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은 입보다 귀로 하는 것
의사소통에서 ‘소통’보다 ‘의사’가 앞선다. 들을 의사(意思)가 없으면, 소통은 아예 불가능하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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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통(疏通)이 유행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소통이란 말이 유행이다. 회의든, 세미나든, 좌담이든, 기자회견이든, 어디서나 너도나도 소통을 화두로 꺼내지만, 이번엔 소통이 잘 되었다며 서로 어깨를 얼싸안고 볼을 마주 비비는 경우는 드물다. 어렵게 마련한 소통의 자리를 떠나나자마자 끼리끼리 모여서 소통부재를 답답해 하고 이쪽이 아닌 저쪽을 향해 분통을 터뜨린다. 끼리끼리 모이면 어찌 그리 소통이 잘 되는지, ‘거시기’하면 다 통하고 ‘있잖아’ 하면 다 알아 차린다.

 

 한국에서 소통이란 말은 1988년 6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본격적으로 유행했다. 그 이전은 투쟁과 타도와 쟁취가 말과 글을 장악한 이들의 낮과 밤 모두를 지배했다. 독재와 투쟁하고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를 쟁취하는 것 외에는 야권과 문화권력의 눈에 뵈는 게 없었다. 1987년 12월 봉황을 쫓던 두 민주 사냥개가 봉황의 자리로 날아간 보통 닭을 쳐다보자, 두 패로 나뉘어 두 민주 사냥개 중 한 쪽을 열렬히 응원하던 사람들도 허탈감에 할 말을 잊었다. 적전분열(敵前分裂)한 두 민주 사냥개에 노골적으로 돌을 던지는 사람들도 숱했다. 두 민주 사냥개는 풀이 팍 죽었다. 보통 사람의 시대가 되자, 왕왕 투견(투쟁)은 하릴없이 꼬끼오 닭(소통)에게 밀려났다. 밤이 가고 아침이 온 것이다.

 

 두 번의 타협이 이뤄졌다. 그러나 두 번 다 원수로 헤어졌다. 소통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새로운 권력은 잠시 전략적으로 이용했을 뿐 신군부든 유신잔당이든 상대를 한 번도 끼리끼리 우리끼리의 동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주 사냥개에서 단지 권력 싸움닭으로 변했을 따름이다.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소통을 부르짖었지만, 그것은 상대방을 향해서 무조건 항복하고 천상천하 유아독존 나의 밑으로 들어오거나 백 배 사죄하고 속된 말로 ‘찌그러져’ 있으란 말이었지, ‘완벽한’ 자기 자신을 향한 말이 아니었다. 말만 소통으로 바꿨지 여전히 투쟁 또 투쟁, 상대방이 꺼꾸러질 때까지 분(憤)이 풀릴 때까지 투쟁 또 투쟁이었다.

 

 현대 국가 중 가장 빛나는 민주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의 의회는 팔리아먼트(parliament)이다. 이것은 불어 'parler'에서 빌려온 것인데, ‘parler'는 '말하다’의 뜻을 가진 동사이다. 의회는 ‘말하는 곳’이란 뜻이다. 여기서 말은 대화(dialogue)를 뜻하고 쌍방 간의 전달(communication)을 뜻한다. 그리스 어원에서 보듯이 대화는 둘이서(dia) 말하는(logos) 것이다. 둘이서 말하려면, 이쪽에서 한 번 말하면 저쪽에서도 한 번 말해야 한다. 이쪽에서 말할 때는 저쪽이 듣고, 저쪽에서 말할 때는 이쪽이 들어야 한다. 그래야 이쪽과 저쪽의 뜻(의사)이 전달된다. 그것이 바로 소통이다. 소통은 다른 말로 하면 이해(understanding)이다. 입 못지않게 귀가 중요하다.

 

 “너는 가만히 듣기나 해.”

 “네 말은 들어보나마나 엉터리일 테니까, 나는 귀를 닫겠다.”

 이러면 소통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1575년 12월 이이(李珥)는 벽창호 선조에게 사직서를 내고 이듬 해 파주의 율곡으로 내려간다. 5년 후 선조가 큰 병을 앓고 나더니, 귀를 조금 열 기미를 보였다. 사색과 저술에 몰두하던 율곡이 임금의 부름을 받고 상경했다. 율곡은 민생(民生)을 위해 경제사(經濟司)를 설치하자고 아뢴다. 그것은 유명무실화한 의정부(議政府)를 대신할 현대의 태스크 포스에 해당하는데, 대신(大臣)이 이끌고 유능한 신진관료가 발로 뛰어 백성의 고충을 파악하여 함께 난상토론한 결과를 임금에게 건의하는 기구로서 임금과 양반관료와 백성이 마음의 벽을 허물고 모두 서로 소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벽창호 선조는 6부에서 각기 판서가 일을 나눠하는 제도가 있는데, 그것이 왜 필요하냐며 단박에 거절했다. 민생은 계속 도탄에 빠졌다.

(참조, 법과 소통의 정치, 최진홍)

 

 그때로부터 따져도 400년이 넘도록 한민족 사이에는 소통이 단절되었다. 이른바 민주화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명령과 면종복배, 호통과 분통, 웅변과 야유, 연설과 냉소, 홍보와 불신이 소통이란 말이 유행한 지 23년이 지나도록 온 나라에 가득하다. 대통령은 혼자 얘기하고 여당과 야당은 만났다 하면, 로미오네 가문과 줄리엣네 가문이 만난 듯 말의 칼을 휘두르고 욕설의 창을 찌른다. 주먹 바람이 불고 손바람이 분다. 몸은 공중을 휙휙 날아다닌다. 공청회라는 데 가도 그렇다. 주최자가 일방적으로 통보하면 초대 손님은 눈만 끔벅거리고 불청객은 말의 오물을 투척한다. 심지어 법원에 가도 그렇다. 아무 데나 민주를 끌어대고 우르르 몰려들어 맘에 안 들면 손에 손잡고 운동권 노래를 부르며 난장판을 만들어 버린다. 조직 없는 서민은 턱짓으로 바로 내쫓지만, 조직을 가진 자들에겐 재판관도 모른 척한다.

