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농장에는 협동이 없다

유일 대지주로서 유일 수용소장으로서, 피와 눈물은 없어도 권력과 재산은 무한정 가진 독재자가 무엇이 아쉬울까?
협동농장에는 협동이 없다

협동농장은 20세기 최대의 악몽이다. 저 무시무시한 악몽, 양차(兩次) 세계대전도 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무릉도원이나 유토피아처럼 들리는 협동농장 때문에 약 1억 명이 희생되었던 것이다. 단지 토지를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지주들은 미친 개처럼 맞거나 죽었다. 잡혀갔다. 대토지 소유자만이 아니라 완고한 자작농과 세상 모르는 소작농도 가차없이 희생되었다. 저승사자는 스탈린과 모택동, 김일성, 폴 포트만이 아니었다. 공산주의 이상향에 눈이 먼 주은래, 등소평, 호치민 등도 손가락 하나로 비협조적인 지주들을 죽이고 악어의 눈물을 흘렸다. 그들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죽인 숫자는 본인도 몰랐다.

산업화가 거의 안 된 나라에서 공산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은 공산당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서구의 역사 발전 단계에 맞춰 그럴 듯하게 이론화한 마르크스의 이론을 곧이곧대로 따르려는 어제의 동지들을 자본가와 지주보다 더 가혹한 방법으로 숙청한 다음, 자본주의를 건너뛰어 바로 '이기심에서 해방된' 공산사회를 향해 질주했다. 그 과정에서 제일 먼저 희생된 사람들이 전 인구의 80%내지 90%를 차지하던 농민이었다. 지주와 자작농을 없애고 전 농민을 소작농 또는 농노로 전락시켰다. 대지주는 공산당으로 일원화되었다.

이름도 아름다운 협동농장에서 농민들은 망연자실했다. 가혹했던 봉건시대나 식민시절보다 훨씬 못했던 것이다. 현물세니 뭐니 하여 이리저리 뜯기고 나면 뱃가죽이 등에 붙은 '내 입'으로 사랑하는 '내 가족 입'으로 들어오는 게 더 적었던 것이다. 와중에 공산당 간부들은 이기심 대신 이타심, 경쟁 대신 협동이라는 거룩한 말씀을 되뇌면서 '내 것도 내 것, 네 것도 네 것'인 양 신나게 챙겼다. 또한 잉여 인력을 사정없이 차출해 갔다. 자본주의 국가를 단숨에 추월하기 위해 공장을 지어야 한다는 명목이었다. 수십만 수백만 죄수와 수천만 새 노동자의 노동력이 자본주의 초기의 영국 노동자보다 더 가혹하게 착취되었다. 중노동에 무임금이었던 것이다. 공장을 세우는 망치 소리와 안전 시설이 전무한 노동현장에서 죽어 가는 노동자들의 단말마 소리가 시나위로 어울렸지만, 재빨리 새 환경에 적응한 배고픈 노력영웅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협동농장을 만들고 새 공장을 짓는 과정에서 수천만이 죽어 가는 것을 보고, 협동농장에 협동의 싹은 말라 비틀어지고 영악한 나태와 음습한 경쟁과 교활한 시기심과 살벌한 감시가 잡초처럼 무성해지는 것을 보고, '이건 아니다!'라고 뒤늦게나마 제 정신을 차린 지도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등소평과 고르바초프였다. 적화통일 10년 후의 베트남 공산당 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이 권력의 정점에 서서 협동농장을 해체하는 순간, 협동이 살아났다. 음습하던 경쟁도 환한 미소를 띠었다. 우르르 감시와 중상모략의 지하 동굴에서 기어 나와 밝은 햇빛이 내리 비치는 광장에서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기 시작했다. 독재자를 찬양하던 노래는 서서히 연인을 그리워 하는 노래에게 밀려나기 시작했다. 덩달아 자본주의 국가들의 공장을 문 닫게 하는 공장이 우후죽순처럼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옛날의 지주보다 잘 사는 노동자들도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오직 한 군데만이 예외다. 민주주의도 없고 인민도 없고 공화정도 없는 김씨조선이 바로 그 곳이다. 김정일 때문이다. 공산귀족 때문이다. 한국의 '아가페적 퍼줌' 때문이다. 소련군 대위가 만들어 놓은 강제수용소와 협동농장과 120만 사병(私兵)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선왕의 유훈을 일점일획도 어기지 않고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은근슬쩍 왕세자를 책봉하여 3대째 물려 줄 준비를 하고 있다. 유일 대지주로서 유일 수용소장으로서, 그는 협동 없는 협동농장을, 일하는 사람보다 감시하는 사람이 더 많은 협동농장을, 나라님 진상용 농장이나 양귀비 농원 외에는 해마다 경술년 흉년인 협동농장을 신주단지 모시듯 모시고 있다. 그것이 절대권력의 초석이기 때문이다.

협동농장 때문에 3백만이 굶어 죽어도, 그는 아방궁을 오가며 오로지 핵무기 개발하고 미사일 생산하고 땅굴 파며, 한국의 역대 반공 대통령들을 욕하고, 사실상 경제적으로 이미 북한을 식민 통치하고 있는 중국보다 10배나 더 인도적 지원을 많이 해 주는 미국에 바락바락 대들고, 지난 60년 동안 현금과 과학기술의 젖줄이었던 조총련이 뿌리박고 있는 일본을 저주하는 것으로 배를 잔뜩 불리고 있다.

피와 눈물은 없어도 권력과 재산은 무한정 가진 독재자가 무엇이 아쉬울까? 대한민국이 아가페적 퍼줌을 끝없이 계속하는 한편, 다른 건 다 제쳐두고라도 불과 몇 년 전 외환위기의 쓰나미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팔짱 끼고 구경하고 있는 사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구원의 밧줄을 던져 준 미국·일본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날이 갈수록 날카롭게 세우는데, 그가 무엇이 아쉬울까? 오히려 권력은 두 배로 재산은 천 배 만 배 늘릴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지 않을까?

협동 없는 협동농장을 이승만 대통령처럼 농민에게 골고루 갈라 주고, 중소 상인과 기업가에게 스스로 먹고산 후 세금으로 애국할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세우면, 그 아래에서 제2의 등소평이 나올 것이지만, 미국과 일본만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까지 한국 편으로 만들었던 노태우의 북방정책이 그 정반대인 김정일의 남방정책에게 맞고 또 맞아 그로기 상태로 몰린 지금, 그가 무엇이 아쉬울까?

안타깝게도 한국의 정치권력과 문화권력은 아가페적 퍼줌에 목을 맬 뿐 북한의 대재앙인 저 협동 없는 협동농장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않는다. 난데없이 이들은 한국에서 협동은 주문 외듯 외고, 경쟁은 악마를 저주하듯 저주하고 있다. 특히 사립까지 평준화 틀에 가둔 교육현장과 89%의 노동자 위에 군림하는 11% 노동귀족이 호의호식하는 노동현장에서, 각각 교육부의 독재적 권력과 노동귀족의 봉건적 기득권은 꽉 틀어잡고서 아랫것들을 향해 화기애애한 협동을 강요하고 있다. 대신 자신들의 강철 권력과 황금 기득권을 위협하는 정정당당한 경쟁은 감사의 칼과 시위의 쇠파이프로 원천봉쇄하고 있다. 이들은 각기 도둑같이 큰 발 아래에 찍 소리 못하는 천만 명을 거느리고 있다.

(2006. 3. 12.)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