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의 최후' 다큐멘터리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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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에 읽은 폼페이의 最後를 어제는 BBC가 제작한 다큐멘타리 영화로 보았다.
  폼페이市가 화산災와 硬石으로 매몰되기 시작하는 AD79년 8/24일 정오에서 오후1시 사이를, 小플리니우스(AD61-112 작가, 변호사)가 그의 친구인 역사학자 코넬리우스 타키투스에게 자세히 쓴 편지는 16세기에 발견되었다.
  당시18세인 小플리니우스는 나폴리灣의 미세눔에 있는 미세눔 함대 사령관, 삼촌(大플리니우스)의 집에서 그의 집필을 돕고 있었다.
  
  그는 처음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화산재 구름이 하늘로 치솟는 것을 삼촌과 함께 보았다. 大플리니우스는 폼페이로 달려가 구출작업 도중 독가스에 窒息死 하였다
  
  AD62년에 몇 차례 지진이 있었으나 베수비오(Vesuvius)山이 火山인 줄은 아무도 몰랐다.
  AD79년 8/24일은 평상시 그대로 평화롭게 열렸다. 아무런 준비없는 폼페이市民과 市였다. 한낮에 화산의 분화구에서 폭발한 화산재, 경석, 독가스는 10킬로미터 까지 날라갔다.
  
  화산재와 경석은 4억톤의 분량이었다고 한다. 災, 암석, 250c도의 열기, 유독가스로 하늘은 캄캄해졌다. 19시간 동안 일어난 이 재앙으로 폼페이市는 번성하던 도시의 찬란한 문화, 역사적 증거와 함께 화산재에 묻혀 1700년 동안 매몰되어 있다가 1748년, 건물 기초공사중 발견되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로마의 10代황제 티투스 시대에 일어난 이 참변은 북서쪽으로 불던 바람의 방향에 따라
  
  화산의 噴火口에서 쏟아지는 이 모든것이 나폴리로 향하지 않고 폼페이, 헤쿨라니움, 스타비아에로 향하였다.
  
  발굴된 폼페이의 遺跡은 이들의 찬란했던 문화 외에 절망적인 죽음도 생생히 보여준다.
  6~7미터의 화산재 혹은 더 깊게 25미터까지 12층의 각기 다른 흙의 층으로 폼페이는 도시 전체가 묻혀버렸었다.
  
  地震이 몇 차례 있었어도 베수비오山이 꿈에도 화산인 줄 몰랐고 이 災殃으로 부터 도피할 과학적인 측정을 할 수 없었던 그 시대의 폼페이 시민은 참혹한 운명에 있었다.
  
  우리는 속이 화안~히 보이는 惡하고 가장 치사한 敵과 마주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결단하기에 따라 확실하게 이길 수 있다.
  
   '적을 격파하는 정신' 그것이 바로 우리를 보호하는 일일 것이다.
  
  
  
  
  
[ 2011-01-04, 10:2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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