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미탄남(烹美呑南)
미국을 구워삶아 한국을 삼킨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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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어렴풋한 기억에 따르면, 통미봉남(通美封南)은 전 국무총리 노재봉이 만든 말이다. 그것은, 노태우의 북방정책에 대한 역대책으로 불쑥 내민 김정일의 남방정책(南方政策) 홍두깨가 노리는 바를 한 어절 네 음절로 잘 표현한다. 한편 그것은 통중봉북(通中封北)의 반대말이요, 김정일의 한국 역포위 전략이기도 하다. 김정일의 남방정책이라든지, 역포위 전략이라든지, 통중봉북이란 말은 이해를 돕기 위해 내가 만든 말이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은 김일성 부자와 한국의 친북좌파에게 살인미소 곧 독일식 흡수통일의 악몽을 선사했다. 북한의 하늘이자 공산권의 두 추축국(樞軸國) 소련과 중공이 차례로 러시아와 중국이란 보통국가로서 한국과 수교함에 따라, 북한은 사방에서 1950년 9월 인천상륙 작전과 더불어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던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되는 장엄한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면한가(四面韓歌)였다. 흔히 자력갱생(自力更生)의 구호에 속아 북한은 다른 나라와는 거의 교류가 없이도 그럭저럭 살 수 있었던 것으로 착각한다. 천만에! 소련의 공산 식민지 건설에서 동족상잔을 거쳐 전후 부흥에 이르기까지 소련과 중공의 원조는 북한에게 한국의 미국 원조 못지않게 지대한 것이었다. 북한은 자력갱생을 단 1년도 달성한 적이 없다. 중국과 소련이 더 이상 적선하지 않아서 진짜 자력갱생해야만 했을 때, 물경 300만이 굶어 죽은 것이다. 이 당시 북방정책과 300만 아사는 오비이락의 관계이다. 자원과 자본, 기술 등에서 북한의 대외 의존도는 한국의 대미(對美) 대일(對日) 의존도보다 더 컸다고 보아도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은 자원은 미국이나 일본에 거의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달러를 벌어서 당당히 직접 구매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소련과 중공으로부터 구닥다리 기술과 너덜너덜 자본만 얻은 게 아니다. 동구의 공산국가나 쿠바와 마찬가지로 석탄보다 훨씬 효율적인 에너지원임이 입증된 석유를 거의 전적으로 소련에 의존했다. 거의 공짜로! 장부에만 기입하고 나중에 갚겠다고 하면 되었다. 마침내 공산 악몽 30년 또는 50년 후에 제 코가 석 자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중공과 소련이 달러의 위력에 다리를 후들후들 떨면서 만년 거지 이웃에게 이제 더 이상 무상원조는 없다, 석유 한 방울도 돈을 내고 사 가거라, 돈은 반드시 너네 누리끼리 돈 말고 시퍼런 미국 달러로 내야 한다, 당분간 너네 석탄이나 철광석과 물물교환은 일부 할 수 있다, 그리고 무기도 이젠 공짜로 못 주겠다, 아니 이제 무기는 아예 안 팔겠다, 이렇게 나오자, 북한은 졸지에 세계 최악의 거지 땅으로 전락했다. 영향력이 1%도 안 되는 미국의 경제봉쇄가 아니라 영향력이 90%에 육박했던 중국과 러시아의 '두 눈 번히 뜬' 경제봉쇄 때문에 거지 땅이 된 것이다. 요즈음 외국 자본이 일시에 빠져나가면서 국가 부도가 난 아이슬란드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중국과 러시아의 개혁개방에 발맞추어 재빨리 그들보다 20년 내지 30년 앞선 선진 경제대국 한국(이 당시 인구 4천5백만의 한국 GDP가 인구 12억의 중국 GDP의 70%가 가량 됨)이 미국 달러를 흔들며 다가오자, 그들은 못 이기는 척 덥석 '보통사람'의 손을 부여잡았다. 고르바초프는 30억 달러의 경제원조가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여 이마가 벌개지도록 고집을 피워 서울이 아닌 제주도에서 노태우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참고로, 위에서 한국이 러시아와 중국, 두 나라와 수교했음에도 불구하고 통중봉북(通中封北)이라 명명(命名)한 것은 개혁개방에서 러시아보다 약 10년 앞선 중국이 그 후로 국부가 러시아를 압도했고 정치도 매우 안정되어 남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미국의 그것에 필적했기 때문이다.      

 

 김일성 부자와 한국의 친북좌파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이를 한 칼에 해결한 자가 김정일이다. 거지 역 주연 배우가 아닌 깡패 역 주연 배우로 세계 외교무대에 데뷔한 것이다. 한국의 북방정책을 단숨에 깨부순 것이 바로 김정일의 핵 몽둥이다.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겠다고 협박하자, 그 날로 허둥지둥 인기 90% 김영삼 정부는 다 된 밥(북방정책)을 맛도 안 보고 자기가 무슨 르윈스키 오빠라도 되는 듯 클린턴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친북좌파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애걸복걸했다.
 '한반도에 전쟁 나면 다 죽습니다.'
 '나그네에겐 모름지기 햇볕을 쪼이는 거래요, DJ가!'
 '미 제국주의는 물러가라!'
 '일성 동지, 정일 동무, 한 번만 봐 주이소!'
 

 '보통사람'이 달러 다발을 흔들어 완성한 북방정책은 '천출장군'이 휘두르는 핵 몽둥이에 의해 이렇게 허무하게 갈가리 찢어졌다. 남방정책은 나오자마자 주도권을 쥐었던 것이다.

