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敍傳을 통해 본 박근혜의 正體性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60년동안의 치열한 이념전쟁과 사상대립에 대한 인식의 부족!

이주천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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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전 대표는 최근 차기대권후보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2위와의 차이도 크다. 그런데 박근혜는 야당이 저질은 「12.18국회폭력점거사태」에 대해서 ‘兩非論’을 거론하여 물의를 빚었는데, 특히 보수우익 논객들로부터 항의성 질타(叱咤)를 받고 있다. 1월 5일, 박근혜는 “법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국민통합을 위해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라며 “지도부에서 그동안 많이 참으셨다지만 다수당으로서 국민 앞에 큰 그림, 큰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근혜는 작년 100일간이나 친북좌파가 난동을 벌린 광우병-촛불시위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졸속협상을 비판하고 쇠고기문제는 이념문제가 아니라고 단언했었다. 그 뿐 아니라, 박근혜의 팬 클럽인 박사모는 촛불시위에도 맹렬히 가담하기도 했었다. 한나라당 전 대표인 박근혜의 태도에 보수우익이 현기증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이와 관련하여 대선시절부터 제기된 박근혜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정치적 리더십에 대한 검증문제가 재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의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워즈덤하우스, 2007)는 박근혜의 정체성과 리더십의 형성과정을 알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준다. 이 책에서 그녀 생활의 주변 이야기가 여성의 섬세한 감각으로 평시하게 서술되고 있다. 박근혜는 일찍이 역사소설에 흥미를 가져서 삼총사, 삼국지 등을 읽었고 다른 청소년들처럼 헤밍웨이나 세익스피어, 탈무드 문학작품에 심취했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박근혜는 모친 육영수 여사의 엄격한 가정교육에서 자랐던 점을 가장 큰 자랑으로 삼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일기를 쓰고 메모하는 좋은 습관을 길렀으면,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했다. 종교적 신앙심에서는 카톨릭 중학교를 다녔고 독실한 불교집안의 영향으로 기독교와 불교가 내심에서 공생하는 혼합적 모습을 보인다. 부모를 잃어버린 후 심적 타격을 입었으나 단전호흡과 요가로 건강을 찾았다고 한다.
  
  김대중 납치사건에서 “아버지(박정희)는 관계가 없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인숙 피살사건과 그녀의 아들도 박정희와 무관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의해 사망한 뒤 퍼스트레이디가 된 박근혜는 20대에 이미 놀라운 화술과 협상력, 장차 지도력의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79년 카터 대통령의 방한시 로잘린 여사와 박근혜는 조깅에 관한 대화를 했다. 건강한 사람과 수술한 후 얼마 안된 사람은 조깅의 강도가 다르다. 그렇듯이 나라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북한의 남침 위협에 직면해 있으므로 우선 순위가 전쟁을 막는 안보와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경제성장이 한국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이렇게 로잘린 여사를 설득했다고 한다(p.122). 로잘린은 카터에게 이 대화의 내용을 전했고, 카터는 주한미군 철수는 없던 것으로 하자고 박정희에게 약속했다고 한다. 박정희는 큰 딸에게 “큰 일을 했다”고 칭찬했다.
  
  박근혜의 강점은 부모를 잃어버리는 과정에서 권력의 無常과 虛無를 이해한 정치인이 되었다는 점에 있다. 또 당대표로 있으면서 비례대표에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원칙과 소신, 절제있는 정치인으로 부각된다.
  
  
  II. 정치가 박근혜, 무엇이 문제인가?
  
  박근혜는 다른 정치가처럼 단점이나 문제점도 지니고 있다. ①좌파의 실체에 대한 안이한 인식, ②2002년 대선에서 정권교체의 실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책임론, ③북한 김정일체제에 대한 인식의 안이함, ④김대중과의 유착 의혹 등을 거론할 수 있다.
  
  1. 민주화세력으로 위장한 좌파세력에 대한 인식의 안이함
  
  박근혜의 자서전에서는 좌파라는 용어는 한 구절도 보이지 않는다. 다음의 구절에서 민주화운동내지 좌파에 대한 인식이 잘 드러나 있다.
  
