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의 회한(悔恨)
지난 대선을 통해 '잃어버린 10년'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안보불안의 시대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김희상 육군 중장(예)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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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난 대선을 통해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침체 그리고 특히 안보적 불안으로 대변되는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그 동안 쌓여 온 문제들이 너무 많다. 우리가 각별히 냉철하고 지혜롭게 대처하지 않으면 그것이 언제 어느 때 우리의 미래를 덮쳐들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안보불안의 시대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셈이다. 그 중심에 ‘2012년 4월19일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연합사 해체’ 문제가 대못으로 박혀 있다.
  
  
  1. 전작권 환수의 의미와 배경
  
   이미 수없이 강조 되었듯이 한국안보에 있어서 연합사의 의미는 매우 특별하다. 그런 연합사를 해체시켜 보라. 당장 튼튼한 연결 고리를 잃은 한‧미동맹 자체가 지극히 허약한 체제가 될 것이고 한국 안보는 그 기축부터 흔들리게 될 것이다. 현재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억제력을 상실해서 자칫 핵을 가진 북한의 오판을 불러오지 말라는 보장이 없고 장기적으로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크게 증가 시킬 것이다. 당연히 우리 경제에도 좋은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평화통일이건 무력통일이건 장차 한반도의 통일과정에는 엄청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소요가 발생 할 것인데 그런 대규모 소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미국밖에 없고 연합사는 그 지원을 받아들이는 양호한 체제요, 지원 통로다. 특히 바로 그런 時點에 나타날지도 모르는 팽창주의 중국의 위협을 견제 할 수 있는 나라도 미국뿐이고 이런 때에도 연합사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쓸모가 있는 기구다. 그러니까 연합사가 해체되면 자유 민주주의체제하의 원만한 통일은 지극히 어려워지거나 어쩌면 거의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도대체 참여정부는 왜 이런 자해(自害)적 결정을 한 것일까? 기본적으로 작전통제권은 어디까지나 군사작전 효율의 문제이지 국가주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오늘 문제가 되고 있는「전시작전통제권(戰時作戰統制權)」은 문자 그대로 ‘전시(戰時)’에 한해서, 인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핵심적 권한은 우리 대통령이 그대로 행사하고 오로지 군사작전에 관한 통제권한만, 그것도 우리 대통령과 합참의장의 지침도 함께 받아가며 UN군 사령관이기도 한 한‧미 연합사령관이 행사하는 지극히 제한된 권한일 뿐이다. 그래서 미 측에서는 ’환수‘란 말 자체도 불쾌해 하며 굳이 ’한국군 단독행사‘라는 표현을 고집한다. ’미국이 전작권을 보유함으로써 한국의 주권을 침해 했다.‘는 식의 표현은 미국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참여정부의 인식은 전혀 달랐던 듯하다. 처음부터 ’전작권‘ 문제를 ’국가주권‘의 문제로 보아 왔고 특히 한국 대통령에게는 작전지휘권이 없다고 믿고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2003년 초, 참여정부 인수위가 임기 중에 평화체제를 제도적으로 구축하겠다는 이른바 '3단계 평화정착 방안'을 구상하면서 우선 미국으로부터 전작권을 ‘환수’해서 ‘국가 주권’을 되찾아야만 이를 위한 북한과의 협의를 이끌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일보(‘03.1.22)는 이 ‘야심찬 목표‘를 위해 ’한‧미동맹의 재정립을 추구할 뜻을 내비쳤고 이미 주한미군의 감축에 대비할 것을 군 당국에 당부하는 등 평화협정 체결을 염두에 둔 행보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그렇지만 지난 수 십 년간 북한은 하다못해 헛말이라도‘적화통일을 포기 한다.’고 한 적이 없고 오히려 몇 차례나 ‘북한의 평화체제구축대상은 미국’이라고 못을 박아왔다. 