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방법
강철 조직으로 합법 불법 탈법 위법 등 별의별 수단을 다 쓰면 된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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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수결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이자 차선의 수단이다. 따라서 원수끼리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다수결로 직행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가장 나중에 꺼낼 수단을 가장 먼저 꺼냈기 때문이다. 토론하는 척함으로써 소수자를 설득하는 듯한 요식 행위에 이어 바로 찬성하는 사람들은 손드세요, 일어서세요, 하는 것도 민주주의가 아니다. 주인 아닌 자가 먹지도 못할 풋사과를 따서 어수룩한 소비자에게 팔아 넘기는 것과 진 배 없기 때문이다. 이상은 다수의 입장에서 본 다수결의 함정이다.

 

 소수가 다수결을 쓰레기통에 처넣고 다수를 지배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다. 합법적인 것도 있고 비합법적인 것도 있는데, 먼저 합법적인 것부터 살펴보면, 첫째 1인 다(多)투표제가 그것이다. 이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소수는 먼저 강철 조직을 갖춰야 한다. 권한을 위임받는 인사위원회나 추진위원회 등의 위원을 뽑는다고 하자. 다투표제 하에서는 강철 조직이 20%만 되어도 80%를 장악할 수도 있다. 10명의 위원을 뽑는데, 모든 사람이 10표를 행사한다고 하면, 이들은 한 여름밤에 생맥주를 기울이면서 축제 분위기 속에 미리 10명을 내정한다. 입후보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이들에게 유리하다. 20명보다는 30명이 더 좋다. 이들은 누구나 입후보할 수 있다고 바람을 잡는다. 아예 입후보 없이 투표할 수도 있다. 비밀투표에 들어가면, 강철 조직은 코드가 같은 10명에게 몰표를 주고 나머지는 뿔뿔이 흩어져 소신을 발휘한다. 그러면 강철 조직에 소속되지는 않았지만 개인적 인망이 탁월한 두어 명 외에는 80%의 다수 중에서 위원으로 뽑힐  가능성이 거의 없다.

 

 민주주의의 관습법에서 1인 1표를 제1조로 삼는 것은 바로 이런 민주주의의 형식을 차용한 선거의 맹점을 막기 위해서다. 1인 다(多)표는 민주주의가 걸음마 단계에 있는 사회나 나라에서 흔히 목격된다. 강철 조직이 바람몰이를 하면 흩어진 개인은 표 자체는 하나하나가 동등하다는 논리의 함정에 빠지거나 은근한 위협을 받거나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는 방관주의로 쉽게 1인 다투표제에 동의해 버린다. 

 

 강철 조직이라면 20세기를 피로 물들인 공산 국가의 공산당과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조합을 당할 수 없다. 공산당은 1인 다표보다 훨씬 효율적인 방법을 고안했다. 그것은 입후보자를 1명만 내는 것이다. 공산당이 추천하는 후보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그것 외에는 인민(국가 노예)은 의사를 표현할 길이 없다. 평등을 금과옥조로 삼는 척하는 공산당이 실은 철저히 서열화되어 있어서 권력의 서열이 높은 자는 사실상 1인 1표가 아니라 1인 1만 표도 갖고 1인 1억 표도 갖는다. 고위 권력자 스스로 나서거나 추대 받거나 심복을 입후보로 내세우면, 못 되어도 95%의 찬성표가 쏟아진다. 압도적 다수결이다! 100%도 드물지 않다. 모든 당원에게 1표를 주고 최고 권력자를 선출하면, 찬성과 반대 외에는 의사 표시를 할 수 없는 입후보자 1명의 선거에서도 무슨 불상사가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예를 들면 겨우 80% 찬성 같은 것), 공산당은 모든 당원에게 1표를 주긴 하되, 그 한 표 한 표의 가치가 당 서열에 따라 정해진다. 일반 당원은 형식적인 선거로 가장 기초적인 단위의 장을 뽑을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뽑힌 자는 바로 상급 당 조직의 장을 뽑을 수 있다. 그렇게 하여 당 중앙위원까지 뽑히면, 이 당 중앙위원이 당 중앙을 선출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데, 그 표 하나하나는 당 중앙위원 전체가 10명이라면 국민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표를 행사하는 셈이다. 인구 10억이 넘는 공산국가의 당 중앙위원의 1표는 그렇게 하여 약 1억 표에 해당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중국은 아직 새까맣다.

