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고급 양주값이 싼 이유
북한 부유층의 사생활/김정일이 간부들에게 선물하는 양주가 많아 그 술들이 외화식당이나 상점에서 몰래 팔리기 때문.

장진성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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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조선중앙TV는 자국(自國) 인간중심의 주체이념을 비교극찬하기 위해 외국의 애완견 문화를 소개하며 개 같은 자본주의 세상이라고 여러 번 비난선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평양 중심가에서 한 여인이 TV에서나 봤던 사치스럽게 단장한 외국 강아지를 끌고 산책을 나왔다. 사람들이 무리로 굶어죽던 때라 격분한 시민들의 손에 잡혀 그 여인은 보안소로 끌려갔다.

 

하지만 조사하던 보안원들은 난감했다. 김정일이 선물한 강아지였고 남편도 중앙당에서 근무하는 간부였던 것이다. 당조직부는 그 애완견 사건을 부적절한 행동으로 평가하고 김정일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의외로 사람을 잡으려고 이런 졸렬한 보고까지 했냐며 당조직부를 질책했다.

 

그러자 그동안 김정일 선물 애완견을 집에서만 몰래 키우던 많은 간부들이 때를 만난 듯 너나없이 개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부터 북한에서 애완견은 부와 권력의 상징처럼 돼 버렸다. 평양시부터 애완견 붐이 일어나면서 외국종자 강아지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말티즈나 슈나우져는 300~500불을 줘야 살 수 있었고 몸체가 큰 잉글랜드 세터 같은 경우 한 마리당 1000불이나 했다.

 

수컷에 비해 암컷은 두 배로 비쌌다. 일반 근로자 월급이 2000원(한국돈 1200원 정도)이던 2001년에 외국강아지 암컷만 2마리 정도 있으면 큰 외화벌이인 셈이었다. 그러나 생존수단으로 개장사가 번성하자 2년 후에는 애완견들이 여기저기 버려져 정말 개 취급 받았다. 애완견과 관련한 북한 유머를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어느 잘사는 집에 이름이 “달래”인 강아지가 있었다. 허세 부리기를 좋아하던 그 부인은 강아지에게 초콜릿을 줄 때면 일부러 “달래야!” 하고 소리쳐 부르곤 했다. 그러면 같은 “달래”라는 이름을 가진 가난한 집 어린애도 밖에서 놀다가 그 광경을 보고 자기 엄마에게 달려가 서럽게 울곤 했다. 딸에게 초콜릿을 사줄 수 없었던 달래 엄마는 잘 사는 집 부인에게 찾아가 통사정했다. “강아지 이름을 제발 좀 바꿔주세요” “안 돼요, 강아지가 자기 이름을 기억하는데 어떻게 바꿔요?”

 

 장시간 애걸하던 여인이 갑자기 자리를 차고 일어나며 소리 질렀다. “좋다. 두고보자!” 여인은 그 길로 시장에 나가 똥개 한 마리를 사왔다. 그리고 그 똥개에게 잘사는 집 여자 이름을 붙여줬다. 다음날 아침, “달래야! 초콜릿 먹자!” 그러면 가난한 집 여인이 기다렸다는 듯 더 큰 목청으로 불렀다. “미화야! 와서 똥 먹어라!” 결국 부잣집 부인이 가난한 집 여인을 찾아와 빌었다는 내용이다.

 

북한에서 부유층들만 가는 외화식당들은 한국의 고급 음식점 못지않게 비싸다. 우선 북한에도 술 키핑문화가 있다. 북한에선 고급양주가 좀 싸다. 김정일이 간부들에게 선물하는 양주가 많아 그 술들이 외화식당이나 상점에서 몰래 팔리기 때문이다. 호텔이나 바에 키핑 된 고급양주들을 보관하는 것을 부유층들은 자기 권력과 부의 영역을 표시하는 것만큼 자부로 여긴다.

 

북한에서 가장 최고급 음식점은 빙산관 지하에 있는 “은반”이란 횟집이다. 재일교포 친인척이 운영하는 이 횟집 요리사들은 모두 일본 사람들이다. 간장을 비롯한 각종 조미료들과 일본 음식자재들을 가져와 요리하기 때문에 세 사람이 사께와 회 이것저것을 시키면 보통 600불~800불을 줘야 한다. 같은 지역의 평양체육관 1층에 있는 “진달래식당”은 교포사업총국이 운영하는 음식점으로서 소불고기가 유명하다.

 

접시에 얇게 깔리는 작은 쇠고기 6점에 6불을 줘야 한다. 냉면은 평양창광원 뒤 “창광국수”가 최고이다. 한 그릇에 2불이고 쟁반국수는 5불이다. 원래는 북한에서 옥류관 냉면이 최고였다. 그런데 어느 날 예로부터 평양냉면이 유명했던 것은 메밀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며 김정일이 메밀을 더 넣으라고 지시했다. 메밀이 많이 추가되자 면발이 쫄깃하지 않고 부석부석 끊기며 본래의 맛을 잃었다.

 

이후 자기 말대로 “메밀을 더 넣으니 반응들이 어떠냐?”고 김정일이 물었는데 문제는 더 나빠졌다고 감히 말할 위인이 북한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미식가들이 옥류관 대신 “창광국수” 집으로 옮겨졌다. 한정식집으로서는 평양시 중구역 련화동에 있는 “민족식당”이 유명하다. 당 선전선동부 산하 평양물산회사가 운영하는 이 음식점의 이익금은 모두 4월의 봄 축전 예술축전에 충당된다.

