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인권단체가 '北인권'에 침묵하는 이유
이들은 北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되어 상시적인 고문과 강제노역에 시달리는 생명체들을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장원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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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인권결의안 유엔 총회 표결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 국제적 현안이 연례행사처럼 세계 각국의 지면을 장식할 때마다 상식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심각한 의문 하나를 가슴에 품게 된다. 핵무기라는 폭력에 굴복한 정부야 북한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해도, 인류보편의 가치와 정의실현을 위해 사적인 이익을 돌보지 않고 뜨거운 가슴으로 운동에 뛰어든 한국의 ‘일부 인권단체들’은 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아무 말이 없는 것일까.
  
  상식있는 시민들은, 일부 인권단체들, 즉 좌파 인권단체들이 ‘최소한의 양심은 있거나 적어도 위선적이기는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러한 오해를 바탕에 깔고 접근하는 한, 시민들은 좌파 인권단체들이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한결같이 침묵하는 진짜 이유를 알 길이 없다. 북한의 인권문제에 무관심 무표정 무발언으로 일관하는 그들의 행태는, 적어도 그들 나름대로의 논리적 맥락 하에서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 그들의 기준으로는 ‘지상낙원인 북조선에는 인권문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자유주의연대 홍진표 집행위원장이 동아일보에 발표한 「좌파단체들 ‘북 인권’은 안보이나」라는 칼럼(2005. 2. 14)을 토대로 분석을 시작해보자. 홍 위원장은 좌파시민단체를 자처하는 세력들이 북한 인권에 침묵하는 데에는 몇 가지 방어논리가 있다고 전제하고, 다음 세 가지 사항을 적시하고 있다.
  
  첫째, 북한 인권 사항을 알기 어렵다는 견해.
  둘째, 북한 인권 관계를 거론하는 것은 향후 남북관계에 지장을 준다는 주장.
  셋째,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가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인권 사항은 좋아지게 되어 있다는 전망.
  
  홍 위원장이 사용한 ‘방어논리’라는 어휘, 즉 ‘변명 혹은 핑계’의 동의어인 이 단어는 한국의 좌파단체가 북한 인권 실태에 대한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으며, 다만 이를 거론하는 것은 자신들의 이권에 반하는 일이기에 의도적으로 언급을 회피 중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과연 그럴까?
  
  홍 위원장이 칼럼 서두에서 인용했듯이, 한국 좌파시민운동 단체들은 “미얀마 군부가 가혹한 범죄행위로 인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와 기업은 단기간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이에 침묵하고 오히려 군부에 협조하고 있다”라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엄정한 사실 확인을 넘어, 정치문제가 곧 경제 문제라는 냉철한 인식을 보여주는 이 글을 읽고, 미얀마의 비참한 인권 상황에 통분을 금할 수 있는 사람이 전세계 인류 중에 몇이나 되겠는가. 분명히 말하건데, 한국 좌파시민운동 단체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충분한 운동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홍 위원장은 같은 글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정치범 수용소와 자의적인 체포와 구금 등의 문제를 제기한 UN인권위원회의 보고서는 소설에 불과하다는 것인가”라고. 사실 확인에 뛰어난 능력이 있음을 이미 증명한 한국 좌파시민운동 단체들이 이 보고서를 보지 못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좌파 인권단체들도 북한에서 지금 바로 이 순간 고문과 공개처형, 탈북자 강제송환과 처벌, 여성의 인신매매, 심각한 영양실조 등 광범위한 인권침해가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사정이 그렇다면, 홍 위원장은 이들이 왜 UN 보고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지를 먼저 살펴야 했다. 무엇보다도, 인권이란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개념이다.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 II>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로마인들은 문명이 가장 발달하였을 때에도, 전쟁에서 승리하고 난 후 적장을 그들의 마차로 끌고 와 살육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그들의 포로들을 곡마단의 맹수들에게 던져 주었다. 한 로마시민을 처형하려는 생각에 대해 열변을 토했던 키케로도 승리를 축하하는 이러한 끔찍한 야만적 행사에 대해서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야만족은 로마인과 같은 인류종족이 아니라고 본 것이 분명하다.”
  
  위의 인용문이 보여주는 것처럼, 어떤 생명체를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한 기준은 그 생명체를 인간으로 보느냐 아니냐에 따라 극적으로 갈라진다. 인류문명사에서 강간을 장려하고 결혼을 비난한 사회는 어떤 경우에도 존재한 적이 없다. 단, 이런 예는 있다. 노예나 계집종을 강간하는 것은 노예의 주인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그러나. 노예나 계집종과 결혼하는 것은 비난의 대상이 넘어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사회파괴적 행위로 인식되었을 터이다. 노예의 주인들은, 노예나 계집종을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누군가를 절대로 인정하거나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에서 나무랄 데 없는 청년이나 아가씨가 짐승과의 결혼을 선언했다고 하자. 그 사람의 사회생활이 어디까지 가능하겠는가.
  
