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군사력 비교, 문제는 정신력이다
김정일은 한반도에 사이비 평화무드가 정착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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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 미사일, 땅굴, 특수부대 10만을 보유한 김정일은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는 순간 어린애 팔 비틀기로 한국을 접수할 수 있다. 한국에는 임진왜란 전 또는 병자호란 전의 양반같이 안보 숙맥인 자들이 지식인입네, 여론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2.13합의로 우리나라의 안보가 바람 앞의 촛불 신세입니다. 김정일의 대대적인 거짓 평화공세가 여러 국내외 사정으로 기가 막히게 성공하고 있습니다. ‘폭풍 전의 고요’에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다음은 2000년에 썼던 글입니다. (2007.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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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6월 15일 남북한 사이에 세계의 비상한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서해상에서 총격전이 있었다. 결과는 한국의 일방적 승리!

  정치와 군사면에서는 북한을, 경제와 문화면에서는 한국을 지지하는 철저한 대한반도 등거리 외교 정책을 고수하는 중국이 웬일인지 이 교전 상황을 그대로 TV에 방영했다고 한다. 해설 없이 사실보도만 한 모양이다. 이를 보고 중국에서는 중국의 조선족 사이에선 그 때까지 갖고 있었던 북조선 군사우위라는 상식이 여지없이 깨졌다는 후문이다. 사실 보도의 무서움을 여실히 보여 준다.


 2002년 6월 29일 제2차 서해교전! 이번에도 북한의 고의적인 북방한계선(NLL) 침입에 이은 도발이었는데, 제1차 서해교전에서 한국측이 승리한 데 놀란(?) 대통령의 엄명에 따라 만들어진 괴이한 교전수칙에 의해 침략을 당하고도 절대 선제공격을 할 수 없어서 월등한 무기를 갖고도 이번에는 일방적으로 한국 해군이 당했다.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했다. 참수리호에서 전국민이 안심하고 월드컵 4강 대전을 보라고 외롭게 서해를 지키던 27명 중 단 2명만이 무사했다는 말이다. 북한군의 통쾌한 보복전이었던 셈이다.


 이 제2차 서해교전은 향후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북한은 민족공조란 허울을 내세워 한국의 이목을 속이면서 속으로는 전혀 같은 민족이라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한국의 전국민을 잘 먹고 잘 사는, 그 음식 쓰레기만 해도 북한 주민의 태반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썩어빠진 부르주아 계급의 원수로 여기고 어느 날 갑자기 만면에 웃음을 띠고 다가와서 느닷없이 우리의 목에 비수를 들이대면, 우리는 아무리 우수한 현대무기를 갖고 있다고 해도 단 한 번 써 먹지도 못하고 무조건 항복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이를 것이니까. 두고 보라.


 참고로 말하면, 우리 어선은 단 한 척도 북방한계선을 넘어간 적이 없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정한 조업통제선 NLL 남쪽 7.5마일을 벗어나 어로저지선인 NLL 남쪽 4.5마일 사이에는 어쩌다 들어가는 일이 있었지만, 그 이상은 절대 올라가지 못한다. 해군이 기겁을 해서 즉시 막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로 말하면 NLL 북쪽 4.5마일 아래로는 절대 내려오면 안 되지만, 북한은 아예 그런 건 규정도 없어서 NLL에 바짝 붙어서 조업하는 것은 예사이고 NLL만 넘지 않으면 우리 쪽에서도 아무 대응도 않는다. MBC에서는 조업통제선을 넘어 NLL 남쪽 저 멀리 5.5마일 부근에서 조업한 걸 갖고 우리가 NLL을 넘은 것처럼 마치 우리 어민이 책임이 있다는 듯이 엄청난 왜곡 보도를 했었다. MBC의 옥상에는 과연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우리가 북한보다 군사력이 강할까. 지식인 사이에선 이미 80년대 이후부터 정부에서 주장하는 바와는 반대로 남한이 월등한 경제력과 첨단 군사 장비로 북한을 압도한다고 믿는 사람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이것을 서해교전으로 확인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국내에도 많은 듯하다.


