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의 강제, 그것이 바로 독재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파할 게 아니라 아파트를 사려고 노력하자.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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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은 유난히 평등의식이 강하다. 사촌이 논 사면 배가 아프다. 왜 사촌이 논 사는데, 배가 아픈가. 고만고만하던 사촌이 자기보다 높아지기 때문이다. 노는 물이 달라지고 마시는 공기가 달라져 때깔부터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태인은 사촌이 논을 사면 잔치를 베푼다. 사촌의 도움도 좀 받고 사촌과 처지나 능력이 비슷한 나도 노력하면, 머잖아 논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사촌이 예루살렘대에 진학하면, 나는 하버드대에 진학하면 된다. 사촌이 은행장이 되면 나는 대학총장이 되고, 사촌이 노벨상을 받으면 나는 수학의 노벨상인 필드상을 받으면 된다.

 

 한국인은 스스로 노력해서 잘난 사촌보다 나아지거나 비슷해지려고 생각하기보다 잘난 사촌의 사소한 약점을 침소봉대하여 내부고발하거나 괴이한 창의력을 한껏 발휘하여 근거는 없지만 일견 그럴 듯하게 들리는 중상모략(소송의 70%가 사기와 무고와 위증)으로 사촌을 끌어내림으로써 신분이 달라진 사촌과 평등해지려고 한다. 이처럼 한국인은 다 함께 망하는 목불인견(目不忍見) 하향평준화를 몹시 사랑한다. 다 같이 잘 살거나 사촌만이라도 잘 사는 것은 눈 뜨고 못 봐 준다.

 

 제일 심한 집단이 북한이다. IMF 분류 세계 10대 선진부국(ten rich advanced countries)에 드는 대한민국을 아프리카의 짐바브웨보다 못 살고 스탈린 치하의 소련보다 자유가 없는 아수라장으로 끌어내려 한 방에 대한민국과 동등해지려고 핵과 미사일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고, 박정희의 진실과 김일성의 거짓을 뒤집어 독과 분뇨가 차고 넘치는 공산세습독재는 민중과 민족을 위한 정통성 있는 국가로 강변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자유민주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하는 반민중 반민족 신판 사대주의 원죄 집단으로 매도한다.

 

 언젠가부터 잘난 사촌 헐뜯기가 시대의 대세가 되었다. 너도 나도 MT란 영어 약자를 주절거릴 줄만 알면 이승복 어린이의 ‘공산당이 싫어요!’를 독재자에 대한 꿀 바른 입술로 저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전 세계적으로 자유민주와 동급이었던 반공을 민주(인민민주)와 민족(김일성 민족)과 민중(노동자농민)의 이름으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에 담아 난지도에 깊숙이 묻고 첩첩 태백산맥에 질질 끌고 가서 조리돌리더니, 북한 발 구국의 소리를 가브리엘 천사의 계시처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약간의 용어만 바꾸어 대한민국의 역사를 통째로 부인하는 것에 신명을 바치는 자들이 학계와 문화계, 방송과 인터넷과 신문, 국회와 법정을 야금야금 파고들어 10여년 전부터 거의 장악하고 있다. 그들의 세력이 얼마나 강한지, 언필칭 정권교체의 최고 두뇌가 불과 며칠 전에도 반공을 시대착오적이라고 단정하고 매도한다. 그 자의 이름은 안모씨다.

 

 유태인도 한국인 못지않은 평등의식을 갖고 있지만, 그들은 한민족의 7분의 1밖에 안 되는 인구로 노벨상의 3분의 1을 휩쓰는 등 다 함께 흥하는 괄목상대(刮目相對) 상향평준화를 지향한다. 미국의 돈과 말을 장악한 유태인은 조국이 어떤 경우에 처해도 미국의 여론과 권력을 교묘히 움직여 해마다 30억 달러를 중동 유일의 자유민주 국가에 무상으로 지원하게 하고, 다윗의 별을 지중해에 떨어뜨리려는 주변 봉건 국가에 대해 세계의 보안관으로 하여금 여차하면 정의의 총을 뽑아들게 만든다. 이스라엘의 유태인도 미국의 잘난 사촌을 절대 욕하는 법이 없다. 따라 배우기에 바쁘고 칭찬하기에 여념이 없다.

