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위에 공기업, 공기업 위에 노조
대기업이 살벌한 국제시장에서 달러를 벌어오면, 왕건이는 대기업과 공기업의 노조가 다 건져간다. 그리고는 약자인 척하고 정의의 사도인 척한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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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별이 되기는 쉽다. 누구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눈을 희번덕거리고 이를 뽀드득 갈면서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이 친일파를 성토하고 군사독재를 개탄하면, 금방 VIP 초대장이 날아온다. 한민족/김민주 두 위장 부부가 용케 주소를 알아내어 인기의 전당으로 부디 왕림해 주십사, 정중하게 초대한다는 내용이다. 반세기를 알겨먹어도 식상하지 않는 단골 메뉴다.

 

 별 중의 별이 되려면 이걸로 부족하다. 재벌을 만악(萬惡)의 근원으로 몰아붙여야 한다. 친일파와 군사독재는 어쨌건 과거의 악이지만, 재벌은 시퍼렇게 살아 있는 현재의 악이요, 친일파와 군사독재의 사생아니까!

 

 개인적으로는 열이면 아홉 대기업에 입사하는 걸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사사건건 대기업을 물고 늘어져야 오늘의 독립투사로 떠받들어져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는다. 한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중소기업과 농촌과 근로자는 생산의 주체지만, 대기업은 이익의 약탈자로 공식화되어 있다. 학술토론이든, 방송토론이든, 공청회든, 술주정대회든, 심지어 청와대의 가부장 국무회의든, 여의도의 조폭 국회든 누군가 대기업을 옹호하면 금방 눈총이 난사된다.

“보라, 저기 대기업 끄나풀이 있도다! 얼마나 받아 처먹었을까?”

 

 지난 20여년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기업 총수는 무릎걸음으로 청와대로 기어가서 다소곳이 대통령을 에워싸고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귀를 쫑긋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밉보인 대기업 한두 개는 반드시 치도곤을 당한다. 그 전에 아무리 정치자금을 쥐도 새도 모르게 듬뿍 안겨주었더라도 소용없다. 새 청와대 주인은 정권 초기 서슬 퍼런 권력의 칼을 높이 빼어들고 자신의 ‘결백’함을 입증하려고 미운 대기업을 골라, 방송의 입과 은행의 피를 이용하여 기어코 반쯤 죽여 놓거나 아예 죽여 버린다. 대우 그룹이 한때(1993년 5월) 시가총액의 수위를 달렸지만, 대중경제의 시장 논리에 의해 공중분해되었고 김우중 전 회장은 아직도 대역죄 전과자로서 유령 인간의 삶을 산다.

 

 그 전에 현대 그룹은 감히 왕회장이 대권에 도전하여 하마터면 김영삼 소년의 대통령 꿈을 아슬아슬 좌절시킬 뻔했기에 괘씸죄에 걸려 자금줄이 꽁꽁 막혀 질식사 직전까지 갔다. 왕회장은 이때 크게 깨닫고 후에 금강산 자락의 고향으로 소떼를 몰고 가서 김대중과 김정일의 환심을 한꺼번에 샀다. 소 투자 또는 쇼 투자 효과는 엄청났다. 기름진 알곡 사료만 먹던 500마리 소는 도무지 풀밥을 먹지 않으려 해서 이내 모조리 도살되어 아사(餓死)와 도발 전문 장군님이 특별히 하사한 불고기 신세가 되었다. 하여간, 왕회장은 부채가 거의 탕감된 ‘국민기업’ 기아도 먹고 알짜 LG 반도체도 먹었지만 간판 기업들이 하나 둘 쓰러지려고 하자, 정부는 즉각 나서서 무려 33조 6천억 원의 공적자금을 퍼부어 몽땅 살려 주었다. 특집과 공익광고로 왕회장은 저승에 가서도 여전히 유일무이 국민회장으로 군림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떤 대기업보다 곤욕을 치른 주식회사가 삼성이다. 온갖 욕을 다 얻어먹고, 계열사를 빼앗기고 기업총수의 사재를 기부하고(8천억 원은 고스란히 재벌 죽이기 위원회로 접수됨) 백배 사죄하고 푸른 수의를 입고 휠체어 타고 일선에서 물러나고 ... 세금 제일 많이 내고 기부 제일 많이 하고 수출 제일 많이 하고 고용 제일 많이 하고, 중소기업 제일 많이 먹여 살리고, 공적 자금(혈세) 한 푼도 안 쓰고, 아무리 그래 봤자 소용없다. 아니, 오히려 그것 때문에 집중적인 견제를 받는다. IBM 바로 다음 세계 2위 특허 제국으로서 어떤 상황에서도 생산성을 높여 전천후로 이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은 도무지 고려의 대상도 안 된다. 오로지 중소기업을 후려쳐서 이익을 낸 것으로 인식될 뿐이다.

