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에서 평양은 과연 먼가?
역사는 꿈 꾸는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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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 시민혁명은 성공했다. 비폭력의 도덕성, 대규모성. 보편적 공감대, 인터넷, 국제적(미국) 지지...등이 일구어낸 종합작품이었다. 막판에 무바라크의 집착을 24 시간만에 좌절시킨 결정적인 힘이 무엇이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그러나 군부가 무바라크와 함께 가지 않기로 결정한 겻만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4, 19때의 송요찬이라도 있었던 것인가?
  
   이집트 혁명이 世俗的 다원주의적 민주憲政으로 연착륙 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잘 조직된 서구 민주주적 야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국민의 41%가 빈곤선에 있고, 외국 투자자들은 철수해 버렸고, 군부가 터키형(型) 태국형 감시자 노릇을 하려 할 때 이걸 혁명군중이 과연 용인하려 할지도 불분명하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혁명을 하이재크 하려 암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그러나 지금은 어쨌든 공포정치, 비밀경찰, 고문(拷問), 부패,,,종식을 열망하는 타흐릴 광장의 이집트 시민의 승리의 순간이다.
  
   그렇다면 공포정치가 극에 달한 북한 수용소 체제는? 아예 상상도 해선 안 되는 절대 불가능 그 자체인가? 종북주의자, 강남좌파는 논외(論外)로 치더라도, “모든 현실은 고정불변의 것으로 본다”는 식의 ‘교조적 현실주의자’, 그 연장선상의 기능주의자=햇볕우파, 그리고 체념론자들은 설마 이집트 시민혁명이 가능할지도 예상하거나 소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는 꿈꾸는 자, 소망하는 자, 기도(企圖)하는 자가 만들어낸다. '그 시작은 미약해도 끝은 창대하리로다'를 믿는 자들의 몫이다. 조그만 바늘구멍 하나가 뚝을 무너뜨리는 법이다. 실제로 그 바늘구멍 하나를 뚫으려고 오늘 이 시각에도 묵묵히 꿈꾸고 실천하는 '역사적 상상력'의 담지자들이 우리 주변에는 있다. 對北 전단지를 날려 보내는 이민복 씨처럼.
  
   잘난 수재(秀才) 이론가들은 얼마든지 외면해도 상관없다. 그들이 외면하든 말든 모든 것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이고. 고정불변인 것은 없으니까. 이것을 믿고 고독과 인고(忍苦)를 감내하며 북녘 공포의 땅에 자유해방의 복음을 선포하는 소식 자체만으로도 김정일의 꿈자리는 불안해질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북한군 내부에까지 불만의 움직임이 있었다고 하지 않는가?
  
   이집트 혁명에 대해서도 CNN에 출연하는 논평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생각도 못하던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 2011-02-13, 22:4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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