? 좌파는 다 오만합니다. 제일 오만한 게 김일성, 김정일 아닙니까. 주체사상이라는, 자기가 사상가라는 거 아닙니까. 그게 명분론이기 때문입니다. 건방지게, 사람이 자기 아들에게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기 힘든데 전 국민을 상대로 이렇게 하십시오, 저렇게 하십시오, 6·25 사과를 받지 맙시다, 이런 이야기를 멋대로 하는 것은 오만하니까, 모르니까 무식한 겁니다.
 
  참 이게 희한합니다. 명분론은 전부 지식인들이 만들어 내는 겁니다. 실용주의는 주로 기업하는 사람들, 정치하는 사람들, 군인들, 과학자들이 만들어 낸 겁니다. 어떻게 글쟁이들이 만들어낸 명분론이 가장 무식하냐. 이게 바로 식자우환(識字憂患)이죠. 고사성어에 참 좋은 말이 많습니다. 식자우환. 너무 많이 아는 척하기 때문에 그게 골치 덩어리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은데 말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우리 몸 골수에 이런 게 있습니다. 우리 민족성입니다. 한국 사람 민족성 중에 모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모르는 것을 수치로 여깁니다. 아니 세상에 태어나서 모르는 게 더 많지, 세상살이 다 알면 그게 인간이 아니죠. 너무나 당연한데도 모르는 것을 한국 사람처럼 수치로 여기는 사람이 없어요.
 
 토론을 하다가도 자기 생각이 틀렸다고 해서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뭘 모르면, ‘그것도 몰라’ 이런. 한국 사람들 잘 쓰는 말 있지 않습니까? 남을 욕되게 만드는 말. 여러 청중 앞에서 ‘당신 그것도 몰라?’ 이럽니다. ‘아니 모르는 게 당연하지, 그래 나 모른다.’ 이러면 될 텐데 화를 냅니다. 아니 그럼 한국 사람이, 인간이 만물 박사여야 됩니까?
 
 누가 이런 자리에서 ‘당신 남산 몇 m인 줄 알아?’ 남산이 몇 m인지 내가 어떻게 아냐고 하면 그것도 모르냐고. 책 찾아보면 다 나오는 걸, 그걸 왜 내가 알아야 돼. 남산 높이가 264m예요. 그걸 가지고 내기를 많이 합니다. 남산이 300m 이상인 줄 아는 사람이 많아요. 264m입니다. 왜 이러느냐? 바로 한국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명분론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모르는 걸 수치로 여겨요. 모르는 게 당연한데도. 그래서 모른다는 소리를 안 합니다. 그러면 더 무식해집니다. 무식한 사람들은 모른다는 이야기를 해야 됩니다.
 
 전두환 대통령이란 사람은 이랬어요. 주변 사람들 모이면 참모들한테 ‘난 모른다. 당신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날 가르쳐줘야 될 것 아니냐’ 이렇게 이야기했던 사람이에요. 콤플렉스가 없었던 사람이죠. 아마도 ‘GNP 그거 무슨 뜻이지?’ 이렇게 물었을 겁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IMF가 뭔지 몰랐던 것 같아요. IMF에 간다는 것의 의미를 몰랐죠, 사실입니다. 그걸 물었으면 될 텐데, IMF가 뭔지 설명해달라는 말이 어려웠던 거 같아요.
 
