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고통을 너무 빨리 잊는다"
북한에 의해 포격을 당한 지 1주일 만에 실시한 여론조사와 6주일 후의 여론조사 결과가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정용석(코나스)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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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재무장관을 지낸 로버트 루빈 씨는 자신의 회고록 ‘불확실한 세계에서’를 2003년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한국인들은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너무 빨리 잊어버린다.’고 아쉬워했다. 한국인의 빠른 망각은 ‘바람직하지 못한 판단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1997-98년 호된 외환위기로 뼈저린 고통을 당했으면서도 곧 바로 잊어버린채 적절히 대응하는데 미숙했다는 지적이었다.
  
   루빈 씨의 말 대로 우리 국민은 과거의 고통을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습성이 남달리 높다. 개인이나 국가나 마찬가지이다. 지난 날 잘못된 판단이나 행동으로 인해 입은 고통을 금새 잊어버리면 보다 더 참혹한 불행을 자초한다.
  
   한국인은 국가를 부도위기로 몰고 간 외환위기만 잊어버리는 게 아니다. 몇 달 전 북한의 연평도 무차별 포격에 대한 고통도 벌써 잊기 시작하였다. 북한에 의해 포격을 당한지 1주일 만에 실시한 여론조사와 그로부터 6주일 후의 여론조사 결과가 다르게 나타났다는데서 그렇다.
  
   11월30일 여론조사에서는 북한의 도발과 관련해 ‘강력한 대북압박을 통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문항에 57%가 그렇다고 응답하였다. 그러나 그 후 6주일 후인 올 신년초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온건한 정책으로 바꿔야 한다’는데 48.4%나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북 강경 압박정책 지속은 47.3%로 줄어들었다. 우리국민이 대북 강경 보복에서 6주일만에 대화와 타협으로 후퇴하기 시작한 것을 반영한다. 루빈의 말대로 한국인은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너무 빨리 잊어버린다’는 대목을 재확인케 한 망각 추이가 아닐 수 없다.
  
   또 2009년 9월의 한 여론조사는 성인 33%가 6.25 남침의 도발 연도를 모른다고 답하였다. 6.25남침을 누가 자행했느냐는 질문에는 14.6%가 북한이 아니거나 모른다고 하였다. 한국인은 고통을 너무도 빨리 까맣게 잊어버린다.
  
   국가나 개인은 과거와 함께 살아야 한다. 과거를 잊는 사람이나 국가는 과거의 비극을 되풀이하게 마련이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국가가 입은 고통과 교훈을 보다 더 쉽게 잊어버리도록 얽혀져 있다. 매일 매일 치열한 삶의 경쟁체제 속에서 국민들은 그날 그날 살아남기 위해 국가의 과거나 장래를 챙길 여유가 없다. 북한과 같은 공산독재 국가에서는 항상 “남조선 해방”과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입에 달고 산다는 데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
  
   19세기 영국의 공리주의 창시자인 존 스투어트 밀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는 영원한 경계심”이라고 하였다.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경고였다. 같은 맥락에서 개인 행복을 지키기 위한 대가 또한 “영원한 경계심”이다. 행복을 누리기 위해선 과거의 고통을 잊지 말며 늘 자신과 주변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국민에게는 과거 고통에서 얻은 교훈을 너무 빨리 잊는 성향이 높다는 사실이 외국에 까지 널리 알려졌다. 어느 새 일부 국민들은 “강력한 대북 압박” 대신 “대화와 타협”을 내세운다.
  
   아직 까지 우리 정부는 북한의 거듭된 “무조건 대화” 제의를 단호히 거부하였다. 천안함·연평도 도발에 대한 책임있는 조치와 재발방지 약속 그리고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확인이 선행도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그러면서도 “한국인은 고통에서 얻은 교훈을 너무 빨리 잊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이명박 정부를 믿을 수가 없다. 북한이 정상회담을 넌지시 내걸며 미소를 짓고 나설 때 거기에 현혹되어 정부가 정상회담을 위해 “무조건 대화”에 끌려갈 수 있다. 더욱이 우리 정부가 국민들이 과거의 고통을 빨리 잊는다는 약점을 잘 알고 있다는데서 시간이 흐른 다음 국민의 망각을 이용해 북한의 “무조건 대화”제의에 호응할 수도 있다. 정부는 대화 명분으로 종북좌익 세력의 주장대로 제2의 천안함·연평도 도발을 막기 위해선 대결 보다는 대화가 요구된다는 논리를 내세울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과거의 고통을 빨리 잊어서는 안 된다. 북한과 대화에 나서기 위해선 도발에 대한 책임있는 조치·재발방지약속·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전제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 전제조건들과 연평도의 고통을 쉽게 잊어버린다면, 제2의 연평도 비극은 물론 더 큰 화를 자초하게 된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도 파괴되고 만다. 과거의 불행을 잊은 개인이나 국가는 미래의 평화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는 평범한 교훈을 잊지 말기 바란다.(KONAS)
  
   정용석(단국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 2011-01-16, 18:2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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