 

 한국도 한때 기적적으로 유태인처럼 상향평준화에, 과거 어느 시점에 사촌이나 나나 서로 못 살던 시점에 고정된 과거지향의 패배주의에서 사촌도 나도 무한한 발전에 큰 뜻을 두고 다투어 잠재력을 개발하는 미래지향의 신바람으로 환골탈태한 적이 있다. 그러길 불과 18년 다시 10여년, 한국은 세계가 깜짝 놀라서 박수하고 환호하는 꿈의 나라로 변신했다. 그 절정이 바로 1986년과 1988년이다. 소련도 동구도 중국도 한국의 자유와 풍요를 보고 눈이 뒤집어졌다. 평등의 강요에 환멸을 느꼈다. 샴페인을 터뜨리는 가운데 대한민국은 도리어 절대 평등파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아 급전직하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먹고사는 문제는 약간의 어려움도 따랐으나 이전의 잠재력이 워낙 컸기 때문에 조금씩 나아졌지만, 정신세계는 더 없이 황폐해졌다(경범죄 일본의 44배). 잘난 사촌 헐뜯고 물어뜯기로 마침내 권력을 잡은 자들이 자신들만 쏙 빼고 무차별 평등을 강요함으로써 의심하면 될 일도 안 된다며 스스로 무장해제했다. 공산 도둑은 귀빈으로 모셔 곳간 열쇠를 쥐어 주고, 주체 깡패는 열사로 받들어 거북선의 옆구리를 85mm 대포의 입에 맞춰 주고 빨간 넥타이를 매고 립스틱 짙게 바르고 현해탄을 건넜다.

 

 평등의 강제가 가장 심한 곳이 미래의 희망인 교육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교육열이 높은 민족은 한국인과 유태인이 아닐까 한다. 이미 밝혔듯이 ‘사촌이 논을 사면 당신은 아파트를 사라!’는 지도자의 말을 따른 한국인이 전쟁의 와중에도 천막과 나무 아래서 연합학교를 개설하고 하루 15시간씩 일하는 공순이도 국가 지도자의 특별 배려로 산업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맹렬한 교육열과, 과거(科擧)와 고시밖에 모르던 민족이 콧구멍으로 암모니아 냄새 들이마시고 손톱에 검정 기름 묻히는 것을 도리어 자랑스러워하는 돈독 오른 근면으로 국권상실의 치욕과 동족상잔의 잿더미에서 장미꽃을 피워냈다. 불과 한 세대 만에 컬러 TV와 냉장고와 전화와 자동차의 시대를 열었다.

 

 살 만해지자 한국인의 못된 버릇이 도졌다. 잘난 사촌 헐뜯어 자신의 상대적 지위를 높이려는 유구한 악습이 되살아났다. 조국의 위상을 세계만방에 떨친 세계적 지도자를 일제 앞잡이와 비겁한 빨갱이와 안가의 바람둥이와 정경유착의 원흉과 민주주의의 주적으로 줄기차게 매도하면서, 애로라지 그의 가장 큰 실책인 평준화만은 신주단지 모시듯 받들어 모셔 5대 도시에 한정되었던 고교 평준화가 이제는 전국의 반반한 모든 도시에 강제된다. 획일화되었다. 아무리 공부 못해도 원하면 100% 진학한다. 그 결과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일차함수의 그래프도 못 그리는 자들이 태반이다. 대1의 수학 수준이 고작 중1 실력인 자들이 수두룩하다. 그것에 대한 반작용이 사교육의 봇물이다. 사교육은 대학에 가면 더 심해진다. 온갖 취업에 사교육은 필요충분조건이다. 고시 보는 자들도 신림동에서 사교육 받는 것이 서울법대에서 수강하는 것보다 한결 낫다는 것을 잘 안다. 절에서 10년 고시 공부하는 것은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다.

 

 잘살수록 잘날수록 다함께 망하는 하향평준화를 거부하고 나 홀로 계층상승을 도모한다. 그들은 잘나고 잘사는 부모의 뜻에 맞추어 학교서는 대충 졸업장만 따고 정작 공부는 맞춤식 교육이 가능한 사교육에 매달린다. 그러면 정부는 쌍심지를 켜고 사교육을 없앤다며 명문고를 죽이고 특목고를 죽이고 명문대를 죽이려 국가적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기기묘묘한 입시제도를 도입한다. 잘난 사촌 죽이기에 전 국가가 혈안이다. 엉터리 목표가 잘 될 리 없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위장전입을 특권인 양 행사한다.

