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민 향기, 중동을 넘어 중원으로
자유민주의 쓰나미가 밀려오기 전에 바벨탑 방파제는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스스로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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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어여쁜 한 송이 말리화

하 어여쁜 한 송이 말리화

어여쁜 가지의 아귀마다

그윽한 향기 가득하네

순백의 향기 가득하네

사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네

슬며시 저 마을로 보낼거나

말리화를 말리화를

 

(好一朵美丽的茉莉花

好一朵美丽的茉莉花

芬芳美丽满枝桠

又香又白人人夸

让我来将你摘下

送给别人家

茉莉花,茉莉花)

*말리화: 재스민, 중국 발음은 모리화

*익숙한 한국어 번역 가사와는 달리 필자가 의역한 것임.

 

 중국 강소성(江蘇省)의 민요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과 마침 이 민요가 잘 맞아떨어져, 눈부시게 하얀 재스민 한 송이를 보낸다는 것은 별천지 무릉도원 인간 군상 핏빛 공산당에게 순백의 민주화를 요구한다는 것의 은유가 되었다. 노래로 부를 때는 사랑하는 그이의 집(情郞家)에 보내고 싶다고도 한다. 송조영(宋祖英)이 중국 CCTV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말리화>가 과장된 면은 있지만 아주 감동적이다. 단순하고 정겹다.

 

 시장경제의 바람과 자유민주의 물결을 한사코 거부한 이념이나 종교가 차례로 쓰러지고 있다. 역사와 전통과 현실로 인식되던 계획경제와 인민민주가, 1980년대말부터 불과 몇 년 사이에 북해에서 오츠크해까지, 북극해에서 카스피해까지 그들의 인공 만년설과 바벨탑 방파제가 시장경제의 봄바람에 스멀스멀 녹아버렸고 자유민주의 쓰나미에 와락 휩쓸렸다. 시장경제의 봄바람은 너무도 따뜻하여 스스로 침낭 속으로 기어들어간 극동의 한 점 외에는 어느 땅이든 두꺼운 외투를 벗지 않을 수 없었다. 카리브해의 한 점도 이미 외투를 벗어 허리에 매고 있다. 황하도, 메콩강도 자유민주의 쓰나미는 아니었지만 몸과 마음을 타락시키는 요물로 배척하던 시장경제의 봄바람은 맞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시장경제의 봄바람은 마교(마르크스교)의 무리들이 아무리 굳센 사명감으로 아무리 불철주야 쇠몽둥이를 동원해서 아무리 인공 만년설을 꾸역꾸역 만들어 아무리 완강히 거부해도 인력으로는 더 이상 어떻게 못한다. 상냥한 미소를 머금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면 인공 만년설은 너무도 허무하게 녹아 버리기 때문이다. 겉으로 하얗게 보이는 것도 알고 보면 인공 만년설이 아니라 하얀 물감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도 베트남도 시장경제의 봄바람에 더 이상 미련하게 인공 만년설로 맞설 수 없었다. 북한과 쿠바만이 아직도 인공 만년설로 버티는데, 속을 들여다보면 각각 장마당과 바닷가 벼룩시장으로 이미 시장경제의 봄바람에 다 녹아버렸다. 침낭 안에 들어간 자들도 봄바람에 너무 더워서 실은 알몸으로 간신히 버틴다. 아니면, 피골이 상접해 있거나 굶어 죽었다. 인공 만년설을 뿌린다는 명목으로 독재자가 자행하는 무자비한 약탈도 더 이상 무소불위로 행해지지 않는다. 약탈이 전과 같지 않은 만큼, 독재자의 은총도 갈수록 초라해진다. 거지에게 던지는 100원짜리 동전처럼 초라해진다.

 

 시장경제의 봄바람에 맞설 수는 없어도 자유민주의 쓰나미는 바벨탑 방파제로 상당히 오랫동안 버틸 수 있다. 바벨탑 방파제는 현재 두 군데만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중국과 베트남과 북한의 유교 공산주의다. 두 번째 큰 것은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봉건주의다. 바벨탑 방파제로 얼마든지 공산당 귀족과 이슬람 왕족과 귀족의 기득권을 일시에 빼앗아가는 자유민주의 쓰나미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림도 없다.

 

 성경을 잘 새겨보라. 바벨탑은 육지의 두세 배되는 바다가 일시에 벌떡 일어나서 무너뜨린 게 아니다. 스스로 무너졌다. 인공물은 너무 커지면, 너무 높이 올라가면 어느 날 갑자기 와르르 무너진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초가 더 이상 가분수 몸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벨탑의 가장 큰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인간은 절대 하늘에 닿는 탑을 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왜? 크면 클수록 어느 날 갑자기 제 몸을 못 이겨 스스로 와르르 무너지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과 일본과 인도와 한국이 아프리카와 중동과 중국과 베트남과 북한에게 강제해서(요런 걸 음모설이라고 함), 자유민주의 쓰나미를 그들에게 일으켜 그들의 바벨탑 방파제가 넘어뜨리는 게 아니다. 스스로 무너진다. 보라, 이집트와 튀니지를, 리비아를, 예멘을, 이란을, 사우디아라비아를!

