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의 씨를 말린 김일성과 김정일
북한의 권력층에는 개혁개방을 담당할 세력이 전혀 없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김일성이 개혁개방한다고 동네방네 설친 것은 1979년이었다. 중국의 등소평(1978)과 거의 같은 시기였다. 소련의 고르바초프(1985년)보다 빨랐고, 베트남의 응웬 반 린(1986)보다 빨랐고, 인도의 라오(1991)보다 빨랐다. 그 후 다른 나라는 하나같이 사치품의 시대를 바라보지만, 북한은 여태 식량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왜 그랬을까?

 

 김일성과 김정일은 스탈린과 모택동의 공포정치를 버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아무리 그들이 원하지 않더라도 반대세력이 존재하기만 하면 언젠가는 세력이 커질 것이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북한도 세계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초전박살(初戰撲殺)! 발본색원(拔本塞源)! 김일성은 죽어서도 죽지 않기 위해 스탈린이나 모택동보다 악독한 짓을 저질렀다. 스탈린은 흐루시초프를 제거하지 않았고 모택동은 대장정(大長征)의 원로를 한두 명 외에는 죽이지 않았다. 중국에는 두 해외유학파 거두 가운데 주은래는 죽었지만, 등소평은 때를 기다리며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젊은 시절 에펠탑을 바라보며 크라상과 와인을 맛 본 주은래와 등소평은 처음부터 모택동의 군사작전식 경제정책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새 진시황의 건국 위업이 워낙 컸기 때문에 그 권위와 권력에 감히 말이나 총칼로 맞설 수가 없었다.

 

 흐루시초프에 의해 봄바람(데탕트)이 건듯 분 적이 있었기 때문에 소련에서는 브레즈네프의 반동을 거쳐 권력보다 민생을 우선하는 고르바초프가 등장할 수 있었다. 베트남에서도 시장경제를 잘 아는 인물에 대한 말살 정책은 없었다. 학사과정은 일본의 경도대학에서 박사과정은 미국의 하버드에서 밟은 응웬 수안 와잉 박사가 바로 그 사람이다. IMF에서도 근무했고 자유월남의 중앙은행 총재도 역임한 응웬 박사는 적화통일 후 9개월 간 가택연금 상태에 있었지만, 1986년 마침내 부름을 받고 도이모이(쇄신) 정책을 입안하기에 이른다. 세계 거지의 절반이 들끓었던 인도도 마음의 고향 공산권이 몰락하자, 네루 가문이 아닌 사람이 수상이 되어 개혁개방을 담당할 인물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요직에 발탁하지 않았을 뿐 시장경제를 잘 아는 인물이 인도에는 늘 존재했었다. 현재 인도 총리인 만모한 싱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싱 총리는 시크교도이다. 소수파의 소수파다. 그럼에도 라오 총리는 그를 경제장관으로 발탁하여 그에게 개혁개방의 임무를 일임했다.

 

 율곡이 말한 대로 훌륭한 정치에는 두 경우가 있다. 하나는 국가 지도자가 현명하면서 동시에 선량한 경우고, 다른 하나는 국가 지도자가 범상한 인물일지라도 훌륭한 인물을 발탁하여 일을 맡기고 그를 믿는 경우다. 베트남과 인도의 지도자는 범상했지만, 스스로 욕심이 없었고 인물에 대한 식견이 있었다. 북한은 어느 쪽도 아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범상한 인물이면서 권력욕과 명예욕과 DNA 보존욕구가 하늘을 찔렀다. 아랫사람에 대한 의심과 시기심은 땅을 뒤덮었다. 그들은 바위 권력에 달걀 던지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용렬한 인물이다. 바위 권력에 그림 달걀 들고 접근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용렬한 인물이다.

 

 1967년 김일성은 군사보다 경제를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한 갑산파를 줄줄이 반동분자로 몰아 3대를 멸했다. 1985년 김일성은 박철 지질학 연구원을 보일러공으로 내쫓았다. 박철은 저 유명한 이승기 비날론 박사의 사위로 김일성과 김정일의 묵인 하에 전국의 협동농장에 개인책임제를 도입하여 그 해 대풍을 가져왔던 것이다. 강성산과 서관희도 내쫓았다.

