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만의 중소기업이 강할까
대만의 중소기업은 시장에서 잡초처럼 자랐고 정부는 자본 대신 기술과 경영을 전수했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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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3월에 쓴 글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만의 중소기업과 한국의 대기업을 곧잘 비교한다. 결론은 미리 정해 놓는다.

“대만의 중소기업이 한국의 대기업보다 낫다. 우리도 본받자.”

 결과만 두고 보면 이런 말을 할만도 하다. 일인당 국민 소득이 그들이 우리보다 높고 중산층이 더 두텁다. 대기업의 횡포도 없다. 중소기업에 손 내미는 공무원도 별로 없다고 한다.

 

 무엇보다 대만의 중소기업은 빚이 거의 없다. 부채 비율 200%를 맞추느라고 난리를 피운 우리와는 달리 대만은 평균 부채 비율이 100%도 안 된다. 이 말은 망해도 최소한 본전은 되어서 다른 사람이나 국가에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른바 외환위기 같은 건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특히 이 점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무엇이든 겉만 보고 판단하면 그 속을 모르게 되는 수가 많다. 나중에 배신감을 느낄 수 있고, 좋다고 따라 배우다가 생각대로 안 되어 안 배우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 사이에 상대방은 저 멀리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곳으로 아스라이 사라져 버릴 수 있다.

 

 대만에서 중소기업이 꽃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장개석은 모택동에게 쫓기어 1949년 대만에 상륙했다. 사실은 침공했다. 대만인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한 게 아니었다. 말도 전혀 통하지 않는 자들이 자기 땅을 차지하러 왔는데, 누가 좋아할까. 그러나 별 수 없었다. 모택동에게는 패했지만, 대만 본토박이들이 장개석 장군에게 상대가 될 리 없었다. 공식 발표로는 불과 몇 백 명 살해당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수만 명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민진당의 진수편이 총통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머잖아 진실이 밝혀질지 모른다.

 

 중국 본토에서 온 외성인(外省人)은 즉시 지배층으로 올라섰다. 정치와 군사, 정부 요직을 독차지했다. 거기다가 큰 기업은 모조리 국유화했다. 국유화는 곧 국민당의 재산이 되었다는 말이다. 국가 기간산업은 대만 침공 이후 본격적으로 건설되었는데, 이건 남김없이 국민당 재산이 되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은행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이 때 장개석이 기간산업을 국유화하지 않고 민간인에게 맡겼으면, 아마 대만에도 한국 못지않은 대기업이 많이 등장했을 것이다.

 기업에 대해 전혀 간섭을 안한 홍콩에 한국의 정주영보다 더 대단한 재벌 이가성(리카싱)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건 그리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이란 게 처음부터 대기업으로 출발한 게 거의 없다. 자본주의에서는 하나같이 중소기업이 자라서 대기업이 된다. 그러나 대만의 중소기업은 아무리 대기업이 되고 싶어도 큰 돈 되는 게 빤히 보이는 기업은 하나도 남김없이 국민당이 틀어잡고 있었다. 일정 이상은 성장할 수 없었다.

 반면에 홍콩에서는 겨우 플라스틱으로 꽃이나 만들어 팔던 이가성이 세계적인 대재벌로 클 수 있었다. 영국이 식민 통치를 했지만, 그들은 자본주의 시장을 100% 열어 두었기 때문이다.

 

 대만에서 중소기업이 자라 세계에 우뚝 선 기업은 ‘에이서’가 유일하다. 그 이유는 그 기업이 전통적인 기업이 아니라 정보기술을 바탕으로 해서 국민당이 손을 쓸 사이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커 버렸기 때문이다. 석유화학, 철강, 자동차, 조선 등 초기 자본이 많이 드는 기업을 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이런 기업은 국민당이 다 차지했다. 전 세계 정당에서 대만의 국민당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당은 없다. 중국 공산당에 비길 만한데, 중국의 공산당은 적자 기업이 더 많아 사실은 빈껍데기다.

