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측면에서 본 사대주의
원수에게 추파를 던지고 음흉한 타인에게 아양을 떨고 있다. 망하려고 작정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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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외교정책은 한 마디로 말해서 사대교린(事大交隣)이다. 쉽게 말해서 큰 나라는 받들어 모시고 작은 나라는 다독거린다는 뜻이다. 조선이 청구(靑丘)에서 민심을 잃고 쇠약해진 고려 대신 들어서는 사이에 중원에서는 역시 민심을 잃고 쇠약해진 원을 대신하여 명이 들어섰다. 구세력을 군사력으로 제거하고 건국한 조선과 명은 무엇보다 우선해서 국내 정치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신흥강국인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면 서로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두 나라는 평화조약을 맺게 된다. 그것이 바로 중국의 통일국가가 주변국에게 조공을 매개로 상하 서열을 정하고 서로가 침략하지 않기로 약조한 후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외교정책이다.
  
  중국의 천하관에 편입시키는 동북아의 이 전통적인 외교의 상징이 바로 중국의 연호를 쓰는 것이다. 지금은 중국도 서기(西紀)를 쓰지만, 한국이 한때 단기(檀紀)를 썼고 북한이 주체연호를 쓰고 이슬람세계에서 이슬람력을 쓰고 있는 것은 천하관이 다른 모든 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런 국가나 문화권은 제일 다루기가 힘들기 마련이다. 국제 상식이 전혀 안 통하기 때문이다. 하여튼 간단히 말해서 조선의 사대주의는 명에게 '형님!'이라고 한 마디 해 주고 제 영역을 독점적으로 지키는 것이다.
  
  조선과 명 사이에는 여진과 거란이 완충 역할을 하고 있었다. 요 이후에 거란은 거의 멸망했고 여진은 강한 야성을 지니고 명이나 조선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부족의 형태로 텅 빈 만주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명에게는 그들이 가소로운 존재였지만, 조선에게는 그들이 만만찮은 위협 세력이었다. 그래서 조선은 건국 초에 화전 양면 정책을 써서 이들을 귀화시키는 한편 태종과 세종 연간에 뜨거운 맛을 여러 번 보여 주었다. 덕분에 조선은 최윤덕과 김종서를 앞세워 국경선을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넓힐 수 있었다. 왜구가 문제였으나 일본도 어느 정도 큰 영주를 중심으로 안정이 되어 가면서 약탈 행위가 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심할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상왕으로 물러선 태종의 지시로 이종무가 대마도를 정벌하여 태평성대의 기틀을 만들 수 있었다.
  
  외부로부터 침략을 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어지면 국내에서는 권력다툼이 치열해진다. 조선에서는 세조가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계유정난). 명에서도 약 반세기 전에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다(정난의 변). 양국 다 강력한 왕권이 성립된 것이다. 이렇게 국경선이 안정된 상태에서 강력한 왕권이 성립되면, 신하들의 반란을 두려워해서 국가의 군사력을 약화시키게 된다. 국경선이 불안한 상태에서 왕권이 강화되면 군사력을 한층 강화시키는 경우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세조는 군사력에 의하지 않으면 누구도 왕권에 도전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고려말 이래 자위수단으로, 권력 쟁취 수단으로 유지하던 칼을 신흥귀족들로부터 영구히 빼앗아 버렸다. 그게 바로 사병혁파이다. 태종 때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강도가 훨씬 강하여 완전히 뿌리를 뽑아 버렸다. 이 정책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조선이 망할 때까지 의병 외에는 누구도 사사로이 병력을 유지할 수 없었다. 역성혁명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조선이 500년간 유지될 수 있었다.
  
  세조 이후부터 조선은 절름발이 국가가 된다. 문무의 조화가 완전히 깨진 것이다. 이것은 명도 마찬가지였다. 말만 황제국이었지 명은 변방의 한 국가가 정병을 일으켜 쳐들어가면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을 정도로 취약한 군대를 갖고 있었다. 조선이 마음먹고 군대를 키웠으면 얼마든지 명을 도리어 신하국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것은 후에 조선한테도 슬슬 기던, 겨우 인구 30만의 여진족이 약 10만명의 팔기군으로 1억5천만의 명을 무인지경으로 짓밟은 것을 보면 절대 허튼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만약 일본이 한국에 오지 않고 바로 바다를 통해 중국에 쳐들어갔으면 명을 도모했을 가능성이 아주 컸다. 임진왜란 후 바로 등장하는 후금의 팔기군에 비해 그 당시 일본은 인구도 월등히 많았고 조총으로 무장하여 군대도 훨씬 강대했기 때문이다. 조선이 일본을 물리친 것은 거의 기적적인 일이었다. 1894년 청일전쟁 후 일본이 바로 중국과 일전을 벌였어도 능히 중국을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때는 서구 열강이 너나 없이 중국을 넘보던 때였으므로 일본은 더 이상의 욕심은 내지 못하고 작은 대만과 조선을 식민지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최종 목표는 당연히 중국이었다.
  
