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道가 판치는 세상에서 保守가 살아남는 법

강한필(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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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베스트셀러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경제학자인 장하준은 자신의 正體性에 대해 좌파이자 우파이며 중도파라고 公表했다. 그는 ‘정부 개입 對 시장 자유’를 기준으로 보면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기 때문에 ‘좌파’이며, ‘급진적인 변화 對 점진적 개혁’이란 잣대로 보면 점진적 변화를 추구하니 우파이고, ‘자본가 편 對 노동자 편’을 기준으로 보면 양쪽이 타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중도파’라고 自評한 것이다.
  
  
  
   최근의 이념 傾向을 보면,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갈피를 못 잡고 있는듯하다. 그런데 그 방향은 좌측도 우측도 아닌, 가운데다. 그러다보니 왼편도 오른편도 아닌 중간지대를 파고드는 틈새세력이 늘어나고 있다. 급기야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한 ‘뉴 라이트’도 전면에 등장했으니, 우파에서 좌파로 전향한 ‘뉴 레프트’가 나설 차례다. 轉向者들의 시대가 다가오는 것일까.
  
  
  
   물론 ‘요즘 세상에 좌우 이념이 어디 있느냐’며 ‘중도실용론’을 내세워 대권을 잡은 인물도 있고, ‘보수-진보間 좌파-우파間 싸움이 밥 먹여주느냐’는 주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보수도 진보도 다 싫다는 이들도 늘어간다. 하지만 근래 ‘무상급식’ 논쟁이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이념 싸움이 ‘공짜밥’을 먹여줄 수도 있겠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드니 그냥 넘길 일만은 아니다.
  
  
  
   문제는 좌익 對 우익에서 보수 對 진보라는 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보수우익이 좌경진보보다 고리타분하고 反개혁적인 이념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極右보수의 극단적 지칭인 ‘守舊꼴통’ 또는 ‘보수꼴통’은 우파가 볼 때는 매우 치욕적인 惡稱이기도 하지만, 좌파들이 보수 우파를 공격할 때 즐겨 쓰는 ‘親日수구세력’과 함께 써먹기 좋은 好稱이 되어 버렸다. 더불어 極左를 향해서도 ‘꼴통좌파’라 맞대응하고는 있지만 말이다.
  
  
  
   반면에 진보로 위장한 좌익은 親北과 從北을 넘나들면서 ‘개혁적 진보’니, ‘점진적 개혁’이니 하는 듣기 좋은 표현들로 ‘赤心’을 감추고 있다. 좌우익이 첨예하게 대결할 당시, 좌익은 ‘빨갱이’로 불렸다. 지금도 이 용어를 ‘좌빨’로 縮約시켜 즐겨 쓰는 보수 논객들이 있지만, 수구좌파들이나 反動좌파들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며 ‘좌빨’임을 강력 거부한다. 오히려 그들은 同調者들을 끌기 위해 ‘진보개혁세력’, ‘민주개혁시민세력’이라 불리어지길 원한다.
  
  
  
   요즘은 그보다 더한 ‘灰色分子’들이 설쳐대고 있는듯하다. 바로 ‘중도’임을 自處하는 집단이다. 말이 중도지, ‘개혁적 중도’니 ‘중도 개혁적 보수’니 ‘합리적 중도보수’니 하며 저마다 기회주의적 僞裝術의 명수들로 뒤범벅되어 있다. 그 克明한 예는 보수인줄 알고 밀어주었던 한나라당이 ‘개혁적 중도 보수정당’으로 탈바꿈한 것이고, 진보인줄 알았던 민주당이 ‘친북 좌파정당’, 左傾인줄 알았던 민노당이 ‘종북 좌파정당’임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이런 극한상황에서 自問自答을 해본다. 과연 대한민국에 元祖보수는 남아있는 것일까? 극우나 민족주의자는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일까? 또 진보가 있기는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얼치기 중도’만 남은 것일까? 그 많던 眞品보수는 다 어디로 사라지고 짝퉁보수만 설치고 있는 것일까?
  
  
  
  
   극우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나는 원조보수’임을 自負하고 ‘名品보수’로 남을 인물을 찾아보지만, 이러 저리 둘러봐도 ‘나는 중도우파이자 보수요’, ‘나는 보수우파이자 중도’라고 둘러대기만 하는 꼴이니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정치판에는 正體不明의 두루뭉술한 회색분자들만 남아 국론분열을 부추기고 있을 뿐이다. 그야말로 彼我가 구별되지 않는 상황이다.
  
  
  
   최근 실시된 理念性向에 관한 국민여론조사 결과, ‘당신은 보수인가, 진보인가, 중도인가?’라는 질문에 절반 이상이 ‘나는 중도’라 답했다고 한다. 중도우파와 중도좌파가 한국의 중심세력인 셈이다. 국민들이 이러하니, 정치인들은 더욱 중도를 탐내며 양다리 걸치기를 일삼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가는 내년 총선부터 ‘중도政黨’의 全盛時代가 열리는 것은 아닐지 매우 걱정된다.
  
  
  
   결국 중도파가 두터워졌다는 말이다. 90년대 초만해도 진보, 중도, 보수가 4 :2: 4의 분포를 유지했는데, 좌파정권 10년을 거치면서 3: 4: 3으로 그 구도가 바뀌었다. 결국 대한민국의 미래는 무려 40%가 넘는 중도세력의 선택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본다. 이명박 중도실용정권의 탄생도 보수가 강화돼서 정권교체가 된 것이 아니라, 중도가 보수를 선택한 결과라는 분석이 있다.
  
  
  
   이 ‘얼치기 중도’와 ‘양다리 걸친 중도’들이 판치고 있는 ‘잿빛세상’에서, 원조보수가 명품 보수로 살아남는 길은 과연 무엇일까? 그 길이 灰色分子들의 대열에 합류하는 일은 아니라 볼 때, 중도보수와 중도우파를 애국보수로 끌어당기는 일이 急先務라 할 것이다. 물론 先決과제는 보수의 진정한 가치를 확대 재생산하는 일이다.
  
  
  
  
[ 2011-02-15, 10:5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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