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 선생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돌 잡은 그 손이 왼손인지 오른손인지 따지지도 말고, 먼저 그 돌로 통일의 탑을 굳건히 쌓아가야 할 것이다.

강한필(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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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3代 세습’ 공표일에 맞추어 세상을 떠난 故 황장엽 선생에게 국민훈장을 추서해서는 안 되느니, 현충원에 안장해서는 안 되느니 논쟁이 뜨겁다. 그러나 정부는 黃 선생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고, 국립 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墓域 안장을 확정지었다.
  
   父子세습으로 정권을 연명하고 있는 북한 정권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서도,
  
  배고파 쓰러져가는 북한 주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서도 바람직한 결정이다. 현충원 안장 여부를 묻는 한 여론조사에서도 찬성 41% 對 반대 36%로
  
  찬성 여론이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으니, 黃 선생을 국가유공자로 모시는 것이
  
  북한 주민의 人權 개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당연한 책무일 것이다.
  
  
  
  
   훈장 추서와 현충원 안장을 반대하는 이들은 黃 선생이 숙청 일보 직전에 자신의 영달을 위해 불가피하게 망명했다느니, 대한민국을 위해 공헌한 것이 무엇인지, 또 확실하게 專向한 것인지를 따져 묻는다.
  
   그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에게 되묻고자 한다. 과거 유신시대의 독재정치에
  
  반대하여 북한으로 망명한 인사들이 있었던가? 서슬이 퍼렇던 軍政시대에 미국과 일본, 영국 등으로 잠시 피신한 이들은 있었으나, 북한行을 택한 정치인이나 지도자들은 단 한명도 없었음을 잘 상기해보라.
  
   또 어떤 이는 前 중정부장 김형욱이 북한으로 망명해 훈장 받고 혁명열사릉에
  
  묻히는 셈이라 비판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았고 黃 선생은 자신의 결의를 행동으로 보여준 분단시대의 대표적 인물이다.
  
  
   긴 역사의 안목으로 보면, 탈북의 상징 황장엽 선생의 현충원 안장은 대한민국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것이며, 조국통일의 초석을 굳건히 쌓는 일이다. 黃 선생은 죽음으로써 정치적 현실이자, 우리 민족의 至上 목표인 통일 문제를 다시 한 번 부각시켜 주었다. 망명 후 줄곧 북한의 체제 변화를 유도하며 父子 세습의 부당성을 만천하에 드러내 주고 떠났다.
  
   그가 왜 주체사상을 버리고 남한行을 결행했는지, 왜 미국에 망명 정부를 세우지 않고 대한민국 땅에서 고군분투하며 북한의 참담한 실상을 알렸는지는 먼 후일 역사가 평가할 일이다. 벼락같이 다가올 통일에 대비해 부디 한데 힘을 모으라는 비극적 선구자의 유언이, 김정일 정권 타도를 외치고 그 부당성을 부르짖으며 북한 주민의 자유화와 민주화를 열망하던 故人의 유지가 빛을 잃지 않도록 우리 모두 역사에 부끄럽지 않을 言行을 해야 한다.
  
  
   “나는 살만큼 살았기 때문에 언제 죽어도 좋다” 며, 갖은 암살 위험에도
  
  “내 나이가 몇인데..” 의연히 대꾸하시던 黃 선생의 死生觀이 새삼 떠오른다.
  
  그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돌 잡은 그 손이 왼손인지 오른손인지 따지지도 말고,
  
  먼저 그 돌로 통일의 탑을 굳건히 쌓아가야 할 것이다.
  
  
  
[ 2010-10-13, 19:2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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