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는 왜 이회창도 X, 박근혜도 X했을까
YS의 생각과 선택은 그 한 사람의 것인가.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 중 절반 가량 특히 지식인들이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이것이 한국의 비극이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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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가정(假定)은 부질없다. 첫째는 한 번 흘러가면 영원히 되돌아오지 않는 시간의 불가역성(不可逆性) 때문이고, 둘째는 동일한 상황에서 내리는 동일한 인간의 판단은 게임이론으로 정형화할 수 있을 만큼 일반성을 갖고 있어서 설령 타임 머신을 타고 과거로 되돌아간들 동일한 인간의 선택은 거의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결정론도 운명론만큼 무의미하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지혜가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역사를 배우는가.

 

 현재는 과거의 미래라, 역사를 읽는 사람은 과거의 사람에게는 안개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미래의 빛을 거의 꿰뚫고 있기 때문에, 필부라도 과거에 대해 척척 솔로몬의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이 특권을 마구 휘둘러 부끄러운 역사를 한탄함이 역사를 배우는 목적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솔로몬보다 현명하다면, 자신이 서 있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개인의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 선택을 멋들어지게 잘하고 그 선택에 걸맞게 피나는 노력을 쏟아 가문의 영광을 드높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역사를 배우는 사람이 가능하면 정확히 과거를 재현하여 역사의 주인공들이 이런저런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고 승자와 패자가 그런 식으로 갈릴 수밖에 없었던 연유를 찾아내면, 개인이든 단체든 국가든 크진 않을지라도 현실에 필요한 작은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좌파정부 10년이 종식되었다고 하는데, 어리석은 내가 보기엔 어림도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좌파사상이 여전히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데, 혀를 꼬부려 '굿 모닝, 베스트 오브 베스트, 비즈니스 프렌들리' 몇 마디하고 남쪽을 향해서는 '747' 북쪽을 향해서는 '비핵개방3000'이라고 알록달록 만국기를 펼쳐 보인다고 하여, 좌파정부가 절로 종식될 리 없다. 생각은 말을 낳고 말은 행동을 낳는다. 생각이 거의 그대로인데, 말과 행동이 근본적으로 바뀔 리가 없다. 이런 점에서 우파정부와 좌파정부의 갈림길에서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이명박 정부가 좋아하는 영어로 섞어 표현하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하 YS)의 생각과 판단과 행동을 분석하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1997년에 YS는 대선 중립을 표방하며 여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의 대선가도에 재를 확 뿌리고 바나나 껍질을 쫙 깔았다. 이에 힘입어 기세등등 이인제가 신한국당에서 튀어나가 YS의 표밭에 깃발을 꽂았다. 그 이전에 YS는 범 전라도표와 범 경상도표가 추의 양끝에서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을 때, 충청표를 슬쩍 얹어 줌으로써 YS쪽으로 추가 확 기울게 했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이하 JP)를 비수로 등뒤를 찌르듯 마음을 아프게 하여 당에서 제 발로 걸어나가게 만들었다. 3당 합당하던 YS에게 한 수 배운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은 이념이 정반대인 이런 JP를 끌어들여 필승전략을 짰다. YS가 3당 합당 조건으로 내걸었던 내각제를 실시했으면 틀림없이 자신이 수상이 될 거라고 믿었다가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 JP를 끌어들이기 위해, DJ는 비밀각서가 아니라 국민 앞에서 TV에 출연하여 내각제를 굳게 약속했다. 그러나 DJ는 이용할 만큼 이용해 먹은 후 JP에게 내각제의 별사탕 대신 이별의 건빵 봉지를 선물했다. 동상이몽 시절에 건빵은 조금 나눠 먹었다.

 

 왜 YS와 DJ는 서로 앙숙이라면서 대권을 넌지시 주고받았을까. 왜 그들은 JP를 필요할 때만 이용하고 속살 빼 먹은 게 껍질 버리듯 한 점 양심의 가책도 없이 가차없이 버렸을까. 왜 YS는 이회창을 그토록 미워했을까. 그가 국무총리 때 법대로 하자며 국무위원에 대한 인사권은 자신에게 있다며 감히 황제 대통령에게 대들었다고? YS가 옹졸하다고 하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대선보다 치열했던 한나라당의 경선에서 왜 YS는 박근혜를 물 먹였을까. 왜 그는 이인제와 MB를 선택하고 JP와 이회창과 박근혜를 버렸을까. 아마 백 번 같은 선택을 하더라도 YS는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고 YS 사람은 대부분 그 뒤를 따를 것이다.

 

 YS의 기준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민주요, 또 다른 하나는 정치다. 이회창은 민주를 법치로 보지만, YS는 민주를 정치로 본다. YS는 이회창을 정치 숙맥으로 본다. 그가 보기엔 이인제는 프로 정치인이고 이회창은 아마추어 정치인이다. 이회창은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 그럼, 정치는 무엇이냐? YS의 말과 행적으로 미루어 보면, 그것은 인기를 얻는 것이고 표를 얻는 것이다. 한번 군사 독재면 영원히 군사 독재이고, 한번 정경유착이면 영원히 정경유착이다. 따라서 박정희와 김종필과 전두환과 노태우는 죽어도 싸고, 삼성과 현대 등 재벌은 멍석말이를 당해도 싸다. 단, 이것들이 표 얻는 데 필요하면 적당히 이용하고 차 버리면 된다. 노태우와 김종필은 필생의 라이벌 김대중한테 이기기 위해 잠시 이용했을 따름이다. 그게 필부의 의리나 꽁생원의 법치가 아닌 정치9단의 예술이다. 보나마나 조선동아가 그들이 왜 O가 아니라 X인지 든든한 이론을 제공해 주고 그들과의 약속을 위반한 것은 경찰이 조폭과의 약속을 위반한 것과 같다는 논리로 틀림없이 민심을 추슬러 준다는 것을 특유의 정치 감각으로 알기 때문에, 잠시 이용해 먹고 바로 차버린다. 양심의 가책을 느낄 리가 없다. 통쾌할 따름이다. --이게 YS의 정치요, YS의 민주다. 이회창은 이런 정치를 역겨워 했지만, 이인제는 이런 정치를 적극적으로 배웠다.

