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청년 박동훈
아름다운 청년 박동훈, 그는 한국과 미국의 본회퍼요, 한국과 미국의 솔제니친이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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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2월 6일 박동훈(로버트 박)이 북한에서 풀려났다. 그는 원하던 순교엔 실패했지만, 북한인권에 대해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는 성공했다. 말구유에 아기 예수가 태어나던 날, 흥청망청 축제를 마다하고 한국계 미국인 선교사 박동훈은 두만강의 얼음 위를 뚜벅뚜벅 걸어 60여년 동토(凍土)의 금역(禁域)으로 자유의지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바다에 힘차게 떨어진 조약돌처럼 작은 파문을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라짐은 몸과 마음 양쪽 자유의 완벽한 박탈이요, 순식간에 북한을 제외한 모든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언론매체와의 완전한 단절이다. 사라진 지 43일 만에 바다 밑바닥에서 건져진 조약돌이 푸석돌로 바뀌어 빅 브라더 방송에 나타났다. 빅 브라더 방송에서 전하는 인터뷰 내용을 미리 검열한 빅 브라더는 노여움을 푼 모양이고 그의 턱짓에 따라 푸석돌은 미국으로, 북핵에 관해선 동물원 호랑이요 북한인권에 관해선 종이 호랑이인 미국으로 돌아갔다. 아차 한 발을 잘못 디뎠다가 잡혀간 두 기자의 경우와는 달리, 박동훈은 유일 초강대국의 전직 대통령이 다시 한 번 평양으로 날아가지 않고도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용기는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용기란 만용과 비겁의 중용이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만용이고 어디까지가 비겁일까. 대부분의 사람이 수긍할 수 있는 중앙값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1과 10의 중앙값을 구하듯이 명쾌하게 구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용기와 만용은 같은 점이 있고 다른 점이 있다. 같은 점은 겉모양이고 다른 점은 속내다. 위험을 무릅쓴다는 점에서 용기와 만용은 똑같다. 그러나 속내는 전혀 다르다. 속내는 바로 지혜 유무다. 앞뒤 사정이든 마주선 상대방이든 모두 훤히 알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 용기이고, 아무 것도 모르거나 알더라도 극히 주변적인 것을 일부 알고 그것이 전체인 양 착각하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 만용이다.

 

 용기와 비겁도 같은 점이 있고 다른 점이 있다. 여기서도 같은 점은 겉모양이고 다른 점은 속내다. 겉모습으로 용기와 비겁을 구별할 수는 없다. 용기라면 무조건 위험을 무릅쓰는 걸로 알지만, 그렇지 않다. 징기스칸의 군대가 달아나면 적군은 대개 기고만장해졌다. 승리의 예감에 신바람이 나서 정신없이 추격한다. 어느 순간 징기스칸의 군대는 달려가는 그 자세에서 몸만 뒤로 돌려 화살을 쏜다. 뛰어난 기마술을 구사하는 징기스칸 군대는 뒤로 쏘는 화살이 정면에서 쏘는 화살보다 정확하다. 용기의 화신인 듯 추격하던 군대가 아차하고 전열을 갖추려고 우왕좌왕 멈추면, 이미 적진 깊숙이 들어와 있다. 고립무원이다.

 

 비겁해 보이기는 사마중달도 마찬가지였다. 제갈공명이 쳐들어오면 그는 굳게 성문을 지킬 따름이었다. 정면 승부하는 순간 독안의 쥐떼가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에 절대 부하들이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했다. 촉의 군사는 먼 길에 지쳤고 보급로는 길고 촉의 땅과 인구는 중원에 상대도 안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김 빼기 작전으로 나가면, 슈퍼스타 제갈공명도 유성처럼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걸 사마중달은 너무도 잘 알았다.

 

 결국 용기와 비겁을 구별하는 것도 지혜 유무다. 상대방이 모르는 것을 알고 때를 기다리며 숨을 죽이고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그것은 비겁이 아니라 용기다. 알지만 위험이 두려워 입도 발도 움직이지 않는 것도 비겁이다. 결론적으로 용기란 먼저 상황을 알고 다음으로 나설 때와 나서지 않을 때를 구별하여, 칭찬이든 비난이든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염두에 두지 않고 양심을 따르는 언행을 일컫는다.

 

 아름다운 청년 박동훈은 알았다. 공산세습김씨왕조가 얼마나 사악한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름다운 청년 박동훈은 알았다. 당사자인 한국과 간접 당사자인 세계가 북한인권에 대해 얼마나 비겁한지도 알았다. 북핵이란 독재자의 절대반지에만 관심을 보일 뿐, 2천만이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산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핑계를 내세워 한국과 세계가 침묵하거나 기껏해야 동아시아 패권을 노리는 북한 후견인 중국의 눈치를 보며 씨도 안 먹힐 공갈만 일삼는다는 걸 박동훈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름다운 청년 박동훈은 알았다. 감히 인간 마귀들이 자신의 목숨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아름다운 청년 박동훈은 알았다. 배부른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가리켜 만용을 부린다고 대놓고 비난할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름다운 청년 박동훈은 알았다. 몸과 마음 양쪽 모두 자유를 잃고 고문과 세뇌 작업으로 어느 날 풀려나면, 비겁한 자라고 혀를 깨물고 자살하지 않았다고 변절했다고 가벼운 입을 마음껏 놀리며 자신을 조롱하리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름다운 청년 박동훈은 말해야 할 때 말하고,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하고,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났다. 위선자나 악의 추종자들이 만용이라 손가락질할 때도 그는 용감했고, 그들이 비겁이라고 침을 뱉을 때도 그는 용감했다. 단기간에 소기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되었다. 목숨을 건지고 돌아온 것도 큰 성공이다.

 

 빅 브라더의 방송은 100% 거짓이라는 걸 아름다운 청년 박동훈만 아니라 세계가 안다. 위선자와 악의 추종자도 그것 정도는 안다. 모른 척할 따름이다. 북한의 거대한 인권유린 댐에 핵탄두급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했다는 것을 아름다운 청년 박동훈이 알지는 모르겠다. 언젠가 그 도화선에 불이 붙는 순간, 거대한 댐이 폭파되면서 북한의 강제수용소가 활짝 열릴 것이다. 2천만이 거주이전의 자유를 찾고 한국이든 어디든 편지를 보낼 수 있고 받아 볼 수 있고 전화를 걸 수 있고 받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노예로 돼지로 팔려 가는 게 아니라, 신고만 하면 해외로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아름다운 청년 박동훈, 그는 한국과 미국의 본회퍼요, 한국과 미국의 솔제니친이다.

(2010. 2. 7.)

[ 2010-02-07, 20:0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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