 

 그래도 이건 약과다. 북한에는 어딜 가든 왕의 눈이 있고 왕의 귀가 있고 왕의 주먹이 있어서, 굶어 죽으면서도 OO님 만세하고 죽어야 한다. 남은 가족이 강제수용소에 끌려갈까 두렵기 때문이다. 거기선 오로지 폭군에 대한 복종만이 허용된다. 그러니 남북 대화의 장은 일찍이 1974년에 마련했지만, 남북이 소통된 적은 한 번도 없다. 혹자는 퍼주기 시대에 남북이 잘 소통되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왕의 눈에 보암직하고 왕의 귀에 들음직하고 왕의 주먹에 벌벌 김직한 데 대해, 왕이 동서 양쪽에 상납 개구멍을 열어 주고 가끔 고개를 끄덕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소통은 입과 귀로 한다. 한국처럼 귀는 없고 입만 있는 곳에서는 소통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왜 귀가 없는가? 입과 귀를 지시하는 머리에 소통할 의사가, 뜻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독선을 정의로 착각하고 아집을 소신이라 착각하고 뜬소문을 진실로 착각하는 자는 어렵게 소통의 장이 마련되면, 머리에 온통, 사악한 상대방을 만인의 웃음거리로 만들어 굴복시키는 장소로 활용하겠다는 전략과 전술이 가득하다. 아랫사람에겐 ‘지당하여이다!’만 요구하고, 상대방에겐 ‘잘못했나이다!’만 요구한다. 의식구조에서 조선시대와 달리진 게 없다. 선악과처럼 아름다운 명분만 독점하면, 자신들의 언행이 아무리 어긋나더라도 ‘우리 편은 무조건 선, 너희 편은 무조건 악’이다.

 

 MB에 대해 국민이 가장 많이 주문하는 요구사항이 소통이라고 한다. 과연 MB는 설날을 앞둔 좌담회에서도 새삼 드러났듯이 소통할 의도가 아예 없다. 이건 비단 그만이 아니라 이전 세 정권의 민주 왕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소통의 귀를 가장 많이 연 지도자가 보통 왕이었다. MB는 자신의 선거용 소신만 아니라 인기관리용 변덕에도 정부와 여당은 무조건 복종하길 원하고, 야당은 무조건 이해해 주길 바라고, 국민은 무조건 박수하길 원한다. 그런데 지난 두 정권의 대통령을 요임금과 순임금처럼 떠받드는 무리들은 다른 걸 요구하는 게 아니라 자기들 말대로 하라고, 지난 두 정권처럼 하라고 특히 북한에 대해서 그렇게 하라고 요구한다. 소통이 아니라 항복을 요구한다. 결국 서로 반대편에 서 있지만, 둘 다 소통의 자세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한국에 소통이 전혀 없는가. 아니다, 국민들 사이엔 소통 잘되는 데가 많다. 대표적인 데가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나는 곳이다. 판매자와 소비자가 만나는 곳이다. 한국 소비자만큼 까다로운 소비자가 없는데, 생산자와 판매자는 군소리 한 마디 없이 방긋방긋 웃으며 일일이 다 들어준다. 번개같이 소비자가 요구하는 대로 고친다. 특히 생산자끼리, 판매자끼리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그러하다. 경쟁 무풍지대의 공기업은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공기업은 대체로 군림하는 꼴이 정부와 비슷하다. 정부가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하는데도 불구하고 사교육이 날로 번성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정부는, 교육부는, 교육청은 기기묘묘한 명령과 지시로 교육 소비자에게 무조건 복종만을 요구하지만, 사교육 시장은 정반대다. 가려운 곳을 먼저 긁어 주고 아픈 곳을 바로 진단하고 치료해 준다.

 

 스포츠계도 소통이 잘되는 편이다. 축구에서는 화란인 희동구가 연고대의 장벽을 허물고 소통의 모범을 보여 준 적이 있거니와, 그가 오기 훨씬 전에 양궁과 소트트랙 스케이팅과 핸드볼에서는 일찌감치 그렇게 되어 있었다. 올림픽 금메달 밭이었던 레슬링이 2010년 아시안게임에서조차 금메달 한 개 못 땄는데, 알고 보니 잿밥에 눈이 먼 어느 기업가에 의해 돈줄이 마르면서 그렇게 잘되던 소통이 단절되었기 때문이었다. 한때 몰락했던 박태환이 다시 일어선 것도 잠시 막혔던 소통이 새로 뚫린 덕분이다. 한국바둑이 하늘같던 일본바둑을 추월한 것도 첫째가 소통이었다. 일본바둑에서는 지금도 저단자는 고단자에게 감히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지만, 한국에서는 저단자도 고단자에게, 제자도 스승에게 얼마든지 자기 생각을 툭툭 던진다. 창호에게 물어 봐, 이것은 1980년대에 의문의 수가 나오면 서봉수 9단이 여드름 송송 10대의 이창호가 최고라며 그에게 물어 보라고 한 말이다.

 

 소통을 외치기 전에 먼저 자신부터 돌아보아야 한다. 자신의 오만과 편견을 바벨탑처럼 거대하게 세워놓고 상대방에게 무조건 항복을 요구해서야, 어찌 소통이 이뤄지겠는가.

 (2011. 2. 2.)

 

[ 2011-02-02, 17:3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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