 

 잘 안 알려져 있지만, 주식 가치로 따지면 대만이 우리나라보다 큰 기업이 훨씬 많다. 아시아 50대 기업에 우리는 겨우 한두 개 명함이나 내밀지만, 대만은 보통 10개 정도 등록된다. 매출액으로 따지자면, 시가총액 세계 1위, 2위를 다투는 MS도 삼성 전자 정도밖에 안 된다. 대만에 대기업이 없다는 말은 기업을 오로지 자산이나 매출로 따지는 전근대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장개석은 대신 그릇이 컸다. 큰 것을 차지하는 반면에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피지배층인 본성인(本省人)이 경영하는 구멍가게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도와 주지도 않았다. 세금도 많이 매기지 않았다. 걸핏하면 세무 조사다, 뭐다 해서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수시로 길을 들이는 우리나라 정부에 비해 이 점은 장개석 정부가 잘한 일이다.

 

 대만의 중소기업이 빚이 적은 이유는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다. 은행 문이 한없이 높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약이 되었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시장에서 단련될 대로 단련되었다. 오로지 그 곳은 실력뿐이었다. 국민당은 이들로부터 코 묻은 돈을 뜯어내지 않았다. 장개석이 추상과 같이 다스렸기 때문이다. 대신 국민당은 대기업의 든든한 ‘돈 가방’이 있었다.

 

 현실 세계는 비정한 만큼 흑도의 무리 곧 조직 폭력이 국민당과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이들 이른바 ‘방(幇)’들은 일종의 정치 깡패 집단이자 기업이었다. ‘검은 돈’과 ‘흰 돈’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이들은 정부의 비호를 받는 대신 대만 본토박이들이 정치 세력으로 부상하는 걸 조직적으로 막았다.

 중국은 동네 건달 출신 유방이 중국 역사상 최강, 최장수의 나라 한(漢)을 세운 이래로 전통적으로 주먹들이 정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들 무리를 사마천은 사기 열전에서 유협(遊俠)이라 했다. 장개석은 이 전통을 계승(?)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만의 중소기업이 강한 또 다른 이유는 직업에 대한 귀천 사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본, 독일, 이태리 공통의 현상이다. 다만 대만은 이태리와 비슷하다. 가족 중심이라는 말이다. 아버지 사장, 어머니 부사장, 아들 상무, 딸 부장이런 식이다. 일본과 독일은 봉건제의 발달로 핏줄보다는 집단이 중시되는 사회다. 따라서 그들은 도제 제도가 발달되었다. 이것이 그들 중소기업의 장점이다. 그래서 독일과 일본은 이태리와 대만보다 전문성이 훨씬 강하다.

 

 대만 토박이는 피지배층이었기 때문에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이 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따라서 고상한 일을 찾을 주제가 못되었다. 닥치는 대로 일했다. 전 가족이 매달려 일했다. 대신 자본주의를 철저히 배웠다. 이른바 진입 규제도 없었고 퇴출 규제도 없었기 때문에 기업을 설립하고 부도내는 건 사장 마음먹기에 달려 있었다.

 

 한국에서 콧구멍만한 공장 하나 차리려고 해도 도장이 수백 개 필요하고, 기업이 부도나려고 하면 ‘중소기업 살려라’, ‘국민 기업 살려라’, ‘애국 기업 살려라’라면서 전 국민이 앞장서서, 식물인간에게 수천억 원 쏟아 붓게 하고 주사 한 대 맞으면 감쪽같이 나을 환자를 수천 명 죽이는 것과 선명히 대조되는 일이다.

 한국은 상공업을 천시하는 사상이 워낙 강해서 중소기업한다고 온 식구가 매달리는 일은 밑바닥 인생 아니면 상상도 못했다. 정말 드물었다.

 대학 물 먹은 사람이 중소기업에 눈 돌린 것은 IMF 이후다. 벤처 기업이 바로 그것이다. 이건 땀 ‘질질’ 흘리는 일이 아니라서, 천한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코스닥에서 뜨면 일확천금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 전에는 ‘권력’을 부릴 수 있는 대기업이 단연 최고였다.

 

 정치인이든 판검사든 공무원이든 교수든 은행원이든 언론인이든 대기업 사원이든 한국인은 ‘권력’이 있어야 살 맛이 나는 민족이다. 밑에 부릴 사람이 없으면 배운 사람은 전혀 신이 나지 않는다.

 벤처 기업이 뜨면서 비로소 이런 끈질긴 ‘권력’ 집착이 조금씩 약화되기 시작했다. 돈의 유혹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또한 벤처 기업에서 성공하면 불특정 다수에게 군림할 수 있다. 변형된 ‘권력’이라고 할 수 있다. 벤처 기업에서 성공하면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 본다. 바로 이것이다.

