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교수님들, 동창이 밝았습니다
조선의 양반처럼 한국의 교수가 지식을 독점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80년대에 학생들이 새로운 지식 모델을 찾던 중 마르크스와 김일성과 만났지만, 교수들은 멀거니 지켜보거나 그들에게 아첨했습니다.
 


 노고지리도 우짖습니다.

 [대학 교수는 특수 신분]

 한국에서 최고의 지성인은 대학 교수라고 봅니다.
우리나라에는 미국 박사만 해도 무려 3만 여명으로 일본보다 2만 명 많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대학에 있습니다. 정확한 통계는 모릅니다만, 그들 중 80%는 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 박사 학위 받은 사람도 만만찮지요. 이들도 대부분 대학에 몸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의 숭문주의의 영향으로 대학 교수들을 특별한 신분으로 대접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둘러봐도 대학 교수가 우리나라처럼 우대 받는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언론, 방송, 기업, 정치, 행정, 문화, 환경 등에서 차지하는 권위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어느 분야든 전문가로서 가장 먼저 자문을 하는 집단이 대학 교수입니다. 이를 당연히 여기고 있습니다. 누구도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이보다 특별한 신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고시 합격과 미국 박사 학위, 우리나라에서는 이것보다 확실한 출세 길은 없습니다. 이 둘은 조선시대의 과거 급제와 똑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진입은 무척 어렵지만, 진입한 후에는 오로지 우러러볼 귀족 신분으로 바뀝니다.

[문제는 대학 교수가 된 이후]

 진입 순간부터 면책특권이 주어지면서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천금같은 권위를 갖게 됩니다. 아랫것들은 오로지 이해하려고 애써야지 거기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높은 진입 장벽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것은 아랫것들이 알 바도 없고 입방아를 찧을 수도 없습니다.
 높디높은 진입 장벽 뒤에서 사실은 게으름뱅이, 주정꾼, 시정잡배, 바람둥이, 사기꾼, 협잡꾼, 정치꾼으로 살아 가다가도 세수하고 돌아서서 위엄 있게 어리석은 세상 사람들을 향해 한마디하면,
--대개 그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미국의 학자 누구에 의하면,-
모두들 머리를 조아리며 그 말씀을 받아쓰거나 외우려고
정신들을 바짝 차립니다.
그 속에 들어있는 오묘한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 눈을 반짝반짝 빛내야 합니다. 대개는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말이 너무 어려워 돌아서면 다 잊어 버립니다.
평소대로 살아 가는 겁니다.

[교수의 위상 변화]

 가끔은 쉬운 말을 쓰는 분들이 있는데, 이런 분들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지만 얼마 있다가 보면 레퍼토리가 반복되는 순간 인기가 폭락합니다. 대개 이런 순서를 밟지요.
교수님, 교수님, 우리 교수님, 박사 교수님 →교수님, 교수님
→교수님→교수→저, 그런데요

 이렇게 인기가 금방 폭락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반 사람 입장에서 보면 알고 보니 별 것 아니더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교수님들 입장에서 보면 박사 학위 따고 전임을 꿰어 찬 후에는 공부와 담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인기인이 되면 이젠 공부하려고 해도 시간이 없습니다.

 그 옛날 과거에 급제하면 명예와 권력과 토지 거기에 덧붙여 노비와 계집종과 기생, 첩까지 한꺼번에 얻던 황금 시대에 비하면 참 세상 많이 변했습니다.

[교수는 명예가 생명, 그러나]

 지금 교수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명예밖에 없습니다.
이것 하나만 해도 수직적 신분 상승 효과가 있지만, 이제 이나마도 지키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돈과 권력을 못내 아쉬워하는 수많은 교수들이 있지만, 뭇 사람들이 명예 하나만이라도 빼앗아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위기 의식을 느끼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교수님들의 명예를 가장 먼저 내동댕이친 자들은
사실은 교수님들의 사랑스러운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나마 70년대만 해도 교수님들의 명예를 많은 대학생들이 존중했지만, 80년대 들면서 어느 날 갑자기 스승을 구닥다리 약장수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기들보다 나은 게 없다는 것을 알아 버렸다는 겁니다. 과거에 암기해 둔 지식이 자기들보다 나을 뿐 현실을 이해하고 미래를 제시할 능력이 교수님들에게 이미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는 겁니다.