한국은 평화의 대상이 아니라 통합의 대상, 적화통일의 대상이라고 명시 한 셈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그러한 북한과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 하려는 기대부터가 환상이나 다름없는 일방적 희망일 뿐이었지만 앞서 한국일보의 보도대로라면 참여정부는 그런 환상적 희망을 위해 전통적 한국안보의 지주였던 한‧미동맹을 ‘재정립’하고 주한미군의 감축까지 고려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작권을 환수’하려면 우선 ‘자주국방’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자주국방 팀’을 급조하고 개념적이지만 '자주국방 로드맵'도 만든다. 아마도 인수위 입장에서는 ‘자주국방 로드맵’도 사실상 ‘전작권 환수 로드맵’정도로 느꼈을 것이다. 두말 할 필요 없이 ‘전작권’과 ‘주권’이 서로 차원이 다른 단어이듯이 ‘자주국방’도 ‘전작권 환수’와 직결되는 것이 아니지만, 참여정부 안보 담당자들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결국 이런 기본 인식의 혼란이 북한은 핵을 개발하는데 우리는 자주국방을 내세워 입고 있던 갑옷마저 벗어 던지는 지극히 ‘반(反) 안보적인 안보정책’을 반복하는 배경이 된 게 아닌가 싶다. 한 마디로 참여정부 안보담당자들의 비현실적 안보관과 군사적 몰이해 그리고 독선적 고집 같은 것들이 ‘연합사 해체’의 배경이라는 뜻이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2. 청와대에서의 전작권 전환 논란
  
   그런데 민망하게도 이런 상황을 당시의 필자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2월 21일 경 ‘청와대 국방 보좌관’으로 선임되었다는 의외의 통보를 받았을 때도 사회의 보수적 우려를 모르지는 않았지만 이제 대통령 당선자가 안보환경의 현실을 제대로 보게 되면 인식이 바뀔 것이라는 막연한 일상적 통념과 반기문 외교 보좌관과 협력해 나가면 얼마든지 안보정책을 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솔직히 엄청난 도전과 기회가 혼재하는 이 운명적 시대에, 지난 2년간 미‧일‧중‧러 주변 4강의 대표적 국가 안보 연구소들을 두루 섭렵하며 확인한, 평화와 통일, 번영의 미래 한반도를 위한 나름의 오랜 구상을 구현 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
   그러나 22일 밤 첫 대면에서부터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았다. 25일 대통령 취임식 직후 파웰 당시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작통권 문제는 거론 하시면 안 됩니다.’ 나름으로는 진지한 건의였다. 첫 인사를 드리는 좀 어려운 자리였지만 일부 언론의 우려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대통령으로서도 어이가 없었을 테지만 그 대답도 뜻밖이었다. ‘왜 안 되죠?’ 한창 바쁠 때라 대통령은 ‘다음에 또 토의 해 봅시다.’라며 매듭을 짓고 말았는데, 돌이켜 보면 이것이 쫓겨나듯 물러날 때까지 1년 가까이 계속 반복된 ‘안 된다’는 말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정부가 출범하면서 ‘수석’과 ‘보좌관’의 기능부터 구분되었다. 수석은 ‘참모’요 보좌관은 ‘개인교사’라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보좌관’은 사실상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아직은 ‘안 된다’는 말만 계속하는 불운의 나날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오히려 2월말 미군 정찰기에 대한 북한 MIG-29의 도발 행위가 있었을 때는 대통령이 많은 이들의 불필요한 우려를 씻어 주었을 뿐 아니라, 엉뚱한 반론을 눌러 가슴을 쓸어내리게 해 주었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태도도 확고했었다. 한번은 북한 핵에 대한 대통령의 진의를 북한 측에 전달하려는 기회가 있었다.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에게 대통령은 “온 세계가 핵을 반대하고 있고 한국도 세계의 일부다. 그렇게 하면 내가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 줄 수가 없다.”며 핵 포기를 열정적으로 강조했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북한 핵도 이해 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거나 북한 핵을 그대로 둔 채 정상회담을 하는 노 대통령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려웠던 셈이다.