한국인은 남들이 우러러 보지 않는 일은 안한다. 아무도 우러러보지 않는 중소기업한국인은 밑바닥 인생 아니면 죽으면 죽었지 안 하려고 했다.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하나같이 배운 것이 별로 없고 신분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성공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상공업을 천시해서 배운 자는 그 쪽 길로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우중이 예외인데, 그러나 그는 한글세대요, 젊었을 때 최하층 생활을 해 봤다. ‘장돌뱅이’가 부끄럽지 않았다. 그는 이미 상공업의 미래를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세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전 세대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정인욱과 유일한이 특이한 인물인데, 하나는 망하고 하나는 별 볼 일 없는 중견기업 정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우중은 더 비참하게 되었고.

 

 더군다나 귀한 아들과 딸을 땀 질질 흘리는 일에 절대 끌고 갈 수 없었다. '공부'만 하라고 했다. 마누라도 마찬가지다. 마누라는 모름지기 ‘집안’에만 있어야만 하는 ‘집사람’이었다. ‘사모님’이었다. ‘마나님’이었다. 문화란 끈질긴 것이어서 사람의 생각이 바뀌기는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한국인은 자나 깨나 고시할 생각, 정치할 생각, 입신양명할 생각을 했지 근육을 써서, 팔다리를 써서 돈 벌 생각을 않았다. 결과만 보고 한국이 중소기업했으면 오히려 잘 했을 거라고 하는 건 아무래도 성급한 판단이 아닐까 한다.

 

  승승장구하던 대만의 중소기업에 대위기가 왔다. 한꺼번에 와해될 운명이었다.

중국의 개혁 개방 때문이었다. 무진장한 인력으로 한없이 저렴한 노동 비용으로 대만이 하던 것을 골라서 했다. 기술도 자본도 없었기 때문이다. 노동집약의 대만 중소기업은 태평양 바다에 가라앉을 날만 기다리는 입장이 되었다.

 

 국민당 정부는 중국인 특유의 실리 외교를 펴서 한밤중에 슬그머니 성문을 따 놓고 모른 척했다. 대만인은 물밀 듯이 중국 본토로 들어갔다. 자본과 기술을 들고 저렴한 중국의 노동력을 이용했다. 양쪽의 이해가 기가 막히게 잘 맞아떨어졌다. 한 푼의 돈이 아쉽던 중국, 기술이 형편없었던 중국은 대만 때문에 순식간에 ‘자질구레한’ 물건으로 전 세계를 뒤덮었다. 자본주의의 생리를 배운 게 중국으로선 제일 큰 수확이었다. 대만이 기사회생한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또 다시 위기가 왔다. 저번보다 더한 위기였다.

 중국은 배우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공산 정권에서 게을러질 대로 게을러져 있던 중국인들이 돈맛을 아는 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대만을 바짝 추격했던 것이다. 중국인은 역시 타고난 상인이다. 자본주의와 중국인은 물과 고기이다.

 게다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까지 치고 올라왔다.

 

 이 두 번의 위기에 비하면 한국의 외환위기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특히 나중 위기는 정말 심각한 것이었다. 대만은 이때만큼 중소기업 위주의 정책을 편 것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한국의 대기업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누가 아이디어를 냈는지 몰라도 이 위기를 기가 막히게 잘 극복했다. 9회말 투 아웃 풀 카운트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역전 만루 홈런 날린 격이었다.

 

 그것은 바로 과학 기술이었다.

 이 때 생긴 게 저 유명한 신죽 공업 단지이다.

 

 대만은 한국이 1960년대 말 KIST를 세우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써 먹은 회심의 역작을 로열티도 한 푼 안 내고 베꼈다. 대대적인 해외 두뇌 유치에 나섰다.

 

 즉시 미국에서 우수한 화교들이 줄줄이 귀국했다. 애국심에만 호소한 게 아니다. 더 큰 미끼를 던졌다. 한국을 모방하되 대만 실정에 맞게 창조적으로 모방했다.

