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이 도덕과 결합하면
거짓이 도덕과 결합하면 하나님도 말릴 수 없는 양심을 갖게 되며, 그런 양심이 집단을 이룰 때, 그 사회와 국가는 파멸할 수밖에 없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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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 위에 도덕이 있고 도덕 위에 양심이 있다. 양심은 누구나 타고나지만, 경험과 교육에 따라 천차만별 달라진다. 인간 고유의 언어 능력이 각 개인의 언어 환경에 따라 겉모습이 전혀 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후천적인 환경에 의해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양심도 허다하다. 양심은 선악을 구별하는 잣대인데, 한쪽에서 선이라고 확신하는 것을 다른 쪽에서 악이라고 확신하면 음극과 양극이 부딪칠 때처럼 두 양심이 만나는 순간 강렬한 불꽃이 일어난다.

양심은 원래 개별적인 것이지만, 그 양심이 노출된 문화에 따라 집단적인 모습을 띠는 경향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문화가 종교이다. 기독교인의 양심, 회교도의 양심, 불자의 양심, 힌두교도의 양심, 유교도의 양심은 근본을 거슬러올라가면 비슷하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과 이권이 축적되고 스며들고 끼어 들면서 나라마다 인종마다 판이하게 달라졌다. 심지어 동일한 종교 안에서도 종파에 따라 두 양심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거대한 강이 있다. 이 집단적인 양심이 오늘날까지 파릇파릇 살아있는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중동이다. 회교도의 양심은 전세계를 경멸하고, 시아파와 수니파의 양심은 서로 상대방의 머리를 신발로 후려친다.

르네상스 이래 종교의 자리에 과학이 들어앉고 18세기 이래 농업의 기반을 상공업이 무너뜨리면서 인간의 양심에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양심이 개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개별화된 양심은 급격히 약화되어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내팽개쳐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사회와 국가라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간은 도덕보다 법을 앞세우게 되었다.

20세기에 공산혁명이 성공하면서 공산권에서는 그 양심이 다시 집단화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던 거대한 규모였다. 방법은 모든 인간 사회를 크게 둘로 나누어 지배계급을 악으로, 피지배계급을 선으로 정의하는 정교한 사회과학의 힘을 빌린 세뇌 작업이었다. 악의 뿌리를 물질의 소유로 확신하고, 생산 수단을 보유한 자들과 그들을 용인하고 부러워하는 자본주의 사회와 국가는 파괴하고 해체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자 종교이자 붉은 양심이 되도록, 새로운 지배계층은 전인민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세뇌 작업을 펼쳤다. 이런 와중에 정착된 말이 양심수이다. 30년, 40년이 지나도 양심을 저버리지 않는 장기수가 저쪽에선 불멸의 영웅이 되었다. 집단화된 사회주의의 양심은 자본주의의 법을 철저히 무시한다. 그것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지키는 사악한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본주의를 파괴하는 파업과 폭력과 전쟁이 찬양되고 고무된다.

진실이 아니라 거짓이 도덕과 결합하면, 그 양심이 악을 선으로 확신하고 선을 악으로 확신하기 때문에 그 사회와 국가는 파멸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70년 공산주의 실험의 실패가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 준다. 동일한 철학과 과학을 공유하지만,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점진적인 변화를 모색한 북구와 서구의 사회주의는 허위가 도덕과 결합하는 것을 끊임없이 경계하면서 진실이 도덕과 결합하도록 부단히 노력한 결과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을 거의 없애고 중산층이 두텁게 자리잡은 사회를 만들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현재 전혀 다른 두 양심이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으로 격렬히 부딪치고 있다. 그 양심을 대통령과 그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코드라고 부르며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작업을 착착 진행시키는 한편, 북한은 그 체제를 보존하라고 양심에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진심으로 전세계를 향하여, 특히 유일 초강대국 미국을 향하여 목에서 피가 나도록 외친다.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한국의 현대사는 전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북한의 현대사는 전파 망원경으로 바라보는 풍토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저들은 한국의 부분적 진실과 북한의 총체적 허위를 정교하게 과학의 이름으로 다듬고 이를 도덕과 결합시켜 강철같은 새로운 양심을 만드는 일을 1980년 이후 급격히 진행시킬 수 있었다.

저들은 방송과 인터넷을 완전 장악하고 신문도 여럿 거느림에 따라 이제는 저들이 의도적으로 일으키는 끝없는 혼란의 바다에 시커먼 잠수함을 투입시켜 신천지를 향해 유유히 나아가고 있다. 혼란의 바다에서 쪽배와 돛단배, 유람선이 부딪치고 불타고 가라앉는 것을 통쾌하게 즐기며, 일찌감치 축배의 잔을 부딪친다. 

거짓이  도덕과 결합하면 하나님도 말릴 수 없는 양심을 갖게 되며, 그런 양심이 집단을 이룰 때, 그 사회와 국가는 파멸할 수밖에 없다. 히틀러의 독일, 스탈린의 소련, 모택동의 중국이 좋은 예이다. 그들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김일성 부자의 북한이 사망 직전에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진상한 신비한 약으로 회춘한 데 이어 도리어 남녘을 오시하며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다.

(2003. 12. 19.)
[ 2007-04-20, 20:4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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