  “나는 아버지와 그 세대가 이 땅의 산업화를 위해 흘린 땀과 눈물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만큼,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애쓰신 분들에 대해서 높이 평가한다. 사실 아버지 시절에는 북한의 남침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가난과 배고픔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였기에 ‘민주화’라는 측면에서 부족한 면도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 본의 아니게 피해를 입으신 분들도 계셨다.
  
  나는 항상 그분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가져왔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드는데 그분들의 희생 또한 값진 것이었다. 나는 그분들에게 제대로 보답하는 길은 아버지가 못다 하신 민주화를 활짝 피우고, 잘 사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p.155).
  
  박근혜는 '아버지가 못다 하신 민주화를 활짝 피우겠다'고 했는데, 현재 대한민국의 민주화 지수는 선진국 지수를 上廻하고 있으며 지구상에 대한민국보다도 더 민주화가 진척된 지수가 높은 나라가 있는지 묻고 싶다. 이 나라는 민주화가 너무 진척되어서 문제인 것을 정녕 모른다는 말인가?. 그러다 보니 작년 친북좌파가 불을 지른 촛불난동에 대해서도 박근혜는 “이념문제가 아니고, 먹거리다”라고 하여 큰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국민통합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하려고 온갖 애를 쓰는 노력은 높이 살만하지만, 극렬좌파의 난동시에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 때에도 공권력을 투입하지 않고, 불법시위자들과 합의니 타협 운운 할 것인가? 민주화세력으로 위장한 세력이 난동을 부리면서 안보위기를 부추기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망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점에 대해서 박근혜는 아무런 해답을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 마치 표만 쫓아가는 포풀리스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2. 2002년 대선 패배의 정치적 책임론
  
  박근혜는 97년 IMF 사태에 충격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그 해 12월에 정치에 입문하였고 2선의원이 된 2002년 2월 28일 정치개혁을 명분으로 갑자기 탈당하여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 탈당의 명분은 총재직을 대선전에 폐지하고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여 상향식 공천제도를 개혁하고 당의 재정 투명화와 대선후보 경선에서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하는 것을 요구하여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뒤에 ‘한국미래연합’이란 정당을 만들고 평양을 방문하면서 언론의 주목 대상이 되었다. 박근혜는 11월 19일 다시 대선 선대위 의장으로 한나라당에 합류했다. 선거를 불과 보름 남겨놓은 결단이었다. 이회창-박근혜의 분열상을 적나라하게 노출하였을 당시, 노무현-정몽준 후보의 단일화가 뜨겁게 언론방송매체와 인터넷을 달구고 있었다. 유권자에게 비친 한나라당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에 대한 책임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정치개혁을 수용하지 않아서 탈당했다고 하지만 박근혜는 온 국민이 열망했던 2002년 정권교체의 실패라는 정치적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정치개혁의 명분이야 어쨌든 한나라당의 분열상을 노정하여 노무현 후보의 당선에 유리한 反黨·利敵행위를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정치적 판단력의 미숙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고도의 책략적 차원에서 였던가? 이점이 석연치 않다.
  
  3. 북한의 김정일 공산수령독재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의 결여
  
  박근혜는 반공을 국시로 해서 5·16군사혁명을 일으킨 박정희의 후계자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북한의 공산주의 실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가지지 못했기에 출신이 工大 전자공학이라는 전공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 치명적이다. 북한의 박근혜 초청은 북측에서 제안해 온 것으로 공식적으로는 자신이 이사로 있는 유럽-코리아재단의 초정으로 이루어졌다. 박근혜를 만난 자리에서 김정일은 1968년 북한의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한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김정일은 통상적 수법으로 자신이 지시한 부하들을 ‘극단주의자’로 몰아서 그들에게 잘못을 뒤집어 씌운다. “당시 극단주의자들이 일을 잘못 저질렀습니다.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 일을 저지른 사람들은 다 응분의 벌을 받았습니다.”
  