  문종까지만 해도 조선은 문무가 조화를 이루어 군대 양성과 신무기 개발에 부단한 노력을 경주했다. 세종까지는 전쟁을 숱하게 도발하기도 했다. 이것은 외교 정책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사대주의의 형식을 취하되 여차하면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말이나 글이 아니라 칼과 방패로 스스로를 지키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독립국의 지위를 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 정치용으로 군대를 극도로 약화시키고 나면, 국가는 더 이상 정상국가가 아니다. '성인' 국가가 아니다. '유아' 국가 또는 '사춘기' 국가이다. 이 때부터 사대주의는 대국의 안보 우산에 자신을 전적으로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 다 자란 닭이 늙은 어미 닭의 품을 바라보고 근처에서 빙빙 돌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현실은 개가 장난하거나 솔개가 내려오거나 족제비가 물어뜯으면 병아리든 중닭이든 어미 닭이든 수탉이든 혼비백산 도망가기에 바쁘다.
  
  군사적으로 아무 힘도 없는 명에 기대어 조선은 스스로 나라를 지킬 칼을 버리고 한 손에는 우아하게 붓을 들고 또 한 손에는 백성을 두들겨 잡을 육모방망이를 꼬나 쥐었다. 스스로 지킬 힘이 없는 조선은 명을 모든 면에서 감히 쳐다보지 못할 존재로 여기게 되었다. 그 사이 양반들은 무장해제된 백성에게 헛기침 한 번으로 오금을 질리게 만들었다. 평화가 곧 가렴주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지배층은 서로 권력을 잡기 위해서 온갖 고상한 '대국의 고전'을 들먹이며 치열한 말싸움을 계속했다.
  
  이럴 때에 일본이 쳐들어온 것이다. 과히 무인지경이었다. '역사의 기적'(일본의 국민 작가 시바 료타로의 말) 이순신 장군이 없었으면 두 달 안에 나라가 넘어갔음에 틀림없다. 안보 우산을 넓게 펼치고 명이 원군이랍시고 왔지만, 그들도 오합지졸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바다를 막지 않았으면 일본군이 군량미를 넉넉히 확보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명군은 일본에 상대가 안 되었을 것이다. 아사 직전의 일본군과 싸워 평양성을 탈환한 것 외에는 명군은 일본군과 싸움다운 싸움을 한 게 없었다. 패잔병 일본군한테 도리어 벽제 전투에서 혼비백산했을 뿐이다. 명군은 상징적인 존재 곧 이빨 빠진 호랑이였다. 조선의 백성편에서 볼 때 그들은 또 다른 침략자였다.
  
  200년 평화로 칼이 녹슨 조선과 명은 결국 야만인 취급을 받던 왜와 여진에게 속수무책으로 치욕을 당했다. 명은 결국 망했고 조선은 군대가 허약하기 짝이 없는 명(털 다 빠진 늙은 어미 닭)에 대한 의리(꼭 구해 줄 것이라는 망상)를 지키다가 두 번 더 전쟁의 참화를 겪고 치욕적인 항복을 했다. 그리고는 다시 청의 안보 우산에 들어감으로써 나라의 명맥을 유지했다. 한 번의 왜란과 두 번의 호란을 겪고도 끝내 스스로 지킬 군대가 없으면 어떤 국가도 국가 사이에서 국가 대우를 못 받는 '유아' 국가 내지 '사춘기' 국가임을 모르고, 아니 알면서도 문관과 유생들이 청의 안보 우산 아래서 꿀보다 달콤한 기득권을 계속 누리기 위해 부지런히 사대했다. 이불 속에서 활개치면서 청에 대해 이를 갈고 스스로 소중화라고 뻐겼다.
  
  효종의 북벌 정책이 강군 정책이 아니냐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청으로 보아서는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전혀 위협이 안 되었다. 조선은 이미 세 번에 걸친 전쟁으로 나라가 초토화되어 거의 멸망한 거나 다름없어서 그 당시의 조선 군대는 청의 팔기군에 비하면, 병든 강아지가 호랑이가 안 보이는 개집에서 이따금 신경질적으로 짖으며 개집을 한번씩 물어뜯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효종의 북벌 정책은 왕권을 강화하려는 목적에 이용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강력하던 청의 팔기군도 평화가 200년간 지속되는 중에 종이 호랑이로 변했다는 것이다. 명에 이어 청의 안보 우산에 들어간 조선은 말할 것도 없다. 닭 잡을 힘도 없었다. 맹수의 왕 호랑이라도 호통 한 마디로 무릎 꿇릴 듯이 큰소리 치다가 막상 닭 한 마리 잡으라고 하면 부들부들 떨면서 도망가는 심약한 가장과 비슷했다.
  
