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보복
저들은 인류가 치른 99%의 전쟁이 시장이 사라진 곳에서 추는 죽음의 춤(danse macabre)임을 상상도 못하고 있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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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보복
 
   시장은 자연과 비슷하다.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선에 위치한 물은 자연의 말없는 대리자인데, 물 한 방울은 개미도 무서워하지 않고 참새 한 마리의 갈증도 풀어주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이 모이면 강이 되고 호수가 되고 바다가 된다. 물은 때로 화가 나면 산과 들과 도시를 순식간에 폐허로 만들기도 하지만, 거의 언제나 생색 한 번 안 내고 수천억의 수천억의 수천억 생명의 젖줄이 된다.
  
   무지하고 교만한 인간한테는 시장이 한없이 나약하고 더없이 가증스러워 보이지만, 그런 자가 시장을 아예 무시하고 얕은 지식과 낡은 도덕과 거대한 권력으로 명령과 지시로 날뛰고 규제로 옥죄고 세금으로 학대하면, 시장은 100만도 채 안 되는 인구조차 수백 년 간 굶주림에 허덕이게 내버려둔다.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하는 겸손한 인간은 시장이 한없이 무서운 동시에 더없이 자비롭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 사람이 지도자로서 낮은 자리로 내려와 자연에 순응하듯이 시장에 순응하고 시장을 키우면, 시장은 10억 인구도 능히 배불리 먹여 준다.
  
   상업과 공업을 최대한 억제한 대부분의 봉건주의자들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처럼 아랫것들의 굶주림과 질병을 당연시했다. 공산주의자들은 한 수 더 떴다. 봉건주의를 짓밟고 올라서서 자본주의의 시장 타도에 몸과 마음을 다 바친 공산주의자들은 봉건주의자들보다 사악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상업을 적대시하고 경공업을 경멸함으로써 시장을 얼음 궁전에 가두어 버렸던 것이다. 공산국가의 어두운 뒷골목 시장은 봉건시대의 활기찬 시골장터보다 못했다. 드디어 중앙 통제적 분배제도로 시장을 박멸했다며, 지상낙원을 건설했다며, 희희낙락하는 공산당에게 시장은 잔인한 보복을 가했다. 육체의 굶주림에 영혼의 굶주림을 덤으로 얹어 준 것이다. 시장이 사라진 곳에 때려죽임과 가둠과 굶김과 굶주림은 일상사가 되었고, 시장이 사라진 곳에 감시감독과 선전선동, 증오와 불신, 명령과 복종은 살아남음의 동아줄이 되었다.
  
   어떤 세뇌 작업에도 결코 로봇이 될 수 없는 호모 사피엔스는 이렇게 해서 육체든 영혼이든 대를 이은 영양실조로 앙상해졌다. 공산당으로부터 아무리 독버섯으로 지탄되며 탄압 받아도 암시장은 점점 커지며 지치고 굶주린 노틀담의 꼽추들에게 천사로 다가갔다. 거긴 빵의 축복이 있었고, 자유의 공기가 있었고, 진실의 교실이 있었고, 신뢰의 은행이 있었고, 사랑의 보금자리가 있었다.
  
   마침내 시장은 공산독재의 허리를 단숨에 꺾어 버렸다. 공산당은 햇빛 한 줄기 없는 지하로 숨어들었고 시장은 햇빛 찬란한 광장으로 걸어 나왔다. 평화? 아니었다. 태풍처럼 극심한 혼란이 엄습했다. 깨진 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시장의 몸부림은 인플레이션의 폭풍으로 다가왔다. 질풍노도처럼 커지던 국제 시장을 세계대전으로 박살낸 독일에 시장이 가한 인플레이션의 폭풍과 유사한 폭풍이 몰아친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1992년에서 1996년까지 불과 5년간 무려 175배 곧 17,500%나 물가가 상승했다. 인위적으로 억눌렸던 가격이 현실화되는 과정은 그렇게 무자비했다. 시장에 고개를 반쯤 숙인 소련의 전 국가원수 고르바초프가 수령하는 1년치 연금이 한 달 빵 값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시장을 무시하고 노동자농민을 탄압한 공산권과 정반대로 시장을 조롱하며 노동자농민에게 아첨한 남미에 불어닥친 인플레이션의 폭풍도 시장의 보복이긴 마찬가지다. 시장은 때로 디플레이션으로 보복하기도 한다. 일할 생각은 않고 시장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초콜릿 주세요, 껌 주세요, 하는 자들에게는 대공황이라는 전쟁보다 더한 디플레이션으로 보복했던 것이다. 오늘날도 심심찮게 들리는 블랙 먼데이, 버블 붕괴 등도 시장의 작은 보복이다.
  
   90년대에 70여 자본주의 국가에 몰아친 금융위기도 시장의 보복이다. 새로운 국제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는 나라들에게 가차없이 예방주사를 놓아 준 것이다. 시장을 무시하고 조롱한 죄가 유난히 컸던 나라들은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중남미는 카운터펀치를 여러 차례 얻어맞았다. 100여년간 세계 시장을 지배했던 영국도 1976년에 턱을 강타당해 바로 캔버스에 드러누웠다. 교만한 자는 언제라도 시장은 보복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시장의 속마음을 읽은 단 한 사람에 의해 교만을 미련처럼 간직한 채 색 바랜 바바리코트를 걸치고 잘난 척하던 영국의 파운드가 1992년에 정밀타격을 받았다.
  