  회담에서 김정일은 남북한 철도 연결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남북한 철도 연결을 통해서 한반도를 물류기지로 만들어서 남북 모두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자는 박근혜의 제안에 김정일은 강한 긍정의 뜻을 비쳤다고 한다. 박근혜와 김정일은 남북한 동해선 연결을 통해 시베리아 철도까지 연결하는 방안을 실천하기 위한 현실적 문제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p.199). 놀랍게도, 이 대목에서는 박근혜의 제안이 김대중의 대북제안과 거의 대동소이하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얼마나 순진하고 소박한 제안인가? 중단했던 남북한 스포츠교류를 통해 화합의 장을 열자는 약속도 얻어내었다고 한다.
  
  김정일이 박근혜와 약속한 것을 하나 둘 씩 실천에 옮기는 것처럼 보였다. 9월에 적십자회담에서 북측이 먼저 전쟁당시 실종된 군인을 찾자고 제의해서 남측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박근혜는 국군포로가 아오지와 같은 탄광에서 부역을 하고 있는 것을 모르는가? 또 전쟁중 행불이 된 사람들의 주소를 확인하도록 김정일이 직접 지시했다고 전했다. 박근혜가 볼 때, 북한의 태도는 매우 적극적이었다. 남북한 통일축구가 12년만에 개최되었고 부산에서 아시안게임에 남북단일팀을 구성할 수 있었다.
  
  평양방문은 박근혜에게 북한에 대한 인식이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뀌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서로 마음을 열고 이끌어낸 약속들을 가능한 한 모두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p.203). “바로 진실을 바탕으로 상호 신뢰를 쌓아야만 발전적인 협상과 약속을 기대할 수 있다.”“북측과 툭 터놓고 대화를 나누면 그들도 약속한 부분에 대해 지킬 것은 지키려고 노력한다. 나는 북한 방문을 통해 이런 확신을 얻었다.”
  
  박근혜는 2005년 6월 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김정일에 대해 “김 위원장과 이산가족상봉 상설면회소 등을 약속했는데, 거의 다 지켜졌다”며 “약속을 지키려고 북에서 상당히 노력했다”고 말했다. 박근혜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가지고 회담을 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김정일에 대해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으로 말한 것은 김대중의 ‘식견있다’든가 정동영의 ‘통크다’는 발언과 상통하는 것으로 당연히 김정일에 대해 동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2007년 2월 박근혜는 미국을 방문하여 라이스 국무장관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마침 미북간의 2.13합의가 이루어진 직후라 라이스의 표정은 밝아보였다. 라이스 장관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를 강하게 보였을 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도 미국의 주요 관심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북핵문제 해결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북한은 개방을 해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이 받는 고통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p.294). 유감스러운 점은 이 만남에서 북한인권을 강조한 쪽은 라이스가 아니라 박근혜였어야했다. 이 회담에서 뿐만 아니라, 박근혜는 평양방문이후 북한 인권에 대해서 오랫동안 침묵하고 있다. 김정일과 무슨 합의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북한 인권과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한 언급을 일체 자제하고 있다.
  
  이미 50대중반을 넘어선 박근혜는 해방이후 남북한 관계가 북한 김일성-김정일 공산체제가 얼마나 많은 휴전협정의 약속위반과 무력도발로 가득 찬 기록으로 쌓여있다는 사실을 대학시절에 강의실에서 또 아버지 박정희로부터 어깨너머로 충분히 배웠을 것이다. 특히 아버지 박정희로부터 북한 김일성 공산집단의 기만전술에 대해 반공강의를 듣지 않았단 말인가? 92년 남북한기본합의서에서 약속한 한반도의 비핵화 약속을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제대로 지켰는지를 묻고 싶다.
  
