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의 절대화는 목적의 화석화를 부른다
권력의 자의적인 방법이 절대화되면, 목적은 현실과 유리되고 신뢰는 증발한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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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적과 방법은 흔히 선후(先後) 또는 상하(上下)의 관계로 여겨진다. 선후의 관계로 볼 때는 선배와 후배, 연장자와 연소자, 앞집과 뒷집처럼 시간이나 공간에 의해 생기는 차이 정도로 인식해서 목적과 방법 사이의 긴밀한 협조를 전제한다. 상하의 관계로 볼 때는 목적이 방법 또는 수단을 지배하여 필요에 따라 아랫것을 여차하면 바꿀 수 있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목적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되고 방법은 목적을 위한 일개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목적에 이르는 길을 차단한 산적형(山賊形) 권력이 자의적으로 도입한 방법을 절대화하여 그것에 반대하는 것은 신성한 목적을 반대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선량한 길손님에게 철퇴를 휘두르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누구도 감히 엉터리 방법을 대신할 멋진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추상적 목적이 아니라 구체적 방법에 복종해야 한다. 정상에 이르는 훨씬 쉬운 길이 눈에 띄더라도 안개 자옥한 가시밭길로 가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정상은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길은 안개 속 개미 쳇바퀴로 바뀐다.

 

 신뢰의 집단 또는 갈등 해소가 용이한 집단은 대체로 목적과 방법의 관계는 선후의 관계로 인식한다. 선후의 문제일 뿐 기본적으로 목적과 방법은 대등한 관계이므로 타협과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목적도 일반적으로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도 조정이나 화합이 필요하다. 목적은 가치관에 따라 달라진다. 신뢰의 집단은 가치관을 공유하거나 가치관의 상대성을 인정한다. 가치관의 상대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다름은 나쁨이 아니라는('Different' is not bad.) 것을 서로 인정함을 뜻한다. 근대화란 목적을 이루기 위한 두 방법 곧 공산주의식 방법과 자본주의식 방법을 예로 들어 보자.

 

 김일성과 이승만은 근대화란 동일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김일성은 스탈린이 정한 공산주의식 근대화의 목적에 따라 처음에는 소련군 나중에는 북한군의 총칼을 빌려 북한노동당을 조직하고 모든 생산수단을 공산화했다. 여기에 반대하면 개돼지 잡듯 무자비한 폭력으로 다스렸다. 만인평등이 공산주의식 근대화의 으뜸 목적이었는데, 김일성은 자유를 평등의 주적으로 삼아 군화 뒤축으로 독사의 머리를 짓이기듯 철저히 짓밟았다. 동지와 동무는 만인평등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북한에는 평등도 존재하지 않았다. 소련군의 꼭두각시들은 하나같이 백두산의 산신령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했다. 이윽고 김일성은 조선의 태조보다 높은 태양왕으로 군림했고, 노동당의 서열은 조선의 양반관료보다 엄격한 상하관계로 정착되었다. 김일성은 인간신(人間神)으로서 그의 혈통은 신라의 성골보다 신성해졌다.

 

 1958년 농업과 공업과 상업을 완전하게 협동조합화한 것 곧 100% 공산화한 것은 만인평등의 달성이 아니라 만인불평등의 결정판이었다. 김일성은 정적을 차례로 제거함으로써

1969년 북한 전역이 만경대 김씨의 가족 재산이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김일성 유일사상 확립이다. 그 이후로 김일성의 모든 지시(방법)는 십계명처럼 엄격히 지켜졌다. 김일성이 자의적으로 정한 방법은 절대화하여 김정일도 바꿀 수 없다. 김일성이 교시한 해괴망측한 주체농법을 등소평식 승포제(계약제)로만 바꾸어도 식량 문제는 2~3년 안에 해결할 수 있지만, 그것은 김일성을 일개 인간으로 격하시키는 것이므로 절대 바꿀 수 없다. 북한 주민의 10분의 1이 굶어 죽고 2분의 1이 영양실조에 걸려도 바꿀 수 없다. 외부에서 식량을 준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개에 맹세코(소크라테스식 표현) 아니다.