 

 통미봉남은 바로 이를 경고한 말이다. 북한이 미국과 수교함으로써 한국의 친북좌파와 손잡고 한국을 역포위하려고 하니 부디 조심하라는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예언적 경고는 거의 그대로 실현되었다. 핵 대화는 미국과 하고, 인권 대화는 감히 꺼내지도 못하게 오금박고, 큰돈은 한국이 대고 미국과 일본도 섭섭잖게 성의를 표시하는 구도가 성립된 것이다. 중국은 남의 손으로 코 풀고 불난 집에 부채질하고 굿 보고 떡 먹으려고 북한 뒤에서 헛기침하며 서 있다. 김영삼 정부는 북방정책을 그대로 밀고 나가면서 인권문제로 주도권을 잡았어야 했다. 그러나 도리어 그는 호랑이 굴(민정당)에 들어가서 호랑이(대통령)를 잡았다는 자아도취에 빠지고 친북좌파의 추임새에 신바람이 나서 한국의 역대 정부를 향해서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북한에게는 크게 선심을 써서 장기수 이인모를 올려보냈다.

 

 김영삼의 헛다리짚기와 봉창 두드리기는 날 새는 줄 몰랐다. 독재와 부정부패 문제는 김정일에게 수십 수백 배로 강하게 밀어붙여야 했는데, 중국보다 열 배(북한보다는 백 배) 잘 살고 중국보다 열 배(북한보다는 백 배) 자유롭고 중국보다 최소한 두세 배(북한보다는 백 배) 평등한 한국에 대해서, 마치 자신이 성장과 분배와 자유를 다 실현한 것처럼 김일성보다 백 배, 등소평보다 열 배나 정치를 잘한 그 이전 정부를 향해 미국의 총독이나 북한의 제후나 되는 듯이 작두를 대령하라, 고 날마다 입을 굳게 다물고 부리부리 눈을 치켜 떴다. 뒤로는 원 없이 쓰고도 잔뜩 남은 수천 억 원을 소통령에게 맡겨 두고서! 아무나 잘할 줄 알았던 경제도 엉망이 되었다. --무식한 전두환도 하는데, 서울대 나온 내가 못하랴! 

 

 김정일은 효도 정치, 유훈 통치를 선보이면서 3년간 얼굴도 내밀지 않고 어둠 속에서 한국과 미국을 향해 핵 몽둥이를 마구 휘둘렀다. 그것은 한편으로 도깨비 방망이였다. 쌀 나와라 뚝딱, 달러 나와라 뚝딱, 중유 나와라 뚝딱, 비료 나와라 뚝딱, 코냑 나와라 뚝딱, 벤츠 나와라 뚝딱, 캐비아 나와라 뚝딱, 상어 지느러미 나와라 뚝딱, 일본 동경의 아이스크림과 모찌(찹쌀떡) 나와라 뚝딱! 친북좌파에 이용당한 김영삼에 이어 친북좌파가 아예 민주 가면을 쓰고 평화 정조대를 차고 10년 동안 정권을 잡아 버리자, 김정일식 깡패정치는 한국에도 만연했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을 유린하면 유린할수록 민주와 민족과 자주와 평화의 훈장이 주렁주렁 달렸다. 정권교체했다는 지난 1년도 마찬가지다.

 

 통미봉남은 매우 점잖은 외교용어다.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김정일은 한 번도 미국이나 일본과 정상적인 수교를 원한 적이 없다.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상륙하는 날, 자신의 정치 생명이 끝장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의 목적은 미국을 구워삶는 것이다. 팽미(烹美)다! 미국을 속이는 것이다. 기미(欺美)다! 미국을 내쫓는 것이다. 축미(逐美)다! 미국을 속여서 평화조약을 맺어 미국을 한반도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 일차 목표다. 그 다음은 물어볼 것도 없이 한국을 한 입에 집어삼키는 것이다. 탄남(呑南)이다! 한국을 붉게 물들이는 것이다. 적남(赤南)이다! 인민민주 곧 공산주의 완정(完整)이다! 무력적화통일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월맹식 남북통일이 그의 최종 목표다.

 

 이것은 1930년대부터 스탈린이 10여년에 걸쳐 김일성으로 하여금 꼭두각시 춤을 완벽하게 익히게 하여 그를 '붉은 군대' 4만의 향도로, 대원수의 심부름꾼으로 들여보낼 때부터 한번도 변한 적 없는 전략이다. 다만 부분적인 전술 변화만 더러 보였을 따름이다. 노태우의 북방정책 때 헤헤거리며 남북기본합의서를 맺은 것도 그런 일시적인 전술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김정일은 건강에 이상이 있지만, 미국이 국내 경제 늪과 이라크 군사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고, 한국도 경제가 밑뿌리부터 흔들리고 안보는 한미동맹의 별거로 구멍이 뻥 뚫렸고 공권력은 촛불 하나 끄지 못하고 화염병 하나 수거하지 못하고 새총 하나 부러뜨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도리어 자신이 유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바야흐로 최후의 살인미소(조미평화조약)와 최후의 목조르기(제2의 육이오)로 팽미탄남(烹美呑南)할 절호의 기회가 무르익고 있다고 볼 것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국가 위기 상황에서 통미봉남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너무 낭만적이고 너무 근시안적이다. 20대 초반부터 40년 이상 권력무대든 외교무대든 주연 배우 자리를 단 한 번도 단 하루도 빼앗긴 적이 없는 '천출배우'를 우습게 여기다가는 천추에 씻을 수 없는 한을 남길 것이다. 들을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
    (2009. 2. 3.)       

 

[ 2009-02-03, 23:2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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