 이 때 몇몇 눈치 빠른 교수님들은 학생들과 어깨동무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학생들의 어깨가 딱딱해지고 싸늘해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도 간단합니다. 학생들과 똑같은 말만 할 뿐, 맞장구만 칠 뿐 새로운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는 걸 알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차리리 자기들끼리 '운동'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공부'는 가르칠 사람이 없고 자기들도 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운동'을 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각 분야에서도 반응이 점점 싸늘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신문에 경제에 대한 '멋진' 말을 하면, 읽어 보기만 할 뿐 아무도 흉내를 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말들을 풀어서 읽어 보면 기업 현장의 평범한 노동자도 다 아는 것이거나 알아도 이미 현장 검증으로 용도 폐기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에서 참 이상적인 '민주주의'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도 그걸 무엄하게도 바로 쓰레기통에 집어넣어 버리는 일도 다반사로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 정치판이란 게 워낙 '독특해서' 그걸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문민 정부'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제 '이론'을 제공해주던 교수들은 더 이상 '새로운 이론'을 보여 주지 못했습니다. 민주 국가가 들어섰으니 양심에 전혀 거리낌없이 한 자리 차지할 수 있기만 간절히 바랄 뿐이었지요.
크게 경륜을 펴 보고 싶었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성공한 분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분야도 대동소이합니다. 자리를 빛내기 위해 모셔는 가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면 슬슬 피하고 자기들끼리 쑥덕쑥덕합니다. 거마비나 챙기면 다행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회식 자리에 가서도 일장 연설을 하려고 밤새 준비해 갔건만, 어찌 한두 마디만 꺼내면 바로 박수를 치면서 노래 한 곡조 하라고, 멋쟁이 교수님 노래 한 번 들어 보자고 그럽니다.
--세상 말세라서 그럴까요?

[조선의 양반들은 지식 독점으로 모든 걸 독점하다]

 전세계 역사를 통틀어 지식인에게 가장 찬란한 황금 시대였던 조선시대나 정신적인 면으로나마 지식인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 주던 해방 이후 35년간이나 지식인들이 일반인에게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한 가지 방식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지식 독점입니다.
 지식 독점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주 어려운 학문을 해서 그것을 유일한 진리라고 단단히 모든 사람들에게 못 박는 겁니다.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를 극비 프로젝트로 추진한 이유는 바로 지식 독점자들의 방해를 차단하기 위해서입니다.
 최만리만 반대했던 게 아닙니다. 모든 유학자가 반대했습니다. 100% 반대했습니다. 신숙주, 성삼문도 미리 알았으면 반대했을 겁니다. 성삼문, 신숙주가 요동을 다녀온 것은 세종대왕이 큰아들, 작은아들과 힘을 합해 이미 한글을 다 창제하고 난 후의 일입니다.

 왜 그들은 한글 창제를 반대했을까요?
지식 독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무식한 서민이 자기들이 천신만고 끝에 공부해 놓은 어려운 한문을 쉬운 우리말로 알아 버리면
자기들의 지식이 별 것 아니란 걸 알게 되면 급속하게 지식 독점권이 무너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인지가 훈민정음을 자세히 알리는 일을 했지만, 그도 세종대왕의 권위에 눌려서 그랬을 뿐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가 자진해서 따로 우리말을 우리 글로 쓴 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한문도 가르치기로 마음만 먹으면 종에게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절대 조선의 양반들은 그런 일을 않았습니다. 혹시 그 중에서 자기보다 똑똑한 놈이 나오지 마란 법이 없었고
종들이 학문의 높은 경지에는 오르지는 못하더라도 자기들이 하는 말을 다 알아들을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서양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르네상스 이전에 지식인들이 죽어라고 아무도 쓰지 않는 라틴어만 공부했던 겁니다. 이 유구한 전통이 요새도 살아 남아서 의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라틴어로 직직 갈겨씁니다. 한의사들은 한자를 멋있게 그리지요. 그들은 정자체보다는 날림체를 더 좋아합니다.

