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저항은 민주주의의 맹아(萌芽)
민주주의는 사유재산의 보호다. 부당한 조세에 대한 저항이다. 암담한 현실에서 한 줄기 상서로운 빛줄기가 보인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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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저항은 민주주의의 맹아(萌芽)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조세저항이 시작되었다. 첫눈처럼 상큼한 소식이다. 한국인이 드디어 스스로의 힘으로 생활에서 우러난 민주주의를 시작했다는 뜻이 거기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한국인은 지식인의 관념(지적 유희)과 정치인의 선동(권력욕)에서 비롯된 민주란 환상에 휘둘려 민주라는 말만 들어도 괜히 가슴이 뛰고 콧날이 시큰해졌지, 구호를 외치고 화염병을 던지면 절로 찾아오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그것이 없으면 얼마나 괴롭고 아프고 쓸쓸한지, 내 부모 자식이 눈앞에서 죽음을 당하는 것처럼 괴롭고 내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것처럼 아프고 사랑하는 내 짝이 두 사람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영원히 떠나가는 것처럼 쓸쓸하다는 것을 실감한 적이 없다.
  
   국가 권력이 국민이 정당한 노력과 정보 선점으로 번 재산을 국가라는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자들의 치부나 권력유지를 위한 징벌적 수단으로 터무니없이 빼앗아 가면 국민은 그 권력을 더 이상 보호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원수로 생각한다. 가렴주구가 극에 달하면 자연발생적으로 민란이 일어나거나 외침이 발생한다. 내전이 계속되다가 강력한 어느 집단이 권력을 잡고 세금을 대폭 감해 주면 새로운 나라가 세워진다. 만약 천하를 통일하더라도 가렴주구가 또 다시 계속되면, 천하는 다시 혼란에 빠진다. 외침도 마찬가지다. 침략자가 또 다른 가렴주구를 일삼으면 거센 저항에 부딪힌다. 그러나 감내할 만큼 세금을 거두면 민초는 침략자도 기꺼이 새 지도자로 받아들인다.
  