  요약한다면, 박근혜의 對北認識은 냉철한 知性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대단히 정서적이고 낭만적이다. 대북접근은 현실주의보다는 민족공조에 가깝다. 그래서 박근혜는 근본적인 체제의 문제도 정치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하면 해결될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북핵문제에서 북한의 핵에 대한 집요한 소유의지를 정확하게 평가하기 보다는 '미북 간의 신뢰회복과 이를 위한 중국의 중재 노력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4. 의혹에 쌓인 김대중과의 關係
  
  박근혜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오명을 벗기기 위해 남은 것을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박정희 대통령 추모사업’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 구체적으로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의 건립이다. 처음 이 사업을 꾸려갈 무렵, 이 일을 도와줄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여 대부분이 박근혜를 만나는 것조차 기피했다고 한다. 이것을 간파한 김대중은 97년 대선후보 시절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약속하고 박근혜에게 유호적 시그널을 보냈다. 이렇게 해서 박근혜-김대중은 급속도로 접근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참조-김대중 정권은 2000년 12월과 이듬해 12월에 도합 200억원의 국가예산을 기념사업회에 할당했으나 예산사용 승인을 해주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국고보조금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다).
  
  2004년 박근혜는 6.15공동선언 4주년 학술발표대회에서 “6.15공동선언을 계승·발전시키겠다”고 언급했으며, 그 해『월간조선』(8월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리비아처럼 핵을 포기하는 상황”을 낙관했다. 또 “6.15공동선언이 역사적으로 한반도 평화정착에 기여한 큰 의미가 있다. 이것을 인정해야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김대중과의 대립보다는 협력관계의 구축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박근혜의 대북제안도 김대중의 그것과 유사하다. 남북한 열차를 개통하여 한반도 물류센터를 만들어서 시베리아로 진출하자는 것이다. 박근혜는 대선공약에서 ‘열차페리’구상을 내세웠다. 열차 페리란 갑판에 선로를 갖춰 열차가 지상과 선박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하도록 만든 대형선박을 일컫는 것으로, 2006년 박근혜는 포항과 군산, 인천 등 항구 도시를 방문하면서 국내에서 열차페리 사업의 유용성 및 실행 가능성을 검토한 적이 있었다. 박근혜와 김대중과의 관계는 2007년 광주합동연설회에서의 발언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 때 박 후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저에게 ’국민화합의 최고 적임자’라고 했다”고 말했다. 아무리 호남인심을 잡기 위한 방편이라고 하더라도 6.15공동선언을 작성하고 햇볕정책이라는 ‘퍼주기’ 대북정책의 책임자로서 국민적 비난의 대상인 김대중과 상호 신뢰 관계를 갖게 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III.
  
  위에서 거론된 네 가지 문제점 중에서 2002년 정권교체 실패의 경우는 정치적 미성숙으로 인한 결과로서 이해가 되고 또 당대표가 되어서 한나라당을 구원한 공로로 볼 때, 덮어둘 수 있다. 그러나 기타의 3가지는 모두 대한민국의 安危에 영향을 주는 한반도 좌익의 實體와 좌우익 사상문제, 그리고 장차 한반도 통일방향과 깊이 연결되어 있어서 간단하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기에 보수우익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대덕단지 준공식을 둘러 본 후, 박정희 대통령이 박근혜에게 당부한 말을 다시 들려주고 싶다. “지도자란 어려운 길을 개척할 수 있어야 하고 자기 소신을 가져야 하지, 욕을 많이 먹더라도 이를 두려워해서는 안되며, 자신의 가야할 길을 잃지 말아야한다.”(p.107). 최소한 反共과 근대화의 기치를 내세운 박정희의 딸이라면 무작정 표를 쫓는 포풀리스트처럼 행동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한마디 더 첨가한다면, 북한과 통일문제에 대해서 섣부른 浪漫主義나 感傷主義에 사로잡히지 말고 현실에 입각하여 냉철하게 파악해 달라는 주문을 하고 싶다.
  
  박근혜의 발언과 행보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60년동안의 치열한 이념전쟁과 사상대립에 대한 인식의 부족이다. 앞으로 박근혜가 보다 성숙한 정치가가 되기 위해서는 더 치열한 이념학습의 훈련에 몰두해야할 것이고, 스스로 좌우익 이념전선에서의 확보한 위상의 정립에 成敗가 달려있다고 하겠다.
  
  
  2009/1/8
  이주천 (원광대 교수)
  
  
[ 2009-01-08, 17:2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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