 

 YS는 스스로는 우파라 생각하지만 좌파이고, 스스로 민주주의자라 생각하지만 인기영합주의자다. 우파라면 한국의 정통우파인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과 노태우를 독재자라고 매도할 수가 없다. 서구에서 200년, 300년 걸려 도달한 민주화와 산업화에 이들은 불과 반세기 만에 도달했다. 세계최초였다. 정치든 경제든 한국은 1992년 노태우 정부가 김영삼 정부에게 지휘봉을 넘겨 줄 무렵에는 서구의 1960년보다 못할 게 하나도 없었다. 200년, 300년 차이를 불과 30년으로 좁혀 놓았다. 시간이 제일 많이 걸리는 문화는 모르되, 경제와 정치는 굼벵이처럼 기어도 20년이면 능히 서구와 일본을 따라갈 수 있었다.

 

 YS는 선배 대통령들의 피와 땀으로 성취한 민주신흥공업국가에 크게 감사하면서 그 장점을 최대한 배우고 스스로 새 장점을 개발해야 할 때, 한풀이에 집착하고 인기를 얻는 데 급급하여 모든 걸 뒷걸음치게 만들었다. 노동부 장관 이인제로 하여금 좌파 인기 정책을 쓰게 하여 백기를 꺼내들던 노조에게 다시 붉은 머리띠를 쥐어 주고, 조선동아에 한겨레까지 등에 업고 세계의 흐름으로 자리잡아 가던 인수합병(M&;A)을 사악한 재벌의 파렴치함으로 몰아세워 노조 왕국 기아의 분식회계만 믿고 1등 삼성을 때려잡는 데 크나큰 희열을 느꼈다. 하늘같은 YS에게 선거에서 감히 대든 왕회장의 문어발 현대와 돈병철의 문어발 삼성은 모두 정경유착으로 성장한 더럽고 사악한 범죄집단일 따름이었다. 역대 대통령은 모조리 독재자일 따름이지만, YS 자신만은 재벌도 과감히 때려잡는 포청천이요, 정치자금을 한 푼도 받지 않고 자식에게 쓰고 남은 정치자금을 한 푼도 맡겨 놓지 않은 정말 깨끗하고 착한 정통우파이다.

 

 자유 대한의 최대 적은 북한 공산집단이다. 그런데 YS는 철저히 남북 양쪽에서 농락 당했다. 역대 정부의 반공정책에 뒤이은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으로 이제 자유통일이 눈앞에 다가와, YS는 통일 대통령이 될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YS는 친북좌파를 대거 등용하여 대한민국이 도리어 북한 공산집단과 중국 공산당과 한국의 친북좌파에게 역포위되게 만들었다. 입과 호루라기와 완장은 민주요 우파였지만, 손과 발과 뱃속은 친독재(친북)요 친좌파였다. 스탈린도 지옥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든 김정일은 이런 YS와 미국의 클린턴까지 싸잡아 마음껏 농락했다. 자유통일의 무지개가 연방제통일의 먹구름에게 서서히 밀려나는 순간이었다.   

 

 YS를 원조로 하는 정당이 가슴에 선명하게 주홍글씨 '차떼기당'을 달고 탄핵의 쓰나미에 휩쓸려 가랑잎처럼 흔들릴 때, 스스로 회개의 재를 뒤집어쓰고 천막당으로 거듭남으로써 거대 야당으로 다시 서게 만든 붕대손 박근혜는 YS가 왜 사람 취급도 안 했을까. 결정적 순간에 자신의 옛 사람들을 뒤로 불러 모아 MB의 뒤에 줄 세웠을까. 17대 대선 후 YS는 자랑스럽게 스스로 밝혔다. --독재자의 딸이니까! 여기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박정희는 아무리 무지몽매한 사람들이 역대 대통령 중 최고라고 치켜세워도 하나님 앞에 맹세코 독재자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고(물론 자신은 민주주의자), 다른 하나는 박근혜는 집안 망하게 하는 암탉이다.--어데, 여자가 감히! (물론 자신은 절대 나라를 말아먹은 적이 없는 사내대장부!) 그러나 보라, MB는 박정희의 독재에 반대한 민주주의자요, 금상첨화로 경제도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경영인 출신이다. --누가 그를 정계에 입문시켰느냐? 바로 이 YS가 아니던가. 크하하! 자유민주의 보루인 국가보안법을 누가 사수했는지, 그것은 YS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국가보안법에 대해 열우당과 똑같은 생각을 가진 자들이 누구 밑에 수두룩한지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하여튼 YS에겐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다. 이것은 YS의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변함없는 진리다.  
                
 YS의 생각과 선택은 그 한 사람의 것인가. 그럴 리 없다.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 중 절반 가량이  특히 지식인들이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비극이다. 한반도의 미래가 암담한 이유다.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말 풍선이 아닌 뚜벅뚜벅 행동으로 친북좌파 정책이 계속될 가능성이 여전히 높은 근거이다. 어느 쪽이 얼마나 이기든 18대 총선이 별 의미 없는 이유다. 하긴 YS는 1996년 총선에서 무소속도 끌어들여 여대야소의 안정 의석을 확보하여 하늘 높은 줄 몰랐다. 단, 그 해 성탄절까지!  
                (2008. 4. 9.)

 

[ 2008-04-09, 23: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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