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론이 한국을 망치고 있다1/3
상대방에게 티끌 만한 허점만 있어도 이걸 물고 늘어져 그를 거꾸러뜨리는 게 흑백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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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론이 한국을 망치고 있다1/3
 
  한국과 중국, 일본은 각자 뿌리깊은 독특한 단점이 있다. 이 단점이 때로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단점이라기보다 특성이라고 하는 게 좋을 듯하다.
  문제는 나라가 안될 때는 세 나라 어디든 이 특성의 장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단점만 부각된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 나라가 특히 심하다.
  
   그 어떤 중국인도 중화사상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그 어떤 일본인도 섬나라 근성
  (insularity)에서 자유롭지 못하듯이, 한국인은 그 어떤 사람도 흑백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흑백론의 창시자는 요와 금, 원에게 시달리다가 끝내 멸망한 송의 주자(朱子)이다. 조선시대에 주자를 신으로 받들어 모시면서, 특히 조선 중기 이후 주자에 대한 지식을 높이 치켜들고 패를 나누어 싸우기 시작하면서
  흑백론은 우리 나라 사람의 '무의식'이 되어 버렸다.
  조선의 사대부가 왜 그리 대를 이어 정말 피 튀는 당쟁을 계속했을까. 그들이 정말 삼강오륜을 잘 지키기 위해서 목숨까지 걸었을까. 자신의 목숨만이 아니라 자손과 사돈 팔촌의 목숨까지 걸었을까.
  
   천만에 절대 그렇지 않다. 그것은 단지 명분이었다.
   실은 권력 다툼이었다.
   권력에서 밥이 나오나 그렇게 목숨을 걸고 싸우게?
   그렇다. 권력에서 밥이 나왔다. 아니 모든 게 나왔다.
   그 모든 것을 주는 것이 바로 토지였다. 농업 시대에 토지만 있으면, 안 나오는 게 없었다. 양반은 늘어나고 토지는 한정되어 있어서 그 토지를 차지하려고 그렇게 처참한 싸움을 수백 년 동안 계속했던 것이다.
  
   토지가 그렇게 탐났으면 만주 벌판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면 되었을 것이지만, 그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진짜 칼싸움으로는 종놈 하나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다.
  충성을 언제나 소리 높여 외쳤지만, 그것은 군사력이 전혀 뒷받침되지 않은 지극히 기형적인 충성이었다. 이건 주자가 꼭 그랬던 것이다.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천둥소리를 내며 바람같이 벼락같이 쳐들어오는 적군을 향해 오로지 고함만 지를 뿐이었다.
  --네 이놈!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이 짐승보다 못한 놈들아!
  정말 코미디였다.
  
   또한 그들은 단 한 번도 대놓고 토지를 차지하기 위해 당쟁을 하노라고 말한 적이 없기 때문에 만주 벌판을 향해 말을 타고 쳐들어갈 수 없었다.
  (말을 혼자서 탈 줄 아는 양반은 한 명도 없었다. 무반은 이미 조선 중기 이후 양반의 대열에서 탈락했다. 조선 중기 이후 양반은 곧 문반이었다.)
  곧 죽어도 삼강오륜을 위해서, 짐승 같은 자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하기 싫은 말싸움을 한다고 우겼다. 칼을 들고 싸우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경멸했다. 사실은 전혀 칼 들고 싸울 줄을 몰랐다.
  아무 힘이 없었다. 군사력만 있었으면 그들은 열 번도 더 만주 벌판을 향해 달려갔을 것이다. 저 광대한 대지를 차지하기 위해서.
  그보다 먼저 정적을 모조리 죽였을 것이다.
  조선의 양반은 철저한 이중 인격자였다.
  
   싸움에서 최고 논리는 흑백론이다. 상대방을 조금만 긍정해도 자기가 허물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절대 상대방을 긍정하면 안 된다. 상대방을 악마로 만들고 자기편은 천사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고 싸울 수 있다. 자기 편 전체가 똘똘 뭉칠 수 있다.
  
   그러면 도대체 흑백론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 편은 무조건 선(善 white), 상대편은 무조건 악(惡 black)이라고 머리를 총동원해서 우기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티끌 만한 허점만 있어도 이걸 물고 늘어져 그를 거꾸러뜨리는 게 흑백론이다.
  자기 생각은 아무리 엉터리라도 머리를 있는 대로 짜내어 옳다고 유언을 남기면서까지 우기는 게 흑백론이다.
  --전하, 통촉하옵소서.
  
   조선시대는 그래도 최소한의 선은 있었다. 할아버지가 노론이면 아버지도 노론, 큰아버지도 노론, 작은아버지도 노론, 외삼촌도 노론, 고모부도 노론, 이모부도 노론, 형도 노론, 동생도 노론, 나도 노론이었다. 스승이 노론이면 제자도 모두 노론이었다.
  만약 누가 소론으로 돌아서면 그 가족도 그와 의절을 했다. 어머니의 임종도 거절당했다.
   그래서 무려 300년 동안 겨우 너댓 정당밖에 없었다. 정당 체제가 제대로 갖춰지면서 노론, 소론, 남인, 북인 이 네 정당밖에 없었다.
  
   삼강오륜이라는 명분이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바뀌면서 한국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장소로 바뀌었다.
   무수한 정당이 태어났다. 해방 직후에는 500개가 넘는 정당이 있었다던가? 하여튼 누구나 당을 만들었다. 어찌 그리 독립 운동한 사람이 많았던지...
  
   한 사람이 7개의 정당을 만드는 일도 생겼다. 한 사람이 두세 개 정당 만드는 일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희한한 나라가 되었다. 당을 만드는 것은 능력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로 통하게 되었다.
  
   재미있는 현상은 새로이 당을 만드는 것을 욕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당을 만들 때마다 얼마나 거창한 구호를 내거는지 황홀할 지경이다. 내일이라도 당장 정치 선진국이 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만약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으면 새로운 당의 당원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 벌떼같이 일어난다. 새 시대에 새 당을 만드는데, 입을 함부로 놀리는 자는 개혁의지가 전혀 없는 수구반동 세력이요, 덮어놓고 반대만 일삼는 흑백론자라고 가차없이 매도한다.
  
  당을 옮기는 것도 남의 당에 가는 것이 문제지 자기 당에만 들어오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바로 어제 아무리 서로가 격렬히 욕했던 사이라도, 오늘 우리편만 되면 모든 건 불문에 붙인다. 그러다가 내일 다른 편에 가면 또 격렬히 맞비난한다.
   --계속--
  
  
[ 2006-09-19, 21: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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