   ‘희망이 있구나.’하는 자신감도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종석이 중심이 된 NSC(국가 안보회의)사무처가 들어선 후인 5월 어느 날 아침 수석회의에서 느닷없이 서해에 남북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자는 아이디어가 제기 되었다. 깜짝 놀라 ‘그것은 NLL을 무력하게 만들고 우리의 서해 생명선을 위협하여 자칫 한국의 심장지대인 수도권 전체의 발전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황급히 저지하였다. 필자가 청와대를 물러 나온 몇 년 후 이 문제가 다시 제기 된 것을 보면 결국 이것도 평화체제 구축과 연계된 아이디어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행히 그 이야기는 그렇게 1회성으로 지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자주국방론’이 강조되기 시작했는데 거기에는 ‘전작권 환수 문제’를 연상하게 하는 묘한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비로소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인수위 때부터 추진되던 정책 방향을 이때야 겨우 감지하기 시작했으니 참으로 무능하기 짝이 없는 국방 보좌관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늦었더라도 급히 대처하기는 해야 했다. 구상해 오던 참여정부 안보정책 방향을 정리 보고하기도 하며 기회를 만들어 자주국방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자주국방의 요체는 어디까지나 ‘국방을 기획하고 준비하며 구현하는 과정에서의 자주성’에 있고 그런 차원에서는 연합사체제는 오히려 자주국방의 효율적 수단의 하나라고 봐야 옳다는 점도 강조되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대통령의 공감이나 깊은 관심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그 즈음 한국을 방문한 럼스펠드 미국방장관도 노 대통령에게 그 특유의 날카로운 미소와 함께 ‘이 시대 자주국방은 미국도 못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타국 군대와 함께 작전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 역시 관심조차 끌지 못했다.
   이때쯤에는 이런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과 신념이 확고해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사고의 편린을 엿 볼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6월 초 서울에서 열린 미래 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동아태 부차관보가 필자와 반기문 외교 보좌관을 함께 만난자리에서 ‘주한미군 12,500명의 감축 문제’를 꺼냈다. 그러나 지극히 조심스러웠다. “이 문제는 아직 미국에서는 부시 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 그리고 나만이 알고 있고 한국에서는 이제 당신 두 사람만 알게 되었다. 상부에도 보고하지 말고 철저한 보안을 유지해 달라.”
   느닷없는 통보에 화가 난 필자는 곧바로 되받았다. ‘너희들 그렇게 하면 대한민국을 잃는다.’ 전통적으로 주한 미군의 감축은 단순한 병력 숫자 조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던가? 원인을 누가 만들었건 그러지 않아도 한‧미간 신뢰의 간극이 커져 있는 터에 주한 미군의 일방적 감축은 한국의 안보태세에 영향을 주고 동맹에 대한 신뢰를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사 주한미군 감축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일단은 강하게 반대하고 어깃장을 놓아야 했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면 미국은 다양한 안보 공약과 대규모 군사물자로 성심성의 달래가면서 겨우 겨우 일부 병력을 빼 내 가곤 했던 것이 과거의 통상적 관례였기 때문이다. 그래야 우리가 챙길 것은 챙기고 장차 미국의 주한 미군 감축 결심도 한결 신중하게 만들 것이 아닌가? 그런 반발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통보하는 롤리스의 태도도 그렇게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롤리스의 표정이 잠시 긴장으로 굳어지고 하얗게 변했다. ‘어떻게 하면 그 결정을 바꿀 수 있나?’ ‘우리 손은 이미 떠났고 장관 이상의 선에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그래도 당시의 느낌으로는 ‘확정된 통보’라기 보다는 이라크 전쟁으로 다급해져 가는 미국의 입장을 전달하고 한국의 적절한 지원을 유도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었었다. 실제로 그 후 불과 3개월도 되지 않아 이라크 파병 문제가 제기 되었을 때 ‘이라크 파병과 주한미군 감축을 동시에 감당 할 수는 없다. 파병하면 감축문제는 재고 되는 거냐?’는 필자의 질문에 대한 롤리스의 반응은 제법 융통성이 있어 보였다. 당시 필자가 7천명 규모의 경보병사단 파병을 주장한 데는 그것이 세계화 시대에 우리가 중동 전략자원지대에 진출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갈 수 있는 월남전 못지않은 전략적 기회임은 물론, 한‧미간의 혈맹적 동맹을 복원하고 바로 이 감축문제도 원만하게 해결 할 수 있는 기회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정부의 대응은 그리 적극적이거나 효과적이 아니었다. 규모와 성격은 미국의 기대와 많이 달랐지만 우리는 이라크에 파병을 했지만, 미국으로 하여금 별다른 어려움 없이 주한 미군을 빼내 갈 수 있게 해 주기도 했다. 합당한 통로와 방법으로 대통령의 지침을 분명히 전했음에도 임무를 맡았던 사람은 그것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모두가 경악했지만 정작 대통령은 진노하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 ‘한국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겁을 준 필자의 말만 웃음꺼리가 되고 만 셈이었다. 혹시 우리 측 일부에서 주한 미군의 감축을 ‘차라리 잘 된 일’로 보는 시각은 없었을 가? 결국 이런 시각의 바탕 위에서 연합사 해체 결심도 가능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그 얼마 후, 6월 하순 혹은 7월 초쯤이었다고 생각되는데 그 시끄러웠던 ‘전작권 전환’에 관한 국방부 보고와 토의가 있었다. 흔히 ‘대통령 주재 자주국방 토론회’라고 알려져 있는 그 회의 말이다. NSC 사무처에서 국방부에 지침을 주어 기본 보고서를 만들게 하고 대통령의 주재 하에 이 문제를 토론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던 모양이지만 갑자기 회의 참석을 통보 받은 필자는 주제가 무엇인지도 회의에 참석한 이후에야 알았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듯이 이 토의는 국방부부터가 반대였고 말이 토의지 토의다운 토의가 되지 못했다. ‘연합사령관을 한국과 미국이 번갈아 맡자’는 비현실적 의견정도가 있었을 뿐 주로 대통령의 ‘전작권 환수’ 설득과 필자의 반대가 일방적으로 충돌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6월 초 미국의 감군 통보도 대통령의 결심을 굳히는데 어떤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다. ‘전작권 전환이 연합사 해체와 주한미군의 철수로 이어질 것’이라는 경고에 대해 즉각 ‘전작권 환수와 주한미군 감축은 별개 문제다. 미국은 자기들의 필요로 이미 감축으로 가고 있지 않나?’하는 대답이 돌아 왔으니까. 그러나 12,500명의 감축은 단순한 전술적 태세의 변화인 반면, 2006년 8월 미 국방연구원(IDA)의 한 위원이 “(전작권 이양은)결국 미군이 한반도에서 발을 뺀다는 얘기”라고 단언했듯이, 연합사 해체가 초래 할 변화는 전략적 태세를 바꾸는 근본적인 것이 될 것이었다.
   더욱이 감축 문제는 아직도 우리의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진행 중인 과제가 아닌가? 그러나 대통령의 뜻은 의외로 강경한 편이었다. ‘전작권 환수를 기본 입장으로 하고 다만 그 시기와 방법은 여건이 성숙되었을 때 충분히 협의해서 하는 것으로 하면 어떻겠는가?’하는 양보안까지 제시 했다. 그러나 당장의 안보는 물론 통일번영의 미래를 보는 대 전략적 차원에서, ‘햇볕정책’아래 흔들려 온 한‧미동맹을 하루빨리 회복하고 더욱 튼튼하게 가꾸어 가야 한다고 서둘고 있던 필자에게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되면 연합사령부는 식물사령부가 되고 말 것이다. 어차피 없어질 사령부가 어떤 기능을 수행 할 수 있을 것인가?‘ 한사코 설득하려 들었다. 결국 회의는 아무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난장판으로 끝나고 말았다.