[지식 독점의 방식]

 지식 독점의 가장 확실한 방법 중의 하나는 암기입니다.
사서 오경과 주자의 해석을 달달 외는 겁니다.
외국 학자의 말을 달달 외는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을 암기한 사람이 그 경전을 쓴 공자, 맹자, 주자와 동급이 되기 때문입니다. 외국의 저명한 학자와 동급이 되기 때문입니다.
괜히 자기 이론 펴봐야 뼈도 못 추립니다. 혹 이론을 펼치더라도 최대한 '공맹주(孔孟朱)'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반대하는 이론은 절대 내세우면 안 됩니다. 그것은 '공맹주'를 반대하는 것이고 '공맹주'를 모욕하는 것이고 반인륜적인 일, 짐승과 같은 짓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공맹주'의 말을 암기한 지식 독점권자의 신성한 '권위'에 도전하는 것도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공맹주'의 탁월한 해설자 퇴계와 율곡이 추가되면, '공맹주리(퇴)파' 또는 '공맹주리(율)파'가 생기게 됩니다.
이들의 저술과 사상을 그대로 암기하면 자신들이 이 네 분의 성인들과 동급이 됩니다.  

 이렇게 고상한 학문을 독점함으로써 조선의 양반들은 토지와 권력과 명예를 독점할 수 있었던 겁니다.

[지식 독점에 균열이 가다]

 그런데 갑자기 엄청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왜적이 나라를 삼켜 버린 겁니다. '공맹주'에 대한 지식 독점에 왜적은 과학이니 기술이니 법학이니 의학이니 정치학이니 농학이니 하는 희한한 '잡학'을 들이대며 종지부를 찍어 버렸던 겁니다. 

 정말 분통 터지는 일은 어느새 나라를 빼앗아간 이 왜적들이 서양에서 배워 와서 퍼뜨린 이 신학문에 조선의 무지랭이들이 얼을 빼앗겨 버린 겁니다.
이제 '공맹주'만 달달 외워서는 절대 조선의 무지랭이들한테
'권위'가 서지 않게 되었단 말입니다.

[지식인의 봄]

 시대의 거센 흐름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신학문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이 중에는 양반 출신들이 많았지만, 무지랭이들도 제법 끼이기 시작했습니다.
 해방이 되자 본격적으로 중국 대신 새로이 대국이 된 미국으로 일제히 지식 사냥에 나갔습니다.
정말 열심히 배웠습니다.
정말 열심히 달달 외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 박사에 대한 대우는 대단했습니다.
 대접이 좋았던 게 오히려 발목이 될 줄 모르고 열심히 상아탑을 세워 지식 독점 '소도(the holy place)'를 건설했습니다.
학생이고 관료고 정치인이고 언론인이고 노트에 거룩한 말씀을 베껴 쓴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 옛날의 황금 시대가 다시 올 것 같았습니다.

[하부구조가 달라지면 지식도 달라진다]
 
 착각이었습니다.
 웬 자그마한 새깜동이가 권총을 차고 나와 나라를 뒤집어 버렸습니다. '신성한' 미국 학문을 깡그리 무시하고 곳곳에 공장을 세웠습니다.
그와 더불어 공돌이와 장돌뱅이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들에게는 이상하게 말이 안 먹혔습니다.
 
 다행히  미국 박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학생들과 민주 인사들이 열심히 교수님들의 말을 베껴서 '선지자'의 말씀으로 잘 포장하여 그 말들을 전했습니다.
현실은 힘들었지만, 이들이 정신적으로 교수님들의 '명예'를 지켜 주는 한, 무지개 빛 미래를 보고 울분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이것도 착각이었습니다.
 아까도 말씀 드렸듯이 80년대 이후 제일 먼저 학생들이 등을 돌리더니 90년대 들어서자 일반인들도 왠지 가까이 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망의 새 천년이 되자마자 아주 노골적으로 고등학생까지 교수님들을 우습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학생들이 대학에 서로 들어오려고 난리를 피우더니 애걸복걸해도 잘 안 오려고 하는 겁니다.
 
