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과 한국의 안보무임승차
서유럽과 한국은 자유와 풍요가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서만 가능했다는 것을 잊고 있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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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보는 공기와 같아서, 있을 때는 아무도 고마운 줄 모르다가 없을 때는 누구나 공황상태에 빠져든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다. 죽음이나 요행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20세기에 두 번이나 후발 산업국 독일이 유럽의 역사를 새로 쓰겠다고 철권을 휘둘렀을 때, 세계의 표준을 강요하던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맥도 못 추고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반죽음의 상황에서 요행의 여신이 대서양 건너에서 찾아왔다. 자유의 여신은 두 번 다 유럽의 하층민이 세운 머나먼 나라에서 한달음에 날아와, 잔 다르크의 깃발을 흔들어 패배감에 찌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이순신의 초요기(招搖旗)를 앞세우고 곧장 전쟁터로 뛰어들어 무적의 독일 병정을 어린애 팔 비틀듯이 무찔렀다.

 

 태양이 지지 않던 제국도 두 번째의 구원받음 후에는 대서양의 제해권을 새파란 제국에게 넘기지 않을 수 없었다. 400년 동안 호령하던 유럽 제국은 모든 식민지를 잃고 고만고만한 추억의 나라로 전락했다. 몰락한 왕족이나 귀족처럼 서유럽은 힘만 센 쌍것 나라를 여전히 경멸했지만, 그 쌍것 나라의 적선(積善)과 호위가 없이는 최소한의 체면도 유지하지 못하고 바깥나들이도 맘대로 못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처음에는 미국의 힘으로 이기고도 서유럽은 독일을 지도상에서 아예 없애 버리려고 잔인하게 복수할 뿐 여전히 안보는 미국에 맡기고 영구 평화를 노래하다가 독일의 제3제국에게 처절하게 당했다. 두 번째도 미국의 힘으로 간신히 생명을 부지했지만, 서유럽은 여전히 미국에게 안보를 맡기고 호의호식하면서 호시탐탐 자신을 노리는 소련 공산제국주의에 추파를 던졌다. 그게 서유럽 지식인의 양심이었다.

 

 배은망덕한 프랑스와 영국이었지만 미국은 통행세 한 푼 안 받고 그들이 부의 고속도로인 대서양과 인도양과 태평양 위로 마음대로 달리게 했다. 소련처럼 미국에 도전하지 않는 한, 소련에 빌붙어 살지 않는 한, 미국은 GATT 체제 안에 어떤 국가든 다 받아들였다. 심지어 미국 젊은이의 피로 강과 바다를 붉게 물들인 독일과 일본도 미국은 식민지로 삼지 않고 GATT 체제로 받아들였다. 개과천선한 적국을 용서하고 이전의 어떤 우방보다 가까운 우방으로 대우한 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로마제국의 너그러움을 이야기하고 싶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로마의 영토로 편입한 다음의 일이다. 그런 일은 로마만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나 있었던 일이다. 과거의 강대국은 그렇게 해서 영토를 넓혔던 것이다.

 