   참으로 착잡하기 짝이 없었다. 사전에 의제조차 몰랐으니 완전히 허를 찔린 느낌이기도 했다. 이제 안보에 관한 참여정부의 상황인식과 정책적 방향이 명확해졌는데 거기에 내가 설 자리는 과연 어디일가 하는 의구심도 커졌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참모의 건의치고는 필자의 태도 역시 지나친 바가 있었다. 결국 이튿날 비서실장을 찾아가서 사표를 냈다. 비서실장이 묵살해 버리고 말았지만- 대통령도 대단히 불쾌 해 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 대신 다행이라고 할까? 대통령과 전작권 전환을 강행 하려던 측에서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듯하다. 특히 “전작권 전환은 미군 떠나라는 소리와 같다”는 경고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어쨌든 덕분인지 그 이후 적어도 필자가 청와대에 남아 있는 동안에는 두 번 다시 이 문제를 재론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또 다시 자주국방이 강조 되었다. 대통령의 8.15 기념사에는 ‘우리 국군은 나라를 지킬 만한 규모를 갖추고 있으나 아직 독자적인 작전 수행 능력과 권한을 갖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내에 우리 군이 자주 국방의 역량을 갖출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아하- 아직도 서로 전혀 다른 인식 속에서 사는구나하는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다시 자주국방 논란으로 이어지는가?
   이런 때, 2003년 9월 KIDA 자주국방 세미나에 기조 발언을 요청 받았다. ‘이 지구촌 시대에 국방을 오로지 나 자신만의 독자적 힘으로 다 책임진다는 식의 배타적인「완전형 자주국방」은 불필요 할 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고, 안보상의 국제적 상호 의존도가 높고 집단안보가 일상화되어 있는 현대의 자주국방이란 어디까지나,「협력적 자주국방」일 수밖에 없다. 특히 동북아의 지정학적 중심에 있는 한국이 이 시대의 다양한 국제적 위협에 대처하려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 후 이종석 NSC 사무처장이 찾아왔다. “「협력적 자주국방」,참 좋은 말입디다. 앞으로 그 말을 사용하겠습니다.” 그래서 참여정부는 이 후 언필칭「협력적 자주국방」이라고 불렀다. 실체는 변함이 없는데 그럴듯한 포장만 만들어 준 셈이다.
   그래도 은근히 이것으로 전작권 문제는 일단락 된 것이 아닐까 기대를 했다. 실제로 그 이후 상당기간 전작권 전환에 관한 논란은 수면 하로 잠복했다. 그러나 대통령, 특히 그것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신념이 바뀐 것은 물론 아니었다. 사표는 저절로 없었던 것으로 되고 대통령과의 서먹서먹한 관계도 약간은 8월, 로드리게스 사격장에서 새로 편성된 미국 스트라이크 여단의 한반도 적응 훈련과정에 한총련이 기습시위를 전개한 사건이 일어났다. 다음날 아침 수석회의에서 ‘상황이 간단하지 않으니 청와대에서 어떤 형태로든 조치를 하고 ’유감‘의 뜻을 표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까짓 것이 무어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일언지하에 거절 되었다.
   하릴없이 사무실로 돌아와 이리저리 궁리를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연합사 러포트(Leon J. LaPort)사령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부터가 착 가라 앉아 있었다. “General Kim, I deeply concern...” 이렇게 시작 된 말이 제법 길었다. ‘실탄을 쏘는 사격장인데 안전사고라도 났으면 어떻게 할 번했느냐 한총련이 맞았으면--(또 촛불시위하지 않았겠느냐?), 우리 병사가 맞았으면 워싱턴이 가만있겠느냐?’ 하는 것이 첫 번째 우려였고, 지금 신문기자들이 격앙(激昻)되어 ‘이렇게까지 반대하고 있는 나라에 우리가 무엇 때문에 주둔해야 하느냐’며 젊은 장군들을 몰아붙이고 있는데 이 사건이 워싱턴의 혐한(嫌恨) 정서를 부추기지 않을 가 염려스럽다는 것이 두 번째였다. 8.15까지 용산 기지 등에 대한 이들의 시위 공격이 예정되어 있다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의논도 있었다. 당장 경찰청장에게 대책을 강구하게 하고 러포트도 안심을 시켜 주었지만, 문제는 한총련 시위대가 줄줄이 태극기를 들고 서서 배경을 만들고 그 태극기 배경 하에 성조기(星條旗)가 불타는 모습은 워싱턴 미국인들을 자극하기에 충분 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만약 여기에 미국 정부당국자가 한마디라도 하고 나선다면 한‧미 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말이다. 한 번 더 관계자들을 불러 설득하려 했지만 달라질 턱이 없었다.