 햇볕 정책에 금이 갈새라 작은 충돌도 엄청 겁냈던 정부여당도 제1차 서해교전을 계기로 안보에 대해 확고한 자신감을 갖게 되어, 북한에 대해 거의 무한정의 양보를 하면서, 냉전 상태를 하루 빨리 끝내고 남북통일로 가는 길을 앞당기려 남북 정상회담을 서두른 듯하다. 그 후의 발걸음도 현란한 정도로 빠르다. 대통령이 직접 ‘전쟁은 없다’라고 선언할 정도이다. 이건 우리의 안보가 국방력이 북한보다 훨씬 앞선다는 확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발상이요 발언이다.  


 북한이 겉보기와는 달리 남한보다 국방력이 약하다는 증거로 서해교전에서 보듯이 낡은 장비를 든다. 실지로 노태우 전대통령이 고르바초프와의 밀약으로 북한은 90년대에 최신식 군사 장비를 거의 수입 못했다. 여기서 북한은 사활을 걸고 핵과 미사일과 장사정포와 생화학 무기의 개발에 매달린 점도 없지 않다. 김일성의 말마따나 핵무기보다 열 배의 위력을 갖는 ‘갱도(땅굴)’를 안 팠을 리도 없다. 그래서 이젠 아무리 에누리해도 우리 무기가 북한보다 앞선다고 할 수가 없다.


 우린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평화공세를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덕천가강의 말처럼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자는 적의 말을 믿는 자’이다. 전쟁은 만의 하나에 대비하는 것이니만큼 적의 말은 듣기 좋을수록 의심해야 한다. 그래야 평화가 지켜지기 때문이다. 특히 자국민을 노예 취급하는 독재자는 절대 믿으면 안 된다. 자국민에게 거주이전의 자유도 주지 않고 농지개혁만 단행하면 1년 안에 굶어 죽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게 뻔한데도, 구걸과 협박으로 전세계를 대상으로 식량을 적선 받거나 강탈해 갈 뿐 일사불란한 통제를 위해서 절대 협동농장을 해체하지 않는 독재자는 피를 나눈 형제라도 같은 민족이 될 수 없다. 적일 따름이다. 반면에 자국민을 인간 대접하는 지도자는 때로 허풍떠는 것조차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비웃음의 대상일 뿐 남을 해코지하진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율곡 사업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군장비의 현대화에 성공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면 우리의 군사력이 우위에 있는가? 다시 한 번 되풀이하지만 그렇다고 단정하긴 아주 곤란하다고 본다. 이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을 하기 전에, 잠시 한숨을 돌리고 누구나 잘 아는 몇몇 전쟁을 되돌아보기로 한다.


 미국이 독립 전쟁에 돌입했을 때, 미국 식민지 주민은 군복도 살 형편이 안 되었다. 각자가 돈과 총과 옷을 마련했다. 제대로 훈련  받은 사람도 없었다. 반면에 영국은 그 당시 세계 최고의 군인과 무기를 갖추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장군이 이끄는 오합지졸들이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다. 인구도 이 당시는 영국이 미국보다 훨씬 많았다. 100년 후인 미국의 남북 전쟁 시기가 되어야 미국과 영국의 인구가 각각 3천만으로 거의 비슷해졌으니까.


