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 후기의 생생한 단면, 채만식의 '태평천하'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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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정 출신 최초의 서양의사 박서양>
  
  밤 늦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조선 최초의 서양 의사가 된 백정의 아들’이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봤다. 조선 말 제중원이라는 의학교겸 병원이 처음으로 설립됐었다. 한 백정이 서양인 의사를 찾아와 아들을 입학시켜 달라고 간절하게 빌었다. 왕의 주치의였던 서양인 의사는 인간을 차별하지 않고 콜레라에 걸린 백정을 고쳐주었었다. 백정은 그런 서양의 평등의식에 희망을 품고 찾아와 부탁한 것이다.
  
  백정의 아들이 의학교에 받아들여졌다. 백정인 아버지는 평등하게 대해주는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가 백정인 걸 알자 먼저 교회에 왔던 양반들이 더 이상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그들에게 백정은 자리를 같이 할 사람이 아니었다.
  
  백정의 아들 박서양은 의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의사가 됐다. 따지고 보면 세브란스 의과대학 일회 졸업생인 셈이다. 그는 만주의 한 도시에서 의원을 개업하고 평생 주위 사람들을 돌보며 살았다. 조선 말 인간 승리의 한 장면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인간은 대접해 주는 곳으로 모이기 마련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우리가 필리핀 같이 미국의 식민지가 됐다면 백정의 아들인 박서양은 미국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던 조선이라는 나라로 회귀하고 싶었을까. 그 나라가 백정의 조국일까. 백정이나 노비에게 나라라는 것이 있는 것일까.
  
  변호사인 나는 십오년 전쯤 몇 건의 친일파에 관한 소송을 진행했었다. 그 과정에서 고정관념을 잠시 서랍 속에 넣어두고 망하기 전의 조선은 어떤 나라였나를 살펴보려고 노력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가서 조선 말의 여러 자료들을 보았다. 나는 학자들이 쓴 논문 보다는 그 시대를 묘사한 문학에서 더 진실을 발견한것 같다. 논문이 지도 비슷한 것으로 비유하면 문학은 조선 말 사람들의 내면까지 알려주는 항공지도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조선이 없어지기 전에 태어난 작가 채만식이 쓴 ‘태평천하’라는 작품이었을 것이다. 그중 한 장면이 지금까지도 기억이 생생하다. 작중 인물은 어중간한 지주인 윤가의 얘기다. 지주인 윤가는 사회의식이 깨어있지도 않고 도덕적인 것도 아니었다. 춘궁기에 쌀을 빌려주고 추수할 때 비싼 이자로 쳐서 쌀을 받으며 자신의 농토를 늘여간 그런 존재였다. 굶어 죽을 것 같으면 농민들은 쌀 한 말에도 땅을 넘기던 시절이었다.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고 땅을 잃은 농민들은 화적떼가 되어 전국을 떠돌았다. 고을 수령은 왕이자 법이었다. 수령이 바뀌면 마을의 소지주들은 쌀이나 돈을 바쳤다. 그걸 거부하면 엉뚱한 죄목으로 동헌에 잡혀가 곤장을 맞고 감옥에 들어가기도 했다. 석방이 되는 대가로 요구하는 금액을 주어야 했다.
  
  작품 속 인물인 중소 지주인 윤가의 아들이 밤에 잠을 자고 있는데 아내가 몸을 흔들면서 화적이 나타났다고 깨웠다. 아들은 다급하게 집을 나와 보리밭에 몸을 숨겼다. 화적들에게 잡히면 반쯤 죽을 정도로 매를 맞고 재산을 빼앗겼다. 동헌의 관리들은 백성의 재산을 지켜줄 의지도 힘도 없었다. 그들 역시 권력의 몽둥이를 든 또 하나의 강도일 뿐이었다. 윤가의 아들은 아버지가 걱정이었다. 수령의 트집에 관가에 잡혀가 모진 매를 맞다가 돈을 바치고 어제 겨우 옥에서 나왔다.
  
  그는 밭고랑에서 살며시 머리를 들고 집 쪽을 보았다. 마당에 화톳불이 피워져 있고 그 불빛에 어른거리는 화적들 모습이 보였다. 패랭이를 쓴 놈, 머리 땋은 총각, 늙은이 등 각양각색이었다. 중심에 서 있는 두목놈의 얼굴이 비쳤다. 낯이 익었다. 두 달 전에 쳐들어와 삼백 냥과 소 한 마리 어음과 패물을 털어간 그놈이었다. 그 놈 앞에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두목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내 부하를 관가에 찔러서 잡히게 했단 말이지. 그러고도 네가 성할 줄 알았더냐?”
  
  지난번 그들이 노략질을 할 때 아버지는 화적패 중에 얼굴이 익은 한 명을 발견했다. 그자는 가까운 곳에 사는 소작인이었다. 아버지는 분통이 터져 다음날 군수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게 화근이 됐다. 군수는 능글능글하고 교활한 인물이었다. 군수는 화적의 얼굴을 그렇게 잘 안다는 게 이상하다면서 내통 여부를 조사하겠다며 도리어 아버지를 감옥에 가두었다. 썩은 수령들은 뇌물을 노리고 트집을 잡는데 인정사정을 두지 않았다. 아들은 아버지를 빼내기 위해 천냥을 군수에게 바쳤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방 이하 호장, 형방, 옥사장, 사령, 심지어 통인 급창이까지 골고루 풀어먹였다. 돈을 그렇게 들이고 나서야 달포 만에 아버지는 매맞은 몸으로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이번에는 화적 두목이 아버지가 부하를 관가에 고발했다는 것으로 응징하러 온 것이다. 참극이 벌어졌다. 화적떼들은 각자 가진 몽둥이와 칼 도끼를 가지고 아버지를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화적패는 아버지의 목을 도끼로 찍었다. 화적패는 집에 불을 지르고 유유히 사라졌다. 불타는 집을 보면서 윤가의 아들은 이놈의 나라가 언제 망하냐고 저주하고 있었다. 아마도 조선 후기 이 사회의 생생한 한 단면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조선은 어떤 나라였을까. 왕족이나 사대부에게는 좋은 나라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지옥이었을지도 모른다. ‘헬조선’이라는 말은 그때 쓰였어야 맞는 말이 아닐까.
  
  엄씨 종친회가 내게 보내는 봉투에는 여덟 자의 한자가 로고같이 인쇄되어 있다.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묻어주고 역적이 되어버린 조상의 항변이었다. 해석하면 이렇다.
  
  ‘좋은 일 했는데 왕이라고 처벌한다면 달게 받겠소’
  
  조상은 조선의 평민이었다. 역적이 되어 이백년을 산 속에서 숨어 살았다고 했다. 나는 가끔씩 내 조상들에게 조선은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생각해 본다.
  
[ 2024-06-07, 13:5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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