“미국에서 아무리 잘 나간다고 해도 너희는 아시아인이다. 한계가 있다. 조국으로 오라. 여기서 마음껏 기업을 해라. 온갖 혜택을 다 주겠다. 세금, 땅 모두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 5년간 땅을 공짜로 제공하고, 법인세를 아예 면제해 주겠다. 회사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기한을 연기해 주겠다. 기업만 일으켜 다오. 한가하게 연구실에만 쳐박혀 있을 수 없다. 바로 기업을 해 주면 더 좋겠다.”

 

 그들은 억만 장자의 꿈을 가슴 깊숙이 숨기고 애국의 깃발을 양 손으로 흔들면서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섰다. 대만에 오는 즉시 그들은 죽을 날짜를 이미 받아 놓은 대만의 중소기업과 굳게 악수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을 운명 공동체였다.

 물론 절대 죽을 수는 없었다. 과학자나 중소기업이나 배수의 진을 쳤다. 해외의 고급 두뇌들은 기술을 성심성의껏 제공하고 대만 중소기업은 침을 삼키며 그 기술을 배워서 온갖 정성을 다해 조그마한 물건을 만들었다.

 

 이 때 일으킨 대표적인 산업이 바로 저 유명한 컴퓨터 부품 산업이다. 그 중에서 단연 최고 스타가 바로 ‘에이서’이다.

 근면과 손재주로 버티던 대만의 중소기업이 해외 두뇌 덕에 첨단 산업에서 세계적 강자로 발돋움한 것이다. 이들이 조직적으로 미국의 실리콘 벨리를 이용해서 세계 경제 조류에 합류한 것은 정말 부러운 일이다. 대만은 이렇게 해서 전통적인 제조업에 매달려 있는 독일과 일본을 단숨에 한 단계 뛰어넘는 쾌거를 이루고 있다.

 

 대만 정부는 이때도 중소기업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다. 철저히 시장에 맡겼다. 돈을 대 주고 온갖 생색을 다 낸 게 아니라 돈은 저들이 알아서 구하도록 하고 (무리하게 돈 빌릴 대만인은 아예 존재하질 않는다.) 정부 차원에서도 기술을 지원했다. 경영도 알려 주었다. 고기(돈)를 주는 게 아니라 고기 낚는 법(기술과 경영)을 가르쳐 준 것이다.

 

 중소기업 지원책이란 게 고작 은행 돈 꾸어 주는 것밖에 없는 줄 아는 한국의 관료나 지식인들은  대만의 이 정책에서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야 한다. 기술과 경영만 확실하면 절대 대기업이 중소기업에게 큰 소리 못 친다. 오히려 벌벌 떤다. 한국 대기업이 일본의 조그마한 중소기업에게 벌벌 떠는 걸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부품 공급하지 않으면 한국의 대기업은 모조리 문을 닫아야 한다.

 

 인텔은 컴퓨터 중에서 CPU라는 핵심 부품 하나만 달랑 만들지만,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군림한다. 그들의 기술과 경영이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조립 기술로 덩치만 큰 대기업은 오히려 인텔의 밥이다.

 

 대만의 관료는 이런 원칙을 잘 알고 이를 정책으로 반영했다는 점에서 참 훌륭하다. 자본주의가 무언지 아는 인재들이다.

 

 대만 정부가 80년대에 잘한 일이 또 하나 있다. 그건 정부 차원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해서 대대적으로 디자인을 연구한 일이다. 이를 중소기업에 그대로 전수했다. 디자인 감각이 전혀 없어 중국인의 바람막이 옷처럼 후줄그레하던 대만의 중소기업이 때깔을 싹 바꾸었다. 촌티를 감쪽같이 벗었다. 대만의 국보, 채지충의 만화처럼 부드럽고 유머스럽고 여유 있는 대만식 세련미를 갖추게 되었다.

 어찌 보면 타고난 예술가요, 디자이너인 한국인이 이제는 디자인에서 대만에 한참 뒤져 있다. 정부의 무지 때문이었다.

 

 대만은 20세기 후반과 21세기는 ‘뾰족한 기술’과 ‘튀는 디자인’이 지배한다는 것을 정확히 판단하고 서슴없이 정부가 앞장서서 이 두 가지를 ‘교육’시켜 대만의 중소기업을 일약 세계적인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독일과 일본 못지않은 중소기업으로 만들어 주었다. 두 정책 모두 한국보다 10년은 앞섰다.

 (2000. 3. 28.)

 

 

[ 2011-05-04, 22:3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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