 독립에 대한 불타는 의지와 상대의 이목을 속이는, 심지어는 영국 군인의 옷을 빼앗아 입고서 유인하여 순식간에 적을 섬멸하는 비겁하기 짝이 없는 작전까지 구사하면서 세계 제일의 군대를 물리쳤다. 방법은? 유격전이었다. 영국군은 정면 대결하는 정규전에는 강했지만, 유격전에는 속수무책이었다. 더군다나 주민들이 모두 독립군 편이었다. 거기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눈부신 활약으로 이 당시 영국의 유일한 맞수였던 프랑스도 한편으로 만들었다. 전쟁을 감행하려는 국가는 외교에 실패하면 필패하기 마련인데, 미국은 이 당시 외교도 잘 했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상황이 역전되어 월남전에서 호치민은 워싱턴 장군의 유격작전을 쓰고 미국은 대영제국 군대의 작전을 썼다. 압도적인 군사 장비 우세와 정규 군인의 엄정한 군기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참담한 패배를 당했다. 호치민은 불란서로 밀항하여 주경야독하며 공산당에 가입한 후 오로지 혼자 힘으로 소련과 중국을 드나들며 그 당시 최고의 공산당 권력자들과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나누어 이 두 나라를 든든한 후원국으로 만드는 데도 성공했다. 외교가 뭔지 알았던 대단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신라에서 가장 고귀한 신분으로, 두 여왕이 승하하면 왕위를 계승할 게 거의 틀림없었던 왕세자나 다름없는 몸으로 숱한 죽을 고비를 넘기며 고구려와 왜, 당 이 세 나라를 직접 오가며 최강국 당과 동맹을 맺어 그 군사를 끌어오고 왜는 관망하게 만들고 어느 나라보다 먼저 손을 잡자고 했건만 굴러온 복을 차 버린 연개소문의 고구려를 고립시킨 후 마침내 통일의 대장정에 들어간 한국의 김춘추에 비길 만한 대단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미국은 키신저를 내세워 2중 3중의 안전장치를 한 1973년의 파리 평화협정을 맺었지만, 월맹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1975년 순식간에(3월 10일 공격, 4월 30일 최후 승리) 월남을 삼켜 버렸다. 이 당시 월남에는 미국의 전투기를 그대로 물려받아 세계 4위의 공군력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그건 고철이나 마찬가지였다.


 월맹군의 일부는 신발이 없어 자동차 타이어를 잘라서 발에 대충 맞춰 신을 정도로 보급이고 무기고 형편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강 미국도 물리치고, 이어서 무기와 군인, 보급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던 월남이 내부 분열로 나라가 엉망이 된 틈을 이용해 순식간에 베트남식 흡수 통일 곧 적화 통일을 해 버렸다. 물론 미국은 후방의 베트콩에 정신이 빠진데다 중공과 소련이 겁이 나서 공군과 포병과 보병을 일시에 투입하여 월맹군과 정규전을 벌여서 발본색원할 생각을 못하는 바람에 월맹군의 주력군은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막상 이들이 한꺼번에 내려왔을 때는 그 대포는 천둥 같았고 그 총은 번개와 우박과 소낙비가 한꺼번에 내리퍼붓는 듯 대단했다. 천지가 개벽하는 것 같았다.


 먼저 민심을 사고 두 번째 상대의 눈을 속이는 유격전으로 그들은 미국과 월남에 비하면 형편없는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마침내 국가를 하나로 통일했다. 공산주의를 좋아하고 싫어하고에 관계없이 그것은 분명히 호치민과 그 뒤를 이은 지압의 위대한 승리였다. 월남과 미국의 비참한 패배였다.


 그 후, 또 다른 초강대국 소련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똑같은 패배를 당했다. 전략 전술은 베트남에서와 동일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철저하게 산악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 작전을 썼다.


 1949년 장개석은 광활한 중원에서 쫓겨나 대만으로 쳐들어갔다. 모택동의 위대한 승리도 호치민의 방법과 똑같았다. 상황도 비슷했다.

민심을 얻고 불굴의 정신으로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히트앤드런 작전을 쓰면, 전쟁을 수행할 최소한의 현대 무기와 식량이 있으면 승리한다는 걸 잘 보여 준다. 


 6․25 때는 어땠는가. 이때도 2차 대전의 영웅, 인천 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가 유격전의 대가 모택동에게 패배한 전쟁의 양상을 띠었다. 한국인은 맥아더 말대로 만주에 핵폭탄을 한 방만 먹였으면 통일되었을 거라며 지금도 애석해 한다. 전략상 그럴 수 없었다. 트루먼 대통령이 바보가 아니었다. 맥아더의 군복을 벗길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작전 실수에 대한 인책이었다.