 

 자본주의 국가도 후진적인 곳에서는 정당의 우두머리가 공산당의 우두머리와 비슷하다. 이른바 공천권이 바로 1인 다표이다. 우리나라에선 민주의 화신으로 떠받들리는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30년, 40년 동안 그들은 자신이 몸담은 정당의 표를 강철 조직으로 거의 독점했다. 그러니 수틀리면 당을 새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노태우의 6·29선언 이후 한국은 정당과 노조와 시민단체의 세상이 되어 버렸다. 소수의 강철 조직들이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문화를 독과점했다. 이들은 한 마음 한 뜻이므로 겉으로는 1인 1표이지만, 속으로는 조직적 몰표를 행사하여 뿔뿔이 흩어진 표를 물리치고 차례차례 권력의 꼭대기로 올라섰다. 이들은 논리와 이성 대신 욕설과 저주로 토론의 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고, 감성과 직관 대신 증오와 억측으로 다름을 나쁨으로 매도했고, 말과 유머 대신 입의 거품과 어깨의 근육으로 치외법권의 투전판을 휩쓸었다. 1인 다투표제는 그나마 가장 점잖은 방식이고, 이들은 민주의 가면을 쓰고 불법, 위법, 탈법으로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요지경 세상을 만들었다. 이런 자들일수록 1인 후보를 내세워 95%, 100%를 자랑하는 북한 체제에 대해 독재란 말 대신 민족이란 말로 감싸안거나 한겨레 상쇠의 장단에 추임새를 넣는다. 이상할 게 없다. 홍적(紅赤)이 동색(同色)이다. 

 

 선거가 일반화된 나라에서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방법 중 하나는 대중매체를 이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강철 조직을 이용하여 사실보다 이미지로 국민을 호도한다. 공산당이 선전선동부를 조직지도부만큼 중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거듭된 거짓말로 이미지를 형성하면 그것이 곧 서서히 국민의 의식으로 변한다. 이른바 의식화 작업이다. 다수의 일반의지가 민심일진대, 대중매체를 강철 조직이 장악하면 소수의 권력욕이 다수의 일반의지로 서서히 둔갑해 버린다. 공산 국가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빈곤과 불평등과 공포가 일상화되면, 세뇌 작업은 절로 무의식 세계의 바다에 익사해 버리지만, 훌륭한 기업가와 노동자와 농민과 깨어 있는 지식인이 곳곳에서 말없는 다수를 차지하여 빵과 서커스와 계몽과 법치를 꾸준히 공급하는 나라에선 사회의 악성 종양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도리어 강철 조직의 소수가 형성한 이미지에 진실은 서서히 사라지거나 비뚤어지고 다수는 이윽고 자신의 무의식과는 정반대되는 말을 자신의 말인 줄 알고 열심히 지껄인다. 악성 종양이 무럭무럭 자라는 이유는 몸이 그것을 이물질이 아닌 자신의 일부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면 때를 놓치는 수가 많다. 훌륭한 의사는 악성 종양을 초기에 발견하여 발본색원하듯이, 훌륭한 지도자는 이런 사회적 암을 조기에 발견하여 싹 도려내거나 개과천선시킨다.   

 

 6·29 이후 말없는 다수가 지지하는 사람이 국가 지도자의 반열에 올라서기는커녕 아예 선도 못 보이거나 설령 선은 보이더라도 한 번도 국민과 웨딩 마치를 울리지 못한 것은 이처럼 한국이 사이비 민주주의자들의 멋진 신세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2009. 1. 14.)             

[ 2009-01-14, 14:2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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