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재산형성 등 인생을 살아온 궤적(軌跡)이 분명한 사람이라야 문제가 없다.

李相敦 (중앙대 법대 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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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책 경쟁’을 하자고요?
  
  선거 때만 되면 네거티브 공격은 그만두고 ‘정책 경쟁’을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심지어 신문 사설도 그 점을 누누이 강조하면서, 공약을 보고 찍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웃기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에선 특히 웃기는 이야기이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상징하는 무엇을 갖고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가 어떤 정책을 내는가는 부차적 문제다. 상징성을 갖추고, 또 역량을 구비한 후보가 승리하는 법이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 후보는 여론의 집중적 검증을 받게 마련이다. 참모들이 만들어낸 이런저런 공약보다는 한 사람이 살아온 과정이 바로 그의 진면목을 알게 해주는 것이니, ‘사람’ 자체에 대한 검증은 당연한 것이다.
  
  2. “나는 이미 검증 받았다”?
  
  대통령 후보들은 자기들이 과거에 국회의원이나 시장 선거를 통해서 이미 검증을 받았다고 말하곤 한다. 약간 불미스런 일이 있었지만, 과거의 일이고 지난 선거에서 유권자에 의해 검증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웃기는 이야기이다.
  
  존 F. 케네디의 동생인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은 1962년에 매사추세츠 주에서 상원의원 보궐선거(형이 대통령이 되어 생긴 공석을 메우기 위한 선거)에 당선된 후 1964년, 1970년, 1976년, 1982년, 1988년, 1994년, 2000년, 그리고 2006년에 내리 당선됐다. 1968년에 작은 형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되자 주변에서는 그에게 대통령 출마를 권했다. 그러나 그는 1972년과 1976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다. 1969년 7월 먀샤스 빈야드의 차파퀴딕의 다리에서 일으킨 자동차 사고 때문이었다. 그때 차가 개울에 빠져 버렸는데, 술을 먹은 그는 혼자 차 밖으로 나와서 무사했지만 동승했던 젊은 여인은 익사하고 말았던 것이다.
  
  1980년 에드워드 케네디는 민주당 대통령 지명전에 뛰어들었는데, 아마도 상원의원 선거에 두 번이나 당선됐고, 세월도 많이 흘렀으니 1969년 사고는 잊혀 졌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誤算)이었다. 언론은 심심하면 그 사고를 화제에 올렸다. 심지어 사이먼과 가푼켈의 1970년 히트곡인 ‘Bridge Over the Troubled Water’가 다시 유행하곤 했다. (이 노래는 다리에서 사고를 낸 케네디를 연상시켰다.) 케네디는 그 후 대통령 꿈을 아예 접어 버렸다.
  
  1960년 대통령 선거에 나온 존 F. 케네디는 여자관계가 하도 난잡해서 지금 같으면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정치인의 여자관계는 언론에서 다루지 않았다. 게다가 뉴욕타임스 등 주요 신문은 친(親)민주당 성향이었고, 존 F. 케네디의 아버지 조지프는 수십 년 동안 동부의 주요 신문과 방송의 유력한 기자들에게 촌지를 주어 ‘관리’해 왔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인 클린턴은 병역 면제와 아칸소 주지사 시절의 비리 문제로 구설수에 올랐으나 큰 문제없이 당선됐다. 하지만 클린턴이 민주당원이었기에 별문제 없이 지나갔다는 보아야 할 것이다. 클린턴과 관련된 사건은 확증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고, 진보성향의 신문 방송이 12년 공화당 정권을 끝내기 위해 그 정도 스캔들은 넘겨 버렸던 것이다.
  
  3. 대통령 선거는 별개 문제다!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 후보는 그가 시장이나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던 과거에 관계없이 항상 새로운 검증을 받는다고 보아야 한다. 검증이라고 해서 국회 청문회 하듯이 공식절차를 거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계기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문제가 불거져 나와서 신문과 방송이 크게 다루는 것이 바로 검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방송이 한나라당에 절대로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도 큰 요소이다. (1997년과 2002년 선거 때 이회창 씨가 TV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았나를 기억해 보자!) 한나라당 후보는 어떤 빌미만 생기면 물귀신에 빨려 들어가듯이 빠져 버릴 수 있다는 말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아예 그런 소지가 없는 후보를 내는 것이다. 학교, 병역, 직업, 재산형성 등 인생을 살아온 궤적(軌跡)이 분명한 사람이라야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물론 지금 한나라당의 후보 군(群)이 그렇지가 못하다는 데 있다. 서울 시장에 당선됐고, 국회의원을 지냈다는 것은 일단 문제가 제기되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것이 대통령과 시장, 국회의원이 다른 점이다. 에드워드 케네디가 상원의원 선거에선 셀 수 없이 당선이 되어도 대통령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아무래도 여권은 한나라당 후보 군(群)과는 경력이 다른, 말하자면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투명한 경력을 갖은 후보를 내세울 것이다. 그런 후에 이른바 친여 매체가 어떤 포문(砲門)을 열지는 분명할 것이다.
  
  4. 경부 운하와 열차 페리
  
  한나라당 후보 군(群)은 TV 방송이 아주 좋아할 공약을 각각 내세웠으니. 내륙 운하와 열차 페리이다. 다른 추상적 공약과 달리 내륙 운하와 열차 페리는 TV가 특집방송을 준비하기에 대단히 좋은 재료이다. 막강한 TV 프로가 유럽과 미국을 취재해서 내륙 운하와 열차 페리의 ‘진실’을 파헤친다고 상상해 보라.
  
  TV의 내륙 운하 취재진은 독일에 가서 “라인-도나우 운하는 바벨 탑”이고, “운영비도 못 건지는 바보 짓”이라는 인터뷰를 담아 올 것이고, 프랑스 정부는 1997년에 라인-론느 강 운하 계획을 포기했다는 생생한 보도를 해 올 것이다. 6개월 만에 운하를 건설하겠다는 발상이 만화의 한 컷임을 잘 보여 줄 것이다.
  
  열차 페리 취재팀은 해저 터널 개통으로 열차 페리 운항을 중단할 보스포러스 해협을 취재할 것이고, 또 1929년에 미국 오대호 연안에서 침몰해서 많은 희생자를 낸 열차 페리 밀워키 호의 앵커(배는 아직도 못 찾았고 앵커만 건져서 호숫가에 전시해 놓았다.) 모습과, 1966년에 노르웨이와 덴마크 사이를 운항하다가 침몰한 열차 페리 스카게릭 호 사건을 보도할 것이다. 중국의 산둥성과 랴오닝성의 항구를 잇는 열차 페리가 그나마 위안을 주겠지만 말이다.
  
  5. 칼날을 잡은 야당은 각오가 달라야 한다.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은 칼날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대단한 각오를 해야 하고, 또 그러기 때문에 별의별 검증 공세를 버티어 낼 수 있는 후보를 내야 한다. 그런데 이미 형해화(形骸化)된 한나라당의 지도부는 경선이나 공정하게 치르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경선이란 것이 본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찍지 않을 사람이 25%의 지분을 갖는, 해괴한 것이다. 말하자면 오열(五列)이 25%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 ‘운하파(派)’와 ‘페리파(派)’는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고 있으니, 한나라당이 또다시 패착(敗着)의 길로 가지 않을까 걱정될 따름이다. 애국 진영이 무언가 대비를 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http://www.independent.co.kr/
  
  
[ 2007-02-19, 01:3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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