  이명박 씨의 실용주의를 죽 서술해 보면, 이 사람이 경제제일주의라고 합니다. 왜 경제제일주의를 내세우느냐? 원래 실용주의는 세 개가 같이 있어야 된다. 하나는 안보, 그 다음에 경제, 그 다음에 자유. 이 세 개가 같이 있어야 된다. 특히 안보가 제일 우선이다. 한반도에서는 무조건 안보제일주의가 실용주의다. 안보가 있어야 경제가 설 수 있는 거 아니냐. 안보라는 그릇이 깨어지고 틈이 생기면 거기에 들어있는 물이라는 경제가 새버린다. 안보, 같이 가야된다. 그래서 안보경제제일주의라고 하는 게 맞는 거 아니냐.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이명박 쪽의 거기에 대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그건 이제 선거용이라는 겁니다. 그거 다 안단 말이죠. 우리가 말하는 이런 지적 다 맞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냐? 한국 사회에서 지금 요지부동의 보수 세력은 30%다. 나머지 30%는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금 다행히 일자리가 모자라고 경제가 불황이니까, 이명박이 경제를 살려 줄 것 같으니까 이명박 지지로 갔지만, 우리가 너무 세게 보수 이런 걸 앞세우면 이 사람들 흔들린다. 이 사람들을 붙잡아두기 위해서는 경제를 강조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저쪽에서 계속 이념전쟁을 걸어오는 데 이쪽에서 맞대응을 하면 쟁점을 하나 만들어가지고, 좌파들이 그 쟁점을 중심으로 단결을 해버린다. 우리는 그 단결하는 상황거리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 피해야 된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일리가 있지 않습니까? 제가 비판하는 입장인데 그 사람들 설명을 들으면 나름대로 고민이 있겠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저의 자세도 실용주의자의 자세입니다. 실용주의자는 항상 자신을 회의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맞을까? 그래서 일부러 반대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을 찾으러 다닙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해서 종합을 합니다. 찬반 양쪽 이야기를 종합하는 자세, 이게 사실주의입니다. 기자들 말에 이런 게 있습니다. ‘해가 동쪽에서 뜬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기자는 찾아서 만나봐야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명박 쪽 설명이 일리가 있으나 거기에 대해서 저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죠. 그 고민을 충분히 이해는 하겠는데, 이런 생각이 든다는 거죠. 지지율 60%다. 60%면 자신을 가져야 된다. 좌파 후보, 제일 앞서가는 사람 지지율이 아직도 20%에도 못 미쳤다. 가상대결에서는 대충 6:2로 나온다. 이 정도로 되었으면 자신 있게 ‘대한민국 헌법 지키겠다. 10·4선언은 헌법에 맞지 않으니까 문제가 있다.’ 이런 이야기를 왜 못하느냐.
 
 지금 평양-개성 간에 도로를 우리가 수천억을 들여서 닦아주고 보수해주기로 했다고 하는데 돈이 그렇게 남아도느냐. 대북 송전 200만kw 하는데 10년 동안 25조가 드는데 그런 문제를 수치를 가지고 반박하면 될 것 아니냐. 당신들 실용주의 좋아하니까 실용주의 입장에 서가지고 대북(對北)정책을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이념전쟁 하기 싫으면 자유, 평등, 평화, 반공, 빨갱이, 좌파우파 이런 말 쓰지 말고라도 당신들이 잘하는 식으로 실용적으로 비판을 해서 왜 맞서지 않느냐. 그럼 더 우습게 만들 수 있는 거 아니냐.
 
  또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런 식으로 저쪽에서 계속 이념 전쟁을 걸어 올 때 피하기만 하면 과연 자기편이 생기느냐? 싸움을 안 하다 보면 편이 안 생깁니다. 지도자는 싸워야 자기 편이 생깁니다. 싸워가지고 얻어맞더라도 싸워야 편이 생기는데 안 싸우면 편이 안 생긴다. 이것이 어떨 때 위기가 되느냐?
 
 앞으로 11월 말 즈음 이라든지 이럴 때 이명박의 BBK 이런 걸 KBS, MBC에서 집중적으로 해서 ‘감옥에 가야될 사람이 지금 대통령이 되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선동을 하면 좌파 세력들이 친노(親盧), 친북(親北), 친김(親金), 종김(從金) 세력, 이런 세력들이 다 합쳐서 광화문으로 뛰어 나오고 해서 거리를 뒤집어 놓을 때 그것을 저지할 만한 숫자를 거리로 동원해 낼 수 있는 이명박의 행동부대가 있어야 되는데, 싸움을 하지 않고 지금까지 피해 왔는데 갑자기 ‘나오십시오’하면서 호루라기를 불면 나오겠느냐 이겁니다.
 
 그 때를 위해서 싸워야 된다. 지금 큰 싸움을 벌려 놔야 합니다. BBK 이런 것은 사소한 문제처럼 보이는데, 큰 싸움을 계속 피하다 보면-사실은 BBK고 뭐고 사소한 문제 아닙니까? 국가보안법 위반보다는 그게 큰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반역자냐 아니냐 하는 문제, 주가 조작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모르지만 의혹과 ‘이 자는 반역자다, 김정일의 하수인이다’라고 생각하는 문제와 비교해보면 어디가 죄가 크냐, 그거죠. 지금 좌파들은 다 반역자 아닙니까? 좌파들의 반역적 속성을 폭로를 해서 정면대결을 하는 게 싸우기가 쉽지 그 싸움을 피하다가는-나중에 본인의 사소한 것을 가지고 저쪽에서 치고 들어올 때 방어가 안 된단 말입니다. 유리한 싸움판을 피했기 때문에 불리한 싸움판에서 지는 패를 가질 가능성도 있는 게 아니냐. 이런 이야기죠.
 