1998년 농업담당비서 서관희는 김정일에 의해 공개총살되었다. 김달현? 연평묵? 어떤 이는 김달현이 김일성이 지시한 대안의 사업체계를 비판함에도 발끈한 김정일과 달리 고개를 끄덕였다며 김일성을 긍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그건 김일성이 연기력이 김정일보다 약간 낫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김일성은 몇 십 년에 걸쳐서 자신의 정책을 일점일획도 고치지 못하도록 사전 정비작업을 완벽하게 한 다음에 김정일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1979년 남포시 개방, 1984년 합영법,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등은 실질적인 정책이 하나도 따르지 않은 속임수였을 뿐이다. 김정일이 금강산과 개성을 개방하는 척한 것도 김일성의 남포 쇼와 똑같다. 원주민은 오지로 다 내쫓고 전국적으로 핵심당원을 새로 뽑아 어리석은 자들로부터 돈을 뜯어 90% 당중앙에 상납하도록 만든 것이다. 1979년에는 세상 누구도 속지 않았지만, 1998년 이후엔 자진해서 속아 주는 무리들이, 김일성/김정일 기쁨조가 한국을 장악했다는 것이 다르다.

 

 장성택? 중국이 밀고 있지만, 이 자도 권력의 꿀맛을 알 뿐 민생에는 관심도 없고 어떻게 할 줄도 모른다. 왜?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전박살/ 발본색원 정책에 의해 북한에는 개혁개방을 담당할 인재의 씨가 말랐기 때문이다.

 

 이심전심 김일성을 민족의 태양으로 모시는 한국의 햇볕파도 핵심 인물들은 이를 모르지 않는다. 그들은 큰 집의 넉넉한 마음으로 베풀면 언젠가는 북한이 개혁개방할 것이라고 지금도 한결같이 주장한다. 그들의 말이 말짱 거짓이라는 것은 대량살상무기 개발이든 각종 도발이든 김정일의 선군정치에는 서울 주재 평양중앙방송의 중계방송에 열을 올리면서 북한주민의 한 달 월급에 해당하는 1달러 지폐들을 공중으로 직접 보내고 북한주민의 영혼에게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는 대북진실방송과 대북확성기에는 목숨을 걸고 반대하거나 1원 한 푼 보태지 않는 것에서, 북한인권에는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유기견의 권리에 기울이는 정성의 100만분의 1도 기울이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염라대왕의 부름을 받은 마왕 모택동이 화국봉을 마왕 후계자로 지명하고 4인방 흡혈귀와 홍위병 마귀를 영구혁명의 친위대로 임명하기 전에 악에 받쳐서 저승 동무 삼아 등소평과 이선념, 섭검영 등 공산원로들을 모조리 총살시켜 버렸다면, 아마 중국은 지금도 죽의 장막을 치고 피의 문화혁명을 계속할지도 모른다. 김일성은 모택동이 문화혁명을 시작하던 1966년 바로 다음 해에 그런 짓을 저질렀다.

 

 전술한 대로 1967년 김일성은 악마의 미소를 머금고 극히 초보적인 개혁개방을 주장한 갑산파를 완벽하게 제거했다. 갑산파는 국내항일 세력으로 김일성이 평생 자랑스러워한 항일운동, 보천보전투(일본 순사 두어 명 죽인 것)의 핵심세력이었다. 김일성은 응원부대에 지나지 않았고. 김일성은 돌 하나로 토끼 두 마리를 잡았다. 살인멸구(殺人滅口)함으로써 유일사상을 확립하여 자신의 신화적 천지개벽 전기를 새로 쓸 수 있었으며 권력보다 민생을 중시하는 세력의 씨를 말려 버렸다. 적화통일이 최종목표인 김씨공산왕조를 수립할 수 있었다.

     (2011. 1. 30.)

[ 2011-01-30, 18:0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천영우TV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자유민주연구원  |  이승만TV  |  이기자통신  |  최보식의 언론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