 

김일성 생일인 4월15일을 국제축제로 부각시키기 위해 공짜 비행기 티켓과 숙박요금을 전제로 외국 예술인들을 초대하는데 이를 당선전선동부 물산회사에서 부담하는 것이다. 그래서 남한 사람들이 방북하면 반드시 안내하는 음식점이기도 하다. 내가 남한에 와서 놀란 것 중 하나가 음식점에서 반찬을 더 요구하면 그냥 공짜로 주는 것이다. 반찬이 추가될 때마다 돈을 계산하는 북한에선 작은 접시에 담긴 김치가 1달러, 밥 한 공기는 2달러이다.

 

세계 명품들도 판매되는 가장 유명한 외화백화점들로서는 평양시 중구역 창광동에 있는 “락원백화점”, “서경상점”, 대동강구역 청류동에 있는 “평양대성백화점”, 동대문구역과 선교구역에 있는 “외교단사업총국상점” 보통강구역 경흥동에 있는 “외화상점, 식당촌”, 만경대구역에 있는 “련봉상점”들이 있다. 그 외에도 부유층 1%와 지방시장에 물건들을 가져가는 도매꾼들을 위한 외화상점들이 평양시 한 구역 안에 보통 수십개씩 존재한다.

 

북한에는 부유층들을 위한 오락시설들도 많다. 부유층 자녀 10대~20대들이 즐겨 가는 곳은 평양시 중구역 창광동에 있는 빙산관이다. 2달러를 내면 2시간 동안 스케이트와 피겨를 즐길 수 있다. 평양시 광복거리 서산동에는 인민보안성에서 운영하는 “메아리사격관”이 있는데 실탄 한 발에 1달러이지만 손님이 북적인다.

 

같은 지역의 서산골프장과 평양시 교외에 있는 태성골프장은 1홀, 3홀 나가는데 100달러이다. 태성골프장 옆에는 경마장도 있다. 노래방은 남한과 차이가 있다. 일단 입장요금이 있다. 일인당 10불이고 1달러에 노래 한곡 부를 수 있는 작은 동전 같은 것을 준다. 남한 노래는 “아침이슬”과 “임진강”이 있다. 고려호텔과 양각도 호텔 지하에는 빠징꼬도 있지만 부유층들이 주로 하는 도박은 당구도박이다.

 

북한에선 더운물 목욕도 특권이다. 평양정보센터나 고려호텔, 양각도호텔 지하에 있는 수영장과 사우나는 8불이고 그 외 다른 외화사우나들은 2~4달러이지만 값이 싼 대신 정전이 자주 된다. 호텔들마다 안마서비스도 있는데 건전성을 위해 주로 과부들이나 아줌마들이 시간 당 10불을 받고 해준다. 언론이 없는 북한에서 민심의 비판을 받을 수 없는 부유층들의 사생활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 중 현 황해북도 도당책임비서인 최룡해 사례를 들려고 한다. 그의 아버지 최현은 1960년대 말 김정일을 후계자로 임명하는 정치국회의에서 세습을 반대하는 김영주 측근들인 정치위원들을 향해 권총까지 꺼내들고 위협했던 다혈질의 충신이다. 어렸을 때부터 오백룡(오극렬의 아버지), 최현 일가와 이웃으로 살았던 김정일은 최현의 맏아들인 최룡택보다 자기를 형처럼 따라주는 최룡해를 더 신임했다.

 

김정일은 장차 최룡해를 당조직부 제1부부장감으로 지목하고 조직업무 훈련 차원에서 조선사회주의청년동맹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1989년 평양 제13차세계청년학생축전을 성과적으로 주최한 공로로 최룡해에 대한 김정일의 믿음은 더 커졌고 그의 청년동맹조직도 권력기관처럼 부상했다. 김정일의 은밀한 파티에 참석 경험이 풍부한 그는 자기도 청년조직 안에 기쁨조를 두고 부화방탕을 일삼았다.

 

당중앙위원회 간부 사상투쟁에서 공개된 내용에 의하면 최룡해는 산하 청년동맹예술단과 전국청년들 중 미모의 여성들을 엄선하여 자기의 별장과 청년동맹 소유인 도라지호텔 스위트룸에서 간부들과 함께 그룹섹스를 일삼았다. 그는 자기의 변태적 취미를 만족시키기 위해 차출된 여성들의 이빨을 전부 뽑고 한개 당 100불씩, 총 3200불을 주고 틀니를 해주었다. 양주를 마셔도 잔으로 마신 것이 아니라 여자들의 두 다리를 꼭 모아 붙이게 한 다음 그 사이에 부어 마셨고, 등에서 가슴으로 흘러내리는 술을 받아 마시기도 했다.

 

가택수색에선 전국 청년조직들과 해외출장자들, 무역회사들에서 뇌물로 받은 미화 350만불이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구체적인 행위들과 증거들이 당조직부 이제강 제1부부장이 주최한 당 조직부 검열총화에서 공개 비판된 후 그는 양강도로 해임 추방되었다. 이어 김정일의 분노로 청년동맹예술단은 청년동맹선전대(현재는 청년동맹협주단으로 승격)로 격하되었고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을 포함한 전국 도 청년동맹이 당조직부 검열을 받고 모든 간부들은 해임, 추방되었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인연이었고, 또한 최룡해만한 충신을 찾기도 쉽지 않았던지 김정일은 2000년에 그를 평양시 중앙열난방기업소 당비서, 중앙당 부과장을 걸쳐 2005년경에는 황해북도 도당책임비서로 임명했다. 그를 비롯한 집권세력의 사치와 방탕은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과는 상관없이 신분구조의 특권 속에서 지금도 계속 되고 있을 것이다.

(내일 계속) 장진성의 블로그 http://blog.daum.net/nkfree

[ 2010-03-23, 09: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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