  그런 식으로 피해가면 대선에서는 이길 거예요. 그러나 총선에 가면 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식으로 피하다 보면 김대중, 노무현 세력을 국회에서 몰아내야 되겠다, 전대협 출신들을 몰아내야 되겠다 하는 사람들에게 교육이 안 된다는 거죠. 그래가지고선 이명박 씨가 이번에 400만 차이로 이겼으니까 견제해 주기 위해서 국회를 야당한테 줘야 된다, 이래가지고 국회가 오히려 좌파들만 남는다. 그럼 좌파 국회와 우파 대통령이 대결하면 누가 이기겠느냐? 좌파 국회가 이길 것이다. 그러니까 그 전략은 대선에서는 이기고 총선에서는 지는 전략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전 제 말이 맞는지 자신이 없어요. 그러나 그렇게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의 실용주의는 제대로 된 실용주의가 아니고, 이것은 3분의 1 실용주의죠. 안보, 경제, 자유. 이것이 삼위일체가 되는 실용주의가 진짜 실용주의입니다. 이게 부국강병입니다.
 
  그러나 겁이 나니까, 좌파하고 이념전쟁을 제대로 할 자신이 안 생기니까 거기서 다른 것 다 빼버리고 경제만 딱 들고 나와서 하다가 저 쪽에서 큰 싸움판을 벌릴 때 수비가 되겠느냐. KBS, MBC가 계속 편파방송을 할 때 한나라당 선거운동 하는 사람들을 총 동원해서 KBS, MBC를 몇 만 명이 포위를 해서 농성을 하고 일주일 동안 버텨야 방송이 달라질 텐데 그렇게 동원할 자신이 있냐고 하면, 동원할 자신이 없다고 말해요. 또 이명박, 한나라당의 체질로 봐가지고 큰 싸움에서 싸우지 않기 때문에 그런 동원력이 없을 겁니다, 없어요.
 
 동원력이라는 게 호루라기 분다고 나오는 게 아니고, 몇 번 해봐야 되는 거 아닙니까? 연습해봐야 나오는 거지 갑자기 나오라고 하면 나옵니까? 애국가 부르고 구호 외치고 한 2시간 있다가 집에 가자 하면 가는 건 하지만, 그래가지고 누가, KBS, MBC가 겁을 내겠습니까? 그런 행동력을 만들어 내려면 싸워가면서 자기 편을 다져야 된다. 그런데 이것이 경제제일주의 싸움으로는 그런 편이 안 만들어 질 것이다 하는 생각이 제가 들고, 그 점에서 이명박의 이 문제는 일견 그 쪽 입장에서 치면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너무 쉽게 이기려는 방법이 아니냐. 어렵게 이겨야 된다. 싸워서 이겨야 된다.
 
  이런 이야기를 지금 하고 있는데 이미 이명박 쪽에서는 이념적 가치관 논쟁은 하지 않기로 전략적 결정을 했어요. 그쪽 방향으로 지금 선거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선거운동을 하니까 저를 포함해서 여기 계신 분들 중 여러 사람이 지금 불만이 많죠. 그러면서도 대안이 없는 것 아니냐. 저는 이런 것을 주로 글로 쓰고 신문에 광고도 내는 편입니다만 이런 걸 하면 이명박 지지 쪽에서 그런 글을 안 써줬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우리도 같은 생각인데, 내 생각에 반대해서 그런 게 아니라 같은 생각인데, 이번에는 일단 이겨야 되니까 그런 것을 좀 덮고 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 또한 일리가 있어요. 그러나 내가 이렇게 하는 게, 이렇게 글을 쓰고 하는 것이 이명박 씨나 그 캠프로 하여금 생각을 바꾸도록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는 수도 있으니까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걸 쓰겠다. 또 반대하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계속 우정 있는 충고를 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가고 있는 게 오늘날 현실입니다.
 