 

 유난스런 평등의식을 발전의 계기로 삼은 지도자는 비록 평준화를 단행했지만, 엄정하게 시험을 치게 만들었다. 연합고사에 합격하기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그 당시는 전교 꼴찌도 인문계 고등학생은 현재의 상위 30~40%의 실력을 가졌다. 또한 전국의 5대 도시에 한정했기 때문에 시골의 우등생들도 너도나도 몰려들어 점수는 해마다 높아졌다. 그 때는 지방 중소도시에는 명문고가 즐비했다. 서울과 울타리 하나 사이로 이웃한 3류 학교가 자율권을 갖고 선발 시험을 보자 일약 수도권 최대 명문고로 떠올랐다. 연합고사에서 제외된 서울과 인천 사이의 중소도시에도 한 해 서울대에 100명 씩 합격시키는 명문고가 등장했다(서울과학고도 대원외고도 이르지 못하는 경지). 그러자 배가 아파진 위정자들이 교육문화 권력자(후에 이들은 전교조로 조직화됨)의 비위에 맞춰 잘난 사촌 따라 배울 생각은 않고 대뜸 그 지역도 평준화시켰다. 이번에는 신도시에서 명문고가 탄생했다. 그것도 두더지 잡듯이 때려잡았다. 주민의 다수가 그걸 원한단다! 공부 못하고 게으른 자는 공부 잘하고 부지런한 자보다 항상 압도적으로 많게 마련이건만.

 

 노태우 정부가 만든 과학고와 외고도 죽이기에 역대 모든 정부가 혈안이었다. 첫째는 필기고사를 못 보게 하고, 둘째는 내신을 일반고와 같은 등급으로 나누고, 셋째는 과학고는 이공계만 외고는 문과계에만 진학하게 강제했다. 그렇다면 실업계 고등학교는 절대 대학을 못 가게 하고 전원 취직하게 해야 마땅한데, 천만에 그들은 70%가 대학에 가게 만들었다. 잘난 사촌은 헐뜯고 못난 나는 특혜를 누려야 한다는 논리다.

 

 이명박 정부는 자율고 또는 자립고 100개를 공약했다. 그런데 그게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소를 금하지 못한다. 생활기록부의 내신과 ‘사람됨’으로만 뽑으라는 것이다. 학업성취도 시험은 100% 보도록 강요하면서 연합고사나 개별 선발고사는 절대 불허한다. 그러면 사교육이 는단다! 외고도 마침내 없애겠단다! 전 과목 빵점인 학생도 사립자율고(내신 50% 이내에서 뺑뺑이로 뽑음)가 아닌 공립자율고에는 운만 좋으면 얼마든지 합격한다. 전 과목 100점인 학생과 이론적으로 확률은 동일하다. 대학은 3년 안에 100% 입학사정관제로 뽑으라고 권유한다. 하늘 교육부 아래 도토리 키 재기 땅 대학들이 권유를 강요로 해석하는 건 당연하다. 여기서도 학력이 아닌 다른 잠재력으로 뽑으라고 한다. 획기적인 제도라며, 입시제도에 마침표를 찍는 선발제도라며, 뒤이은 어떤 정부도 따라하지 않을 수 없는 이상적 제도라며 자화자찬한다. 축구 선수를 뽑는데, 공차는 실력이 아니라 잘 웃기고 잘 놀고 음주가무에 능한 팔방미인을 뽑으라는 격이다. 바둑 대표 선수 뽑는데, 장기 잘 두는 사람 뽑으라는 격이다.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는 곳이다. 학문은 당연히 공부 잘하는 사람이 최우선이다. 나머지는 참고 사항이거나 최소한으로 반영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공정한 방법이다.

 

 평등의 강제가 곧 독재다. 이해가 잘 안 되면 옛 공산 국가와 오늘의 북한을 보라. 거기서는 권력이 철저히 서열화되어 있는데,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김정일 신 아래 모두가 평등하다. 김정일의 매제이자 제2인자인 장성택도 2번이나 콩밥을 먹었다. 목숨을 부지한 것만으로 그는 감지덕지한다. 모택동 생전에는 등소평도 그러했다. 신 아래 몇 명의 수족이 있다. 신의 은총을 입은 이들 극소수는 다른 모든 인간들에게 노예의 평등을 강요한다. 단 이들의 힘이 너무 커졌다 하는 순간, 신은 그들을 영원히 쉬게 하거나 뉘우칠 때까지 일시적으로 쉬게 한다.

