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와 DJ가 철들길 기다렸던 박정희
김영삼과 김대중은 철들기는커녕 박정희의 무덤에 침을 뱉었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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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은 아직도 주류와 비주류가 다투는 중이다. 주류는 박정희 체제이고 비주류는 양김(김영삼과 김대중) 체제다. 박정희 사후 여섯 번의 대결에는 첫 두 번만 주류가 승리했고, 나머지는 모두 비주류가 승리했다. 비주류의 승리를 세분하면 김영삼계와 김대중계에게 각각 두 번씩 돌아갔다. 역사는 권력의 마음이라는 엿장수 원칙에 따라, 박정희는 약간의 공로가 있다고 하나 큰 틀에선 역사의 큰 죄인으로 국사 책에 또록또록 기록되어 수능시험에도 그렇고 나오고, 양김은 민주주의의 두 큰 어른과 통일의 한 큰 어른으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가 인정하는 위대한 지도자로 칭송을 받고 있다. 김대중은 2009년에 4천8백만 한국인과 유명(幽明)을 달리했지만, 영광은 더욱 빛난다. 그 육신은 왕의 음택(陰宅) 곧 공산당 때려잡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두 대통령이 안장된 국립 현충원의 왕터에서 국민들에게는 ‘빨갱이는 박정희의 조작!’이라고 항변하는 한 편 두 반공 대통령에겐 ‘나도 공산당이 싫어요!’라며 그들의 애국심에 고개를 숙이는 척하고 있고, 그 얼은 왕의 궁전 곧 민주의 성역 광주의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노벨평화상의 명예를 걸고 통일의 그 날까지 김정일에게 핵무기를 안겨 주고 2천만 주민에게 생지옥을 10년이고 20년이고 연장해 주는 데 찬란한 공을 세운 햇볕정책을 죽어서도 죽지 않고 지하에서도 돕고 있다.


 여론조사에선 박정희가 50%에서 80%까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양김에 그 후계자를 몽땅 합쳐야 도무지 비교의 의미가 없지만, 권력은 그것이 정치권력이든 문화권력이든 사회권력이든 현실에서 발휘되는 사람과 돈을 움직이는 힘이라, 박정희를 위해서는 노인과 노숙자와 외국인 근로자나 찾는 동네 공원에조차 흉상 하나 못 세우고 한때 수도 서울의 파리모기 최대 집결지였던 옛 쓰레기장 옆에조차 기념 암자 하나 못 세운다. 웅장한 김대중 대웅전에는 사람의 무리가 우뚝 산을 이루고 사람의 물결이 넘실 바다를 이루지만, 소박한 박정희 암자는 사이버 세상에나 존재할 뿐 현실 세계에서는 사후 30년 동안 죽창과 촛불에 가로막혀 주먹만한 주춧돌 하나 놓이지 않아, 줄잡아 70%에 이르는 힘도 없고 말주변도 없는 국민들이 발품을 팔아 물어물어 찾아가 말없이 어깨를 들먹이며 눈물을 떨어뜨리려 해도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의 샘물에 고인 물처럼 무한 고인 눈물을 떨어뜨릴 데가 없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왜 민주의 상징이고 이승만과 박정희가 왜 독재의 상징인가. 김영삼과 김대중은 박정희 시대에 ‘무조건 반대’밖에 한 일이 없다. 경제건설만 반대한 게 아니다. 청와대 뒷산에까지 내려온 무장간첩 사태를 계기로 추진된 예비군 창설에도 반대했고, 무질서와 인치(人治)와 방종을 질서와 법치와 자유로 바꾼 ‘민주’ 혁명에도 반대했다. GATT체제의 대양으로 항해하는 자유무역의 배를 만들고 그 배에 가득 실을 물건을 만드는 데 결정적 힘을 실어 준 한일회담에도 새파랗게 넘어가며 반대했다. 지나고 나니 백번 옳았던 정책에, IMF도 IBRD도 UN도 미국도 일본도 서독도 등소평의 중국도 뒤늦게 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던 박정희의 선견지명에 그들은 단 한 번 감탄한 적이 없다.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는 데는 실패했으나 동남아의 도미노 공산화를 막는 데는 미국과 더불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따이한의 월남파병에도 여론이 두려워 찬성하는 척했다. 월남파병에 대한 김대중의 본심은 베트남에 가서 생뚱맞게 사죄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베트남 공산화의 트로이 목마였던 민주 운동에는 그렇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지만, 무력 적화통일 후 민주운동가를 포함하여 약 100만의 양민을 학살한 월맹의 만행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베트남의 공산당 일당 독재와, 뒤늦게 약간 철이 든 그들이 단행한 개혁개방에 대해서는 찬양과 아첨을 일삼았다.


