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아도 눈을 감지 못하는 황장엽님
자유통일이 찾아오는 그 날까지 황장엽님의 두 눈은 감기지 않을 것이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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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

 “선생님, 선생님!”

 “우지끈!”

 “앗!”

 황장엽님이 목욕재계하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북한 군인의 평균 몸무게와 비슷한 40kg 남짓한 몸뚱이를 이제 거추장스럽다며 조용히 벗어버렸다. 영혼의 눈은 휴전선에 높이 매달아 부리부리 북녘을 지켜보며 조용히 떠나갔다. 2010년 10월 10일, ‘전쟁을 막으러’ 자유대한의 품에 안긴 지 13년 만이다.

 

 2천만 노예의 주인 김정일은 여전히 악마의 절대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1997년으로부터 3년 안에 전쟁을 일으키거나 천벌을 받을 것 같았던 김정일은 소련군 대위 김일성의 피라미드 아래에 수백만 동족 노예를 생매장하고도 여전히 건재하다. 한국의 친북좌파 덕분에 여전히 건재하다. 밤의 쾌락에서 멀어졌을 뿐, 낮의 쾌락은 여전하다. 2천만 동족 노예는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든, 김정일의 흐리멍덩한 눈빛 한 번 쏘이면 해삼처럼 흐늘흐늘해진다. 5천만 노예 후보도 김정일/김대중의 야합으로 핀 악의 꽃 6.15공동선언의 독향(毒香)을 맡은 후 변연계의 공포 뇌세포가 변형되어 청와대에서 MBC와 한겨레를 거쳐 조선동아에 이르기까지 꼬박꼬박 ‘위원장, 위원장’하며 알아서 받들어 모신다. 이것이 바로 김정일이 날마다 누리는 낮의 쾌락이다. 대뜸 김정일을 ‘김정일’이나 ‘독재자 김정일’ 또는 ‘개정일’, 이렇게 부르는 이들은 황장엽님을 비롯한 2만 탈북자를 동지나 벗이나 이웃, 또는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김정일이 꿈자리마다 시달리는 밤의 고통이다.

 

 핵무기의 비밀 단추가 약간 덜렁거리는 김정일의 왼손에 쥐어 있고, 20만 특수군의 지령이 멀쩡한 김정일의 오른손 둘째손가락 끝에 새겨져 까딱거리기를 대기하고 있고, 거미줄 같은 ‘남조선’ 땅굴의 지하도가 김정일의 품속에 들어 있고, 6.25 당시 T-34 전차보다 무서운 미사일과 장사정포의 비밀번호가 김정일의 푸성귀 머리에 감춰 있다. 푹 꺼진 김정일의 아랫배에는 통일전선부가 작성한 ‘남조선’의 요원에 관한 일급 비밀장부가 감춰 있다. 옛 동독의 슈타지 비밀문서는 이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이다. 이거 하나면 한국의 핵심은 마음대로 조종 가능하다. 김정일이 기뻐할 일은 궤변으로 칭송하고, 김정일이 화낼 일은 화염병으로 불태우고, 김정일이 언짢아할 일은 촛불로 가로막는다. 이것도 김정일이 날마다 누리는 낮의 쾌락이다.

 

 황장엽님은 갈수록 말이 헛돌았다. 짐승의 눈빛을 띤 남녀가 사지를 비틀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나이트클럽의 꽝꽝 무대에서 가슴을 촉촉이 적시는 하이네의 시를 낭송하는 격이었다. 북에서도 말이 안 통했는데, 남에서도 말이 안 통했다. 단지 남에서는 소수나마 들어 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듣는 이는 적지만 진실을 말할 수 있었다는 점이 달랐을 따름이다. 북에서는 김정일이, 남에서는 김대중과 노무현과 이명박이 황장엽님의 말길을 노골적으로 또는 지능적으로 가로막았다. 13년 동안 한 번도 3백만이 굶어 죽었다는 황장엽님의 증언이 9시 뉴스에서 진지하게 다뤄진 적이 없었다. 100년 동안 한 명도 죽을 가능성도 없는 광우병은 석 달 열흘 9시 뉴스의 특집 방송으로 다뤄졌지만,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3백만이 굶어 죽었다는 황장엽님의 절규는 한 번도 진지하게 다뤄진 적이 없었다. 한국의 대통령들은 황장엽님의 말에 청진기 귀 대신 깽깽이 입을 갖다 대었다. 김영삼 임기 말년에 황장엽님이 북한 주민 2천만을 살리려고 가족의 목숨을 희생시키며 북한주민의 희망인 중국보다 열 배 잘 살고 열 배 깨끗한 나라로 왔지만, 이미 김영삼은 실정(失政)으로 식물대통령으로 전락했고, 황장엽님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좌파의 거대한 숙주가 되어 있었다. 그러고도 바보 대통령은 스스로 무슨 짓을 했는지 지금도 모른다. 가증하게 황장엽님의 명예 장례위원장 자리를 꿰차고 바보 카터처럼 헤벌쭉 웃고 있다.