 

 대한민국의 어떤 대학도 교육부에 맞서 본고사를 볼 수 없다. 어떤 대학도 수능 1등급이 100명인 학교와 수능 1등급 0명인 학교에 차등을 둘 수 없다. 교육부가 보기에 그 두 학교는 평등하다. 대한민국의 어떤 고등학교도 교육부에 맞서 0교시에 보충수업을 실시할 수 없다. 교육부의 지침에 모든 학교는 절대 복종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어떤 명문 학원도 평균 10점인 학생도 출석일수만 채우면 100% 받는 졸업장만큼은 절대 줄 수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드시 대한민국의 모든 대학과 학교와 학원은 교육부의 ‘획기적인’ 입시제도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 무조건 예, 하고 방법은 항상 교육부가 제시하는 범위 안에서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절대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어떤 제도에서도 법을 어기지 않고 그 틈새를 기가 막히게 잘 뚫는 데가, 탈세 않고 절세하는 데가 바로 사교육 시장이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모의고사 등 무슨 시험을 보든 바보와 천재가 12년간 시간과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공교육이 존재하는 한, 사교육은 날로 번창할 수밖에 없다. 교육부가 절대평등을 강요하는 한, 공교육의 손발을 묶고 공교육의 머리에 쇠테를 두르는 한 공교육은 날로 쇠퇴하고 상대적으로 손발이 자유롭고 치열한 경쟁으로 머리가 영화 속 외계인처럼 고도로 발달한 사교육은 날로 번창할 수밖에 없다. 영어 올인과 입학사정관제로 사교육 시장이 얼마나 커졌고 커지고 있는지, 5년 임기의 높은 사람들만 모른다.

 

 독재자는 자신이 독재하는 줄 모른다. 자신이 최고로 잘하는 줄 안다. 자신만이 천재인 줄 안다. 평등의 강요가 독재인 줄 모른다. 그것이 모두가 오순도순 잘살게 하는 구국의 결단으로 느껴진다.

 

 다른 면은 잘 모르겠다. 교육만큼은 지난 20여년간 절대평등을 강요했다. 그 강도가 해마다 강화되었다. 평준화가 아니, 획일화가 해마다 영토를 넓혔다. 독재도 이런 독재가 없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분야는 오로지 교육밖에 없다. 재미있는 것은 전교조도 평등 지상주의자다. 자기들 외에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논리다. 다시 말해 그들도 똑같은 교육 독재세력이다. 그들만이 옳다. 그것이 독선인데, 독재는 독선을 유일무이한 진리로 설파하고 궤변과 권력과 조직으로 밀어붙여 기어코 실행하는 것을 이른다. 평준화를 아니, 획일화를 조금이라도 약화시키려고 하면 그들은 벌떼처럼 일어난다. 그럴 때는 대통령도 안중에 없다. 그들 앞에는 최고 권력자도 전교조 소속 바깥의 일개 하수인에 지나지 않는다. 한 10년간 그들의 뜻을 높이 받들어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이 ‘시험 없는 나라, 좋은 나라’ 만드는 데, 학력 이외의 방법으로 인재를 뽑는 데에 혼신의 힘을 다 기울였다. 드디어 입학사정관제가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전교조의 용에 눈을 그려 넣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은 전교조가 제시한 대로 사교육 없애기에 열과 성을 다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교육에서부터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파할 게 아니라 사촌을 위해서 잔치를 벌이고 잔치가 끝나자마자 사촌의 논보다 훨씬 비싼 강남의 아파트를 사려고 밤잠 안 자고 분투하던 아름다운 그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호시탐탐 한 참에 집어 삼켜 지옥행 하향평준화에 동승하려는 북한에게 두 눈 뻔히 뜨고 얼렁뚱땅 넘어가기 전에, 한국이 스스로 무너진다. 그 시기는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빠를 수 있다.

(2009. 10. 17.)

[ 2009-10-20, 13:2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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