   어떻게 하든 아직 잠들어 있는 워싱턴이 깨어나기 전에 무엇이든 조치가 있어야겠는데- 궁리 끝에 당시 청와대 관저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던 대통령에게 전화로 보고를 했다. 그것도 가까운 손님이 방문 중이라 해서 한 비서관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상세한 설명을 하며 그대로 적어서 보고 드리라고 한 것이 모두였다. 그런데 1시간도 채 못 되어 대통령이 직접 인터폰을 했다. “아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동맹군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시위 관계자는 법에 의해 철저히 조치를 할 것이고 8.15까지는 경찰에서 철저히 대처 할 것이다. 그리고 청와대 이름으로 유감 표명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청와대 유감표명’은 못하고 총리실의 유감표명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 대신 대통령의 이런 깊은 관심과 조치 내용은 미 대사관과 특히 러포트에게 직접 상세히 설명해 주었고 그 사실을 워싱턴에 잘 전달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다행히 그 덕분인지 이 사건은 조용히 넘어갔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고 휴가에서 돌아온 대통령 주재하의 수석회의에서의 말이 뜻밖이었다. “그것 별것 아닌 것을 내가 너무 과잉반응 했던 것 같다.”는 것이 그 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반응이었다. ‘아하- 그 사이에 또 엉뚱한 보고가 들어갔구나.’ 하는 판단과 함께 ‘한‧미동맹에 대한 이들의 기본인식, 그리고 오랜 동지들 사이에 외톨이로 섞여 있는 보좌관이 수행 할 수 있는 임무와 보좌의 한계’를 다시 한 번 절감해야 했다. 전작권 문제도 그랬던 모양이었다. 필자가 청와대 보좌관으로 남아 있는 동안 이 ‘전작권 전환’ 문제를 공식적으로 재론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전혀 포기하지는 않고 재론의 기회를 노리며 ‘방법과 논리를 재정비’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3. 전작권 전환 합의
  
   필자가 청와대에서 물러나고 국방부와 합참의 수뇌부가 모두 바뀐 다음, 이 문제는 다시 본격화하기 시작 했던 것이다. 청와대에서의 ‘격돌’이 있고 난 후 대략 2년 가까이가 경과 된 때인 셈인데, 청와대의 압력으로 군 당국에서 2005년 5월, ‘2012년까지 전작권 전환을 추진한다’는 암호명 '714계획'이라는 것을 만들어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것이다. 그 해 9월 한·미안보정책구상(SPI)회의에서는 미국 측에 전작권 전환 문제협의를 공식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10월 하순 제37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도 이 문제를 논의하려 했지만 다행히도 이때는 미국 측이 강하게 반대해서 ‘적절히 가속화’한다는 애매한 합의로 그친다.
