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코샤리 혁명과 이슬람의 변화
이집트의 세속주의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으로 널리 전파될 것이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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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5년 이래 이집트의 국기는 탄생부터 따져서 7번 변신했다. 크게 나누면 두 가지다.

1952년까지는 셋 모두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진리의 시작)이 빛났지만, 1952년 나세르가 일으킨 무혈 군사 쿠데타로 왕정이 공화정으로 바뀌면서 도입된 아랍 해방기(the Arab Liberation Flag)는 넷 모두 초승달이 사라졌다. 아랍 해방기는 이라크, 시리아, 예멘 등도 사용하는데, 가로로 삼등분된 빨강(압제에 맞선 투쟁), 하양(무혈혁명), 검정(압제의 종식)의 삼색(tricolor)으로 이뤄져 있다. 단지 나라마다 가운데 하얀 띠의 문양만 다르다. 이집트 국기에는 서구의 십자군을 상대로 위명을 떨친 아랍의 전설적인 영웅 살라딘의 독수리가 날카롭게 세계를 쳐다보고 있다.

 

 19세기부터 나일강의 아들딸들은 이슬람 전통만으로는 격동의 시대를 헤쳐갈 수 없었다. 두 이념이 자연스럽게 새로 자리를 잡았다. 민족주의와 세속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민족주의는 식민 모국 터키와 늑대 터키를 몰아내 주는 척 대신 들어선 사자 영국을 차례로 물리치는 것이었고, 세속주의는 왕정 타도와 경제발전이었다. 왕정 타도는 영국으로부터 실질적으로 완전 독립하는 것과 맞물려 있었다. 나세르는 군부에 기반을 둔 공화정을 세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통일 아랍의 맹주로 군림하려고 이스라엘을 공공의 적으로 삼아 아무런 실속 없이 외부로 힘을 너무 쏟았다.

 

 뒤에 사다트와 무바라크는 실리 외교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그들도 내치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공화정은 장기 독재와 동일시되었고, 경제발전은 더디기만 했다. 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앞세우는 공화정은,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소수가 다수의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민주주의와 결합하여 민주공화정이 되어야 비로소 현대적 아랍 공동체(움마)가 성립될 것인데, 케말 파샤에 의해 정교가 철저히 분리된 터키가 느리지만 꾸준히 이슬람 민주화의 길을 가고 있을 뿐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권 어디에도 성공한 근대 국가가 없다. 지지부진하는 사이에 이슬람 근본주의가 일부 현대의 왕정이나 공화정보다 더 지독한 과거의 봉건주의와 손을 잡았다. 시아파의 두 나라 이란과 이라크가 대표적인 나라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권은 서구의 오스만 터키에 대한 분리지배(divide and rule) 정책과 알라의 축복 원유가 맞물려 경제발전이 더욱 더뎌졌다. 지대(rent) 이익 추구가 국가 경제정책의 핵심이 되었다. 경제든 사회든 인간 사회 발전의 핵심인 인간 개발(human

development)이 자연히 소홀하게 취급되고 소수의 왕족과 귀족이 유전(油田)의 지주로서 코란에 따라 약간의 자선을 베풀며 기술과 자본과 정보를 쥔 외세와 결탁하여 아랍(황야)의 황홀한 밤을 즐겼다. 그러다가 보니까, 이슬람과 봉건주의가 둘이 아니라 하나인 것처럼 내부의 이슬람만이 아니라 외부의 친이슬람 반미 반유럽 세력들에게도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2010년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이나 2011년 이집트의 코샤리(이집트의 음식명) 혁명에서 보듯이, 또한 예멘과 이란 등의 심상찮은 움직임에서 보듯이 무슬림도 소수 독과점의 봉건주의를 달가워하는 게 아니다. 그들도 민주주의를 원하고 공화정을 원한다. 단지 민주공화정이 서구 다르고 북미 다르고 아시아 다르듯이, 이슬람 전통의 민주공화정을 원할 따름이다.

 

 이집트의 세속주의 곧 경제와 정치가 전혀 발전하지 않은 건 아니다. 정치는 장기 독재이긴 하지만 공화정은 형식상으로는 자리 잡았다. 정치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잣대인 법치

(rule of law) 지수를 보면(세계은행 2006), 이집트는 100점 만점에 딱 50이다. 주변 이슬람 국가 중에선 높은 축에 속한다. 사우디아라비아 53.4, 터키 51.6로 이집트보다 높지만, 이라크는 11.0, 예멘은 30.4, 이란 33.8, 시리아는 39.0로 이집트보다 훨씬 못하다.