  19세기 말 청은 서구 열강과 산업화에 성공한 일본이 쳐들어오자, 천하제일무공 태극권으로 단숨에 물리치겠다며 분기탱천하여 맨주먹으로 달려들거나 손오공의 도술로 단숨에 물리치겠다고 비바람을 불러온다며 흰 수염을 날리며 태산에서 손을 쳐들곤 했다. (1899년 의화단의 난 때, 예부상서 계수는 이렇게 말했다. '오대산의 승려 보제는 신병 10만명을 거느리고 있으니 보제를 불러들여야 한다.' 어사 팽술은 또 이렇게 말했다. '의화단의 신통력이야말로 총에 맞아도 상처를 입지 않으니 외국 군대 따위는 족히 두려워할 것이 없다.')
  
  군대만이 아니다. 조선은 정치도 썩어 문드러졌고 경제도 짓물렀다. 제일 심각한 것은 의식구조였다. 신교육, 과학기술진흥, 산업혁명--이것만이 살 길이었는데 보고도 못 보았고 듣고도 못 들었다. 안보를 중국에 맡겨놓고 천년 만년 토지를 뜯어먹으며 종을 후려치고 말 대신 백성 위에 걸터앉아 온갖 고상한 말을 골라하며 '무릉도원' 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다. 가장 훌륭한 유학자는 '위정척사'를 부르짖으며 '개혁개방'하려면 먼저 도끼로 제 목을 치라고 울부짖고(오늘날의 북한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 한국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자들이 스스로 진보파요 통일세력이요 민족주의자라며 '반공냉전세력'을 손가락질하며 울부짖고 있다.) 가장 훌륭한 선각자는 일본이나 청이나 러시아에 목숨을 구걸했다. 단 한 명도 과학기술과 산업혁명에 대해 서양으로 건너가서 배우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군사력을 갖추지 못한 사대주의가 뼛속까지 파고들어 오로지 망한 명나라나 죽은 조상이 가져다 줄 기적이나 바라고, 중국의 한 지방보다 작은 서구 열강도 중국을 압도한다는 것은 생각도 않고 미국은 인구는 적으나 중국과 땅덩어리가 비슷하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고, 러시아는 중국보다 훨씬 크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러시아나 미국이나 영국이나 불란서나 일본이나 인륜을 모르는 작은 오랑캐들로 보고 호통을 쳐서 쫓아버리거나 다독거릴 생각이나 했다. 이것이 사대교린 중에 교린(交隣)에 해당한다. 그러나 차츰 겪어 보니 어느 나라나 다 만만찮은지라 나중에는 이들 중 어느 국가나 사대의 대상이란 걸 깨닫고 한 패는 이쪽에 붙고 또 다른 패는 저쪽에 붙고 그랬던 것이다.
  
  안보를 중국에 맡기고 '지상낙원'에서 살았던 조선 양반의 피를 이어받아 한국인은 지식인의 99%가 아직도 안보가 무언지 거의 모른다. 내일 당장이라도 남침할 수도 있는 북한을 철석같이 믿고 의심하지 않는 것을 자주요 평화요 통일이라 확신하고 '오랑캐 미국'에게 욕하고 저주하고 뒤통수를 친다. 망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6·25와 월남전 이후 한국은, 조선 초에 사대를 표방하면서도 누구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군대를 유지했던 때보다 훨씬 나은 상태인데, 당의 힘을 빌려서 일단 백제와 고구려를 한 집안으로 끌어들인 다음 나중에 엉뚱한 생각을 할 게 뻔한 당군을 몰아낼 계획을 세우던 때와 비슷한데, 세조가 왕권강화를 위해 군대를 약화시켰듯이 국내 정치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스스로 군대를 약화시키고 두 전쟁을 통해서 혈맹이 된 둘도 없는 친구를 내쫓고 있다. 원수에게 추파를 던지고 음흉한 타인에게 아양을 떨고 있다. 망하려고 작정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조상에게 물려받은 의식구조는 그렇게도 바꾸기 힘든 모양이다.
  
  (2004. 6. 25.)
  
  
[ 2006-09-22, 13:3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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