 

 초기엔 청와대에 위장취업했는지,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의 등을 둥둥 두드리고 대기업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집권 중반을 지나면서 실세들이 불쑥불쑥 나서서 MB의 위대한 환율 정책으로 번 돈과 협력업체 후려쳐서 번 돈을 모조리 토해 내라고, 정부와 무관하다는 정운찬을 앞세우고 청와대와 조율 없이 사견을 밝힌 곽승준을 뒤세워 30대 기업을 무차별로 압박한다. 조중동도 장단을 맞추고 추임새를 넣고, 물과 기름 같은 여야가 웬일로 한 목소리로 환호하고, 방송이 방방 뜨고, 인터넷이 아연 인기를 회복한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의 인기는 바닥을 긴다. 재보선에 대패하자, 오히려 이전에 그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밀었던 유권자들이 더 고소해 한다.

“속 시원하도다!”

 

 석탄공사라는 데가 있다. 자본잠식된 지 까마득 옛날이다. 그럼에도 혈세로 꿋꿋하게 살아있다. 여전히 신의 직장이다. 그러나 한국의 30대 기업 10년 생존율은 30%밖에 안 된다.

 “초과이익 공유? 여차하면 망하거나 부실기업으로 전락하는데?”

 그러나 석탄공사의 예에서 보듯이 대부분 무경쟁 독과점 기업으로서 주인이 없는 공기업은 절대 안 망한다. 너도 나도 뜯어가기 딱 좋다.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는다.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혈세를 퍼부어 살려 주고 정권 해바라기들에게 담당하는 일은 연간 330일 유급 휴가에 나머지 두어 달 동안 들락날락하며 돼지 멱따는 발성 연습하는 국회의원급에, 보수는 대기업급인 신의 직장 마련해 주는 데 그저 그만인 탓인지도 모른다. 선심성 대통령 공약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자금이 마치 세금이나 정부부채가 아닌 것처럼 보이려면, 공기업에게 손만 까딱하면 된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까지 60조 원도 안 되던 정부부채가 그 사이 300조 원 이상 늘어나서 367조 원인데, 공기업의 부채는 그보다 더 늘어나서 386조 원에 이르렀다. 대기업 중심으로 벌어 온 달러를 외환보유고로 쌓아놓아 봤자, 여차하면 일장춘몽이 될 수 있다.

 

 세계의 시장에서 살아남은 대기업은 투자의 실탄 현금을 쌓아 놓고 있지만, 정부와 정부의 마름 공기업은 국내의 경쟁 무풍지대에서 역대 대통령의 뜻을 하늘같이 받들어 이처럼 부실 덩어리가 되었다. 그러면서 최고 권력자는 격노의 손가락을 까닥하여 노동자농민으로 하여금 분노의 화살을 대기업에 퍼붓게 유도한다.