   민주주의는 산업화의 부산물이다. 이전에는 멸시의 대상이던 상공업자가 부를 축적하여 전혀 새로운 계층인 부르주아로 등장하면서 이들은 방탕한 군주와 음란한 귀족의 채권자로 올라선다. 그런데 군주와 귀족은 주제를 모르고 사치와 전쟁을 일삼으며 권력의 불을 내뿜어 빚 문서를 불사르고 채권자인 부르주아를 사악한 집단으로 몰아 세금의 칼을 휘둘러 그 재산을 강탈하려 들었다. 이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들고일어난 것이 영국의 명예혁명이요, 프랑스의 혁명이요, 미국의 독립전쟁이다. 이전의 농업시대와는 달리 이들은 돈이 있었기 때문에 왕과 귀족에 맞설 수 있는 군대를 동원하거나 지원할 수 있었다. 또한 이들은 권력보다는 재산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이전처럼 또 다른 군주나 귀족으로 올라서기를 거부했다. 왕이든 귀족이든 대통령이든 수상이든 국회의원이든 시장이든 일반 서민이든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길 원했을 따름이다. 그래서 혁명에 성공하더라도 새로운 폭군으로 군림하지 않았다. 민주 국가를 건설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조세저항이 곧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이전의 군주보다 더 악랄하게 아예 부르주아를 말살하여 그 부를 한 푼도 남김없이 강탈하려고 한 마르크스-레닌-모택동-김일성은 스스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했듯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민중의 탈을 쓰고 천사인 척한 전체주의적 독재자였다. 이들의 뜻을 그대로 이어받은 공산국가는 아무리 힘없는 사람이라도 두 사람만 모여도 일일이 감시감독하여 부르주아가, 중산층이 일어서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국가의 이름으로 소득의 99%를 공산당이 착취해 가면서 세금이 없는 나라라고 역선전하면서 그 누구도 조세저항에 나서지 못하게 했다. (공산당의 나라 중국은 아직도 예를 들면, 프로 바둑기사가 국제대회에서 획득한 상금의 70% 이상을 강탈한다.) 그 순간 공산당의 호의호식은 끝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한국은 왜 조세저항이 없었을까. 그것은 첫째 자유민주가 미국의 핵 폭탄 두 방으로 얼떨결에 공짜로 얻은 것이라 그것이 얼마나 많은 피로 얻어야 하는 것인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냥 책이나 신문이나 방송에서 눈대중으로 귀동냥으로 훔쳐보고 얻어들은 사이렌이나 신기루에 지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것은 북한에 강요된 공산주의보다 좋은지 안 좋은지도 잘 몰랐다. 제대로 안 사람은 그 당시엔 어쩌면 이승만 혼자였는지도 모른다. 둘째는 한국인은 세금을 내 본 적이 없고 내더라도 능히 감내할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1970년까지 미국의 원조로 살아가던 나라였다. 이승만 시대는 80% 내지 90%의 재정이 미국의 원조였다. 1961년 박정희가 경제개발을 시작하던 때도 무려 39%의 재정이 미국의 원조로 조달된 것이었다. 경제개발이 착착 성공하면서 비로소 미국의 원조는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여 1970년 국가 예산의 5%를 마지막으로 한국은 100% 재정자립을 달성할 수 있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나라살림을 꾸려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박정희는 국민이 해마다 새 곳간을 만들어도 부족할 정도로 재산을 늘려 주었다. 그러면서 전혀 부담이 느끼지 않을 정도로 세금을 걷어갔다. 그는 경제개발에 필요한 천문학적인 목돈은 세금징수가 아니라 대부분 정부 보증으로 해외에서 조달했다. 그것으로 큰 이문을 남겨 단 한 번도 이자와 원금 지급을 늦춘 적이 없었다. 박정희는 국제금융계의 보증수표였다. 나중에는 서로 빌려 주려고 했다. 그 덕을 후임 대통령들은 톡톡히 보았다. 그 덕을 제일 많이 보아 싸게 외국에서 달러를 싸게 빌려 개도국에 비싸게 빌려 주는 돈놀이를 하도록 종금사를 대폭 허가해 주면서, 대기업이 수출해서 돈 버는 것은 조직적으로 방해했던 자가 김영삼이다. 그는 결국 선진국 수준이던 한국의 국제신용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것이 바로 외환위기의 본질이다.
  
   외환위기를 빌미로 국가부채와 개인부채를 천문학적으로 늘리기만 하고 세금은 세금대로 부유층을 겨냥하는 척 중산층과 빈곤층으로부터 아귀같이 뜯어낸 자가 김대중과 노무현이다. 김영삼은 그래도 국가부채는 철저히 관리했다. 1997년말 60조원밖에 안 되었다. 그 덕에 김대중은 163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투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세계가 국가부채로 잡는 통안증권 155조원을 빼고도 정부 발표에 의하면 2005년 말 국가부채는 248조원이다. 개인부채는 그보다 더 늘었다. 약 300조원이 증가해서 2006년 9월 기준 558조원이나 된다. 외환보유고가 2천억 달러를 넘어섰지만, 그것은 전부 정부가 못 잡아먹어 환장한 기업이 벌어온 것이다. 외환위기 때 국제금융시장의 강요에 의한 환율 현실화와 생존에 기로에 선 기업이 정부와 노조와 시민단체의 팔 비틀기와 발목 잡기와 침 뱉기에도 불구하고 죽자고 뛴 결과다. 정부가 잘해서 벌어온 외화는 1달러도 없다. 반기업정서를 부추기는 정부의 조직적이고 악랄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벌어온 것이다. 정부가 가만히만 내버려두었어도 3천억 달러는 능히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마침내 한국의 중산층이 민주주의의 근본을 깨닫기 시작했다. 민주주의는 사유재산의 보호다. 부당한 조세에 대한 저항이다. 암담한 현실에서 한 줄기 상서로운 빛줄기가 보인다.
  
   (2006. 12. 5.)
  
  
  
  
  
  
  
  
  
  
  
  
  
  
  
[ 2006-12-05, 00:1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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