 맥아더는 임진왜란 때의 왜병처럼 북진을 두 방향으로 잡았다. 평양과 함흥 양쪽을 종선으로 장악하여 각각 압록강, 두만강까지 밀고 올라간다는 전략이었다. 유격전의 대가 모택동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그는 재빨리 우리나라의 지형을 이용했다. 압록강을 넘자마자 새까맣던 인민군들은 밤을 틈타 귀신같이 사라졌다.


 해발 2,000미터가 되는 험난하기 짝이 없는 낭림산맥과 백두대간을 타고 중공군은 미군과 한국군의 후방을 기습했다. 그들의 무기는 두 가지, 소총과 인간! 미국의 최신식 전차, 곡사포, 전투기 모두 속수무책이었다. 보급이 차단되고 전원이 포위되어 달아나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저 피맺힌 한의 흥남부두를 생각해 보자. 순식간에 전쟁은 역전되었다.


 맥아더는 스스로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저런 오합지졸에게 패하다니!  이때도 그는 여전히 유격전의 중요성을 몰랐다고 본다. 그의 머리는 늘 모택동에게는 한 수 뒤졌다. 맥아더는 반성할 줄 몰랐다. 무식하게 물량 공세를 펼 생각에 전격적인 만주 폭격을 주장한 것이다. 미국으로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한국이란 작은 나라의 전쟁에서 중공과 소련이라는 두 강대국을 대상으로 제3차 대전을 벌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중공 본토를 공격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맥아더는 만주만이 아니라 상해를 비롯한 중공의 동해안 지역의 도시들을 동시에 타격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혼비백산하여 6․25가 끝나고 모택동은 연안 지역의 공장을 모조리 뜯어서 내륙으로 옮겼었다. 그 바람에 중공의 경제는 엉망이 되었다. 연안지역의 경제를 다시 살린 지도자가 바로 등소평이다. 


 그러면 왜 모택동과 김일성은 한국을 다 차지하지 못했던가.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민심, 둘째는 한국군의 대반격.

공산주의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이 때 여지없이 깨졌다. 전쟁 발발 불과 몇 달 전에  1950년에 단행된 남한의 농지개혁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만약 이 때 농민들 대다수(88.2%)가 토지를 소유하여 자작농이 되는 일이 없었다면, 농촌을 중심으로 베트콩 같은 자생 공산당이 생겨 아마 이 때 적화통일 되었을지도 모른다. 박헌영이 휴전 후 쫓겨난 것은 이런 자생 공산당이 박헌영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민심이 떠나면 전쟁에서 지게 되어 있는데, 남북한 모두 이 당시는 농업 국가라서 내 농토를 갖게 된 농민들이 대체로 남쪽은 이승만, 북쪽은 김일성을 지지했다. 민심이 팽팽히 맞섰다. 전쟁은 38선을 경계로 교착될 수밖에 없었다.


 지리산에서 남부군이 패배하게 된 것이 남한 정규군이 월등히 강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토지를 갖게 된 농민이 슬그머니 남한 정부를 지지하게 된 것이 결정적 요인이었다. 민심이 40대 60비율로 공산주의를 지지하다가 거꾸로 60대 40비율로 자본주의를 지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민심을 얻기 위해 백선엽 장군은 마을에 불을 지른 군인을 대신하여 마을 주민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기도 했었다. 민심은 바람과 같다. 절대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두 번째 한국군의 대반격이었다. 미군에 의해 많은 최신식 무기를 갖게 된 한국군은 용기백배했다. 군대 내에서도 한 때는 공산주의자들이 만만찮았었지만, 이때는 그런 군인이 거의 없었다. 월남이 패망시 58만 정규군 중에 10만 명이 유령 군인으로 외국에 유학 가거나 학교 다니거나 사업을 했던 것과 크게 대비된다. 월남군 안에는 밀파된 자, 또는 자생 공산주의자가 득실득실했었다.


 아무리 외국 군대가 도와 주어도 본국의 군인의 군령이 서 있지 않으면 승리할 수가 없는 법이다. 한국 군대는 이 때 똘똘 뭉쳐 있었다. 교착 상태가 지루하게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지금이다.