 1999년에 한 대학 교수가 과감히 폭로했습니다.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
 김동훈 교수님은 대학의 온갖 치부를 다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일반인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그거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있었나? 우리는 10년 전, 아니 20년 전에 다 알고 있었다고.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지식 독점권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는 농업 국가여서 새로운 지식이 거의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공자님, 맹자님, 주자님이 사시던 때나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그대로 그분들의 말을 달달 외워서 우리말로 이따금 해석을 곁들어 써먹어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혹 못된 장돌뱅이나 장인들이 돈을 좀 모을 것 같으면
땀도 안 흘리고 돈을 번다니 쓸데없이 사치품을 만든다느니 하면서 혼을 내서 그냥 빼앗아 버리거나 아예 장사를 못하게 하고 물건을 만들지 못하게 하면,
농업의 근간인 토지가 그대로 있어서 얼마든지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절대 새로운 지식이 생기지 않았던 겁니다.

[산업화는 지식의 뇌관]
 
 그런데 박정희라는 사람이 대권을 잡으면서 상업과 공업 중심의 나라로 만들어 버리면서 지식에 엄청난 지각변동이 생겼습니다.
게다가 그는 새로운 대국 미국을 그대로 본뜨지 않고 일본과 독일과 미국과 소련과 한국의 것을 다 섞어서 한국식 비빔밥을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어느 나라와도 다른 지식이 폭발적으로 생겨났습니다.

 지식이라는 것은 마르크스의 말을 좀 빌리면, 하부구조가 결정합니다. 하부구조가 달라지면 상부구조가 달라지는데, 상부구조의 대표가 지식입니다.

 그런데, 달라진 한국의 하부구조가 만든 엄청난 지식을 정리한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예 무시하고 미국의 학문에 비추어 잘못되었다고 비판만 했습니다.

 70년대만 해도 학생들이 순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열심히 교수님의 말씀을 노트에 베껴서 달달 외웠습니다.

 그런데 교수님 말씀을 따라 철석같이 믿었던 대국 미국이 전두환 정권을 두둔하는 걸 보고 학생들이 일제히 미국에게 등을 돌려 버렸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미국 박사들에게도 등을 돌렸습니다.

 이 때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학문이 싹틀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용감한 일을 못했습니다.
학생들은 새로운 지식 모델을 찾던 중 마르크스와 김일성과 만났던 겁니다. 이리저리 얼키설키 맞추니 그런 대로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일부 교수님들이 이들을 지도했지만,
곧 그들이 자기들보다 나을 게 없다고 보아 학생들은
직접 김일성 주석님의 말씀을 듣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동구가 붕괴되면서 공산권의 실상이 알려지자 학생들은 엄청난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학생들을 보듬어 줄 교수님이 없었습니다. 자기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요. 기껏  한다는 말이 '봐라, 내 말이 맞았지. 역시 반공이 제일이야.'
이러니 어느 학생이 교수님을 스승으로 모셨겠습니까?)

교수님 중에 이 때까지 학생을 따라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제는 모든 교수님들이 걱정을 했습니다.
--저건 아닌데, 저건 아닌데.
그러나 명쾌한 논리로 학생들을 품안으로 끌어올 만한 분이 없었습니다.
 
 교수님들은 드디어 시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색 바랜 명예와 먹고 살기에는 과히 부족하지 않은 월급으로 하루하루를 그냥 저냥 살아가는 소시민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모습은  드라마 '남자 셋 여자 셋'과 그 후속타 '점프'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교수 이경실과 교수 최불암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지요.
무슨 교수가 공부하고는 철천지원수가 졌는지 공부하는 꼴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매일 코미디나 연출합니다. 드라마 작가가 누군지 몰라도 눈이 대단히 예리함에 틀림없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산업화 시대에는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뿐만 아니라 패러다임 자체가 자꾸 바뀐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과거의 지식을 암기해서는 전혀 새 시대에 적응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지식 습득의 4 단계]

