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보낸 책이 남쪽 끄트머리에 오는데 한나절밖에 안 걸렸으니 참 좋은 세상이다. 기분 좋다. 오늘(1.8) 드디어 조갑제 선생의 역저. ‘박정희 전기(全13권)’를 내 손에 받아 들었다. 진작에 구입하여 읽어서야 했는데, 내 나름으론 박정희 각하에 대해 알 것은 다 안다는 택도 없는 자만심에 빠져 구입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조갑제 선생의 문장을 통해 각하에 대한 지식을 얻기도 하고 조갑제닷컴에서 낭독을 해 주기도 해서 전집을 안 읽어도 된다는 생각에 빠져 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편적 지식에 지나지 않은데다가 내 책장에 박정희 각하에 대한 책 한 권이 없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박정희 각하를 숭상하면서도 책장에 각하의 전집 한 질이 없고, 조갑제 선생을 마음의 스승으로 모셨다면서 그분의 역저 ’박정희 전기‘가 없음에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기 ’회원토론방‘에 작년이든가 재작년이든가 박정희 전기 13권을 구입하기 위해 오늘부터 저금통에 저금을 하겠다고 글을 써올렸었다. 그래야만 중도에서 마음이 변하지 않겠기에 그랬다.

내자(內子)가 쓰다가 그만둔 자개가 박힌 자그마한 나무 상자를 저금통으로 하여 100원짜리 동전도 넣고, 천 원짜리 지폐도 넣고, 호주머니에 있는 대로 푼돈을 넣었다. 술을 먹고 기분이 좋으면 5만 원짜리도 넣고 만 원짜리도 넣었는데 며칠 전부터 돈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상자가 가득찬 것이다. 그래서 젓가락으로 휘저어 또 조금 더 넣고 하다가 그제는 아무리 해도 돈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날 밤 술에 취해 들어와서는 내자와 함께 자개 상자를 열었다. 이제 ’박정희 전기‘를 살 만한 돈은 모아졌으리라 생각했는데 세어보니 100만 원이 넘었다. 내자와 함께 놀랐고 “이게 저금통의 힘이구나” 하면서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100만 원이 거저 생긴 기분이었다.

서둘러 컴퓨터로 조갑제닷컴에 들어가서 ‘박정희 전기(全13권)’를 주문하는데 우리집 주소가 다르게 적혀 있어서 그걸 애써 바르게 고쳐도 고쳐지지 않았다. 내일 술이 깨면 다시 주문하리라 마음먹고 궁시렁대면서 잤다. 이튿날도 마찬가지로 안 되기에 할 수 없이 조갑제닷컴에 전화 통화를 하여 주소를 좀 바로잡아 주십사 하려 했다. 전화가 됐는데 어느 직원분과 통화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분이 너무나 친절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부끄럽지만 사실대로 말한다. 그 여성분의 음성이 아주 고왔다. 나는 평소에도, 여성은 얼굴보다 음성이 고와야 된다는 주장을 해 왔다. 그래서 여성의 음성이 보통으로 고와서는 곱다는 소리를 안 한다. 그런데 전화를 받는 여성분의 음성은 그야말로 옛날식 표현대로 은쟁반에 옥구슬을 굴리는 듯한 청아(淸雅)한 목소리였다. 그러다 보니 늙은 내가 말을 더듬었고 쓸데없는 소리도 했다. 심지어 “저가 무학산입니다”는 말까지 했다. 남자라는 동물은 고운 여자 앞에 서면 늙으나 젊으나 心中이 흔들림을 다시 확인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정신이 들어서 내가 투박한 경상도 말을 한 것도 미안해졌다. 또 기분 좋은 것은 “저가 무학산입니다”라고 말하니 그분이 “아!” 하면서 알아주었다. 그리고 “조갑제 선생님께서 무학산 님의 글을 방송도 하셨지요”라고도 했다. 남이 나를 알아주니 기쁘고 들떠서 하루 종일 휘파람을 불고 다녔다. 남이 알아주는 게 오죽 기쁜 일이면 사기(史記)도 이런 말을 했겠나. “남자는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걸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해 주는 남자를 위해 화장을 한다(士爲知己者死 女爲說己者容)”

그렇게 주문한 책이 오늘 도착했는데 날수로 하루 만에 온 것이다. 서울에서 보낸 책이 남쪽 끄트머리에 오는데 한나절밖에 안 걸린 셈이니 참 좋은 세상이다 오늘도 술에 취해 들어와서 이 글을 쓰는데 부끄러운 말씀을 또 하겠다. ‘박정희 전기(全13권)’를 두 손으로 고이 받쳐들고 우리집을 한바퀴 돌았다. 그리고 이 방 저 방 방마다 돌았다. 그 후, 책을 내 방 윗목에 올려놓고 큰절을 했다. 내일 아침 술이 깬 맑은 정신으로 포장을 곱게 열고 제1권을 책상에 올려놓으며 각하에 대한 묵념을 하고 나서 비로소 읽을 참이다. 이 빛나는 역작. 역사에 남을 저서를 쓴 조갑제 선생께도 감사의 마음을 가지겠다. 내가 술꾼인지라, 언제 완독(完讀)할지는 모르겠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대로 독후감을 써올릴 것이다. 그래야 박정희 각하와 조갑제 선생에 대한 예의를 조금 차리는 것이 될 것이다.

문필로 이름을 떨치며 한 시대를 호령하는 조갑제 선생의 닷컴 회원인 것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부끄럽다 그야말로 경세의 글인 ‘박정희 전기’를 이제야 읽게 됐음이. 포장지에는 이런 명구가 적혀 있다

“한 근대화 혁명가의 비장한 생애. 더러운 강물 같은 한 시대를 삼켜 바다와 같은 새 시대를 빚어낸 ‘한 소박한 超人’의 생애가 펼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