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11일에 하고 싶은 일들
"선진국이란 사고로 죽거나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덜 억울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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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에서 10년을 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곤 했지요. 국가라는 조직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사실은 실체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 조직입니다. 여러 가지 필요에 의해 이 조직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면, 상징 조작(긍정적 의에서의)을 통해 국가의 얼굴을 지속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일이겠지요. 그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을 추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신임장을 제정하러 가는 각국 대사들이 황금마차를 타고 버킹검 궁에 들어간다든가, 현충일 날 수십 년 된 군복을 입은 베테랑들이 참여했었던 전쟁의 순서대로 도심지를 대오를 맞춰 통과한다든지 하는 그런.
  
  9.11테러 다음 날, CNN뉴스를 보면서 새삼스레 영국의 저력을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버킹검 궁 앞의 근위병 교대식, 그 근위병들이 영국 왕궁 경내에서 연주한 음악은 미국 국가인 <성조기여 영원하라> 였습니다. 다른 나라 관광객들이 미국 관광객들을 위해 길을 터주고, 미국 관광객들을 궁의 철문에 기댄 채 성조기와 유니온 잭을 흔들며 마구 눈물을 뿌리더군요.
  
  사소하다면 사소한 이 같은 팬서비스(?) 하나가 향후 영국과 미국의 친선을 공고히 하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할 것인가를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 무렵, 국군 군악대와 국립 국악단이 미대사관 앞에서 만나 함께 미국국가를 연주하고, 길 가던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위해 꽃다발을 헌화하며, 미국 대사가 이 예기치 못했던 행사에 즉석에서 감사의 연설을 하는 장면을 기대했던 건 아무래도 무리였을까요?
  
  선진국이란 무엇인가. 저는 여기서, 아주 단순하게, 선진국이란 사고로 죽거나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덜 억울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그런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방법을 써서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상징조작을 통해 그 들의 죽음이 그리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알려주는 겁니다. 그건 망자들을 위한 추모인 동시에 살아있는 사람들을 향한 아주 세련된 방식의 선전이기도 하지요. 민족의 정기와 국가의 얼굴을 축구장에서 만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민족의 정기와 국가의 얼굴이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장중하게, 때로는 엄숙하게 보여질 때도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조금 우울합니다. 대한민국의 장중한 얼굴을 마지막으로 뵈었던 때가 언제였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으니까요.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내년 7월 휴전기념일 혹은 9.11에 해외공연을 기획해 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워싱턴에 있는 6.25 미군 참전 기념비 앞에서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을 공연하고 비보이 연극 등을 묶어 문화제를 개최하는 거지요. 워싱턴 공연 후에는 뉴욕으로 자리를 옮겨 공연해도 좋고, 교포들이 많이 살고 계시는 LA에서 판을 벌려도 좋겠습니다. 종묘제례악은 유네스코 지정 전통문화재입니다. 비보이와 연극도 한국의 활기와 품격을 각인시키는 현대적 문화상품으로 홍보가 가능합니다.
  
  2008년의 9월11일은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전 세계의 이목을 한 데 모으는 날이 될 터입니다.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기에는, 그것도 고맙다는 소리 들어가며 널리 알리기에는, 이만한 기회와 명분은 쉽게 만들기 어려울 듯합니다. 공연이 끝나고 뒷풀이가 이어지겠지요. 미군 전몰장병 용사들에게 헌화한 뒤 술 한 잔 올리시는 신임 대한민국 대통령과, 그 곁에서 한국 월남 이라크 서해 등지에서 산화한 대한민국 국군의 영령을 위해 묵념을 올리는 미국 대통령의 모습을 상상합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닙니다(Freedom is not free). 생존 국군포로의 조속한, 조건 없는, 즉시 송환을 촉구하며, 호국영령 앞에 고개 숙입니다.
  
  
  장원재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 2007-11-19, 09:5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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