 암기 수준에서 빨리
이해 수준으로 이해 수준에서
응용 수준으로 응용 수준에서
창조 수준으로 빨리 그 지식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데
미처 그렇게 하지 못한 겁니다.
그나마 공부를 좀 하는 교수들도 미국에서 새로운 지식이 나오면 그걸 즉시 외워서 학생과 국민에게 따라 외우라고 했습니다.
그럴 게 아니라 그것을 잘 이해해서 원리를 가르쳐야 하고
우리 실정에 맞게 응용해야 하고
미국에도 없는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계속 변하지 않는 농업 시대의 향수에 취하여 지식을
암기만 했기 때문에 이런 비극이 발생한 겁니다.

 더욱더 안타까운 일은 전임 강사 이상만 되면 교수님들은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배운 지식을 달달 외워서
학점이란 무시무시한 무기를 내세워 학생들에게 그 지식을 따라 외우게 만들기만 했습니다.
외운 것도 시간이 지나면 자꾸 잊어 버리기 때문에 잊어버릴 때마다 새로 외우는 수고는 했겠지요.

[정보화 시대가 지식 독점에 종지부를 찍다]

 90년대 들어 우리 나라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보와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른바 정보화 시대가 된 거지요. 이젠 그 누구도 지식을 독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천으로 깔린 데이터에 의미를 부여하여 정보를 만드는 일도 누구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정보를 체계화하여 지식을 만드는 일도 누구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들 중에는 아직도 지식에 대한 독점권을 주장하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초등학생이 컴퓨터 단말기 앞에 앉아 쥐돌이(마우스)로 몇 번 꾹꾹 누르기만 하면 교수님들이 신주 단지 모시듯 하는 과거의 지식은 쓰레기처럼 쏟아져 나오는 세상인데도 말입니다.

[교수는 자신의 힘으로 명예를 되찾아야]

 전국의 교수님들, 동창이 밝았습니다.
 노고지리도 우짖습니다.
 아이도 일어나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이제 돈과 권력은 더 이상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명예 하나 되찾는데도 평생이 걸릴 수 있으니까요. 중산층으로 살 수 있게는 해 주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고시 합격자와 더불어 우리 나라 최고의 두뇌입니다.
그러나 교실에서 꿀밤이나 맞던 무식하기 짝이 없던 사람들의 두뇌가 이미 여러분을 앞서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발생했을까요?
 토끼였던 여러분들이 낮잠을 자는 사이에
거북이였던 무지랭이들이 직접 공장에서
시장에서
삶의 현장에서
새로운 지식을 하나하나 습득했기 때문입니다.
토끼라고 잠에서 부스스 깨어나서 거북이를 금방 따라갈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미 날이 어두워져 아무 것도 안 보이면 뛰어 봐야 벼룩입니다.
더군다나 거북이가 바다로 들어가 버렸다면, 그 헤엄 솜씨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이제는 정보의 바다가 거북이 앞에 활짝 펼쳐졌습니다. 거북이가 그 바다를 쥐돌이 하나 손에 쥐면 마음껏 헤엄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교수의 등장}

 그러나 교수님 여러분은 생각만 바꾸면 거북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미 그런 교수들이 곳곳에 나타났습니다. 지식의 암기 수준에서 벗어나 이해 수준을 벗어나, 응용 수준에서도 벗어나 창조 수준에 이른 사람도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이런 분들의 공통점은 '권력과 돈'을 바라지 않습니다.
오로지 지식의 세계에서 남보다 앞섰다는
'명예' 하나만을 위해 사십니다.
더러 그러다 보니 돈이 쏜살같이 그들 뒤를 따라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 맛있는 로열 젤리가 아니라 로열 젤리를 무진장 살 수 있는 알토란같은 로열티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로열티가 10년 20년 후라면 모를까 지금 당장은 아예 불가능하거나 거의 있을 수 없는 학문 분야도 많습니다.

