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7.29) 조선일보에 이런 기사 제목이 있었다.《지지 않는 양궁 제국… 女단체 '올림픽 10연패'》온 국민이 옷깃을 여밀 만큼 기쁜 일이다. 대통령도 축하 전문을 보냈다니 대한민국의 경사임에 틀림없다.

오늘 조선일보의 ‘만물상’은 우리와 활에 대한 내용이 대종이다. “활이 등장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은 한국에 있다”는 구절도 있고, 고구려 고분 무용총에 그려진 수렵도도 언급했고, 활과 관련된 고구려 건국 설화도 나오고, 이성계가 신궁(神弓)으로 불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리고 “1979년 양궁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소녀 궁사 김진호가 금메달 다섯 개를 목에 걸고 돌아오자 온 나라가 들썩였다”는 대목도 있다. 아. 김진호. 비운(悲運) 같은 이름이다. 타의 추종을 허락지 않고 펄펄 날던 선수가 올림픽에선 은메달에 그쳤으니 팔자 말고 무슨 말로 설명할 수 있으랴.

내가 어려서 권투방에서 살 때 5분 정도 걸어가면 추산정(騶山亭)이란 활터가 있었다. 심심할 때마다 거기에 가서 활 쏘는 구경을 했다. 한복을 잘 차려입은 아저씨들이 횡으로 길게 늘어서서 각자마다 활을 높이 쳐들었다가 서서히 내리면서 화살을 공중으로 쏘면 화살은 곡선을 그리며 과녘에 가서 박혔다. 화살깃이 바르르 떠는 동안 커다란 과녘 뒤에 숨어있던 사람이 나와서 깃발을 흔든다. 흔드는 모습이 다 달랐는데 점수에 따라 다를 것이라 짐작했고, 그 의미를 알고 싶었으나 아직도 알지 못한다.

추산정 활터가 사라지고 꽤 오랜 시간 빈터로 남았다가 나중에 주택가가 되었다. 그 이후 마산에 활터가 없다가 마산 공설운동장(지금의 마산야구장)을 건설할 때,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활터 조성을 청원하여 운동장과 맞닿은 산기슭에 활터가 생겼다. 손바닥만한 사무실 하나와 사대(射臺)만 있고 활터는 따로 없었는데 공동묘지가 활터였다. 운동장에 갈 때마다 거기에 가서 활 쏘는 구경을 했다. 나도 커서 잘살게 되면 활 쏘러 다니리라는 포부를 마음에 새기며 해 저무는 산을 내려오곤 했다. 세파에 이리저리 밀려 사는 동안 마산 활터도 없어졌고 그러다보니 활에 대한 열망도 사라졌다. 눈에 없으면 마음에도 없다더니….

나는 기쁘거나 울적하거나 또는 심심할 때, 함안(咸安)과 의령(宜寧) 쪽으로 드라이브를 하면서 회포를 푸는데 한적한 시골길만 골라서 다닌다. 복잡한 함안 읍내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의령으로 가는 지름길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함안 공원묘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가다가 보니 왼쪽 아래에 활터가 있었다. 오랫 동안 잊고 살았던 활터를 보니 뛸 듯이 기뻤고 활 쏘는 구경에 돌아갈 줄을 잊었다. 그리고 어릴 때의 활쏘기 다짐을 회상하며 회원 가입을 하려 사무실에 갔다. 그러나 운영난으로 곧 문을 닫게 됐으므로 접수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활쏘기와 나와는 인연이 없었던 모양이다. 인연이 없는 것은 인력(人力)으로야 어쩔 수 없지만 뜻을 두었던 추산정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고, 마산 활터가 사라지는 것도 보았고, 함안 활터까지 세 개나 망하는 것을 보았으니 슬픈 인연이 아니라 할 수 없겠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그냥 '활쏘기'였던 우리네의 활이 양궁에 밀려 이름도 생소한 국궁(國弓)이 되더니 그나마 이젠 활터가 없어서 못하게 되었다. '지지 않는 양궁 제국'이란 찬사 뒤에는 국궁의 처연이 있고, 그럴수록 국궁에 대한 애착을 또한 가지면 작히나 좋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