  이명박 씨는 CEO 출신입니다. CEO는 어떤 사람들이냐. 굉장히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에요. 이명박 씨에 대한 불만이 어떤 식으로 나오느냐 하면, 일대일로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남의 말을 잘 안 듣는다, 경청을 하지 않는다, 건성으로 듣고 이야기가 길어지면 졸든지 나가버린다, 굉장히 섭섭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런데 이명박 씨 입장에서 보면 이렇습니다. 이명박 씨를 만나자는 사람이 많이 와요. 많이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면 무슨 정책을 이렇게 해주십시오 라는 식의 소위 아이디어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명박 씨 입장에서 그 중 99%는 다 의미 없는 이야기입니다. 자기가 알고 있거나 실천이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다 들어주면 시간이 없어요. 짜증스럽기는 할 겁니다. 핵심이 되는 이야기가 안 나오면 그럴 수밖에 없어요. CEO로는 그런 태도가 괜찮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는 또 이상합니다. 자기 이야기를 잘 안 들어 주면 나중에 원수가 됩니다.
 
 한국 사람들 중에 그런 사람들 많이 봤어요. 대통령 후보를 만났는데 나중에 떨어진다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하라는 대로 했으면 안 떨어졌을 텐데.’ 내가 하라는 대로 안했기 때문에 굉장히 불만이 많아요. 내가 이렇게 하라고 했는데 후보가 그렇게 안했으니까 그건 나쁜 놈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그러면 자기가 후보가 되야죠. 그러니까 이명박 입장에서는 참 미칠 지경이 되는 겁니다.
 
  또 총론만 이야기하지 각론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답니다. ‘이건 내가 하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전부 ‘이렇게 하십시오, 저렇게 하십시오.’ 제가 여러 번 이야기하지만 이게 명분론에 젖은 한국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이명박 씨가 당선이 되기 위해서 나는 이걸하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해야 될 텐데, 이명박씨 보고 ‘교육도 어떻게 하는 공약을 하십시오, 뭐하는 공약을 하십시오.’ 이렇게 잔뜩 갖다 줍니다.
 
 그래서 사람 만나는 데 있어서 드라이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니까 그게 불만이 많은데, 한국적 정치 풍토는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해도 계속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끄덕해주고 이렇게 합니다. 그러니까 이명박 씨처럼 CEO 출신들은 그걸 못 견디지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대선 망하겠다 이거죠. 저런 바보 같은 소리 듣는 데 하루에 몇 시간씩 쓰다 보면 회사 경영을 어떻게 하느냐?
 
 효율성을 중시하는 겁니다. 또 그 사람이 건설회사 출신입니다. 건설회사는 언제까지 공사를 끝낸다는 걸 딱 정해놓고 하는 시간이 금인 업종인데, 이 사람은 그것이 체질화되어 있어요. 그런 점에서는 실용주의자예요. 과거의 정치인처럼 다 끄덕끄덕하면서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딱딱 잘라버립니다.
 
  한국 사람은 100%의 인간형을 원하기 때문에 경제도 잘 할 뿐만 아니라 안보에 대해서도 확고한 태도를 보여주십시오 라고 주문합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이명박 씨에게 그것까지 요구하는 건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몇 백 년에 한 번씩 나올만한 이승만, 박정희, 레이건, 트루먼 류의 위대한 세계적 인물이라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명박 씨한테 그런 걸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느냐. 보다 나은, 좀 더 나은 정도면 되지 않느냐. 저도 불만이 많습니다만 또 이렇게 일견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실용주의의 반대말이 명분주의인데, 우리나라에서 명분주의라고 하면 간단합니다. 우리나라 명분주의의 역사는 중국과 항상 맥을 같이 합니다. 중국의 유교는 절대 명분론적인 딱딱한 게 아닙니다. 유교는 참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선진국이 된 나라의 종교를 보면 기독교나 유교 아닙니까? 유교는 그 안에 위대한 근대성이 있습니다. 유교가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이렇게 발전하는 이유를 찾아보면 근대성, 과학성, 실용성 때문에 이렇게 발전된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러나 이슬람은 자기 개혁이 안 되니까 저 모양입니다.
 
 그런데 유교 중에서도 관념적인 유교가 주자학입니다. 논어, 맹자 이런 걸 읽어보면 전혀 딱딱한 글이 아니죠?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 이게 동양적 실용주의의 원리 아닙니까. 이것은 맹자가 이야기한 겁니다. 맹자에 보면 이렇게 설명이 돼 있어요.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다.’
 
