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보다 힘든 북한인권운동
북한인권운동에 발벗고 나서는 사람은 하나같이 극우보수, 냉전세력으로 왕따당한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독립운동보다 힘든 북한인권운동
 
   웃찾사 극단보다 더 웃기는 코미디 집단이 아마 대한민국 인권위원회일 것이다. 이 해괴망측한 집단은 3년간의 긴 연구 끝에 북한은 인권위의 조사 대상이 아니라고 최종 결론을 내렸다. 바른 소리 꽤나 하던 안경환이 인권위의 얼굴마담으로 들어가서 낸 첫 작품이다. 머잖아 7천만의 지탄을 받을 감투도 감투는 감투니까 그리도 좋은가.
  
   일제시대에 독립운동하기는 대단히 어려웠다. 특히 국내는 거의 불가능했다. 1919년 3.1운동은 전국민이 궐기한 처음이자 마지막 독립운동의 불꽃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으로 조선의 학생들이 장한 얼을 보여 주었지만, 무더기 퇴학과 정학으로 간단히 진압되었다. 그 여파로 신간회도 이내 해체되었다. 일제의 헌병과 경찰을 향해 백의민족은 돌멩이 하나 던지지 못했다. 그토록 일제는 무서웠다. 의병 한 부대도 없는 뿔뿔이 2천만은 그나마 대부분 문맹이었다. 희망도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문자를 깨우쳤다고 해도 과학기술, 근대법, 군사학 등 일제가 두려워하는 학문을 익힌 자는 거의 없었다.
  
   일제는 조선인이 그런 실력자가 되는 것을 조직적으로 막았다. 황국신민을 위한 소학교 교육이 그들이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선정이었다. 중졸 이상의 학력은 오늘날의 박사학위보다 귀했던 것이다. 공자왈 맹자왈 하는 것으로는 일제의 코털도 건들지 못했고, 이야기책을 더듬더듬 읽는 수준의 한글 독해 능력과 꿀밤 맞으며 면서기나 할 수준의 히라가나 작문 능력도 일제의 바짓가랑이 한 번 잡아당길 수 없었다.
  
   해외에서도 한민족은 어딜 가든 독립운동에 열심을 냈지만, 그것이 일제가 움찔 할 정도라도 된 것은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뿐이다. 그나마 그것도 1920년대였다. 일제가 만주를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한 후로는 만주에서도 더 이상 대놓고 독립운동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독립자금도 태부족이었다. 임시정부의 청사가 오늘날 영등포의 허름한 직업소개소 정도였다. 임시정부의 수장도 굶기를 밥먹듯 했다. 도시락 수류탄 하나 살 돈 마련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해방공간에서 너도나도 독립운동했네, 독립자금 댔네, 정당을 500여개나 만들며 떠벌렸지만, 실지로 독립운동다운 독립운동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중간에 독립자금 배달한다며 배달사고 낸 자도 부지기수였다. 입으로만 독립자금 댄 자는 그보다 더 많았다. 그런 자일수록 독립운동했다고 누구보다 목에 힘을 세게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다른 어떤 민족보다 한민족은 독립운동을 독하게 했다. 일제의 통치가 너무도 가혹하고 교활하여 가시적인 효과를 내지 못했을 따름이다. 어디 있건 무슨 일을 하든 한민족 2천만은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독립운동을 했다. 이완용 같은 친일파들도 뒤로는 독립자금을 댔으니까! 99.99% 독립운동에 찬성표를 꾹 눌렀던 것이다.
  
   북한인권운동은 그렇지 않다. 다들 멀뚱멀뚱 쳐다만 본다. 북한인권운동에 발벗고 나서는 사람은 하나같이 극우보수, 냉전세력으로 왕따당한다. 청와대와 국회와 법원이 공식적인 삼권이라면 방송과 영화와 포털이 한국에선 오늘날 비공식적인 삼권인데, 이 공식 비공식 '3 + 3' 권력이 하나같이 북한인권을 마치 고관대작의 집에 꼭꼭 숨겨 둔 백치 사생아 난쟁이라도 되는 듯이 쉬쉬하며 헛기침을 하며 먼 산을 쳐다보니까, 선량한 국민들도 덩달아 멀뚱멀뚱 하늘의 뭉게구름을 쳐다본다. 기껏해야 '글쎄, 설마'하며 갸웃갸웃할 따름이다. 퍼 주기가 곧 인권개선이라는, 본인도 전혀 믿지 않는 궤변에 고개를 주억거리기까지 한다. 그래야 양심의 가시에 찔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지구상에서 제대로 된 나라 치고 북한인권에 치를 떨지 않는 나라가 없는데, 유기견을 돌보는 것도 병든 물고기 치료하는 것도 TV에 시시콜콜 방영하는 것을 보고 전국민이 눈물을 흘리고 초등학생의 일기와 중고등학생의 두발을 인권과 결부시키는 것에 인권선진국의 긍지를 느끼는 나라에서, 같은 민족 3백만이 굶어 죽고 20만이 맞아 죽고 20만이 강제노역에 시달리고 30만이 국경을 탈출하여 산돼지나 산토끼처럼 토굴이나 움막에서 살고 2천만이 하루 24시간 먹을 것만 생각하면서 외부 정보가 완벽하게 차단된 정보의 블랙홀에서 오로지 3명의 초상화와 동상을 신과 우상으로 모시고 사는데도, 고개를 갸웃갸웃하면서 데면데면하기만 한다. 북한주민에게 '직접' 전달될, 곧 탈북자에게 줄 돈이나 물품은 '바다이야기'의 인어에게 건넸으면 건네고, 쓰레기 봉투 값 아끼려고 재활용 센터에 담았으면 담았지, 놀부 마누라가 주걱으로 밥풀 몇 알 내놓는 것보다 더 아까워하며 도대체 내놓을 줄을 모른다.
  
   기껏 내놓는다 하면 '3 + 3' 권력이 기특하다고 여겨주는 곳에 내놓을 따름이다. 이런 데는 큰손들도 적지 않다. 정부 차원이든 민간 차원이든, 그것은 철두철미 권력과 계급 사회인 북한에서 권력의 상층에만 오롯이 간다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면서 철면피 얼굴로 성형수술까지 해 가면서까지 모른 척하거나 진짜 모른다. 이용당하는 줄도 모르고 이용당하는 숙맥들은 천국 가서 칭찬 받을 생각으로 밤잠을 못 이룬다.
  
   반세기도 더 지난 오늘날까지 이를 뽀득뽀득 갈면서 친일파 어쩌고저쩌고 하는 자들일수록 인류역사상 가장 극악한 코앞의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적반하장으로 독립운동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하는 북한인권운동가들을 싸잡아 수구보수니, 극우니, 사대주의니, 하며 삿대질한다. 그 죄업을 머잖아 도둑같이 새 시대가 오면 어찌 감당하려는지!
  
   (2006. 12. 12.)
  
  
  
  
  
  
  
  
  
  
  
  
  
[ 2006-12-12, 22:5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