   1997년에는 기고만장하던 인도네시아의 루피아와 태국의 바트와 한국의 원화가 차례대로 시장의 보복에 거꾸러졌다. 1998년에는 러시아의 루블이 국제시장에 무조건 항복했다. 일찍이 1985년에는 얄밉도록 이기적인 일본의 엔화도 집중포화를 맞았지만, 사무라이 후손들은 시장에 순응함으로써 뼈를 깎는 고통을 겪으며 서서히 제자리를 찾고 있다.
  
   시장은 세계 최부국이라고 봐 주지 않고 인구 대국이라고 눈감아 주지 않는다. 세계 최빈국이라고 경멸하지 않고 인구 소국이라고 무시하지 않는다. 겸손하게 시장에 순응하고 당당하게 시장과 협력하면 아낌없이 도와 주고, 그렇지 않으면 왕주사로 만인이 보는 데서 엉덩이를 까서 따끔한 예방주사를 놓거나 살점이 떨어지고 피가 튀는 회초리를 휘두른다.
  
   한국은 외환위기를 겪고도 시장에 원한을 품은 무지한 정치꾼들이 위기를 교묘히 악용하여 연이어 집권한 후에 시장을 모멸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기기묘묘한 규제는 날로 늘고, 눈먼 돈이 비음과 비비꼼으로 유혹하는 남미식 복지는 눈 더미처럼 커진다. 노동자농민에게 설탕과 조미료를 듬뿍 안겨 주어 당뇨병에 시달리게 하고 혀를 얼얼하게 만든다. 특히 인기작전을 펴기에 안성맞춤인 부동산시장과 교육시장과 노동시장에서 아예 시장 자체를 없애려고 날마다 달마다 마녀사냥에 나선다. 청와대와 여당과 여당보다 더 여당다운 일부 야당과 시민단체와 방송과 학자가 무당박수처럼 춤추고 노래하고 환호한다. 공공의 이익을 앞세워 큰 도로 한가운데에서 가장행렬을 하면서 규제와 지시와 명령과 세금으로 시장을 때려잡는다. 특히 만인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그저 그만인 부동산시장과 교육시장과 노동시장, 이 세 시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
  
   이에 부동산시장은 버블 세븐의 초인플레이션으로 보복하고 교육시장은 사교육의 불패와 해외유학의 빅뱅으로 보복하고 노동시장은 10% 노동귀족과 90% 노동서민의 계층 고착과 실업률의 고공행진으로 보복한다. 공산국가에서 그러했듯이 시장 혐오자들이 내세우는 바와는 정반대로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고 무식한 사람은 더욱 무식해진다.
  
   전 세계에서 시장이 가장 가혹한 탄압을 받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도 한국의 시장 혐오자들은 북한주민의 고통을 연장시키고 심화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전 세계의 시장 순응자들이 간곡하게 말림에도 전혀 아랑곳없이 쇼윈도 관광과 쇼윈도 공단을 시장의 트로이 목마로 역선전선동하고 반론보도하고 국정 브리핑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 사이 시장은 무자비한 보복으로 한민족 300만을 굶겨 죽이고도 모자라 한민족 2천만이 영양실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내버려둔다. 잔인한 시장은 북한의 장마당을 통해 5년간 2천%(공식환율 1달러에 150원, 시장환율 1달러에 3000원)라는 초인플레이션을 선사하고 있다. 분노한 시장은 증오와 불신에 가득 찬 땅에서 땅을 칠 힘조차 없는 2천만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한편, 얼마나 괴로우면 하나같이 전쟁을 학수고대하는 2천만이 영영 생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시장을 구둣발로 짓이기는 김정일 정권의 다리 힘을 길러 주는 뒷돈을, 한국의 자칭 민족공조파는 세계시장에 당당히 맞서서 독립자금 대 주듯이 시대적 소명 의식을 갖고 대 준다.
  
   남북의 정치권력이 이심전심으로 뒤를 든든히 받쳐 주는 문화권력과 사방에서 손뼉 치고 발을 굴려 주는 사회권력을 믿고 평화의 시퍼런 깃발을 앞세우고 자주의 요란한 북을 울리며 7천만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끌고 가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저들은 인류가 치른 99%의 전쟁이 시장이 사라진 곳에서 추는 죽음의 춤(danse macabre)임을 상상도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저들은 정반대로 생각하고 있다. 무식이 하늘을 찌르고 독선이 땅을 뒤덮는 저들은 시장이 자신들의 권력에 개처럼 꼬리를 말고 복종하기만 하면 생명의 나무에서 생명의 즙이 가득 든 생명의 과일이 주저리주저리 달리는 줄 안다. 누가 저들을 말리랴, 시장 외에는!
  
   (2006. 11. 14.)
  
  
  
  
  
[ 2006-11-14, 19:1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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