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지식사회의 인지부조증(認知不調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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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한 간의 게임은 점심내기 바둑이 아니다. 그것은 남북 모두에게 생사의 게임이다.
  이점을 북한정권은 투철하게 인식하고 있고 남쪽은 그렇지가 못하다.
  
  유고슬라비아연방이 와해되면서 참혹한 유혈극이 빚어졌던 발칸사태가 강건너 불이 아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한반도의 문제도 발칸화 되지 않는다는 장담을 할 수 없다.
  
  10년 좌파정권도 나름대로 대북전략이라 하며 햇볕정책을 구사했었다. 그러나 막대한 돈과 쌀이 갔음에도 북한정권의 목표는 그대로이다. 왜냐하면 북한정권에게 있어 남북관계는 돈과 쌀로 바꿀 수 없는 생사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남북관계에 대한 인식정도의 차이가 모든 것을 엇갈리게 하고 있다. 이른바 전문가들의 예측 대부분이 빗나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북한 정권은 남북관계 문제에 대한 관념적인 접근을 절대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그들은 철저하게 현실적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북한 정권이 시장에 임하는 자본가의 접근법에 철저한데 반해 남한은 종종 관념적 미망에 빠지곤 한다.
  
  그들은 상대가 가진 것을 달라고 한다. 북한 정권은 남한에 서해와 돈과 쌀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왜냐하면 남한이 서해를 지배하고 돈과 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은 미국과는 핵문제를 얘기하려고 하지만 남한과는 얘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핵이 없는 남한은 핵협상의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핵문제는 어디까지나 미국과의 문제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북한정권은 그들의 ‘과속’이 종종 중국의 신경을 건드린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지정적-군사적 가치 때문에 중국이 그들을 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렇게 북한 정권의 전략적 목표가 분명한데 반해 이쪽의 전략적 목표는 애매하다.
  
  북한이 생사를 걸고 있는 핵은 미국도 “확산저지” 외에는 어쩔 수 없는 ‘돌아오지 않는 강’이 되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북한이 그 문제에 대해서 우리를 상대도 하지 않는데, 북한을 상대로 ‘비핵화’를 주의제로 내세우고 있다.
  
  미국도 냉전시대에 비해 전략적 선택이 복잡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70년대에 미국은 중동에서 ‘소련의 영향력 배제’라는 분명한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즉 이스라엘을 군사적으로 강화하는 한편, 이집트가 소련의 군사적 지원에 실망하게 함으로써 미국만이 중동문제의 유일한 중재자가 될 수 있었다.
  
  반면 현재 동북아에서 미국은 중국의 협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런 가운데 미국과는 속셈이 전혀 다른 중국의 발언권만 나날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같이 엄연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나름의 방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북핵문제에 대해 미국과 공조해야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나름의 정책 우선순위를 재조정 해야만 할 것이다.
  
  우선 우리 자체의 핵무장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관계를 참고하자. 과거 인도는 핵보유국으로써 파키스탄을 군사적으로 위협했다. 그러나 이제 파키스탄도 핵무장을 했다. 오랜만에 인도아(印度亞) 대륙이, 적어도 인도-파키스탄 관계에서는 군사적 안정을 찾았다.
  한국의 핵무장은 그 과정과 결과에 있어서 동북아의 정치-군사관계는 물론 우리 국내 정치에도 엄청난 임팩트를 가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진행 중인 사이비 좌우익 갈등양상도 질적 변화를 요구받게 될 것이다.
  
  그 다음, 대한민국은 북한정권의 구조적 약점을 가차 없이 그리고 직접적으로 공격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지속적으로. 남과 북의 관계에 있어 남이 강자이고 북이 약자인 것은 국력이나 국제적 위상으로 볼 때에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오히려 약자가 강자를 괴롭히는 기이한 현상이 오래되다 보니 이제는 아예 정형화되었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정부 차원의 관계뿐 아니라 남한내부, 특히 일부 지식인사회가 종종 피아구별도 혼동하는 심각한 인지부조증(認知不調症, cognitive dissonance)에 빠지게 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지난 상당기간 남한 정부가 북한 정권의 변증법적 전략구사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의 전략사상은 변증법에 전통적 동양사상을 접목시킨 모택동(毛澤東) 류의 군사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약(弱) 속에 강(强)이 있고 약(弱)은 강(强)으로 전화(轉化)된다는 관점이 그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다 알다시피 저들이 말하는 ‘약을 강으로 전화(轉化)’시키는 방법은 별다른 것이 아니다. ‘황야의 무법자’ 행세나 chicken game에서 무모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행태는 본질상 유치하지만 일정효과가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북한 정권의 전략을 철저하게 역이용해야 할 것이다.
  
  그 방법은 북한 정권이 변증법적 전화(轉化)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바로 그 약(弱)을 우리 쪽에서 적극적으로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일종의 전화(轉化)차단전략이다.
  
  북한 정권의 구조적 약점은 정권교대의 안전판이 없다는 점이다. 조직화된 공식 대체세력도 부재하다.
  따라서 북한 정권은 일단 붕괴가 시작되면 주민과 직접 대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답은 분명하다.
  
  북한 정권을 주민으로부터 고립시키는 것이다.
  
  북한 정권이 다른 무엇보다 휴전선의 확성기, 북을 향한 풍선, 애기봉의 불빛에 신경질을 내는 것은 이와 같은 심리적 기제들이 주민들을 동요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대북심리전에 직접 나서서 이것을 간단없이 시행해야 한다. 또한 대북심리전은 어떤 대북협상의 대상에도 포함되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억압정권이 6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희대의 현상에 대해 한민족 전체가 창피함을 느껴야 할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남북게임의 일대 전환을 위한 방책이 성공하려면 이를 뒷받침하는 내부정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마디로 최고통치자부터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통치의 대강(大綱)에 북한문제를 제일의(第一義)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북한의 도발을 일회성 사건-사고로 처리하고 나머지는 한미동맹에 의존하는 안이한 자세에서 탈피해야만 할 것이다. 북한문제가 우리의 소관이라는 확실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임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도래하는 것이 그리 먼 얘기가 아닐 수 있다.
  
  우선 정부는 북한 정권이 남한 내부에서 심리전에 이용하거나, 일단 유사시에 군사적인 면에서 내부의 교두보로도 삼을 수 있는 종북세력을 통치적 차원에서 밀도 있게 단속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이들에 대한 사법적 제재가 그 기준도 처분도 들쭉날쭉해서는 자유민주주의의 틈새를 비집고 다니는 종북세력을 단속할 수 없다.
  
  또한 남한의 일부 지식인사회가 남북문제를 주체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극장의 관객처럼 대하는 풍조를 전체 사회의 분위기 조성을 위해 단호하게 배격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객심리는 이미 상당히 만연되어 있다. 북한 정권이 외교적 비행을 저질렀는데도 일부 보수언론마저 부지불식간에 ‘절묘한…’ ‘고도의…’ 운운하는 어처구니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인지부조증(認知不調症)의 전형이다. 비행은 비행이고 약속위반은 약속위반일 따름이다.
  절묘할 것도 없고 고도의 술수일 필요도 없다. 이러한 태도는 게임의 실전현장에서는 일종의 ‘투항주의’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김철 /객원논설위원
  
  
  
  
[ 2011-02-10, 08:4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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