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道詐欺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이 분명하거나 배타적 선택만이 가능한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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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 東 安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정치학>
 


1945년 전남 順天 출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 중앙대 대학원 정외과 석사과정
합동통신기자/ 경향신문 논설위원(비상임)
조선대 전임강사
경기대 조교수
(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대한민국건국사/ 한국의 정치현실/ 칼마르크스의 제이론에 대한 분석 외 다수

1~2년 전부터 이 나라의 정계와 지식인 사회에서 ‘중도’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 정치인들은 웬만하면 다 자기의 노선을 ‘중도’라고 말하거나 ‘중도’를 다른 용어의 앞이나 뒤에 붙인 노선, 즉 ‘중도개혁’, ‘중도보수’, ‘개(변)혁적 중도’, ‘보수적 중도’ 중의 어느 하나라고 말한다.

정당들도 민노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들은 자기들의 노선이 ‘중도’노선 혹은 다른 용어와 ‘중도’를 붙여서 만든 복합어의 노선이라고 천명한다.

학계나 언론계에 종사하는 지식인들도 정치인들과 비슷하게 자기의 사상적 및 정치적 입장을 밝힘에 있어서 ‘중도’를 애용한다. 이와 같은 정계 및 지식인 사회의 경향을 반영해서, 이러 저러한 성격의 단체들이 만들어질 때마다 그 단체의 노선을 천명함에 있어서 ‘중도’가 애용된다.

정계나 지식인사회의 ‘중도’애용현상은 긍정적으로 이해할만한 측면이 없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사상적 대립이 심하여 그로 인한 국가적 피해가 커지고 있으므로 그런 대립을 완화해야 하겠다든지, 이 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있어서는 대립하고 있는 기존의 노선이 부적절하므로 그 대결의 중간쯤에 있는 노선을 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든지 하는 애국적 善意에서 출발한 측면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중도’, ‘중도ㅇㅇ’, ‘ㅇㅇ중도’를 자기의 노선으로 표방하는 사람들이나 단체들의 행동을 보면, 그들의 ‘중도’애용에 있어서 긍정적 측면을 인정해주기 어렵게 된다. 그들의 ‘중도’애용이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들은 현재 대립하고 있는 각 노선의 오류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비판하고, 자기들이 지향하는 노선의 구체적 내용을 분명하게 개진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중도’애용症을 보이는 개인이나 단체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은 채 ‘중도’, ‘중도ㅇㅇ’, ‘ㅇㅇ중도’ 만을 표방한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이 대립하고 있는 각 노선의 오류를 정확히 알고 있지도 못하며, 자기들이 지향·실천해나갈 노선의 구체적 내용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 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국가적 쟁점들에 대한 좌·우의 대립에는 중도 혹은 중간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가보안법을 존속시킬 것이냐 폐지할 것이냐, 주한미군을 유지시킬 것이냐 철수시킬 것이냐, 북한의 핵무기보유를 절대 반대할 것이냐 묵인할 것이냐, 한·미FTA를 체결하도록 할 것이냐 저지할 것이냐, 한·미동맹을 공고하게 유지할 것이냐 이완·해소할 것이냐,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희생시킬 우려가 있는 남북통일을 반대할 것이냐 지지할 것이냐 등등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우익과 좌익의 입장대립이다. 이들 각 쟁점과 관련된 입장에서 중도 혹은 중간이 끼어들 여지가 어디 있는가? 대립하고 있는 좌·우 두 진영의 입장에는 배타적 선택만 가능할 뿐이고 절충할 여지가 없다.

‘중도’애용자들은 중도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 좌·우의 대립에 중도가 끼어들 여지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거나 의도적으로 가정하여 ‘중도’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중도’ 혹은 ‘중도ㅇㅇ’이나 ‘ㅇㅇ중도’를 표방하는 개인이나 단체들이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 대립하고 있는 각 노선의 오류가 무엇인지를 알지도 못하고, 자기들이 지향·실천해나갈 노선의 구체적 내용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그리고 우리 사회의 좌·우대립의 본질이 배타적 선택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점도 모른다는 사실은 그들이 애국적 선의에서 ‘중도’를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 術策的 동기에서 ‘중도’를 사칭하는 것이라는 의심을 갖게 한다.

그들이 ‘중도’를 외치는 술책적 동기는 이 나라의 문화와 관련이 있다. 이 나라 국민은 사회적 쟁점들에 대해 옳은 입장이 무엇인가를 정밀하게 따지려 하기보다는 양시양비론을 좋아한다. 또한 어느 편이 옳은가를 따져서 옳은 편에 가담하기보다는 중간에서 양쪽의 눈치를 보기를 좋아한다. 가시적 보상이 없는 일에 골치를 썩일 필요가 없다는 非公民意識과 이 나라의 거친 역사가 국민들에게 그러한 의식과 행태를 갖도록 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진행되는 사상대립에 대한 깊은 지식도 없고 명백한 독자적 강령도 없으면서 ‘중도’ 혹은 ‘중도ㅇㅇ’이나 ‘ㅇㅇ중도’를 표방하는 개인이나 단체들은 이러한 이 나라의 문화에 편승하기 위해서거나 자신들의 사상적 정체를 위장하기 위해서 그런 입장을 취한 것이다. 또는 배타적인 선택을 요구하는 두 대립하는 입장들 가운데 어느 것이 옳은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어느 편에 가담할 용기가 없어서 그런 입장을 취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우리 사회에서 깊은 성찰도 없이 ‘중도’를 표방하는 개인이나 단체들의 대부분은 詐欺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매도당할 만 하다.

하나의 옳지 않은 것과 다른 옳지 않은 것이 대립하고 있을 때 그 사이에서 옳은 中間을 취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입장이다. 그런 것을 철학적으로 中庸이라 하며, 이러한 중용적 중도는 항상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이 대립하고 있을 때 그 사이에서 중간을 취한다는 것은 매우 부도덕한 입장이다.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사이에서 중립을 취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옳지 않은 것을 편드는 것이 된다. 왜냐 하면 옳은 것을 지지하지 않는 모든 것은 옳지 않은 것을 지원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중립 혹은 ‘중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말을 흔히 黑白論理라고 매도한다.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이 분명치 않다거나 타협과 절충이 가능한 조건에서 중립이나 중도를 비판하는 것은 흑백논리로 매도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이 분명하거나 배타적 선택만이 가능한 조건에서는 그러한 매도는 타당하지 않다.

오늘날 우리 정계와 지식인사회에서 걸핏하면 ‘중도’ 혹은 ‘중도ㅇㅇ’이나 ‘ㅇㅇ중도’를 표방하는 개인이나 단체들은 중도노선을 표방하기에 앞서 현재 이 나라의 당면문제들을 놓고 대립하고 있는 좌익과 우익의 입장에 대해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가, 어느 쪽이 대한민국에 유익한 입장인가를 깊이 연구해보는 일부터 해보기 바란다. 그런 진지한 연구를 한 다음, 양쪽의 입장에 모두 오류를 발견하게 되면 그 오류를 구체적으로 비판하고 독자적인 옳은 대안을 제시하면서 중도를 표방해주기 바란다. 그 때의 중도는 가치 있는 중도로 존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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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국발전리뷰
[ 2007-04-24, 20:2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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