 

 김정일이 저승사자의 초대장을 받자 27세의 애송이 김정은을 일약 2천만 노예의 3대 주인으로 발탁했다. 핵무기 개발도 김정은의 지도로 한 일이요, 150일 전투도 100일 전투도 김정은이 한 일이요, 화폐개혁도 김정은이 한 일이요, 천안함 격침도 김정은이 한 일이다. 마지막 둘은 결과가 너무 참담하거나 차마 대외적으로 공표할 수 없어서 아랫것에게 덮어씌우거나 한국과 미국에 덮어씌운다. 북한의 ‘유일한 천재’ 김정일처럼 김정은도 유일한 천재로 띄우고 있다. 이런 해괴한 짓거리를 한국의 신문과 방송에서 대문짝 보도한다. 귀퉁이에 체면치레로 비판하지만, 그것은 홍보의 홍수 속에 묻혀 버린다.

 

 미군이 떠나거나 열중쉬어 하면 아침나절에 한국을 접수할 무시무시 무기를 앞세우고, 김정은이 3대 노예주로, 3대 마적단 두목으로, 3대 독재자로, 3대 흡혈귀로 김정일의 흐뭇한 미소를 뻣뻣하게 받으며 소련군 대위를 꽤 닮은 모습을 전 세계의 대중매체에 드러냈다. 바로 그 날 황장엽님은 영혼의 두 눈을 휴전선의 하늘에 쌍안경으로 걸어 두고 조용히 육신의 두 눈을 감았다. 육신의 두 눈으로는 차마 3대 흡혈귀 등극을 볼 수 없어서 그랬을까.

 

 2천만 노예를 해방하는 게 아니라 5천만 노예가 새로 태어날까 두려워서 그랬을까. 한국의 민주는 독재라 하고, 북한의 독재는 자주라 하고, 한국의 친북반미는 민주라 하고, 한국의 풍요는 불행의 씨앗이라 하고, 북한의 절대빈곤은 자립이라 하는 반미치광이 한국이 고독의 절해고도처럼 느껴져서 그랬을까. 북한 주민이 기뻐할 일은 나 몰라라 하고, 김일성과 김정일과 김정은이 기뻐할 일은 온갖 미사여구와 궤변으로 찬양하며 뼈가 가루가 되도록 다투어 떠맡는 것을 보고, 13년간이나 지켜보고 더 이상 희망을 느끼지 못해서 그랬을까. 한국이 호강에 겨워 스스로 쌓은 죄업에 대한 벌 받는 게 차마 보기 어려워서 그랬을까. 황장엽님은 친북좌파의 산더미 요설과 궤변과 거짓을 직접경험의 거울로 훤히 비추고 진실의 광선검으로 단칼에 베어 버렸다. 김정일의 속을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환히 드러냈다. 그러나 한 번도 9시 뉴스의 심층 보도로 다뤄지지 않았다. 언론의 자유 속에서도 얼마든지 진실은 조직적으로 탄압받고 왜곡되고 은폐될 수 있다는 것을 황장엽님은 서서히 깨달았다. 거의 체념하고 달관할 무렵, 황장엽님은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영혼의 두 눈은 휴전선의 하늘에 매달아 놓고 육신의 두 눈을 조용히 감았다.

 

 카르마에 대한 벌을 받은 후 한반도는 비로소 자유통일되고 북한 주민은 비로소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찾게 될 것이다. 그 날에 김일성 동상이 거꾸러진 자리에 황장엽님의 소원대로 북한인권의 수호천사 수잔 숄티의 아주 작은 흉상이 하나 세워지면, 휴전선의 하늘에 떠 있던 황장엽님의 두 눈이 주르륵 눈물을 흘리며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돌아가 영원히 감겨질 것이다.

     (2010. 10. 13.)

[ 2010-10-13, 21: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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