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개미(1)

동족인 개미보다 타민족인 명주잠자리가 더 친절하다니! "꼭 복수하리라! 복수 안 하면 나, 개미 아니다." 부지런한 개미 가족에 게으른 개미 한 마리가 살았습니다. 남들은 짱짱한 햇빛 속에서, 바람 찬 맨 땅 위에서, 매몰찬 사람의 집 부엌에서, 컴컴한 썩은 나무 속에서, 징그러운 진딧물 뒤꽁무니에 붙어서, 열심히 열심히 식량을 모아 오는데, 이 개미만은 빈둥빈둥 놀기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꾸중도 더러 들었지만, 이젠 아무도 말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들은 척 만 척 딴 짓만 하니까요. 똑똑한 개미한테는 바보인 척 멀뚱멀뚱 엉뚱한 곳 바라보고 어리숙한 개미한테는 뚫어질 듯이 그 눈을 쏘아보았습니다.

사춘기가 지나면서 이 개미는 아, 참, 이 개미 이름은 게으미랍니다. 이 게으미가 이젠 부지런한 개미들을 속으로 욕했습니다.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할 걸 왜 저렇게 쌓아 두느냐!'

게으미가 세계일주 여행을 나섰습니다. 이웃 동네로 가서 마침 빈둥거리는 또 다른 게으른 개미를 만났습니다. 이 개미 이름은 게을미라 했습니다.

게으미와 게을미가 만나 어깨동무하고 다니니, 세상에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습니다. 둘은 좌우지당간에 지겨운 일 중독자 개미 세계를 떠나 멀리 멀리 한없이 멀리 가기로 했습니다. 조선에서 희망봉까지 가기로 했답니다.

한 서너 시간을 기어 갔을까요? 배가 고팠습니다. 휘휘 둘러봤더니, 마침 지렁이가 한 마리 보이더군요. 어느새 낯선 개미들이 새까맣게 달라붙어 지렁이를 끌고 가고 있었습니다. 게으미가 게을미에게 슬며시 눈짓하여 거기 끼어 들었습니다. 슬슬 눈치 보면서 일하는 척하고 막 뜯어 먹었습니다. 서너 번 뜯어 먹었을까요? 아무래도 눈치가 이상해서 흘깃흘깃 지켜보던 낯선 개미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게으미와 게을미를 물어뜯었습니다.

다리가 한 개 떨어져 나간 게으미, 허리가 부러진 게을미. 나무 그늘에 처량하게 누워서 마냥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집 생각, 고향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이 때 크고 아름다운 명주잠자리가 한 마리 날아왔습니다.
'아유, 불쌍해라. 자, 우선 이거나 먹어라.' 명주잠자리는 입에 물고 있던 나무 즙을 한 모금씩 뽀뽀하듯 먹여 주었습니다.
게으미와 게을미는 눈물이 났습니다. 엄마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허기가 좀 가시자 머리가 맑아지면서 문득 괘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족인 개미보다 타민족인 명주잠자리가 더 친절하다니!
'우리 엄마, 아빠한테 일러서, 형들이랑 누나랑 같이 와서 꼭 복수하리라! 복수하고 말리라! 복수 안 하면 나, 개미 아니다.
'이 아줌마 따라가면 잘 먹고 잘 입게 해 주마. 이 아줌마 옷 봐라, 얼마나 이쁘니? 명주실로 짠 비단옷이야. 노래하는 것도 가르쳐 줄게. 물론, 춤추는 것도. 너희는 놀기만 좋아했지, 어찌 노래도 춤도 젬병이니? 그건 노는 게 아니야. 빈둥거리는 거지.'

그만 복수할 생각도 잊고 상냥한 명주잠자리를 따라갔습니다. 허리 다친 게을미는 아예 명주 아줌마가 안고 갔습니다. 황홀!
'얘들아, 다 왔다. 저기 저 예쁜 깔때기 같은 모래 집 봐라. 예쁘지?'

'앗, 안 돼!' 게을미가 명주잠자리 손에서 툭 떨어지면서 외쳤습니다. 뒤늦게 사태를 알아차린 게으미도 다리 다섯 개로 정신없이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10센티미터도 못 가서 그만 잡혔습니다. 명주잠자리는 아무 소리 않고 그냥 게으미를 개미지옥에 사정없이 밀어 넣었습니다.
'엄마, 고마워요!'
개미귀신은 한꺼번에 개미를 두 마리나 잡아 먹게 되자 너무도 좋아서 뒹굴뒹굴 춤을 췄습니다.

속말: 세상에 공짜는 없다.

(2000.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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