[교수부터 변해야]

 전국의 대학 교수님들, 무엇보다 여러분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합니다. 학생보고 시민보고 정치인보고 공무원보고 기업인보고 변하라고 할 때가 아닙니다.
학생보고 공부하라고 하기 전에 여러분부터 박사 학위 따던 그 시절처럼 이를 악물고 공부해야 합니다.

시민보고 민주 시민이 되라고 하기 전에
여러분부터 그 하늘을 찌를 것 같은
(그래 봐야 그것은 여러분 마음뿐이지 천장에도 닿지 않습니다)
그 권위 의식부터 버려야 합니다.


정치인보고 제발 미국식 민주주의를 하라고 하기 전에
여러분부터 한국식도 아닌 조선식 봉건 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세계 각국이 한때 유행처럼 도입했던 대학 총장 직선제를 왜 폐지했겠습니까?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군과 경찰과 기업 등과 마찬가지로 대학에서도 선거로 훌륭한 지도자를 뽑을 수 없다는 것을 쓰라린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선거에 임하면 대학교수도 한낱 평범한 투표권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권위의식이 하늘을 찌르고 패거리 문화가 뿌리깊은 한국에서 교수들이 총장을 선거로 제대로 뽑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리스 법정에서 재판관들이 소크라테스에게 사약을 내리는 게 아니라 투표로 소크라테스를 그리스 최고의 현자로 뽑고 그 아래 일제히 무릎을 꿇기를 기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입니다.

공무원보고 뇌물 받지 말라고 하기 전에
여러분부터 전임 자리 하나 주선해 주는 대가로 수천만 원씩 챙기지 말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엉터리라고 하지만, 요새 세상에 취업을 미끼로 돈 뜯어먹는 못된 놈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받은 것이 아니라 재단에서 받은 것이라거나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책임을 회피할 일이 아닙니다. 대학에서 가장 큰 혜택은 교수님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기업인보고 문어발 확장하지 말고 전문화하라고 하기 전에
대학부터 특성화해야 합니다. 도대체 종합대 외에는 우리나라에 대학이 몇 개나 됩니까. 또한

기업인보고 노조 탄압하지 말고 노동 착취하라고 하지 말고
여러분부터 시간 강사 노동을 착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보다 오히려 더 똑똑한 그들에게 한 달에 50만원도 안 주는 그런 노동 착취가 대한민국 어디에 있습니까.
초등학교도 안 나와도 어디 가든지 한 달에 50만원은 받습니다.
그나마 3D 업종이라고 그런 일을 안 할 뿐이지요.
학생들한테 배울 게 있습니다.
그런 부당한 일이 있으면 데모를 하는 겁니다.
이건 정말 학생들에게 배워야 합니다.

[대학 교수의 귀감, 영진 전문대학 교수]

 대구의 영진전문대학만 생각하면 절로 힘이 생깁니다. 거기는 지금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외국 기업도 서로 기부하려고 난리입니다. 이삼 년만 더 있으면, 학생들을 전원 장학생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시설 투자하고 책을 사도 돈이 넘쳐 나니까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습니까?
 사회를, 기업을, 국민을, 학생을, 교수님들이 자기들의 상전으로 모셨기 때문입니다.
교수님들이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한 게 아니라
사회가, 기업이, 학생이 원하는 것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학교 교수님들은 과거의 지식을 절대 학생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간단하게 요약해 주거나 아니면 학생 스스로 인터넷을 뒤지거나 도서관을 뒤져서 알게 하고
학생보다 한 발 앞서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가공하거나 새로 만들어서
학생과 더불어 회사와 더불어 공부하기 때문입니다.
산업 현장에서,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사회라는 학교에서 교실에서
함께 공부하기 때문입니다.
 이 학교 학생들은 하나같이 교수님들을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교수로서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보다 더 신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시조가 마음에 들어서 다시 한 번 외워 봅니다.

 전국의 교수님들, 동창이 밝았습니다.
 노고지리도 우짖습니다. 아이도 일어나 컴퓨터를 두드립니다.
 잠시 후면 훈장님도 일어나실 겁니다.
                (2000.2. 23.)   (2007. 3. 1.)

 

[ 2007-03-05, 18:4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