 

 실업률 9.7%, 청년실업률 25%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지만, 세계 평균 실업률 8.8%, 선진국 청년실업률 평균 14.6% 스페인 청년실업률 40%와 비교하면, 폭동이 일어날 만큼은 아니다. 이집트는 구매력지수 일인당 소득(PPP)이 5,889달러로 가난한 나라이지만 소득분배는 모범적이다. 낮을수록 소득분배가 잘 된 지니계수로 볼 때, 이집트는 0.321(세계은행) 또는 0.344(CIA)로서 한국 0.316(이하 세계은행)과 비슷하다. 이집트 혁명 소식에 벌벌 떨고 있는 ‘노동자와 농민의 나라’ 중국 0.415, 또 다른 공산국가 베트남 0.378, 중동의 맹주를 호시탐탐 노리는 이란 0.445, 이슬람의 최강자 터키 0.432보다 훨씬 낫다. 심지어 미국 0.408, 영국 0.360보다 낫다. 무바라크가 700억 달러 이상 빼돌렸다고 하지만, 나라 전체로 보아 다른 이슬람 국가보다 많이 세속화된 이집트가 가난한 자를 돌보라는 코란의 가르침을 오히려 충실히 지켰다.

 

 이집트는 산업구조가 아직 전근대적이지만(1차 산업 27%, 2차 산업 15.4%, 건설 7.8%, 서비스 49.8%), 먹는 문제는 해결했다. 이집트 통계청에 따르면, 곡류, 육류, 채소, 과일 등을 모두 합한 연간 1인당 음식물 섭취량이 2005년 기준 787.0kg이다. 1960년 458.9kg에 비하면 획기적으로 늘었다. 1981년 735.3kg이었으니까, 먹는 문제는 그때 이미 해결한 셈이다. 단지 1980년대에 비하여 곡물 섭취량은 330.8kg에서 309kg으로 줄고 육류와 생선 섭취량은 75kg에서 130kg으로 늘었다. 인구 8천만에 소와 물소가 합하여 855만 마리, 양과 염소 합하여 923만 마리를 키운다. 낙타도 148만 마리가 있다.

 

 이번에 이집트 국민이 무바라크의 사진을 신발로 때리면서(이슬람권에서 최대의 모욕) 카이로의 타흐리르(해방) 광장으로 몰려 든 것은 첫째는 무바라크의 장기 독재에 대한 염증, 둘째는 주식인 밀 값 폭등이다. 직접적인 것은 연간 10.3%에 이르는 인플레이션과 그보다 두 배나 오른 밀 값이다. 곡물가격 폭등은 2007년 미국의 부시가 휘발유 대용으로 밀과 옥수수를 에탄올로 만들라고 한 것과 러시아의 푸틴이 2010년 흉작으로 밀 수출을 금지한 것과 관련이 깊다. 이집트는 밀을 주로 러시아로부터 사들이는데, 수입선을 프랑스로 바꾸면서 12억 달러가 추가되었다고 한다. 모든 국민의 먹는 문제만은 해결해 주려고 밀 자급률 이 58.7%밖에 안 되어 나머지는 수입할 수밖에 없지만 보조금을 주어 밀가루 반죽인 아이시(Aysh)을 국영상점에서 싸게 파는데, 무바라크가 자신의 비자금 계좌는 안 열고 또는 원유 수입이나 송유관과 수에즈 운하로 벌어들인 돈은 풀지 않고 아이시 값을 올리려고 했던 것이다. 무바라크는 거센 반발에 화들짝 놀라 취소했지만, 이미 이집트의 젊은이들이 트위터와 휴대폰과 인터넷으로 반(反) 무바라크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후였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이집트에게 똑같이 매년 30억 달러 정도를 무상으로 지원한다. 사이좋게 잘 지내라는 배려다. 나세르의 1차, 2차 중동전쟁 실패 이후 사다트와 무바라크는 이스라엘과 화해의 악수를 나누고 빼앗겼던 시나이 반도도 되돌려 받았고 미국의 지원도 든든히 얻었다. 아랍이나 이란의 가운데 서서 비교적 중립을 지켰다. 그런데 미국의 원조를 국가 발전에 별로 쓰지 못했다. 이집트는 인간개발지수가 세계 101위에 머물고 있다. 기대수명은 70.5세에 머물러 있고 기대 교육 연한은 11.0년에 머물러 있다. 앞서 말했듯이 구매력 기준 소득은 일인당 6천 달러가 안 된다. 1978년에는 이집트에 아예 상대도 안 됐던 중국은 인간개발지수가 89위인데 소득은 이미 구매력 기준 7,258달러이다.

 

 내가 보기에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군인이 정권을 잡은 것은 같되(중국도 따지고 보면 등소평까지만 그런 게 아니라 지금도 군인 출신의 원로들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음), 2010년 기준 한국은 인간개발지수가 일본 바로 다음인 세계 12위로 올라섰다. 중국은 아직도 89위에 머물고 있다. 한국의 기대수명은 79.8세, 기대 교육 연한은 16.8년으로 지금 어린이들은 100% 대학 졸업하고 그 중 절반은 대학원을 수료한다는 의미다. 구매력기준 일인당 소득은 3만 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2만 9,518달러이다.

