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한 마디면 탈북자 30만명도 데려옴
심양 총영사관의 어떤 남과 여가 잘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고 책임자는 외교부의 수장이요, 한국의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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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헌법 제4조
  
   독일 분단 문제의 핵심은 자유다. 자유를 팔아서 통일을 사는 게 아니라, 자유는 통일의 전제조건이다. 민족의 통일은 국민의 자유 속에서 성취되어야 한다. --헬무트 콜
  
   1989년 동독 주민이 물밀 듯이 헝가리, 오스트리아, 체코 등지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서독 대사관의 뜰로, 임시 수용소로, 심지어 공동묘지로 마구 쏟아져 들어갔다. 서독은 즉시 잃어 버린 양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겐셔 외상은 바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어린 양들을 데려오는 조건으로 마르크를 안겨 주었다. 동독 주변국들은 신바람이 났다. 인도주의라는 명분도 살리고 돈이라는 실리도 챙겼던 것이다. 마침내 1989년 8월 9일, 헝가리는 '오스트리아로 탈출하려다가 붙잡힌 동독 주민을 동독으로 강제 송환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들의 여권에 스탬프를 찍지도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No Stamp'에 동독은 격분했다. 당장 동독 주민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라고 난리를 피웠다.
  
   동독 외무장관 게르트 페레스: 현 상황에 대해 책임을 져라! (네 이놈!) 독일 인민은 당신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뽀드득!)
   헝가리 외무장관 귤라 호른: 나를 협박하지 마시오. 당신네 국민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게 우리 잘못은 아니지 않소.
  
   탈북한 국군포로 가족 9명이 심양 총영사관의 '이상한 보호'를 받다가 전원 북으로 강제송환된 일에 대해 국민들이 너나없이 분노하고 있다. 주심양 총영사관에서 납북어부 최욱일씨를 냉대한 일이 들통난 지 며칠만에 더 큰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국민들은 치를 떨고 있다.
  
   외교는 한 나라의 정책이다. 그것은 외교부 장관도 마음대로 못한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외교장관으로 재직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안개 속에서 헤맬 때 영명하신 대통령님께서 '명쾌한 지침'을 내려 주시니, 한 줄기 햇빛을 보는 듯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외교는 대통령의 의지요, 정부여당의 집단의지다. 헌법 제3조와 제4조에 따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흡수통일 곧 자유통일을 원하면, 납북어부와 국군포로를 포함한 탈북자 30만 명을 단 한 명도 빠짐없이 한 달 내에 한국에 데려올 수 있을 것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동티모르와 이라크와 미얀마 국민의 인권에도 밤잠을 못 이루는 사람들이 목숨과 맞바꾸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갔지만 여권이 없어서 최소한의 인권도 보호받지 못하는 한민족을 외면할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되놈들에게 노동력과 성을 착취당하면서 오로지 자유대한을 그리며 노심초사하는 30만 이상의 탈북자 중에 대한민국 정부가 구 서독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서 데려온 사람은 황장엽 씨와 김덕홍 씨밖에 없다. 그나마 김영삼 정부 시절 이야기다. 그 때만 해도 북한이 단 한 명도 없다고 잡아떼던 국군포로 중에서 조창호 소위가 '저승에서 이승'으로 돌아왔을 때 전 국민이 그이를 영웅으로 떠받들었다.
  
   햇볕정책 이후 탈북자는 한국 정부로선 계륵보다 못한 존재였다. 목의 가시였다. 그냥 못 본 척 잘 먹고 잘살다가 목에 탁 걸렸을 때만 받아들였다. 동네방네 알려져서 소위 민주 국가로서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때만 탈북자를 받아들였다. 애초에 햇볕정책은 북한주민이 아니라 한국인과 북한공산당을 위한 정책이었던 것이다. 한국인에겐 평화의 환상을 심어 주고 북한공산당에겐 독재의 영구화를 보장해 주는 돈과 물자를 퍼 주기 위한 것이었다. 반면에 구 서독의 동방정책은 동독의 공산당이 아닌 동독의 주민을 위한 정책이었다. 그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한 정책이었다. 그래서 자유통일을 위한 절호의 기회가 오자마자, 1989년 1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약 10만 명의 동독 주민을 너무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심양 총영사관의 어떤 남과 여가 잘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상명하복하는 공무원에 지나지 않는다. 최고 책임자는 외교부의 수장이요, 한국의 대통령이다.
  
   (2007. 1. 18.)
  
  
[ 2007-01-18, 21:5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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