  이런 관점에서, 한국의 좌파 시민단체들은 북한에는 인권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 한국의 좌파 시민단체들은 지금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되어 상시적인 고문과 강제노역에 시달리는 생명체들을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한국의 좌파 인권단체들의 현실인식은 일부 특권층을 제외한 북한 일반인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김정일 일파와 정확하게 의견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자체가 없는데 어떻게 문제제기를 하고 나아가 이를 거론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홍진표 위원장 자신도 자신의 글에서 ‘한국 좌파들은 북한의 특권계급만을 사람으로 생각할 뿐 일반인들은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인지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다음 인용문을 보자.
  
  “1970, 80년대 한국에서 급진적 민주화를 추구했던 사람들이 북한 인권에 대해 보이는 이 느긋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천성산 도룡뇽과 새만금 백합조개의 생사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수령 1인의 노예가 된 2000만 동포에 대해 보이는 무관심은 놀라울 정도다”
  
  홍 위원장 자신이 벌써 북한 주민들을 노예라고 부르고 있지 않은가. 사정이 이러하니, 홍 위원장의 글을 읽은 좌파 인권단체의 운동가들은 속마음을 있는 털어 이렇게 외치고 싶었을 터이다. “노예들에게 어찌 인권이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있단 말인가. 노예들의 생사를 저 신성한 천성산 도롱뇽이나 새만금 백합조개와 비교하는 일은 아쉬움을 넘어 읽는 이의 분노를 자아낸다. 그렇다면 미얀마 이야기는 뭐냐고? 우리 좌파시민단체가 미얀마 인권에 흥분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권리가 침해된 데 대한 인류애적 의무의 발로일 뿐이다. 미얀마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인류다. 홍 위원장은 미얀마 ‘사람’들을 북한 ‘노예’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한 논리적 오류와 자신의 과오를 즉각 인정하고, 도룡뇽과 백합조개에게 사과하라.”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사항이 있다. 한국 좌파시민단체들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침묵한 적이 없다. 북한에는 김정일이라는 ‘인간’이 있다. 그리고, 한국 좌파시민단체들은 이 ‘인간’의 인권을 걱정하고, 이 ‘인간’과의 대화 노력을 중단한 적이 없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김정일이라는 ‘인간’을 만나서, ‘만경봉 정신’에 따라 단체와 구성원 개개인의 우국충정을 전달하려 했던 그 줄기찬 노력! 그런데, 인간에게 관대하고,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들에게 무관심한, 논리적으로 일관되고 하자가 없는 이러한 태도를 두고 ‘방어논리의 작동’이라니?
  
  한국 좌파시민단체들이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인권은 인간에게만 있을 수 있다’는 엄밀한 사실인식에 기초한 이성적 반응일 뿐이다. 인간이 아닌 것들에게 어찌 인권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한국 좌파 시민단체가 보기에 김정일은 분명히 한 사람의 인간이자 우리의 동포지만, 나머지 존재들은 인간이 아니며 따라서 당연히 우리 민족 구성원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자, 그렇다면 좌파 인권단체와 정상 인권단체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이냐고 묻는 분이 계실 터이다. 위에 적은 행태에 더하여 다음과 같은 자잘한 특징을 보이는 단체가 바로 좌파 인권단체라고 보시면 틀림이 없겠다.
  
  먼저, ‘시장친화적 경제인식’을 가지고 있는 모임. 그들에게는 인권문제란 불멸의 비즈니스이자 자신들의 영원한 밥벌이 수단이다. 따라서, 대의니 명분이니 하는 문제에 신경쓰지 않는다. 남이야 고문을 당하건 말건, 철사줄에 코를 꿰어 맨발로 본국으로 송환되건 말건, 초등학교 담임교사가 1,2학년짜리 학생들을 인솔해서 공개사형광경을 강제로 참관시키건 말건, 이런 문제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좌파인권 단체들이 ‘진짜로’ 분노를 표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남들이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할 때 그들은 어김없이 반발한다. 시장에서 독과점사업자라는 특혜를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는 위기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둘째, ‘탁월한 선택적 선별력’을 자랑하는 단체. 대한민국의 가장 나쁜 점과 북한의 가장 좋은 점을 억지로 골라내어 이를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하는 놀라운 능력에 관한 한 이들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은 없다. 즉, 대한민국을 부정하는데 혈안이 되어있지 않으면, 좌파 인권단체에서 활동가로 활약할 자격이 없겠다.
  
  셋째, 딱 잘라 말해서 그들은 ‘냉철한 현실인식과 정교한 계산’으로 평생을 경영하며,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것을 생활신조로 삼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 대한민국 내의 사소한 인권문제를 거론하면 신문에도 나고 방송에도 나가고 경우에 따라서는 돈도 만질 수 있다. 하지만 북한 인권문제는 기대이익이 전무하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으랬다고, 북한 인권을 아무리 거론해보아야 김정일 위원장이 눈 하나 깜짝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들도 모르지 않는 것이다.
  