과연 우리는 안보를 걱정 안 해도 될까. 북한은 전쟁을 수행할 능력도 의지도 없을까. 남한의 압도적인 군사비 지출(145억 달러 대 63억 달러 1996년)과 미군의 존재로 북한이 오히려 벌벌 떨고 있을까.


 국가의 존망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다. 절대 누구도 함부로 섣불리 쉽게 단정적으로 판단을 내릴 문제가 아니다.


 북한은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넘친다고 보아야 한다.

첫째, 정신력이다. 김정일은 지금도 공식 명칭이 국방위원장이다. 이건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자기의 정치 생명을 위협할 세력은 군인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몇 년 동안 그는 오로지 군인을 자기 수하에 두기 위해 고심참담했다. 지금도 군대만 죽어라고 찾아다닌다. 군인을 최고로 우대했다. 더불어 자기 사람을 곳곳에 심었다. 현재 북한에는 군의 원로들이 거의 다 물갈이되었다.

 호위총국을 중심으로 군대를 이원화했다. 호위총국은 옛날로 치면, 왕을 지키는 금위군이다. 이들이 군대 위의 군대로 군림한다. 목적은 두 가지, 잠재적 반란 세력의 원천적 봉쇄와 군대를 완전히 장악하는 것이다. 이로써 군대는 하나로 똘똘 뭉쳤다. 식량도 군인이 최우선이다. 비록 배는 고프지만, 인민들을 생각하면 참을 만하다.


  더군다나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그는 속으로 긴가민가하는 군인들의 사기를 하늘에 닿도록 만들었다. 비전향 장기수를 원하는 사람 모두 북한에 일시에 데려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를 보고 원래는 남한에 남으려던 사람도 덩달아 10여명 북으로 가기로 했다고 한다.

--조국은 너희를 절대 잊지 않는다.

이건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군인의 사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반면에 남한은 국군 포로에 대해 한 마디도 안 했다. 박재규 전통일부 장관이 국제법상 국군 포로가 없다고 하자, 조성태 전국방장관이 즉시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말을 한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군인의 사기를 사정없이 꺾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역시 국방위원장답게 이번 쾌거(?)로 10만 명의 군인을 새로 얻은 효과를 거두었고 김대중 대통령은 너무 넓은 마음으로 대하다가 10만 명의 군인을 잃는 실수를 했다고 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북한의 무기도 그리 만만치 않다. 무시무시하다. 소름이 끼친다.

 첫째가 방사포를 비롯한 장사정포이다. 포병 부대를 전혀 이동 없이 1분에 수도권을 1만발 때릴 수 있는 전력을 갖고 있다. 한 시간에 무려 50만발을 퍼부을 수 있다(2000년 4월 5일 주한 미군사령관 슈워츠의 증언). 패트리어트 요격 미사일로는 속수무책이다. 그건 가끔 날아오는 미사일이나 쏠 수 있을 뿐이다. 그것도 명중률이 영  신통찮다. 수도권이 휴전선에서 불과 4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는 것이 치명적인 우리의 안보상 약점이다. 반면에 한국은 평양을 절대 대포로 칠 수가 없다.  그저 한두 방인데, 그래 봐야 대부분의 주요 군사 시설이 생생하게 보관된 지하는 난공불락이다. 미국의 스마트탄도 아프가니스탄전과 이라크전에서 보았듯이 별 거 아니다. 지하 50미터 이하는 안심하고 낮잠을 쿨쿨 자도 된다. 핵폭탄이 아닌 한! 그런데 김정일의 전쟁 지휘소인 철봉각은 지하 100미터 이하에 건설되어 있다.  


 둘째가 미사일이다. 남한은 이제 겨우 사정거리 180킬로미터에서 300킬로미터 미사일을 개발하기로 미국의 양해를 받은 상태지만, 북한은 사정거리 최소 2,000킬로미터의 대포동 1호를 1998년에 성공리에 발사했다. 지금은 미국 본토도 공격할 수 있는 사정거리 5,000킬로미터의 대포동 2호를 개발 중에 있다. 이걸 흔히 전략 무기로 보고 크게 유의하지 않는데, 그렇지 않다고 본다.