   그러나 2006년 들어 참여정부는 다시 본격적으로 전작권 환수를 추진하기 시작하고 이 문제는 뜨거운 정치적 이슈로 변질된다. 1월 연두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이 '올해 안에 전작권 환수문제를 매듭짓도록 미국과 긴밀히 협의할 것'이라고 밝히더니, 그해 봄 우리 국방부와 합참은 미 측에 전환 목표시기를 2012년으로 하고 싶다는 의사를 처음으로 전달한다. 당시 미 측이 이를 상당히 충격적으로 받아들였음에는 틀림이 없다. 워싱턴 주변의 반응은 싸늘하기 이를 데 없었고 미래 한‧미동맹의 분기점으로 보는 시각도 많았다. 브루스 벡톨 교수는 “양국동맹의 탄생부터 존재해온 모든 과정들이 종말을 고한다는 의미”라고 단언하고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북아 담당 선임국장 마이클 그린도 “동맹이란 깨질 수 없는 게 아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조선일보 06.08.09) 이때는 벨 연합사령관의 목소리도 높았다. 국회 안보포럼과 한 조찬 강연회에서 ‘한국은 과연 준비가 되어 있느냐?’면서 조목조목 따져 묻고 ‘이것은 정치문제가 아니라 군사문제’라고 언성을 높였었다.
   그러던 벨 대장이 미국을 다녀오면서 갑자기 전작권 이양, 연합사해체의 선봉장으로 변해 버렸다. 미국의 대응 방침이 섰다는 방증이었을 것이다. 하긴 미국 입장에서 보면 일본과의 동맹만으로 동북아를 관리하기에는 좀 부담스러우니까 가급적이면 한국과의 동맹 관계도 계속 유지하고 싶기는 하지만, 연합사가 해체 되어도 한국이 작전기지는 준다고 하고 완벽한 전략적 유연성을 즐길 수가 있다고 하니 굳이 적극적으로 반대할 이유가 없었을 런지도 모른다. 그 때문인지 7월 중순 서울 제9차 한·미안보정책구상회의에서는 미측이 ‘2009년 이양 안‘을 들고 나온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당시 한국을 방문했던 한 미국 정보관계자는 필자에게 ‘할 테면 다음 정부로 미루지 말고 현 정부 책임 하에 해 봐라’는 불쾌감의 표시가 아니겠느냐면서 ‘서울에서는 쫓아내고 평택에서는 못 오게 막고 있는 반미시위와 그 중심에 있는 정부의 보조를 받는 시민단체’ 문제까지 거론 했다. 한국사회도 이 뜻밖의 상황전개를 보며 큰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 했다. 전직 국방장관 등이 집단 성명을 발표해서 전작권 단독 행사 추진을 반대하고 여기에 전직 외교관, 전직 경찰 수뇌 그리고 대학교수 등 지식인까지 동참하는 유례없는 집단 저항이 일어났다. 실로 격렬하고 광범한 저항이 태풍처럼 한국사회를 휩쓸었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참여정부의 전작권 전환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2006년 10월 워싱턴 제38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는 한·미 간 전작권 전환이 합의되고, 이듬해 2월 워싱턴에서 김장수 국방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 간에 마침내 ‘2012년 4월 17일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고 전작권을 전환’하기로 결정이 난 것이다.
  
  
  4. 리뷰
  
   도대체 노무현 대통령은 이 문제에 왜 그렇게까지 집착했던 것일 가? 2006년 8월 9일 연합뉴스와의 특별회견이 있었다. ‘작전통제권은 자주국방의 핵심이고, 자주국방은 주권국가의 꽃’이다. ‘한국의 방위역량은 많이 과소 평가돼왔다.’ 그래서 ‘지금 당장이라도 (전작권 행사가) 가능하다.’ 단지 시기는 ‘평택기지에 미군이 입주 할 때’라는 것이었다. ‘전작권 환수’가 노 대통령의 신념임을 알게 하는 회견이었다.
   그런 차원에서 대통령 참모로서의 회한이 컸다. 어차피 여러 가지 제한은 있었지만 그래도 ‘안 된다.’고 막고 나서기만 할 일이 아니라 좀 더 지혜롭게 ‘안보 가정교사’노릇을 제대로 했어야 했다는 반성인 셈이다. 더욱이 필자는 내외의 안보환경에 비추어 우리가 도전 못지않게 거대한 운명적 기회를 맞고 있다고 보고 나름의 신념과 구상을 갖고 정부에 참여 했다. 그런데, 무릇 위기를 극복하면 기회가 되고 기회를 버려두면 위기로 되돌아오는 법인데 우리는 언필칭 ‘햇볕’ 속에서 미루고 회피하고 또 때로는 상대를 도와주기까지 해 가면서 운명적인 기회를 스스로 훼손하고 낭비하는 것도 모자라 마침내 굳이 존망의 위협을 찾아서 만든 결과가 되고 만 것이다. 지혜와 역량이 모자라고 운도 닿지 않아 어쩔수가 없었지만 어찌 회한이 없겠는가?