 즉 쉽게 말하면 직업이 있어야 사람이 안정된다. 일정한 생업이 있어야 사람이 안심하고 살 수 있다. 항심이 있다. 맹자의 양혜왕 상에 나오는 글인데 「안정된 생업(恒産)이 없으면서도 안정된 마음(恒心)을 품는 것은 오직 선비에게만 가능한 일이고, 백성으로 말하자면 안정된 생업이 없으면 안정된 마음도 없는 법입니다. 그런데 안정된 마음이 없으면 방탕하고, 편벽되고, 사악하고, 사치한 짓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마침내 죄를 저지르게 한 다음 좇아서 처벌한다면 이것은 백성을 그물로 긁어서 투옥시키는 짓입니다. 어찌 어진 사람이 군주 자리에 있으면서 백성을 상대로 그물질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항산이 없어도 마음이 편안한 사람은 선비만 된다, 선비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선비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일정한 직업이 없으면 죄도 막 짓는다. 그런데 법을 가지고 있다 해서 그 사람들을 그물을 던져서 모조리 잡아가지고 감옥에 집어넣는다면 이것이 어찌 군주가 할 일이냐.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실업률이 높아 가면 범죄가 막 일어나고, 데모도 일어나고, 정치도 불안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법으로 다 잡아넣으면 그게 대통령이 할 짓입니까,
 
 이런 뜻 아닙니까. 또 김정일에게 하는 이야기 아닙니까? 김정일이 사람들의 직업을 모두 없애버렸으니까 도둑질하고 탈북하고 하는데 그걸 또 김정일이 다 잡아 넣어서 수용소에 넣고 난리 아닙니까? 그걸 지적하는 이야기예요. 여기서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 쉽게 말하면 일자리가 없으면 사람은 다 죄를 짓게 되어있다. 일자리가 최고다. 이게 동양적 실용주의의 모토입니다. 이처럼 공자, 맹자는 굉장히 유연한 사람들입니다. 실용적인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주자학은 언제 생겨났느냐. 송나라 때인데, 송나라가 또 문제가 있는 나라입니다. 중국역사 상 경제는 제일 발전했어요. 송나라는 외침을 많이 받았는데 자주 국방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식인들이 집권을 하다 보니까 외세가 쳐들어오면 지금 노무현 하는 식으로 계속 돈 갖다 바치고 해가지고 금나라, 요나라를 구워 삶으려고 하다가 결국 다 먹혀버리고 양자강 남쪽으로 내려가서 남송으로 한 100년쯤 버티다가 몽고한테 먹혀버리죠.
 
 부자면서도 자주국방에 실패한 전형적인 나라가 중국의 송나라입니다. 그런 사회 분위기가 중요해요. 이 때 만들어진 철학이 주자학입니다. 관념론의 극치죠. 이게 고려시대 말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그 주자학으로 무장한 정도전이나 정몽주나 이런 세력이 이성계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가지고 세운 나라가 조선 왕조입니다. 조선왕조는 출발부터 주자학이 통치 이데올로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표는 뭐냐. 조선조를 요순과 같은 나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게 국가 목표가 되었어요. 부국강병하는 나라가 아니고 정신적으로 노는 겁니다. 도덕주의의 극치죠.
 
  실용주의를 앞세우는 국가는 일류국가입니다. 서양에서도 실용주의 철학, 경험주의 철학이 같은 뿌린데, 영국과 미국에서 꽃이 피었습니다. 관념주의 철학은 어디서 나오느냐? 후진국에서 나옵니다. 나라가 망해갈 때 나옵니다. 일도양단해서 말하자면 실용주의는 일류(一流)의 논리입니다. 그러나 명분론은 노예의 논리입니다. 머슴의 논리입니다.
 
 왜 그러느냐? 명분론은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요. 명분론에 딱 젖어들면 뭘 안하느냐, 절대 책임 안집니다. 절대 반성 안합니다. 절대 자기가 잘못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게 명분론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실용주의라는 말이 적기에 잘 나왔어요.
 
 우리가 그 동안에 명분론을 가지고 도덕주의, 민주주의 등 이런 관념적인 것을 가지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만들려고 했는데 안됐다. 오히려 이승만, 박정희 식으로 한 게 더 정의를 많이 세웠다. 이제 다시 우리가 실용주의를 한 걸음 더 발전시켜나가야 될 시점에서 이명박 씨가 실용주의란 말을 만들어 나왔으니까 이제는 그걸 우리 지식 있는 사람들이 더 발전시켜서 실용주의의 내용을 3분의 1이 아니라, 3분의 2로 발전시켜서 그 사상으로 우리가 자유통일을 해서 일류국가로 만들어가는 길을 열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사회의 오랜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명분론이 처음에는 주자학이라는 옷을 입었다가, 해방 된 이후에는 이게 민주주의라는 옷을 입었습니다. 그 내용은 똑같아요. 그러나 옷을 바꿔 입었어요. 그래서 그 민주주의는 자유 민주주의가 아니고 좌파세력, 노무현, 김대중, 김정일로 대표되는 이 좌파세력이 명분론을 가지고 한국사회의 명분을 독차지 했습니다.
 