 

 이승만의 정치 목적은 자유민주적 근대화였다. 그것은 자유와 평등 어느 쪽도 희생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덕분에 한국의 국민은 거주이전, 언론, 사상, 종교, 정치, 경제,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헌법에 따라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었다. 자유와 평등이 동시에 달성되려면 무엇보다 사유재산이 있어야 한다. 친북좌파가 주장하는 바와는 정반대로, 이승만은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농지개혁을 통해 지주가 작지 않게 손해 보는 가격으로 농민에게 경작권이 아니라 소유권을 주었다. 200만 농가가 평균 1정보(15마지기)의 농토를 골고루 나눠 가짐으로써 수천 년 지속된 귀족과 상민이라는 불평등 관계는 절로 해소되었다. 또한 누구나 공업이나 상업에 종사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기 때문에, 국민 모두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게 되었다. 혼란은 있었지만 소유를 통한 자유와 평등을 건국 초기부터 갖게 되자, 정부와 국민 사이에는 신뢰가 싹 텄다. 김일성이 외세를 빌려 남침하자, 한국 국민들은 이승만 정부를 믿고 강력히 저항했다. 한편 북한주민은 자유와 평등을 찾아 대거 남하했다.

 

 김일성이 평등의 목적을 달성한다며 자유의 목적을 희생함으로써 결국 인민으로부터 자유와 평등을 모두 빼앗은 것과는 달리, 이승만은 하나의 목적(자유)을 위해서 다른 목적(평등)을 희생시키지 않고 이 둘을 조정하고 조화시키는 유연한 방법을 택함으로써 2차대전 이후 후진국 중 가장 성공할 국가의 다이아몬드 토대를 구축할 수 있었다.

 

 한국에도 목적과 방법의 관계를 그릇되이 인식하는 무리들이 많다. 선후관계가 아니라 상하관계로 인식하고서 작은 권력이든 큰 권력이든 권력만 잡으면 목적에 이르는 길목을 차단하고, 이전까지의 방법은 제멋대로 파기하거나 변형시키고 새로이 요상한 방법을 들고 나와 그것을 절대화한다. 이명박 정부의 사회주의식 물가관리나 좌파 교육감의 무상급식 등을 생각해 보라. 또는 권력의 사유화를 목적으로 삼으면서 그럴 듯하게 민주나 자주

(6.15공동선언식)나 평등이나 환경이나 복지를 내세워 자신들이 내세운 방법을 절대화하여 정부의 방법(정책)에는 무조건 반대하며 시대의 양심을 자처한다.

 

 엉터리 목적을 여러 정권이 공유하고 자의적으로 몇 가지 방법만 바꾸고 그것을 집권기간 동안 절대화하여 국민에게 강요하는 경우도 숱하다. 사교육 때려잡기도 대표적인 엉터리 목적이다. 이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 헌법과 법률이 보장한 교육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철저히 무시한다. 입시의 길목을 차단하고서 오로지 정부가 학생과 교사로 하여금 안개 자옥한 가시밭길로만 가게 만든다. 그보다 더 좋은 길로 가는 자들은 모조리 사악한 자로 매도하고 제재한다. 단, 자신들은 지키지 않는다! 햇빛 찬란한 아름다운 길이 얼마든지 있는데, 이승만이 토대를 마련한 자유와 평등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5년짜리 정부가 절대화한 자의적인 방법만을 따를 리 없다. 그것만 따르면 손해 보는 게 뻔히 보이니까, 낮에는 정부가 강요하는 안개 자옥한 가시밭길에서 빈둥거리던 학생들이 밤만 되면 가로등과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속도 무한 자유의 길로 달려간다.

       (2011. 1. 29.)

[ 2011-01-29, 16:0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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