 박정희의 18년 집권을 독재라고 강변하지만, 김영삼과 김대중은 1969년 40대 기수론에서 시작하여 각각 1997년, 2009년까지 장장 29년, 40년 동안 영호남의 맹주로서 철권을 휘둘렀다. 정치에 뜻을 둔 자 감히 그 앞에서는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양김의 전매특허였던 반대, 비판, 간언? 그것은 곧 그들에게 생죽음을 뜻했다. 양김에게 선거는 공약(空約) 축제였고 공천은 뇌물 잔치였다. 그들의 이데아인 민주선진국에서는 100년에 하나 나오기도 힘든 정당을 수틀리면 1년에 2개도 뚝딱뚝딱 만들었는데, 그 전당대회는 각목과 돈다발과 육두문자의 가관(可觀)대회였다. 그들에게 전국구는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는 전(錢)국구였다.


 그들은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경제 잠재력을 급격히 떨어뜨렸을 뿐 아니라 도무지 민주를 실천할 줄 몰랐다. 법을 무시하는 노조와 시위대와 시민단체에게 법원과 경찰과 군대를 능가하는 힘을 실어 주었다. 역사를 거꾸로 세우고 친위 쿠데타를 사주하기 위해 북채를 높이 들어 방송과 인터넷의 큰북과 작은북을 줄기차게 내리쳤다. 무엇보다 그들은 안보의 둑을 야금야금 허물었다. 극악한 김정일의 인권유린에는 입도 벙긋 않고 입으로는 한반도 비핵화를 나불댔지만 손발로는 김정일이 핵무기를 개발할 시간과 돈을 마구 퍼 주었다. 북핵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펄펄 뛰었지만, 막상 김정일이 두 번이나 핵실험의 조커를 날렸지만 적화통일의 미사일 예포는 수시로 쏘아대지만 그들은 입을 싹 닦았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끝내 철들지 않았다. 한국의 지식인도 끝내 철들지 않았다. 국민의 70%는 철든 지 반세기나 지났지만, 정치권력과 문화권력을 장악한 자들은 아직도 철들지 않았다. 여전히 그들은 김영삼과 김대중의 끝없는 권력욕과 대한민국 자빠뜨리기를 거룩한 민주와 통일의 뜻으로 높이 받자와 제임스 딘의 이유 없는 반항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에선 70%의 힘없는 주류가 30%의 힘 있는 비주류 곧 정치권력과 문화권력과 사회권력을 움켜쥔 비주류에게 오늘도 끌려 다닌다. 물이 배를 뒤집을 날이 머잖은 듯하다. 그 과정에서 고통은 분명 작지 않겠지만, 그 후에는 찬란한 자유통일을 달성한 새 대한민국이 박정희 흉상도 몇 개쯤은 죽창은커녕 손가락질 하나 아니 받고 조촐히 눈물바다 속에서 세우고 박정희 암자도 국민의 성금을 모아 고인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소박한 모습으로 하나 정도는 세울 것이다.

  (2009. 10. 26.)


[ 2009-10-26, 11:3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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