 

 1989년 한국전력이 포항제철에 이어 제2호 국민주로 상장될 때, 이 한 기업의 시가총액이 전체 시가총액의 14%나 차지했다. 2등에서 20등까지 모조리 합쳐도 한전에 당할까 말까 했다. 1992년 11월, 이 두 기업이 시가총액의 21.3%나 차지했다. 1993년 5월 28일 매일경제에 의하면, 30대 기업이 시가총액의 48.57%를 차지했는데, 그 중 1위가 대우 그룹으로 대우의 상장 회사 모두를 합치면 5.82%였다. 2위는 삼성 그룹으로 5.82%, 3위 현대 그룹 5.55%였다. 공기업 중 최고의 우량 기업이었던 한전과 포철은 처음 기세가 많이 꺾였다고 하지만, 여전히 둘을 합쳐서 14.5%를 차지했다. 대기업 1위에서 3위까지 합해서 겨우 한전과 포철 두 공기업보다 규모가 조금 더 커졌을 뿐이다.

 

 거기다가 외환위기 이후에야 민영화된 대부분의 시중은행도 공기업이었다. 은행들을 합치면, 거기다가 농협과 축협 등을 합치면, 한국은 겉보기와는 달리 대기업의 나라가 아니라 공기업의 나라다. 사회주의 국가다. 대기업이 해외서 벌어오면 공기업과 정부가 다 까먹는 형태다. 상대적으로 자율 경영으로 예나 지금이나 세계적인 우량기업인 한전과 포철을 제외하면, 공기업은 국가와 국민에게 대부분 커다란 짐이 되고 있다.

 

 이런 공기업보다 더 센 세력이 있다. 그것은 전체 노동자 중 겨우 10%밖에 가입되지 않은 노동조합이다. 1987년 합법화된 후 이들이 노동생산성의 과실을 가장 많이 가져갔다. 그 이전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차이는 100:80이었지만, 그 후로 급격히 벌어져서 지금은 100:50이다. 역대 정부는 노조의 표에 코가 꿰어 이들에게 한 번도 헌법과 법률의 위엄을 보여 주지 못했다. 외환위기도 속을 들여다보면 노조 권력 뒤에 정치 권력이 줄을 선 데 있었다. 그러나 노조는 모든 책임을 역대 정부에게 뒤집어 씌웠기 때문에 2010년이 되어서야 겨우 노조 전임자의 숫자를 대폭 줄이는 타임오프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것도 대통령이 재벌총수를 악질 친일파 다루듯 하는 상황에서 형식적으로만 지켜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철의 여인 대처가 영국병에 메스를 들이대어 제일 먼저 도려낸 것이 석탄노조였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공기업이 대기업보다 비중이 크고, 공기업과 대기업을 합친 것보다 센 권력이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노동자인 척하는 노동귀족이다. 이들은 대부분 공기업과 대기업에 소속되어 있다. 초과이익은 이들이 대부분 가져가기 때문에 동일 직장 동일 노동에서도 이들은 2배의 연봉을 받아간다. 그것은 일인당 국민소득으로 따지면, 단연 세계 1위다. 우리보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두 배 높은 일본, 독일, 미국보다 오히려 평균 연봉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중소기업에 신경 쓸 수가 없다. 삼성은 노조가 없다고? 없다. 그래서 좀 더 유연한 경영을 실행할 수 있다. 그러나 노조 있는 다른 대기업이나 공기업보다 임금 수준이 낮으면? 불과 몇 년 안에 대우그룹처럼 사라질 수 있다.

 

 한국이 일본을 능가하고 중국을 까마득히 따돌리려면, 먼저 공기업을 대기업처럼 잘 경영해야 한다.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노조의 입에서 정치 구호 대신 생산성 구호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와 정당이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정부든, 정당이든, 시민단체든, 학자든, 기자든, 뜨뜻한 안방에서 TV에 삿대질하며 큰소리나 치지 말고 갤럭시S나 아이폰2을 들고 가서 피가 낭자한 국제시장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는 한국의 우량 대기업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앞에서는 욕하고 뒤에서는 비굴하게 손을 내미는 위선의 탈을 벗어야 한다.

   (2011. 5. 5.)

[ 2011-05-05, 18: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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