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화통일의 최대 방해국가는 미국
군사력보다 경제력보다 무서운 것이 집단 무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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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화통일의 최대 방해국가는 미국
 
   12월 5일 흥사단 민족통일본부에 따르면, 최근 서울지역 대학생 1천224명을 대상으로 통일의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통일에 가장 방해가 되는 나라를 묻는 질문에 미국을 꼽은 학생이 51.4%로 가장 많았다. 이어 북한 25.2%, 중국.일본 각 9.6%, 남한 2.9%, 러시아 0.9% 순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아마 이 때의 통일은 적화통일을 염두에 두고 한 대답은 아니겠지만, 적화통일을 기준으로 하면 이 여론은 현실과 상당히 부합된다. 한국이 아직까지 제2 월남이 되지 않은 것은 주한미군과 국군과 반공--이 세 힘 때문이었는데, 이 중에서 이제 주한미군만이 온갖 괄시를 받으면서 간신히 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공산주의 확산 방지에서 대 테러 전쟁으로 전략이 바뀐 21세기 벽두에 미군은 더 이상 원하지 않는 곳에서는 주둔하지 않기로 공개적으로 천명했다(럼스펠드). 좋은 일 해 주고 욕 얻어먹는다면 어느 누가 그 일을 계속할 것인가. 한국 정부의 원대로 미국은 각각 50%씩 행사하던 연합 작전권 체제를 깨뜨리고 각기 딴 살림을 차리기로 했다. 이대로 간다면 미군 철수도 가시권에 들었다. 그렇게 되면 적화통일에 미국은 더 이상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대학생들의 응답대로 한국은 이제 적화통일을 방어하는 데는 2.9% 정도의 힘밖에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이 한국보다 적게 도와 주지 않았는데도 월남이 적화통일된 것은 월남군에 반역자가 들끓었고 반공정신이 월맹의 집요한 통일전선에 의해 와해되어 베트콩이 민족과 민주와 평화를 대표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월남과 정반대였다. 1951년 서독의 헌법재판소가 문을 열자 신나치당 극우세력인 사회주의제국당(SRP)이 자진해서 해산했다. 이어 1956년 서독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독일공산당(KPD)을 해체시켰다. 극우든 극좌든 떼법을 법률에 앞세우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세력에겐 가차없이 법의 작두를 대령했던 것이다. 이로써 동독의 합법적인 교두보가 폭파되었다. 그 후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가 아무리 집요하게 공작하고 홀로 잘난 척하고 깨끗한 척하던 자칭 진보주의자들이 '동독은 신성 불가침, 서독은 무조건 비판'으로 서독의 동방정책을 동독의 통일전선으로 바꾸기 위해 트로이 목마 구실을 충실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에 의한 공산당 해체로 그들은 머리 없는 몸통 이상의 역할을 못했다. 법치와 상식이 게르만의 민심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적화통일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거기에 서독은 동독과의 교류를 철저히 동독 주민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추진했다. 동독의 인권에 대해 특수상황을 절대 들먹이지 않았던 것이다. 서독은 일체의 교류를 동독 주민에게 직접 혜택을 주고 동독 주민의 인권이 개선되는 쪽으로 국한했다. 동독 정권은 동독 주민에 도움을 주기 위해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이 이용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서독은 적화통일과 자유통일 사이에는 공통점이 전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 따위는 적화통일로 가는 구름다리임을 그들은 잘 파악했던 것이다.
  