 2차대전 후 미국과 소련은 핵우산으로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을 각각 지켜주었다. 풍요와 자유는 미국의 핵우산 아래서만 가능했다. 소련의 핵우산 아래서도 이론상으로는 가능했지만, 현실적으로는 빈곤과 억압이 만연했다. 미국은 각 국가의 자율권과 시장경제를 존중하고 보장했지만, 소련은 명령과 강제로 위성 국가의 자율권을 박탈하고 무기생산 중심의 계획경제를 강요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해군은 1945년부터 대서양과 태평양과 인도양의 해적선을 소탕했다. 무역로는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가 호령하던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안전해졌다. 미국은 하늘엔 인공위성을 띄우고 바다엔 군함을 띄워 세계 모든 배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세계 어떤 상선이든 공짜로 경제성장의 지름길인 바다를 이용하게 했다. 동시에 소련과 그 위성국가와 중공을 고립시켰다. 소련과 그 위성국가와 중공은 물류비가 엄청난 육로나 느려 터진 운하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소련으로부터 에너지를 거의 공짜로 지원받는 것 외에는 사실상 봉건적 자립경제체제로 뒷걸음쳤다. 그래서 공산진영은 자유진영과는 달리 육로 수송도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미국의 질서에 가장 잘 적응한 나라가 일본과 독일이었다. 그들은 군사비에 GDP의 30% 이상을 지출하다가 많아야 3% 대체로 고작 1%만 지출하고 안보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경제와 교육과 과학기술과 문화에 돈을 쏟아 부었다. 생산품은 세계 최대 시장 미국과 그 외 다른 나라에 수출했다. 그 다음으로 미국의 질서에 잘 적응한 나라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네 호랑이였다. 늦게나마 세계 최빈국 중공이 미국의 질서에 적응했다. 그것은 중공이 중국으로 대접받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약 10년, 15년 후에 공산국가 베트남과 사회주의 국가 인도도 미국의 질서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러시아도! 해상봉쇄와 해적선은 전혀 걱정할 것이 없었다. 미국은 미국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한 과거를 일체 묻지 않았다.

 

 스웨덴의 군사연구소 SIPRI에 따르면, 2008년 세계의 총 군사비는 1조 4640억 달러인데, 미국의 군사비는 6070억 달러로 그 중 41.5%를 차지한다. 지구촌은 평균 GDP의 2.4%를 군사비로 지출하지만, 미국은 GDP의 4%를 군사비로 지출한다. 미국의 GDP는 세계의 약 25%를 차지하니까, 미국은 경제력에 비해서 세계 군사비 가운데 약 15%를 초과 지출하는 셈이다. 덕분에 2차대전 패전국 일본과 독일(각각 GDP의 1%, 1.3%)뿐 아니라 2차대전 전승국 영국과 프랑스도 각각 국내총생산의 2.4%, 2.3%만 국방비로 지출하고도 안보에 대해선 전혀 걱정하지 않고 걸핏하면 미국의 진보연하는 자들과 눈짓을 주고받으며 미국의 9.11 후속 대책을 맹렬히 비난하고 평화의 사도를 자처한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에서 선진국의 지위를 유지한다. 선심성 사회보장으로 서유럽은 국가부채가 하나같이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 소위 말하는 돼지국가(PIGS)만 그런 게 아니다. 선진 7개국(G7) 중 제일 국가부채가 많은 나라는 일본이다. GDP 대비 200%를 넘어섰다. 일본은 천장에 생선을 매달아놓고 맨밥을 떠먹는 구두쇠처럼 외환보유고를 그냥 쌓아놓기만 하고 경제위기는 남의 일이라며 허리띠를 졸라맨다.

 

 미국의 배경이 있음에도 이스라엘은 지금도 매년 GDP의 7~8%를 국방비로 지출한다. 한국보다 일인당 GDP가 약 두 배나 되는 싱가포르도 성숙한 나라다. 1988년에서 2007년까지 늘 GDP의 4~5%를 국방비로 지출한다. 한국은 푼수 개그맨 카터가 주한미군 철수로 박정희를 위협하던 1970년대에 주한미군을 철수하지 않는 대신 GDP의 6%를 군사비로 지출하기로 했지만, 1988년 4.2%, 1994년 3%로 축소하다가 2007년 현재 2.6%만 지출한다.

 

 한국은 해방도 태평양을 붉게 물들인 미군의 피로 얻었고 육이오 사변도 4대강 아니 7대강을 붉게 물들인 미군의 피로 극복했다. 서유럽 못지않은 안보무임승차였다. 한국은 1970년대에 월남파병으로 그 빚을 일부 갚았다. 공산연합세력에 300만을 희생했던 한국으로선 대의명분이 뚜렷한 파병이었다. 게다가 한국은 경제적 실리도 챙겼다. 미국의 도움으로 군 장비도 현대화했다.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지만, 미국의 질서를 거부했던 베트남도 1986년부터 미국의 질서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인도차이나 전쟁 최후 승리자는 미국이다.