   전작권 전환 문제에 관한 한 군부에서도 좀 더 확고하고 적극적이었어야 할 일이었다. 2005년 당시 국방 수뇌들이 ‘전제조건’을 달기도 하는 등 나름의 지혜로운 대응을 하려 했음은 충분히 이해를 하지만 한국안보에 있어서의 연합사의 기능과 역할을 생각하면 시기를 늦추는 정도로는 현명하고 충분한 대처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군부가 2003년의 상황을 반복했어도 전작권 전환이 그렇게 합의되고 진행이 되었을 가? 어쩐지 근본적인 문제를 재치로 극복하려다가 청와대의 신념에 밀려난 모양새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많은 이들이 이 문제가 점차 돌이킬 수 없게 되어 가는 것 아니냐하는 우려를 하고 있다. 이미 한‧미 정부 간에 합의가 된 사항인데다가 미국의 의지가 너무 굳어 우리가 불필요하게 ‘재검토’를 서둘다가는 자칫 엄청난 부담만 안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있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대전략적 판단도 필요하다. 기대하는 대로 연합사 못지않은 안보체제를 창출할 수만 있다면야 얼마나 좋을 가만, 아무리 따져 봐도 가능만 하다면 되돌리는 것이 장기적으로 훨씬 더 지혜로운 길일 수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와 연계된 ‘평택기지’ 문제도 그렇다. 이제는 어차피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지만 그 엄청난 소요 비용과 한국 안보에 있어서의 장기적 기능과 효용성 등을 고려하면 차제에 연합사 이전 같은 부분적인 문제라도 좀 더 심모원려한 점검이 있어야하지 않을 가?
   어쨌건 나라의 미래안보에 큰 영향을 줄 이런 문제들을 언제까지나 버려두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가장 지혜롭게 접근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어차피 재검토 해보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더욱이 다행히 아직은 미국 내에도 우리 편이 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제법 있다. 펜타곤의 고위 인사도 ‘접근 방법만 올바르다면 되돌릴 수도 있다.’고 공언하지 않았던가? 앞으로 시간이 흘러 이런 지원 세력들까지 없어지고 나면 ‘연합사 해체 문제의 재검토’, 나아가 ‘한‧미동맹의 완전한 회복’은 훨씬 더 어려운 과제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는 ‘가능과 불가능의 중간에 있다.’, ‘가능하다.’던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가 ‘불가능’쪽으로 말을 바꾸어 가는 것도 조심스럽다. 그가 국방일보와의 대담에서 ‘한국의 새 정부 역시 기존의 결정을 존중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는 언급이 그런 변화의 배경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더 서둘러야 할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천천히 해도 된다.’고 했다지만 무책임한 발상일 수가 있다. 이미 이를 위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계획이 수립되고 진행 중인데, 이리저리 저울질만 하다가 기회를 놓치고 만다면 그것이 어떻게 현명한 일이 되겠는가? 그러지 않아도 지금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상비전력, 동원전력, 미 증원전력 등이 우리의 3대 군사력인데 노무현 정부는 굳이 연합사를 해체해서 미 증원전력을 없애려 들더니 새 정부는 출범도 하기 전에 비상기획위원회와 함께 동원전력을 흔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판이다. 안보문제에 좀 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때라는 말일 것이다. <월간조선 2008.03>
  
  
  <김 희상 육군중장(예)/정치학 박사, 한국안보문제연구소장>
  
[ 2008-03-31, 11:2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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