 민족주의, 평화, 개혁. 자유만 빼고 모든 좋은 말은 다 가져갔습니다. 그 결과는 국정파탄이었습니다. 이러니까 이제는 명분론을 여기서 끝장내자. 이제는 말 잘하는 사람은 우린 안 믿는다. 말 잘하는 사람보다 일 잘하는 사람을 믿겠다. 결과주의입니다. 실용주의는 결과를 만들어 내야 높게 평가를 받습니다.
 
 그런데 명분론은 뭐냐, 동기입니다. 좋은 뜻을 가지면 그 사람이 개판을 쳐도 다 용서를 하겠다는 겁니다. 동기는 확인이 안 되잖아요. 결과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명분론자입니다. 결과에 대한 무시니까 발전이 없죠. 결과가 나쁘게 나와도 ‘동기가 좋았으니까.’ 이렇게 됩니다. 그래가지고 결과 나쁜 것에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실수가 계속 되풀이됩니다.
 
  지난 60년 동안에 되풀이된 실패를 하나 설명해 드릴까합니다. 김일성, 김정일에게 속는 게 꼭 세 번 되풀이 되었습니다. 김구가 가서 김일성에게 속지 않았습니까? 그때도 요새와 마찬가지에요. 김대중이 가서 또 속았죠. 이번에 노무현이가 가서 속았습니다. 김구, 김대중, 노무현 모두 속았습니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났습니다. 그 뒤 한 30년 지나가지고 1627년에 정묘호란이 났어요. 그 9년 뒤에 병자호란이 났습니다. 이게 뭡니까?
 
 외침을 당했으면 정신을 차려야 될 텐데 40년 사이에 똑같은 실수를 세 번 되풀이했어요, 세 번. 이게 명분론입니다. 국정 실패에 책임지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해요.
 
 일본은 어떠냐? 몽고와 우리가 1274년에 하카다에 상륙을 해서 일본 군대가 혼이 났는데 다행히 태풍이 불어와 몽고 군대가 자멸을 했다. 그 다음 일본이 가마쿠라 막부 시대가 돼요. 준비를 단단히 했어요. 성도 쌓고 해가지고 이놈들이 언제고 꼭 쳐들어 올 테니까 상륙하기만 해봐라, 전술도 바꾸고. 일본은 그때 무사들 칼 가지고 일대일로 싸우는 게 중심이었는데 몽고군은 집단적으로 싸우니까 처음 붙었을 땐 상대가 안 되죠.
 
 두 번째는 워낙 준비를 단단히 해서 8년 뒤에 몽고, 고려, 남송의 항복한 사람들 14만 군대가 딱 상륙하니까 일본 군대가 저지를 해서 육지에서도 이미 침략자들이 졌습니다. 두 번째는 태풍이 안 와도 졌어요. 그런데 태풍까지 와버리니까 14만이 다 죽어버리고 한 3만이 돌아왔습니다. 일본은 두 번째 실수를 하지 않았어요. 일본의 지배층이 군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군인들이 원래 실용주의자들이예요. 그래서 이건 뭐가 잘못됐느냐, 우리가 뭐가 잘못됐느냐 반성을 하고 준비를 했는데, 우리는 1592년에 기습을 당해가지고 7년 동안 그 고생을 하고 나서도 똑같은 외침을 40년 사이에 두 번 더 당했다. 이게 명분론의 치명적인 약점이죠. 반성이 없습니다.
 
  사실 김영삼 시절부터 우리나라가 명분론의 정치로 가서 15년 동안 했는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명박 씨가 실용주의라는 걸로 문제제기를 하지만 그래도 우리 입장에서는 속이 차지 않죠. 그러나 이런 문제제기가 이루어졌으니까, 이 문제제기를 우리가 사회적 공론으로 더 확대 발전시켜가지고 이 기회에 우리의 의식을, 가치관을 바꿔놓아야 된다. 이것이 진정한 눈에 보이지 않는 혁명이 되고 이 바탕에서 자유통일과 일류국가 건설이 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실용주의만이 일류국가를 만들어 낼 수 있고 명분론은 식민지를 만든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야기가 의외로 길어졌습니다.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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