 사정거리 1,000 킬로미터면 평양에서 바로 부산을 때릴 수 있는 거리다. 아마 북한은 남한의 전도시를 겨냥하고 있을지 모른다. 사정거리 2,000킬로미터는 명중률이 의심스럽지만, 그 정도의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발사했다는 것은 1,000킬로미터 사정거리의 미사일은 아주 명중률이 높다고 보아야 한다.


 이상 두 가지는 모두 휴전선에서 또는 먼 후방에서 전혀 이동하지 않은 상태서 동원할 수 있는 무기여서 한국에는 유사시 치명적이다. 6․25 때의 북한 탱크에 비유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무기이다. 북한 탱크 한 대에 한국군 보병 천 명 만 명이 꼼짝 못했던 뼈아픈 기억을 되살려 보아야 한다.


 핵폭탄과 화학탄을 빼고라도 이렇게 북한은 대단한 무기를 갖고 있다. 이보다 더 무서운 무기가 둘 더 있다.


 그것은 사람이고 지리이다. 특수부대이고 땅굴이다. 언제든지 유격전을 감행할 수 있는 지옥사자가 무려 10만 명이다. 만약 이들이 땅굴을 이용하여 한국군 복장을 하고 후방에 투입된다면, 한국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된다. 전쟁이 또 일어난다면 이번에도 유격전이 전쟁을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다. 남한은 이에 대한 대비가 아주 약하다. 남한의 해병대도 세계 어디 내 놓아도 뒤떨어지지 않지만, 그 숫자가 북한에는 상대가 안 된다.


 결국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 그것은 민심이다. 정신력이다. 북한은 한국의 정신이 흩어지고 북한을 지지하는 사람이 늘어나길 기다린다. 평화 무드가 정착되길 바란다. 만약 우리가 다른 것은 몰라도 안보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면 북한은 절대 전쟁을 감행하지 못한다고 본다. 초전에 이길지는 몰라도 1주일만 지나면, 대반격에 오히려 패전하고 이어 정권을 내 주고 한국 주도의 통일이 돼 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 정신력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항상 다음과 같은 말로 전국민을 다잡고 있다.


 “뛰여난 정치실력과 령군술, 강철의 담력과 배짱을 지니신 위대한 천출명장을 높이 모시고 그 두리에 굳게 뭉친 우리의 일심단결은 핵무기보다 더 위력한 혁명의 제일무기(2003. 2. 10. 노동신문)”


 다산의 말대로 군대는 100년에 한 번 써먹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오늘날 중국이 대만을 건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만의 안보가 중국이 도저히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기 때문이다. 


 대만에서는 지금도 고등학교에서 현역 군인이 직접 학생들의 군사훈련을 담당하고 있다. 만약 중국이 대만 침공을 하게 되면 이기기야 이기겠지만, 그 때는 무인도 하나 얻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되고 중국은 최소한 10년 이상 경제가 후퇴하게 되어 있다. 민간인이 양안을 마음대로 오가면서도 대만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모택동의 말을 잘 외워서 실천하고 있다. 한 번은 당해도 두 번은 당할 수 없다는 각오이다.


 냉전적 사고와 안보는 전혀 별개로 보아야 한다. 미국이 왜 냉전 해체 후에도 저렇게 막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일본이 왜 군사비를 세계에서 2위로 많이 지출할까. 전세계에서 어느 나라가 감히 미국을 침공하겠으며 일본을 침략할 것인가.


 이 두 나라는 그 어떤 나라도 섣부른 생각을 못 갖도록 군대를 막강하게 유지하고 있다. 평화를 원하기 때문에 막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여러 번 언급했다.

--햇볕 정책은 어디까지나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언행이 일치하길 바랄 뿐이다.


 (2004. 3. 2.)   (2000년 7월 17일 제헌절에) 



[ 2007-03-08, 22:4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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