 

 미국도 2차대전이 끝나자 평화무드에 젖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국방비를 909억 달러에서 103억 달러로 줄였다. 살인귀 스탈린은 아니었다. 국방비를 계속 증강했다. 소련군에게 점령된 북한은 하나에서 열까지 소련 덕분에 탱크 한 대 없는 한국을 압도했다. 거기에 모택동 밑에서 수십 년간 싸웠던 조선족 출신 5만 대군이 6.25 이전에 가세하자, 미군이 철수한 한국은 1대 1로도 전혀 인민군에 상대가 안 되었다. 6.25가 미국과 세계를 구해 주었다. 트루먼은 1952년 국방비를 550억 달러로 늘렸다. 소련의 무기와 동북항일연군의 병력으로 무장한 인민군은 국군만 아니라 부랴부랴 출전한 미군도 수원에서 낙동강까지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초창기 미군의 병력과 무기는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기고만장해진 맥아더의 명예욕과 교만과 무지 때문에 미군은 터널 안에 갇힌 신세가 되어 중공군에게 혼비백산했지만, 진주만 피습 후에 정신을 가다듬은 미군이 태평양을 금세 휘어잡았듯이 550억 달러로 국방비가 증액된 미군은 그 후로 적을 압도했다. 한국에겐 너무도 안타까웠지만, 군사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정치적인 결정으로 미국은 무승부를 연출했다. 군대가 너무 허약했던 한국은 어쩔 수가 없었다.

 

 1988년 미국은 GDP 대비 국방비가 5.7%였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미국도 국방비를 대폭 줄였다. 1999년에는 그것이 3%에 지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미군을 살려 준 게 9.11 테러다. 미국은 2005년 국방비를 GDP의 4.1%까지 높여서 현재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경제력이 많이 약해져서 예전 같으면 아무 것도 아닐 국방비에도 신음하고 있다. 무기는 급격히 노후화되고 있다.

 

 서유럽과 한국이 과거의 빚을 갚고 미래의 대박 보험을 찜할 멋진 기회가 왔다. 어려울 때의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그런데 서유럽과 한국은 정반대로 나간다. 미국 때리기에 신바람이 났다. 자유무역으로 먹고 사는 서유럽과 한국은 미국의 해군과 인공위성이 아니면, 1년 안에 중남미처럼 한심해진다. 10년 안에 북한이나 아프리카처럼 몰락한다. 9.11 후속대책은 단지 그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GATT를 대체한, 이제 러시아도 참가한 WTO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다. 한국은 1개 사단을, 서유럽은 미국과 대등한 군대를 보내야 한다. 그러면 금방 중동에도 평화가 찾아온다. 이 점에서 제일 발 빠른 행보를 보이는 나라가 폴란드다. 아마 폴란드는 앞으로 조지 프리드먼의 예언이 아니더라도 유럽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될 것이다. 미국은 은혜를 확실히 갚는다.

 

 한국은 난처한 입장에 처한 미국을 평화의 이름으로 돕는 시늉만 하여 미국의 약을 바짝 올릴 뿐 아니라, 민족의 이름으로 전시작전권 이양을 획책하더니 마침내 문서로 보장받아 세습공산독재자로부터 기립박수를 받고 있다. 북한의 10년 군복무에 대해 2년 군복무를 1.5년으로 확 줄이고는 핵무기 보유자에게 씩 윙크한다. 국방비도 고작 GDP의 2.6%이다. 그나마 올해는 실세 차관이 얼굴마담 장관을 내쫓으며 3.8%밖에 올리지 않았다. 그리고는 각종 선심성 정책과 방방곡곡 소비성 개발로 실질적 국가부채는 서유럽과 비슷해졌다. 2012년 4월 17일 이후 언제든지 흑마 탄 흡혈귀에게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을 접수해 강성대국을 건설해 달라고 강력한 신호를 보낸다. (2010. 2. 9.)

[ 2010-02-09, 23:4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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