 

 나세르 시절 아니 사다트 시절만 해도 한국은 국제적 위상이 이집트에 어림없이 못 미쳤다. 지금은 인구가 적을 뿐 모든 면에서 한국은 이집트를 압도한다. 난장판 국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법치지수가 선진국(약 70점)에 조금 못 미치는 64.4이다. 민주화가 노태우 정부 시절에 이미 지금 수준에 도달했던 것이다. 나이 여든이 되도록 민주와 독재의 의미도 모르는 진짜 바보 김영삼이 나라 말아먹으려고 청와대에 들어선 이후 대한민국은 민주화가 하나도 발달한 것이 없지만, 하여튼 그것도 긴 안목으로 보면 성장통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이집트에 비하면 한국의 민주화는 군인 출신 대통령 시절에도 눈부시게 발전했다. 오늘날 한국의 기업이나 한국의 문화나 한국의 스포츠는 세계적 수준에 올라섰다. 정치만 상대적으로 뒤떨어졌다.

 

 자연자원이 거의 없는 한국은 살 길은 자연 개발이 아니라 인간 개발임을 깨닫고 산업 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70%를 차지하던 1차 산업은 이제 4%에 지나지 않는다. 2차 산업은 29%이다. 산업국가 무리에선 독일, 일본과 더불어 서로 2차 산업 비중 1위를 다툰다.

 

 이집트의 길은 한국에 있다고 할 것이다.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과 인간 개발 노하우, 선진국에 근접하는 법치 확립, 생산적 소득분배 등은 사실 전 세계 모든 개발도상국에게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다. 중국도 결국 공산당 일당 독재를 끝내고 언젠가는 한국의 뒤를 따라와야 할 것이다. 이슬람권에서 제일 먼저 한국을 눈여겨 본 나라는 마하티르의 말레이시아였다. 최근에는, 수백 년 동안 소아시아만 아니라 동유럽 전체와 아프리카 북부와 중동 전체를 지배했던 터키가 거인의 걸음을 내딛고 있다. 터키는 이집트와 이란과 더불어 인구도 그렇고 국토면적도 그렇고 서로가 비슷하여 언젠가는 이슬람의 세 강국으로 나아가 세계 강국으로 일어설 것이다. 이슬람권에서도 기독교권과 유교권에 이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정교분리(政敎分離) 원칙이 확고한 터키가 가장 먼저 보여 줄 것이다.

 

 시대착오적인 봉건주의와 결별하지 않는 한, 이슬람 근본주의는 이슬람(귀의 또는 순종)의 마음을 사지 못할 것이다. 이란이 좋은 예인데, 팔레비 왕조는 내쫓았지만, 그보다 더한 정교일치(政敎一致)의 봉건주의가 들어섰다. 산업화는 거의 중단되었고 언론탄압과 정치종교 지도자의 부패와 여성억압은 더 심해졌다. 그러나 여기도 변화의 조짐은 만만찮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혁명에 자극을 받아 개혁파들이 목소리를 반 음정 정도 더 높이고 있다.

 

 다른 중동의 국가들과는 달리 이란은 아랍어가 아닌 인도유럽어인의 한 갈래인 페르시아어를 쓰는데(터키는 터키어), 어느 미국 학자가 그들이 쓰는 8만 개에 이르는 블로그를 조사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이란은 크게 4개의 온라인 사회망(social network)이 형성되어 있었다. 아흐마디네자드를 중심으로 하는 보수파와 그의 정적인 하타마와 비종교인과 국외 추방자를 중심으로 하는 개혁파의 모임 외에도 페르시아 문학을 중심으로 연결된 사회망도 있었고 그 외 비정치적인 모임이 하나 더 있었다. 이것은 미국이 수백 만 개의 블러그가 있지만 보수파와 진보파 크게 두 개로 양극화되어 상호간에 거의 소통이 안 되는 것에 비하면 더 다양화되었다.

 

 서서히 이란도 산업.정보화와 민주화라는 세속주의가 발전하여 이제는 당국이 어떤 사이트에 대해 접근을 금지하더라도 개혁파는 20% 정도밖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보수파는 무슨 말을 하든 정부가 전혀 간섭을 않고! 내부 비판은 얼마든지 허용한다는 뜻이다. 이란 정부가 개과천선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들도 시대의 대세에는 어쩔 수 없어서일 것이다. 겉보기와는 달리 이슬람권에도 이처럼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이나 다른 나라나 중동 문제는 미국.이스라엘의 편과 이슬람 편으로 일도양단(一刀兩斷)하여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동도 매우 다양하다. 거기도 사람 사는 데라서 다른 지역과 별반 다르지 않다. 큰 흐름은 이슬람 근본주의와 봉건주의 사이에 생긴 간극이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편이든 이슬람편이든, 자본주의편이든 사회주의편이든, 강자편이든 약자편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놓치고 있다. 새로운 질서가 탄생하기까지 많은 갈등과 다툼이 있겠지만, 언젠가는 거기도 인권과 자유와 풍요와 세계로 열린 사회망이 들어설 것이다. 아마 이집트에 혼란은 있겠지만, 이슬람 근본주의가 정치 주역으로 들어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이집트 문제는 종교 문제가 아니라 세속주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2011. 2. 14.)

[ 2011-02-14, 13:3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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