  그럼 미얀마 이야기는 뭐냐고? 미얀마까지 가지 않고도 말로 모든 걸 때울 수 있는데다 우리의 정보수집력이 이 정도는 된다는 걸 국내외에 과시할 수 있는 샘플 케이스로 이보다 더 좋은 사례는 없지 않은가. 남들 등쳐먹으려면, 적어도 이 정도 능력은 먼저 보여주고 협박을 시작하는 것이 그 바닥의 상도의요 예의인 것이다. 그래서 말한다. “생각은 좌파처럼 하고 생활은 우파처럼(thinking left living right) 영위하는” 좌파 인권운동가들은 어떤 경우든 북한 인권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아니, 아예 ‘인권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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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론/홍진표]좌파단체들 ‘北인권’은 안보이나
  
  
  “미얀마 군부가 가혹한 범죄행위로 인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와 기업은 단기간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이에 침묵하고 오히려 군부와 협조하고 있다.”
  좌파계열의 한국 시민단체들이 얼마 전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의 일부다. ‘먼 나라’ 미얀마의 인권문제까지 제기하는 이들이 유독 북한의 인권문제에는 침묵하고, 나아가 북한인권을 거론하는 측을 비판하는 사태는 이해하기 어려운 미스터리다.
  
  마침 사노맹 조직을 주도해 사형 선고까지 받았던 백태웅 씨가 “한국의 민주화운동 세력도 북한 인권문제를 적극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운동권의 핵심이던 백 씨의 발언은 내부자의 조언으로서 외부의 질타에 비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속담처럼 한국의 좌파를 자처하는 세력이 북한 인권에 침묵하는 데에는 몇 가지 방어논리가 있다. 우선 북한 인권 상황을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인용하면 믿을 수 없다고 한다. 자기 눈으로 보지 않으면 인정할 수 없다는 극단까지 가게 된다. 그렇다면 정치범 수용소와 자의적인 체포와 구금 등의 문제를 제기한 유엔 인권위의 보고서는 소설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미얀마 인권까지 챙기면서…▼
  
  둘째, 북한 인권문제의 제기는 남북관계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다. 백보 양보해 정부는 북한 인권문제 거론에 신중할 수 있다 하더라도 민간이 이런 정치적 고려를 하는 것은 착각이거나 변명이다. 이는 북한정권이 한국정부에 대해 민간의 북한 인권 개선운동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시비를 걸면 이를 용인하자는 이상한 발상을 전제로 삼는다.
  
  셋째,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가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인권 상황은 좋아지게 돼 있다고 말한다. 1970, 80년대 한국에서 급진적 민주화를 추구했던 사람들이 북한 인권에 대해 보이는 이 느긋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천성산 도롱뇽과 새만금 백합조개의 생사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수령 1인의 노예가 된 2000만 동포에 대해 보이는 무관심은 놀라울 정도다.
  
  북한 인권문제를 인정하면서도 이른바 보수 세력과 비슷한 주장을 하는 데에 부담을 느껴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련의 붕괴로 좌우 패러다임이 구시대의 유물이 된 뒤 서로 상대방의 합리적 의제를 수용하는 일은 이미 자연스러워졌다. 체면이나 아집 때문에 폐쇄성에 빠지는 집단이야말로 경쟁에서 뒤지게 된다.
  
  여전히 북한은 좋은 체제라고 믿는 극단적인 친북파들은 소수이며 지금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세력의 다수는 대북 환상에서는 벗어나 있다. 문제는 김정일 체제가 유지돼야 한다는 교조에 있다. 이 교조로 인해 김정일 체제에 해가 되는 일은 삼간다는 일종의 자기통제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약자의 편에 선다는 좌파의 정체성에 어울리지 않으며, 김정일 체제를 개선의 방향으로 유도한다는 햇볕정책과도 모순된다.
  
  
  ▼내부통제에 스스로 발목 잡혀▼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북한인권이 이념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편 가르기가 벌어지면 내부통제가 발생해 스스로 발목을 잡는 최악의 상황에 빠지게 된다. 좌파 계열 내에서 누군가 북한 인권을 거론하고 싶어도 배신행위가 아닐까 하는 묘한 부담감을 느껴야 하는 기류가 발견된다.
  
  김정일의 초상화를 걸레로 닦았다고 체포되고, 김일성 신년사를 못 외운다고 맞아죽은 정치범수용소의 노인 이야기. 1995년 주사파로 활동하던 필자가 탈북자의 수기를 읽고 충격을 받았던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 과거 한배를 탔던 이들에게 ‘진실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말을 꼭 하고 싶다. [홍진표 자유주의연대 집행위원장]
  
  
  장원재 (숭실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 2007-11-20, 15:0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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