   아무리 게르만이 개과천선했다고 하지만, 그들이 일으킨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시달린 유럽의 강대국들은 독일의 통일을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유럽의 약소국들은 말없이 이를 지지했다. 서독은 환상도 망상도 없었다. 통일의 최대 공훈자인 외무장관 겐셔는 차가운 현실에 바탕을 둔 이상 곧 자유통일을 위해 자유통일의 동반자인 미국에 비굴할 정도로 바싹 매달렸다. 오늘날의 일본보다 더했다. 유럽의 강대국과 소련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서독 수상이 유태인의 원혼 앞에 수시로 무릎을 꿇었다. (한민족이 자유평화통일을 달성하려면 무엇보다 김정일이 육이오의 기습남침으로 희생된 3백만을 위해 수시로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로써 서독은 동독 주도의 적화통일 동반자인 소련뿐만 아니라 독일 통일 자체를 반대하는 유럽 강대국들을 침묵시켰다. 미국은 사이비 평화주의자들의 갖은 모략에도 아랑곳없이 미군의 군사력을 날로 증강시키고 갖은 욕을 다 얻어먹으면서도 끝까지 반공 정신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공산혁명 처음부터 민심이 돌아선 공산국가의 정치체제를 총 한 방 안 쏘고 무너뜨렸을 뿐만 아니라 위협사격 한 번 없이 게르만에게 자유통일도 선사했다.
  
   인공위성, 휴대폰, 소련의 문서, 옛 공산권의 폭로, 쇼윈도 관광, 미사일 발사, 핵실험, UN의 대북한 인권결의와 제재 등으로 김정일의 공산군사독재와 적화통일 또는 영구분단의 야심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북한 주민은 절대빈곤과 좌익 전체주의로 전쟁 상황에서보다 더 비참하게 산다는 것이 속속히 드러났다. 그들의 요구대로 한국을 위시로 하여 세계가 15년 가까이 무조건 도와 주었지만, 북한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한국만이 번데기가 나방이 되듯이 완전히 변했다. 적화통일을 막는 데 한국은 겨우 2.9%의 역할밖에 못한다는 역설이 발생했다. 자유통일에 미국이 51.4%의 역할을 담당하고 한국은 겨우 2.9%밖에 기여하지 못할 상황이 되었다. 300만 북한 공산당이 한국의 상위 10%의 부를 독차지할 날이 머잖았을지도 모른다.
  
   국제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동시에 국제협력이 그만큼 절실해지는 21세기를 짊어질 한국의 대학생들이, 사심 없는 자유대한의 대학생들이 통일의 최대 방해국가가 미국이라고 생각한다면, 한국은 당분간 희망이 없다. 그들의 소원대로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군사력보다 경제력보다 무서운 것이 집단 무의식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원대로 미국이 나가고 통일이 될 것이다. 단, 그것은 적화통일이다. 아마 그렇게 되면 가장 고통받을 사람은 국가와 부모 덕분에 잘 먹고 잘 산 한국의 대학생이 될 것이다. 최대한 잘 대접받아야, 강제수용소에 가는 대신에 그들은 첫 월급으로 2,500달러가 아니라 개성공단의 근로자처럼 2달러를 받게 될 것이다.
  
   타칭(他稱) 친북세력이 자칭(自稱) 민주세력을 산하에 거느린 현실이 이렇게 암담하다.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한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불과 한 세대만에 지엄한 왕이 화강암에 '쇠' 머리를 찧어 피를 철철 흘리며 오랑캐에게 오체투지한 병자호란을 자초한 조상처럼, 5천년 역사상 가장 비참했던 동란을 겪은 지 불과 반세기만에 자유진영과 위대한 지도자들 덕분에 압도적인 국력을 갖추고도 세계 최대의 우방을 곁에 두고도 하늘을 찌르는 어리석음으로 기어코 제2의 동란을 겪고 나서야, 한국인은 정신을 차릴 것 같다. 400년 전과는 달리 자유와 개방으로 이상과 환상을 구별할 줄 아는 70%의 중산층이 치욕적인 고통을 겪고 나서야 스스로의 머리를 주먹으로 힘차게 내리치면서 자유통일 전의 서독 중산층처럼 자유민주의 법률과 시장경제의 상식으로 무장하고 악과 위선을 물리칠 것 같다.
   (2006. 12. 6.)
  
  
[ 2006-12-06, 14:4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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