 

 중동과 아프리카의 이슬람 봉건주의도 동아시아의 유교 공산주의도 시장경제의 봄바람을 쐬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 봄바람이 살랑살랑 거룩한 명분을 내건 기득권자들이 자유민주의 쓰나미를 막으려고 필사적으로 건설한 바벨탑 방파제를 밑뿌리부터 흔들어 놓는다. 시장경제의 봄바람은 거짓과 위선을 여지없이 폭로한다.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진실과 위선은 시장을 통해 하나하나 드러난다. 그러면 아프리카의 독재자와 중동의 왕족과 귀족과, 베트남과 중국과 북한의 공산 귀족이 종교와 이념과 문화의 특수성을 내세워 자유민주의 보편성을 부정하고 맞서는 것이 실은 기득권의 영속화를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입과 귀로, 귀와 입으로, 문자로 음성으로 그림으로 속속 드러난다.

 

 눈이 밝아진 사람들은 더 이상 노예의 평등을 원하지 않는다. 자유인의 평등을 원한다. 밥 먹고 똥 안 누는 인간은 없다는 것을, 그런 인간은 악성 변비증에 걸린 중환자로서 곧 죽게 된다는 것을 이슬람 귀족과 공산 귀족에게 인정하라고, 사람들은 신발로 그들 초상을 두들긴다. 그 압박에 순순히 무릎을 꿇으면 무혈혁명이 되고, 끝까지 자기들은 밥은 먹되 똥은 누지 않는 도사나 선녀나 예언자라고 우기면, 유혈혁명이 일어난다.

 

 언론의 자유, 신체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집회의 자유는 정신적 노예가 아닌 한, 누구나 원하는 본성이다. 기회의 평등과 법 앞의 평등도 누구나 원하는 본능이다. 인권의 존중도 누구나 원하는 천성이다. 여기에 대하여 특수성 운운하는 모조리 사이비다. 이슬람 봉건주의와 유교 공산주의는 우습게도 지금까지 이걸 부정해 왔다. 이슬람 봉건주의와 유교 공산주의의 특수성이 개소리라는 것은 간단히 두 가지로 반증된다.

 

 첫째, 이슬람 중에 가장 큰 나라는 인도네시아다. 중동의 인구를 다 합한 것보다 인구가 많다. 거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자유민주의 대세는 누구도 거슬릴 수 없다. 이슬람 말레이시아도 마찬가지다. 거기도 아직 귀족이 없지 않지만, 대세는 자유민주다.

 

 둘째, 유교 공산주의는 다시 유교 봉건주의와 공산주의로 나눌 수 있는데, 이것도 간단히 자유민주가 대세라는 게 드러난다. 일본과 한국과 대만과 홍콩과 싱가포르는 유교 봉건주의에서 자유민주로 나아간 나라다. 백인 기독교 국가에서만 통하리라고 본 자유민주가 여기서도 거의 자리 잡았다. 다만, 유교적 문화는 남아 있다. 그것은 기독교 자유민주가 유일한 길이 아님을 증명할 뿐이지 자유민주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인도에 힌두 자유민주가 자리 잡은 것과 마찬가지다. 유교 자유민주라고 할 수 있다.

 

 공산주의는 이미 옛 소련과 동구의 공산권이 무너지고 초보적이나마 자유민주가 굳게 자리 잡은 것으로 자유민주의 대안이 되지 못함이 드러났다. 왜? 철의 장막을 뚫고 진실이 들어감에 공산귀족이 봉건귀족보다 더 악랄함이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유교 공산주의는 짝퉁이다. 중국의 6천만 공산귀족이 기득권을 항구적으로 독점하려는 개수작이다. 이에 아첨하는 자들은 대체로 몸은 자유민주의 단물을 다 빨아먹으면서 영혼은 마교에 저당 잡힌 정신분열증 환자 또는 위선자다. 권력에 기대지 않고는 어떤 일도 못하고 약간의 권력에 기대면 첩을 100명도 거느릴 수 있고, 최고위급 공산당 간부의 자식은 태자당으로서 거대 국영기업을 조상대대의 문전옥답처럼 마음대로 이용하는 유교 공산주의가 어찌 기독교 자유민주 또는 유교 자유민주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하물며 2천만 주민 가운데 1천만 여자의 처녀권을 언제든지 요구할 수 있는 자가 3대에 걸쳐 아방궁과 룸살롱과 라스베가스와 할리우드를 방방곡곡에 지어놓고 핵과 미사일과 땅굴로 도발하고 위협하여 뜯어낸 돈을 비밀금고와 비밀계좌에 꽁꽁 숨겨 두고 호의호식하는 것이 자유민주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재스민 혁명이 중국은 리비아보다 힘들고 북한은 중국보다 힘들 것이다. 무소불위의 공산당이 촘촘한 그물로 시장경제의 봄바람을 곳곳에서 가로막고 따로 거대한 자루에 모아 권력의 몽둥이를 휘두르며 닥치는 대로 뒷구멍으로 착복하고, 공산귀족의 기득권과 그들의 상상초월 부정부패에 대한 진실을 곳곳에서 차단하여 진실이 점으로 흩어져 있을 뿐, 얼기설기 그물과 땅을 뒤덮는 면(面)과 산더미 덩어리가 되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의 문제일 뿐, 피 흘림이 많으냐 적으냐의 차이일 뿐 분명히 자유민주의 쓰나미는 덮칠 것이고 바벨탑 방파제는 대부분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

 

 아프리카를 넘어 중동으로, 중동을 넘어 동아시아로 자유민주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아니, 자유민주의 쓰나미가 몰려오기 전에 바벨탑 방파제가 스스로 무너진다. 그것이 바로 재스민 혁명이다. 눈부시게 하얀 재스민의 향기가 봄바람에 실려 그윽하게 날아온다. 70억의 코를 간질인다.

      (2011. 2. 26.)

[ 2011-02-26, 21:1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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