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목사의 북한 방문 體驗談(체험담)
"미국과 남조선의 경제 봉쇄로 말미암아 북조선 경제가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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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P모 목사님이 북한 방문을 하였다. 그 정확한 계기는 모르겠는데, 아마 북한 주민돕기를 하는 무슨 단체의 주선으로 방문한 것 같다. 이 목사님을 비롯한 당시 방문단은 평양의 소위 "봉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북한 당국이 제공하는 호텔에서 잠을 잤다. 당시 이들 일행을 안내한 책임자는 북한의 장관급 인사였다고 한다.
  
   북한을 갔다온 후의 인상과 몇가지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북한의 그 봉수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성가대의 찬양곡 연주 수준이 우리나라 그 어떤 교회에서의 그것보다 더 뛰어났다고 하였다. 즉, 정상적인 교회의 신도들로 구성된 성가단이 아니라 평양의 유수한 음악대학 교수(?) 들을 동원한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생각되었다는 것이다. 가짜 교회의 냄새가 역력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정을 진행하던 중, 어느 목사님이 인솔 책임자(북한 고위 당국자)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였다고 한다.
  
   "북한이 과거에는 남한보다 잘 살았는데, 지금은 어찌하여 이렇게 가난하게 되었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하여, 그 당국자는
  
  첫째, "미국과 남조선의 경제 봉쇄로 말미암아 북조선 경제가 어려워졌다."
  
  둘째,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말미암아 사회주의 국가 간의 물물교환 식의 무역방식이 붕괴되어서 어려워졌다."
  
  라고 답을 하였다고 한다.
  
  
  
  문제는, 이 첫번째 대답에 대하여 어느 목사님(우리나라 교계에서 누구나 알만한 유명한 분, 보수적인 교단 소속)이 반론을 제기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말도 안되는 억지이다. 북한이 못사는 것이 어찌 남한 때문인가? 남한이 언제 그런 봉쇄를 했다는 말인가?"
  
  이 말에 분위기는 값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북한의 그 당국자도 흥분하여,
  
  "아니, 목사님 이거 문제가 있는 분인데, 그냥 지나갈 수 없겠어요. 목사님은 정상적으로 남으로 못 돌아가겠어요. 좀 남아야 되겠어요."
  
  
  
  일행은 "사소한 말 하나 때문에 사람을 억류해서야 되겠는가"하면서 그 당국자를 설득 하여서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고 하였다.
  
  
  
  평양 시내를 마음대로 못돌아다니게 하고, 사진도 못 찍게 하였는데, 몇 사람이 안내원을 불러서 틈을 만들면, 다른 목사님이 재빨리 창문 쪽으로 가서 시내 사진을 몰래 촬영을 하는 숫법으로 사진을 찍거나 평양 거리를 내다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보여주지 않은 평양 시내의 실제 모습은, 아파트 창 틀에 유리창이 없이 신문지나 종이로 막아 놓았고, 빈민굴의 모습 그자체였다고 한다.
  
  
  
  그런데, 북측의 안내자가 남측 일행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였다고 한다.(이 사람은 부산 아시안 게임 때 부산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내가 부산에 가서 보니까, 아파트 층수가 꽤 높던데, 남조선 에서는 그 높은 곳까지 어떻게 물을 길어다 먹습니까?"
  
  이 질문에 일행은 차마 웃지도 못하고, 하여 어느 분이 이렇게 답을 하였다고 한다.
  
  "아 예, 그것은 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그런 것은 다 해결 되기 때문에 걱정 없어요"
  
  
  
  그리고 길에 지나가는 평양시민을 보았는데, 그 모습은 흡사 우리나라 역전의 노숙인의 모습과도 같았다고 한다. 즉,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떡져 있었고, 몸에서 악취가 진동을 하였다고 한다.
  
   - 아마도 비누 구하기가 힘들고,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까 제대로 씻지를 못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었다고 한다.
  
  
  
  이 목사님은, 다시는 그러한 초청에 응하여 가고 싶은 아음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단체에 기부금도 내지 않으니까, 그 이후 초청은 더이상 없었다고 하였다.
  
  
  
  
  
  
  
  
[ 2010-03-21, 13:0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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